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마크 패드모어&피아니스트 폴 루이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2월 1일 12:00 오전

테너 마크 패드모어 & 피아니스트 폴 루이스

12월에 만나는 두 남자의 ‘겨울 나그네’

베르트에 관한 탁월한 해석과 섬세한 연주로 빛나는 두 연주자가 들려줄 겨울날의 우수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 마치 영화 속 누군가의 회상처럼, 때로는 24개의 막으로 이뤄진 오페라처럼 각각의 짧은 곡이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음악과 시는 완벽한 조합을 이루며 외롭고 쓸쓸한 심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여기에 마크 패드모어의 한없이 자연스러운 미성과 정교한 독일어 발음, 단어 하나하나에 부여되는 생동감이 공감각적 심상이 되어 가슴을 울린다. 패드모어가 섬세하면서도 예민하게 음량을 조절하며 만들어내는 흐름과 호흡을 맞추는 폴 루이스의 피아노는 그가 왜 ‘슈베르트 스페셜리스트’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지난 2008년 계몽시대 오케스트라와 함께 첫 내한 당시 바흐 ‘요한 수난곡’의 복음사가로 나서 짙은 호소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마크 패드모어가 12월 11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하이든홀에서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로 첫 내한 리사이틀을 갖는다.

클라리넷을 전공했던 마크 패드모어는 1990년대 후반, 영국 합창음악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더 식스틴의 멤버로 르네상스 합창음악을 통해 성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바로크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아르모니아 문디 레이블을 통해 슈베르트와 슈만, 브리튼에 이르는 가곡 음반을 꾸준히 선보여왔다. 이번 무대에 함께 오르는 피아니스트는 2010년 그라모폰상을 수상한 ‘겨울 나그네’ 음반(Harmonia Mundi)에 참여했던 폴 루이스로 지난 5월 이르지 벨로흘라베크/체코 필 내한 공연에서 브람스 협주곡 1번을 선보인 바 있다.

무엇보다 슈베르트에 관한 탁월한 해석과 우수에 찬 섬세한 연주를 각자의 영역에서 차곡차곡 쌓아온 두 사람이기에 이번 무대는 더욱 기대를 모은다. 내한 공연을 앞두고, 마크 패드모어와 폴 루이스를 각각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 마크 패드모어 ⓒMarco Borgrevve

마크 패드모어

우리는 단지 음악을 담는 그릇에 불과하다

처음 ‘겨울 나그네’를 불렀을 때를 기억하나요? 독일어 가곡을 부르고 해석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피아니스트 로제 비뇰과 함께 슈베르트의 연가곡 세 작품을 부른 것이 첫 시작인 걸로 기억합니다. 당연히 지금도 이 곡들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겨울 나그네’를 완벽히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저 계속 배울 뿐이죠. 저는 노래를 할 때 네 가지 원칙을 갖고 임합니다. 가사를 낭독하고, 선율을 노래하고, 리듬을 느끼고, 화성을 듣는 것. 네 개 중 하나도 빠짐없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킹스 콘서트·힐리어드 앙상블·레자를 플로리상 등 여러 고음악 단체에서 활동해왔습니다. 그때의 앙상블 경험이 지금의 솔리스트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모든 음악적 경험이 음악가로서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합니다. 저는 청소년 시절 매우 좋은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했고 그때의 경험으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힐리어드 앙상블처럼 작은 규모의 앙상블에서는 함께하는 단원들에게 귀를 기울이며 음악을 만들어나가는 법을 배웠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겨울 나그네’ 24개 노래 중 당신을 가장 고민하게 만든 곡이 있습니까.

모든 곡이 각각 서로 다른 이유로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아마도 첫 곡에 특별히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랑을 잃은 주인공이 도시를 떠나 방랑을 시작한다는 ‘겨울 나그네’ 내용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궁금합니다.

고정된 해석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어느 날은 극적이었다가도 가끔은 사색적으로 바뀌곤 합니다. 매번 달라지죠. 더불어 피아니스트가 누구인지에 따라 매우 민감하게 변하기도 합니다. 폴 루이스·틸 펠너·줄리어스 드레이크 그리고 에던 아이버슨(그는 매우 훌륭한 재즈 피아니스트죠!)과 함께하면서 매번 음악적 해석을 다르게 해왔습니다. 장소와 관객에 따라서도 달라지곤 합니다. 무엇보다 작품이 가진 심리적 통찰이 작품의 스토리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겨울 나그네’는 소외, 즉 사회에서 버림받거나 외톨이가 된 사람의 감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방인, 외부인에 관한 이야기이며 사뮈엘 베케트나 알베르 카뮈의 세상과 비슷합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각 세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죠.

지금까지 여러 피아니스트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습니다.

피아니스트들마다 자신만의 전문 분야가 있고, 배울 점이 늘 있었습니다. 폴 루이스나 틸 펠너는 피아노 독주 레퍼토리인 베토벤과 슈베르트 소나타를 잘 알고 있어서 작품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알려줬습니다. 줄리어스 드레이크나 로제 비뇰은 레퍼토리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갖고 있어서 전혀 다른 맥락으로 곡을 연주할 수 있게 저를 도와줬지요.

슈베르트의 작품을 폴 루이스와 함께 연주할 때, 어떤 인상을 받습니까.

폴 루이스는 슈베르트의 음악과 특별한 친밀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정말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매우 자연스러운 연주를 선보입니다. 그걸 듣고 있노라면 폴 루이스의 피아노 연주가 아닌 슈베르트의 음악 그 자체를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하나의 공연이 완성되기 위해선 연주자뿐 아니라 관객도 그에 상응하는 준비가 필요할 텐데, 이번 ‘겨울 나그네’ 무대를 위해 청중이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요.

시를 읽어보는 것이 매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공연에 더 집중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죠. 공연하는 75분간, 공연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요즘에도 클라리넷을 자주 연주하나요.

클라리넷을 손에서 놓은 지 벌써 수년이 됐습니다. 만약 이 자리에서 악기를 연주한다면 그건 아마 첼로일 겁니다. 요즘 첼로의 소리와 레퍼토리에 푹 빠져 있거든요.

음악에 대한 동기부여를 어디에서 얻는지 궁금합니다.

위대한 음악가들의 훌륭한 연주를 듣습니다. 특히 인간의 삶을 심오하게 다룬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와 현악 4중주가 제게 좋은 자극이 됩니다.

음악 앞에, 당신은 어떤 연주자입니까.

우리는 단지 음악을 담는 그릇에 불과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음악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합니다. 슈베르트가 말한 매우 심오한 진실을 들려드리고 싶군요.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관객과 소통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관객 하나하나가 우리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폴 루이스 ⓒMolina Visuals

폴 루이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 가장 흥미롭다

마크 패드모어와 함께 ‘겨울 나그네’ 무대를 준비하며 가장 많이 이야기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작품의 여러 부분을 놓고 많은 생각을 나눴습니다. 무엇보다 24개의 짧은 곡으로 이루어진 75분의 시간이, 천천히 전개된다는 느낌을 만드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데 서로 공감했습니다.

‘슈베르트 스페셜리스트’라는 수식어가 늘 이름 앞에 붙습니다. 당신에게 ‘스페셜리스트’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합니다.

제 자신을 전문가라 생각하지 않기에 특별히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여러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하고 있지만, 누구보다 슈베르트에 더 끌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의 곡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죠.

30대 초반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곡집을 내놓았을 때와 지금, 당신이 느끼는 슈베르트는 어떠한가요.

작품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작곡가를 보는 관점에 불가피한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슈베르트에 대한 제 관점은 근본적으로 크게 바뀌지 않았어요. 갈망과 향수 같은 감정이 슈베르트의 작품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은 동일하지만, 이러한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한 방법이 지난 10년간 변해왔다고 볼 수 있겠죠.

슈베르트의 ‘가곡’과 ‘소나타’를 대할 때, 공통점과 차이점은.

차이점보다는 비슷한 부분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가곡을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와 피아노 연주가 함께 어우러지는 것을 통해 대개의 공연에서 서로 소리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고 또 각 부분의 소리를 드러낼 것인지에 대한 힌트를 얻곤 합니다.

다른 스타 시스템이 없이 재능만으로 이름을 알려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영향을 주고받은 사람이 스승인 알프레드 브렌델일 텐데요. 그에게서 얻은 가르침을 하나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큰 확신을 갖고 음악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연주하는 음악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다면 그만큼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당신이 흥미롭게 생각하는 음악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 가장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직접적이고 적절한 방법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죠. 많은 사람을 이어주는 다른 예술 장르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어디서든 무대에 서려면 믿음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 안에 있는 힘에 대한 믿음, 무대 위에서 내가 가진 것을 모두 전달하겠다는 용기. 당신의 연주 경험을 비추어봤을 때 이러한 부분이 어떻게 발휘되어왔나요.

음악가는 자신의 음악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단순히 무대 위에 서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연의 진정한 힘은 연주자가 자신이 연주할 음악이 가진 메시지에 100퍼센트 집중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글 김선영 기자(sykim@gaeks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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