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도 속에 막을 올린 베르디의 작품, 오페라 ‘나부코’. 무대 뒤에 숨겨진 의상·헤어·분장 이야기
고양문화재단과 대전예술의전당이 공동 제작한 오페라 ‘나부코’의 막이 올랐다. 바리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데다 여주인공 아비가일레 역은 소프라노 배역 중에서도 어렵기로 소문나 있어 그동안 국내에서는 만나기 힘들었던 작품이다. 오페라 ‘나부코’는 히브리인들이 바빌론에 강제로 끌려간 사건 ‘바빌론 유수’라는 구약성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 시대도 시대거니와 히브리교라는 우리에게 낯선 종교의 색채까지 있어 현대인에게는 친숙하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이번 제작팀에서는 종교·시대적 이질감을 덜어내고자 증기기관과 같은 기술이 급격히 발달하기 시작했던 가상의 과거 혹은 현재와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 장르의 일종인 ‘스팀펑크’라는 다소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그동안 오페라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았던 행보다.
이에 따라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의상과 헤어, 그리고 분장이다. 스팀펑크에 걸맞게 ‘탈(脫)시대’를 주요 콘셉트로 설정했다. 특히 히브리인과 바빌론인의 대립, 그리고 바빌론 안에서도 주인공 나부코와 아비가일레의 대립을 색을 통해 표현해냈다.
히브리인의 경우 극 속에서 바빌론인에 비해 자연과 가까운 사람들로 표현되기 때문에 ‘자연’을 콘셉트로 잡았다. 베이지·카키색 등의 편안한 색을 주조색으로 삼아 의상·헤어·분장을 조화시켰다. 헤어스타일도 높게 묶거나 땋지 않고 풀어서 가식적이지 않고 편안한 모습을 연출했다. 반대로 바빌론인은 문명을 추구하며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파란색·보라색 등 차갑고 강한 색 위주로 표현했다. 헤어 곳곳에 파란색 또는 보라색이 들어가며 땋거나 꼬고 있어 히브리인보다 훨씬 현대적이다. 조금 더 과하게는 사이버틱한 느낌마저 든다.
아비가일레와 나부코의 대립이 나타나는 오페라의 내용에 따라 바빌론인 내에서도 다시 한 번 대조적인 표현이 나타난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혈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비가일레는 차가운 계열의 색인 진한 파란색이 주조색이다. 헤어 사이사이에 파란색을 넣고 분장과 의상에도 파란색을 주로 사용했다. 나부코는 처음엔 강하지만 차차 아비가일레에 비해 상대적으로 순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주조색은 파란색보다는 중성적인 느낌을 주는 보라색이다.
이것은 19세기와 기독교·히브리교라는 원작 배경을 놓고 볼 때 다소 과감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현장에서 만난 분장 디자이너 임유경은 “오페라가 클래식에 가까운 장르인데 이렇게 대범하게 가도 되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멋있다고 칭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하다’라는 평가를 받아도 조화를 잃지 않았고 또 여러 번의 회의를 거쳤기 때문에 최종 콘셉트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야 하는 홍보 촬영에서 우선적으로 선보이고 실제 무대에서는 조금 수위를 낮출 생각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연출가 김태형이 마음에 들어 해서 이 느낌 그대로 가기로 했다고.
하지만 늘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자카리아 역을 맡은 베이스 함석헌의 경우 가발이 길어 의상의 포인트를 가리는 바람에 가발을 급하게 잘라내야만 했던 에피소드를 겪기도 했다. 프레스 리허설을 비롯해 여러 번의 리허설을 통해 많은 고민과 연구를 해야만 했고 이에 따라 조금씩 수정이 이루어졌다. 새로운 시도 속에 차근차근 성장을 이루어낸 셈이다. 과감하고 파격적인 시도가 눈길을 끄는 오페라 ‘나부코’. 위험을 안고 용기있는 시도를 한 그들의 무대는 시작되었다.
사진 이규열(라이트 하우스 픽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