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합창단 제154회 정기연주회 ‘카르미나 부라나’

아홉 번째 운명의 수레바퀴를 굴리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1월 1일 12:00 오전

9월 3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국립합창단 신임 예술감독 구천은 ‘국립합창단과 새로운 운명적인 도전을 한다’는 의미에서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를 무대에 올렸다고 인사말에 적었다. 하지만 자칫 연주 효과를 위한 가벼운 선곡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할 수도 있었다.

국립합창단의 무게감과 존재감을 생각해볼 때 예술감독 취임이란 것은 분명히 개인적으로나 합창단 입장에서나 대단한 변화를 내포한 운명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 막중한 부담감과 합창단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에 대해 에둘러 자신 있다고 하기보다는, 유명한 영화 대사처럼 그 두려움과 부담을 용기로 바꾸어 새로운 운명에 도전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 훨씬 솔직하다. 그런 면에서 ‘카르미나 부라나’는 앞서 말한 편견을 뛰어넘는 매우 의미 있는 결정이었다고 본다.

이 작품은 듣기 편한 선율을 가지고 있지만, 다양한 옛 언어로 인해 가사를 깊게 음미하기는 쉽지 않다. 사랑의 달콤함과 술집의 흥겨움 등 오늘날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이 운명의 수레바퀴를 벗어날 수 없는 우리의 숙명이라는 진리가 흥겨움과 달콤함을 입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진리보다 귀가 솔깃한 합창 기법이나 관현악법에 마음을 빼앗기는 우를 범하곤 한다.

이날 합창을 보면 ‘카르미나 부라나’의 극적인 감성의 표현을 위한 기악 편성에 따라 구천이 예술감독을 역임했던 광주시립합창단이 함께했다. 1부의 ‘보라, 즐거운 봄(Ecce Gratum)’이나 ‘온 세상이 내 것이라도(Were Diu Werlt Alle Min)’에서 전체 합창의 터져 나오는 감정 표출이 뛰어났다. 하지만 정작 어려운 것은 유절형식의 합창이다. 그런 점에서 1부 첫 곡인 ‘즐거운 봄의 얼굴(Veris Leta Facies)’은 절마다 다른 내용이 음색의 변화로 잘 표현되지 않아 아쉬웠다. 또한 ‘여보세요, 볼연지 좀 주세요(Charmer, Gip Die Varwe Mir)’ 같은 곡도 여성 파트의 재치가 더욱 빛을 발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각 파트는 다소 까다롭고 빠른 가사에도 불구하고 탄탄하게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용인시립소년소녀합창단은 음색이 매우 빼어났는데, 뛰어난 소리와 가사 전달력을 보여주어 연주회에 활기를 북돋웠다. 하지만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힘찬 작품을 제외하고 섬세하거나 서정적인 곡에서 현악 파트가 다소 밋밋한 보잉을 보여주어 아쉬웠다. 이에 비해 타악·관악기군은 대체적으로 안정된 연주였다. 중간에 춤곡을 비롯한 몇 곡에는 현대무용이 가미되어 혼합예술의 장을 마련했는데, 무대가 좁아 안타까웠다. 독창자들은 40대 초반의 실력자들로 무난했다. 가장 주목받은 이는 바리톤 김동섭으로, 초반엔 음정이 약간 불안했지만 중반 이후 안정된 가창력이 돋보였다. 특히 ‘나는 게으름뱅이 수도원장(Ego Sum Abbas)’을 통해 연기력과 유머 감각을 보여주었다. 이런 독창자들의 동선이나 무용수의 등장,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통솔까지 입체적인 무대의 움직임을 성공적으로 조합해낸 것은 무엇보다 예술감독의 공이다. 국립합창단원으로 시작한 이른바 ‘갑종장교’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연륜이 묻어나는 무대였다.

‘카르미나 부라나’의 시가 포함된 시집의 겉에는 운명의 수레바퀴(Rota Fortunae)가 그려져 있다. 이제 국립합창단은 새로운 예술감독 아래에서 아홉 번째 운명의 수레바퀴에 올라탔다. 예술감독 구천의 당찬 기백이 이제 국립합창단의 어떤 미래상으로 펼쳐질지 기대된다.

사진 국립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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