최예은 협연,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스위스 이탤리언 오케스트라

연륜이 빚어낸 균형과 조화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1월 1일 12:00 오전

최예은 협연,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스위스 이탤리언 오케스트라

9월 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9월 27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부드럽고 따뜻한 기운이 가득했다. 전날 ‘정명훈과 바그너’ 공연으로 도전적이고 장엄한 분위기가 맴돌던 공연장은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가 이끄는 스위스 이탤리언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완전히 바뀌었다. 이날 프로그램은 베토벤의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서곡·교향곡 4번과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아시케나지는 고전 형식이지만 낭만적이고 서정적 느낌인 세 곡을 차분하게 이끌었다. 마치 직접 연주하듯 몸 전체를 크게 움직이며 피아니스트로서 선보였던 특유의 균형감과 여유로움을 뽐냈다.

아시케나지는 미소를 띤 채 연주자들 사이사이로 조심조심 걸어 나왔다. 첫 곡으로 연주한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서곡은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던 베토벤의 초기작으로, 교향곡 1번과 2번 사이에 작곡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총 16곡으로 이루어진 발레음악의 서곡으로, 관악기의 주제 선율이 두드러져 신비롭고 아름답다. 스위스 이탤리언 오케스트라의 관악기 연주자들이 지닌 탁월한 기량을 드러내기에 적절한 선곡이었다. 안정적이고 탄탄한 관악기 음색은 연주 전체를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속도가 빠른 대목에서도 노련함이 돋보였다. 1935년에 설립된 오케스트라의 내공을 엿볼 수 있는 무대였다.

다음으로 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이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다. 최예은은 에메랄드빛의 신비한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다. 1악장 도입부부터 화려한 기교를 뽐내는 솔로 바이올린 부분을 드라마틱하게 연주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날렵하면서도 안정적인 활 놀림은 우아하고도 정열적인 곡의 느낌을 잘 표현했다. 중간중간 급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오케스트라의 탄탄한 연주가 힘을 실었다. 고음으로 치달을수록 그녀의 연주는 빛났다. 그녀는 현재 안네 조피 무터 재단의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아 이탈리아 고악기인 로제리(1710)로 연주하고 있다. 지난해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안네 조피 무터가 했던 “최예은은 섬세함과 지성이 조화를 이루면서도 뜨거운 열정과 의지가 느껴지는 연주자”라는 말에 새삼 고개가 끄덕여졌다.

마지막을 장식한 베토벤의 교향곡 4번은 슈만이 “두 북구 신화의 거인 사이에 낀 그리스 처녀”라고 비유할 만큼 베토벤의 다른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밝고 활기차며 명랑한 곡이다.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서곡만큼 관악기의 역할이 중요하다. 1악장에서는 클라리넷과 바순, 목관악기와 현악기의 카논이 두드러지고, 2·3·4악장에서도 클라리넷·오보에 등이 주제 선율을 이어받는다. 어두운 단조 선율을 아다지오로 조용하고 차분하게 시작하는 도입부는 B플랫 장조라 표기된 제목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만들지만 자유롭고 파격적인 전조와 비바체까지 치닫는 빠르기의 변화는 다채롭고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스위스 이탤리언 오케스트라는 곡의 특징적인 부분과 다이내믹한 변화를 잘 살리며 흔들림 없는 연주를 선보였다. 특히 스위스 이탤리언 오케스트라의 수석주자인 클라리네티스트 코라 주프레디는 뛰어난 기량을 마음껏 발휘했다. 그의 존재감은 이날 연주 전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아시케나지는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한 후 연주자들을 향해 두 엄지손가락을 높이 들어 올렸다. 어린아이 같은 웃음으로 연주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충분히 인사를 건넨 후 행복한 여운을 청중과 나눴다. 역사가 있는 오케스트라와 연주자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노장 음악가의 조화가 빛나는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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