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이상근음악제 개막공연
달라진 진주, 커지는 기대
10월 29일 경남문화예술회관
진주에서 처음 공연을 본 건 2012년 이상근국제음악제에 참석했을 때다. 이 음악제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던 그 당시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우선 ‘국제음악제’란 명칭에 따라 공연한 파자르지크 오케스트라는 연주력이 열악했다. 경남문화예술회관 대관이 되지 않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공연했는데, 클래식 공연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씁쓸함을 떠올리며 2년 만에 다시 진주를 찾았다. 여러 가지 변화가 엿보였다. 우선 음악제 전체의 디자인이 달라졌다. 이름도 ‘국제’를 뺀 ‘진주이상근음악제’로 깔끔하게 바꾸고 금빛 색채로 통일감을 부여했다. 심플한 디자인의 안내 책자도 세련미를 더해주었다. 작곡가 류재준을 영입해 연주자들의 수급을 원활하게 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한 홍보가 예년과 달리 풍성했고, 다양한 프리콘서트가 사전에 개최되어 축제의 군불을 지폈다. 이러한 사전 작업들로 인해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첫날 개막 공연으로 관심과 열기가 이어질 수 있었다.
10월 29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개막 공연은 레퍼토리와 연주 모두 예전에 비해 높아진 수준을 자랑했다. KBS교향악단이 무대에 올랐고 지휘자 그레고리 노바크가 등장했다. 첫 곡은 진규영의 교향시 ‘나의 회상’이었다. 2008년 임헌정 지휘의 부천 필하모닉이 초연했던 이 작품은 바다·자유·환상 등의 표제를 점차 웅장하게 구축해가는데, 노박과 KBS교향악단은 큰 스케일의 교향악적인 울림을 전달해주었다. 음악제를 시작하는 서곡으로 손색이 없었다.
백주영이 협연한 카롤 시마노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도 자주 듣기 힘든 곡이었다. 그의 교향곡에서도 볼 수 있지만 마치 비정형의 틀에 담긴 액체 같은 작풍이다. 모든 것이 물과 같이 다가왔다. 잔잔하게 흐르다가 말미에서는 노도와 같은 물결이 되어 모든 것을 삼킬 듯이 밀려오는 엄청난 에너지도 느낄 수 있었다. 마침 그레고리 노바크가 지휘한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이 작품을 함께 녹음한 백주영은 사전에 충분히 의견 교환을 끝낸 듯 능숙하게 성큼성큼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모습이었다.
이날 공연의 백미는 인터미션 후의 무소륵스키 피아노 독주를 위한 모음곡 ‘전람회의 그림’이었다. 수없이 많이 들었던 라벨의 편곡이 아니었다. 음반으로 들었던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나 레오 푼테크의 편곡도 아니었고, 러시아 작곡가 세르게이 고르차코프의 편곡이었다. 러시아적인 장중함과 짙은 어둠 속에서의 포효, 그리고 저음현에 기반한 안정적인 구축이 돋보인 새로운 느낌의 경험이었다. 마지막 곡 ‘키예프의 대문’에 이르러서는 악단 위로 빛이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전곡을 통틀어 그레고리 노바크의 지휘는 적확했다. 명쾌하게 앞길을 개척해나가는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KBS교향악단의 연주도 그 어느 때보다 성실하고 반응이 즉각적이었다.
성숙한 매너를 보여준 진주의 청중은 공연이 끝난 것을 아쉬워하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고, KBS교향악단은 드보르자크 슬라브 춤곡 8번과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 ‘트레파크’를 앙코르로 연주했다.
남강이 아름답고, 진주성과 비빔밥, 냉면이 떠오르는 도시 진주. 이제 음악의 도시 진주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내년 프로그램에서 또 다른 도약을 이뤄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