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빈 메타/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새로운 시도로 증명된 건재함
10월 22일 현대예술관 대공연장
비유대인인 인도 지휘자 주빈 메타가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처음 지휘한 역사는 무려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이스라엘 필의 음악고문이 된 메타는 1977년에 음악감독이 되었고, 1981년에 종신 음악감독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니 무려 45년 동안 이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오고 있는 것이다. 주빈 메타와 절대적인 신뢰 관계를 갖고 세계 음악시장에서 자신들의 고유한 음악적 존재를 알려온 이스라엘 필이 지난해에 이어 한국을 찾았다. 최근에 특히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음악시장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이스라엘 필은 이번엔 서울을 찾은 것이 아니라 울산 현대예술관 초청으로 10월 22일 단독 공연을 치렀다. 특히 금년에 클라우디오 아바도·로린 마젤 같은 명장들이 타계하면서 음악계의 노장 지휘자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아쉬워하던 때에 한국을 찾은 주빈 메타의 모습은 더욱 반가웠다. 이날 첫 곡은 비발디의 ‘화성의 영감’ 중 4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RV580이었는데 상당히 의외의 선택이었다. 그동안 이스라엘 필이 한국에 왔을 때마다 대규모의 곡들만 연주를 했었기 때문에 바로크 곡인 비발디를 선택한 것은 매우 이채로웠는데, 4명의 바이올린 단원을 솔리스트로 내세우고 20명 규모의 작은 곡을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모습을 보게 된 건 국내에서는 최초의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메타로서도 흔치 않은 일이어서 무척 즐거웠다. 메타는 바로크 레퍼토리를 통해 현악 단원들의 앙상블 결속력을 자체적으로 더욱 꾀하고 있었으며 마치 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단원들의 앙상블을 자애롭고도 따뜻하게 만들어나갔다. 이날 공연의 레퍼토리는 음악사의 연대기별로 포진되었다. 두 번째 곡은 슈베르트 교향곡 6번, 일명 ‘작은 C장조’. 특히 1악장 아다지오-알레그로에서 들려준 말끔한 현악 앙상블은 젊은 날의 슈베르트를 느끼게 하는 참신성이 돋보였는데, 후반부로 진입할수록 희석된 것은 아쉽다. 2부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117명의 교향악단이 포진된 가운데 1부의 온화한 레퍼토리와 극적인 반전을 이뤘다. 1악장의 음산한 마무리는 메타의 해석을 반영한 것이어서 좋았는데 2악장의 호른을 비롯한 금관의 정갈하지 못한 연주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러시아계 단원들이 상당수 포진된 이스라엘 필의 터프한 사운드는 4악장에서 포효하면서 광활한 승리의 찬가를 만들어냈다.
이날 앙코르는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중 인테르메조였다. 평화롭지만 앞으로 다가올 비극성을 담고 있는 이 곡을 주빈 메타와 이스라엘 필은 감정이입을 통해 선율미가 살아 있는, 이날 연주 중 가장 아름다운 연주로 마감했다. 무엇보다 이번 연주에서 반가웠던 건 주빈 메타의 건강함과 건재함이었다. 왕성하게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가 앞으로도 우리에게 명장만이 들려줄 수 있는 융숭 깊은 음악들을 자주 들려주길 기대한다.
이스라엘 필의 이번 울산 공연은 일본·중국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공연 중에 마련되었는데, 이번 울산의 예처럼 앞으로도 지역 도시들에서 단독 또는 함께 개최하는 공연이 많아져서 전국적으로 문화 향수의 고른 발전이 이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