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창작음악의 현주소를 묻다

제6회 ARKO 한국창작음악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월 1일 12:00 오전

작곡가가 자신의 영감을 투영해 곡을 토해낼 시간, 연주자가 이해하고 표현할 시간, 청중이 받아들이고 느낄 시간을 기다려야 하나의 곡이 음악사에 겨우 안착한다. 그 과정에 필요한 건 이해와 교감, 기록과 전승, 인내와 자본 등 수없이 많다.

한국에 이러한 과정을 지원할 제도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보다 ‘인식’의 부재가 더 시급한 것은 아닐까. 오늘날 ‘현대음악’ 혹은 ‘동시대 음악’이라 불리는 음악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는 이 음악들을 ‘즐길’ 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는지, 작곡가들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담론이 우선돼야만 관심과 정신적·물질적 지원이 모일 것이다.

ARKO 한국창작음악제, 도약을 꿈꾸다

우리나라 작곡가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하고 창작음악이 지속되도록 지원하는 ARKO 한국창작음악제가 6회째를 맞았다. 2008년 ‘창작관현악축제’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이 음악제는 2012년부터 ‘ARKO 한국창작음악제’로 개칭하고, 서양음악에 한정되어 있던 범위를 국악까지 확대했다. 2013년에는 한국창작음악의 홍보 및 유통을 주제로 포럼을 개최하고, 외국의 지휘자를 초청하는 등 해외로 뻗어나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2014년에도 국악과 양악 부문에 각각 여섯 명의 작곡가가 선정됐다. 국악 부문에 선정된 곡은 지휘자 권성택·원영석/국립부산국악원 국악연주단 기악단의 연주로 2014년 11월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되었고, 양악 부문의 곡은 최희준/KBS교향악단에 의해 1월 24일 같은 장소에서 연주될 예정이다.

이번에 선보이는 양악 부문에는 이만방·김수혜·배동진·장춘희·정종열·조은화 등 여섯 명 작곡가의 작품이 선정되었다. 다섯 곡이 초연 곡이며, 선정작 중 조은화의 장구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하다’만이 유일한 재연 곡이다. 이 곡은 2013년, 제2회 국제 음악 페스티벌 유라시아의 오프닝 곡으로 스베르들롭스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의해 초연된 후 두 번째 무대를 앞두고 있는 것이다. 조은화는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작곡과 음악이론을 전공했고, 2009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여성 최초, 한국인 최초로 1위를 수상했다. 현재 계명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조은화와 만나 창작음악의 방향성과 ARKO 한국창작음악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많은 이들이 현대음악은 낯설고 난해한 것이라 여긴다.

현대음악의 발생지인 서양에서도 편안한 음악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도 신기해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니 천천히 ‘굴러간다’. 우리나라는 아직 구르는 수준은 아니고, 가다 멈추고, 또 조금 가다 멈추고 한다. 그래도 움직이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10년 전에 비해 많은 것이 좋아졌다. 진은숙 같은 분들이 애쓰고 있으니 앞으로 더 빨라지지 않겠나.

힘겨운 진화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시대에 창작음악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음…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려 한다. 독일에 있을 때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위로를 받기 위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으러 간 적이 있다.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하모닉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러 교향곡 1번을 연주하는데 아무런 감흥이 없더라. 젊은 말러가 세상은 정의롭고, 그래서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는데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내가 좋아하는 현대 작곡가들의 곡을 크게 틀어놓고 계속 들으니 그제야 마음이 풀렸다. 현대음악은 ‘고전’이 아니니 격식을 갖출 필요도 없고, 그냥 편안하게 들으며 즐기면 된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도 초연 때 토마토 세례를 받았다고 하지 않나. 언젠가 현대음악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올 것이다.

당위성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이다. 음악은 종교 같은 것이다. 이건 좋고, 저건 나쁘다고 구분할 수 없다. 스스로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문화가 스며들 수 있는 시간은 분명 필요하지만, 다만 자신에게도 스며들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거부감은 더 오랜 시간을 요구할 테니 말이다.

국내 상황으로 국한하여 바라보자면, 창작음악이 관객들에게 외면당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작곡’의 역사보다는 ‘연주’의 역사가 더 길지 않은가. 제도와 인식이 잘못돼서라기보다는 작곡가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게 먼저다.

작품을 위촉하는 문화와 지원이 잘 정착되면 창작이 더 활발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마찬가지다. 몇 백 년 전, 한국에도 옆집에는 베토벤, 앞집에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단원 중 누군가가 살았다면 지금쯤 위촉의 문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앞으로 자연스럽게 나아질 거라 생각한다. 그보다는 혜안을 가진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어떤 단체에서 작곡가에게 곡을 위촉할 때 ‘최소 교수쯤은 돼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교직에 있으면 곡을 쓸 시간이 부족하다. 좋은 작곡가를 발견해야 하는 건 늘 중요한 문제이고, 또 좋은 곡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한다.

갓 태어난 작품은 연주와 관심으로 자란다

초연도 쉽지 않지만, 재연은 더 어렵다. 초연이 곧 마지막 연주라는 암울한 사실이 보편화되어 있는데….

곡이 좋으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좋은 작품이 있는데 발표가 안 되고 있는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좋은 곡을 발표하면 여러 번 연주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후대의 작곡가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빛을 본 작품은 연주를 통해 성장한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지 않나.

맞다. 곡이 농후해질 시간은 필요하다. 실제로 그걸 느낀 적이 있다. 독일에서 한 앙상블에 위촉받아 ‘프로토스 크로노스’라는 곡을 썼는데, 그들은 그 곡을 2〜3년에 한 번씩 연주한다. 그들의 무대를 보며 작품이 ‘자란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다. 작곡가의 의도가 정확히 표현되는 것은 물론, 그들만의 새로운 프레이징이 생기기도 했다. 연주가 거듭될수록 곡에 내재되어 있는 것들이 더 많이 표출되더라. 1〜2회 공연만으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소리다.

현재 우리나라 작곡가들이 처한 환경은 창작에만 매달리기가 어렵다. 연주의 기회가 적은 것도 문제지만, 경제적인 지원이 거의 없으니 다른 일을 병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까운 부분이다. 나 또한 독일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오래 공부하지 못했을 것이다. 10년간 독일에서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은 다 받았다. 베를린에서 받은 장학금으로 파리에 다녀왔고, 콩쿠르에서 받은 상금으로 1년쯤 버티며 지냈다. 졸업하고 직업을 갖기 전까지가 가장 힘든 시기인데, 그때에도 곡을 쓸 수 있는 공간과 생활비는 지원받았다. 물론 삶이 윤택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능하기는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은가.

예술에 있어서 평가된 가치가 정직할 수만은 없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창작자의 노력에 대한 가치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아직 개념도 기준도 확립되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 꼭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예를 들어 하나의 관현악곡을 완성하는 데 10개월이 걸린다 치자. 작곡가가 10개월 동안 작곡에만 매달려 그 작품을 완성할 경우 그 곡의 값어치는 얼마일까. 500만 원을 받는다면 그 작곡가는 한 달에 50만 원의 값어치를 한 것이다. 미술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유명한 화가가 그린 작품은 몇 십억을 호가하기도 하지만 현존하는 작곡가 중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곡가가 오페라 작품을 만든다고 해서 과연 몇 십억의 돈을 받을 수 있을까? 미술품은 투자 가치로 여기지만 곡은 그렇지 않다. 음악은 한 번 울린 후 사라지는 것으로 인식된다. 앞으로 사회에서 음악을 얼마만큼의 가치로 평가할지는 기대해볼 만한 문제다.

음악은 절대로 자유로워야 한다

현재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데, 작곡을 시작하는 학생들은 어떤 방향을 가지고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나의 지난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나는 유학을 비교적 늦게 갔다. 처음에는 마냥 좋았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바로 코앞에서 연주하고 있는데 얼마나 행복했겠나. 그런데 어느 순간, 음악을 들으며 화성을 분석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고백하건대 한국에서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다. 십수 년을 화성에 대해 공부했지만, 연주를 듣는 동안 그것을 떠올려본 적이 없다. 어쩌면 그동안 음악을 너무 ‘공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전음악과 현대음악을 착실하게 구분 짓고, 기본적인 소양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주입식으로 곡을 써온 것은 아니었는지 되물었다. 틀 안에 갇혀 있던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이미 한국에서 석사까지 마쳤지만 학사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10년이 걸린 것이다. 입학하자마자 처음 쓴 곡이 피아노 솔로곡이었다. ‘안 되는 걸 되게 하자’라는 생각에 곡을 쓸 때 절대로 피해야 한다고 배운 법칙들을 모아서 하나의 곡을 완성했다. 그래도 곡이 되더라. 그 이후 자유로워졌다.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자문(自問)할 필요가 있다. 지금 당장 무엇이 필요한지, 의무감으로 애쓰고 있는 건 아닌지, 또 살기 위해 음악을 하는 것인지, 음악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등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

얼마 전 당신이 입상했던 퀸 엘리자베스의 콩쿠르에 관한 DVD가 발매되었다. 콩쿠르를 수년간 중계해온 프로듀서 티에리 로로가 퀸 엘리자베스를 석권하는 이들이 대다수 한국 연주자들이라는 점이 놀라워 제작한 ‘한국 클래식의 수수께끼’라는 다큐멘터리이다. 보았는지?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이런저런 계기들을 통해 음악교육에 대해 생각해보고는 한다. 늘 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왜 음악을 시키려고 하는지 말이다. 대학을 보내기 위해서라면, 물론 대학을 갈 수는 있겠지만 그 인생이 얼마나 고단하겠나. 음악은 자신이 정말 좋아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내용과 같은 맥락이다. 좋은 선생님 앞에 데려가기 전에 아이에게 왜 음악을 하고 있는지, 나중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음악을 하면 행복한지 물어야 한다.

이야기가 꽤 멀리 온 것 같다. 1월 24일에 연주될 장구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하다’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면.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웃음). 항상 한국 작곡가로서 국악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아왔다. 어느 정도의 책임은 느꼈지만 깊이 빠져들 기회는 없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아주 오랫동안 서양음악만을 공부해왔음에도 여태껏 썼던 작품들에 한국적인 요소가 조금씩 담겨 있더라.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본성인 것이다. 그래서 제목이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하다’이다.

한국의 모든 작곡가가 국악을 소재적으로든 전체적으로든 다루는 것에 대해 의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건 절대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 고유의 정서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시각으로 우리 음악은 한 서린 음악, 정적인 음악이지만 그건 우리 부모 세대이지 현재 우리가 가진 성질은 아니다. 관념을 깨고 더 성장한 음악을 보여주는 게 우리 세대가 할 일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러한 생각에 맞서고 있다.

앞으로도 국악에 대해 계속 공부할 생각인가.

장구 협주곡을 쓰기 전에 대금 연습곡을 썼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대금 연주자 유홍과 함께 작업한 곡이다. 현존하는 모든 국악기를 연습곡 시리즈, 협주곡 시리즈로 하나씩 만드는 게 죽을 때까지의 목표다. 협업할 연주자만 있다면 언제든지 작업을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

사진 구본숙·ARKO 한국창작음악제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