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스 콰르텟의 리더 김재영과 막내 이승원- 냉정과 열정 사이

실내악 그룹의 리더와 막내 역할은 어떻게 다를까? 노부스 콰르텟의 두 멤버가 말하는 조화와 갈등, 그리고 극복 이야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2월 1일 12:00 오전

노부스 콰르텟의 리더 김재영과 막내 이승원

냉정과 열정 사이

실내악 그룹의 리더와 막내 역할은 어떻게 다를까? 노부스 콰르텟의 두 멤버가 말하는 조화와 갈등, 그리고 극복 이야기


▲ 좌)이승원 우)김재영

2014년 제11회 모차르트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며 우리나라 실내악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노부스 콰르텟(바이올린 김재영·김영욱, 비올라 이승원, 첼로 문웅휘).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다시 모여 2월 7일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다. 노부스 콰르텟의 맏형이자 리더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 막내 비올리스트 이승원이 신년을 맞아 객석 인터뷰를 위해 만났다.

짐을 버리고 다시 걷는 길

2015년 대원문화재단 신인상을 수상했는데요.

김재영 노부스 콰르텟 활동을 시작한 지 8년이 되었는데, 2015년 새해를 열면서 이렇듯 큰 상을 받아 기쁘고 감사합니다. 그동안 힘든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한 따뜻한 격려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승원 앙상블은 결성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모두 훌륭한 솔리스트이기도 한 형들에게 그동안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상을 받는 순간 힘든 시절이 떠올라 감회가 새롭더군요. 실내악은 단원 각자가 연주를 잘한다고 해서 좋은 연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격이 모두 좋아야 잘되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운명 같은 게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더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성격이 급해서 뭔가를 시작하면 금방 결과가 나오기를 원하기 때문에 부담이 더 있는 듯 합니다. 실내악이 무르익으려면 절대적으로 ‘시간’이 필요한데 말이죠.

김재영 승원이의 말에 공감합니다. 앙상블이 탄생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어떤 운명 같은 게 존재하지요. 사실 이번 연주회가 저희가 2014년 모차르트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일년 만의 무대입니다.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어요. 모차르트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저희는 국제 콩쿠르 도전을 그만 하기로 결정했지요. 사실 그래서 그 후 무대에 설 때마다 더 큰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그래도 콩쿠르 수상을 통해 다양한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이제 보다 많은 경험을 통해 더 깊은 음악을 만들어가야죠.

이승원 음악 중에서도 실내악은 ‘시간’이라는 선물이 많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그런데 콩쿠르를 준비하다 보면 빨리빨리 이뤄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음악 자체를 압도할 때가 있어요. 이제 그 짐을 벗었으니 노부스 콰르텟이 만들어갈 앞으로의 연주는 자유 안에서 더 견고하고 아름다운 무대가 되었으면 합니다.

김재영 승원이의 말처럼 짧은 시간 안에 좋은 결과를 내야한다는 것은 부담이지요. 콩쿠르에 나갈 때도 ‘좋은 결과가 나와야 할 텐데’ 하며 마음이 무거웠던 적이 있었으니까요


▲ 곁에서 보면 재영 형은 음악을 너무 사랑해요. 가끔 형이 너무 사랑하는 음악 때문에 언젠가 아플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걱정도 됩니다. 늘 고마워요 형!
비올리스트 이승원

콩쿠르, 그 빛과 그림자

콩쿠르와 이별한 소감이 궁금하네요.

김재영 다양한 무대에 서려면 우리를 알려야 하고, 그러려면 공식적으로 필요한 것이 국제 콩쿠르 수상이죠. 그래서 많이 도전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 콩쿠르라는 것이 정말 필요악 같은 존재예요. 우리도 콩쿠르를 통해 많은 무대에 서고 인정도 받았지만, 정말 음악적인 커리어는 콩쿠르 이후에 시작되니까요. 콩쿠르를 통해 유럽의 높은 장벽을 깨고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지만, 정말 우리가 어떤 음악가가 될 것인가는 콩쿠르 수상과는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콩쿠르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는 콩쿠르에 대해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준비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이승원 모차르트 콩쿠르 우승으로 좋은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었고, 그래서 이제 앙상블 단체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였던 콩쿠르는 그만 도전하기로 한 거죠. 사실 콩쿠르를 준비하다 보면 어느새 음악 하는 본연의 목적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결과 위주다 보니 깊이를 쌓을 시간도 부족하고요. 특히 콩쿠르는 짧은 시간에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그런 습관이 연주 무대에서도 이어진다면 정말 큰 문제가 되겠지요.

김재영 서른이 되면서부터 음악가로서 어떻게 활동할 것인지, 인생을 사는 주체자로서 어떻게 삶을 계획하고 이끌어나갈지 더 많이 생각하게 되더군요. 저는 연주자로서 무대에 서는 것뿐 아니라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공부도 많이 하고 다양한 경험도 많이 쌓고 싶습니다.

이승원 저는 올해 스물여섯이 되었습니다. 단원 중에는 가장 막내고, 성격이 낙천적인 편이라 별로 걱정을 안 하는 편이에요. 지금을 즐기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음악을 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겪어야 할 어려움과 고통은 감수해야죠. 하지만 음악을 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고, 무대에 설 때 느껴지는 희열 때문에 전 이 삶을 감사하며 즐기고 싶습니다.

레퍼토리, 계속되는 새로운 도전

올해로 창단 30주년이 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서는데요.

김재영 모차르트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와 슈포어의 ‘현악 4중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Op.131’을 연주합니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연주하지 못했던 곡을 중심으로 우리에게도 도전이 되는 레퍼토리를 선곡했습니다.

이승원 이번에 연주하는 작품은 모두 매력적이지만, 특히 모차르트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비올라 음색의 매력이 많이 드러날 것 같아서요. 제가 비올라 연주자라서 그러는 게 아니고.(웃음) 비올라는 실내악에서 진짜 빛이 나는 악기입니다.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연주할 때 성부가 드러나는 것에 비해 비올라는 화음을 맞추는 것을 담당하기 때문에 앙상블을 할 때 음악을 더 섬세하고 풍부하게 만들거든요. 어느 때는 화음을 맞추는 순간 전율이 느껴질 만큼 아름다워요. 하겐 현악 4중주단이나 알반 베르크 현악 4중주단 연주를 들어봐도 비올라 파트의 연주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김재영 승원이의 비올라를 통해 저희 노부스 콰르텟의 음악이 더 풍요로워진 것은 사실이에요.(웃음) 앙상블은 먼저 네 연주자의 연주에서 나는 소리가 어떻게 섞이느냐에 따라 그 색깔이 결정되죠.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하는가입니다. 그것이 잘 조화를 이룰 때 듣는 사람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고요. 결국 우리는 최선을 다해 연주할 뿐 감동과 평가는 청중의 몫이겠죠.

이승원 연주를 하다 보면 과정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처음에는 어색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이해하고 익숙해지고 비슷해지는 과정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서로가 어떤 것을 원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아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그래서 더 편해지기도 하고요. 자기만의 역할을 찾아가는 것, 앙상블에서는 이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앙상블, 나무와 숲의 아름다운 조화

노부스 콰르텟에서 리더와 막내의 역할은 뭔가요.

김재영 리더는 전체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중요한데, 그게 정말 어려워요. 나무와 숲을 잘 보고 이끌어간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사실 어릴 때는 단원들이 혹시 한 명이라도 팀에서 나가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모든 일이 제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넷이 한 그룹을 이루고 음악을 할 때는 뭔가 운명 같은 것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면서 이제는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어떤 상황에 얽매이기보다는 현재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멋진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니까요.

이승원 재영이 형은 노부스 콰르텟의 전체 계획과 살림을 맡고 있다 보니 우리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마음 쓰고, 또 제가 모르는 힘든 부분도 많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 형을 보고 있으면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하나의 앙상블이 탄생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끌어가는 일은 더 힘든 것 같아요.

김재영 리더이기에 느끼게 되는 두려움이 많습니다. 단원들을 배려하고 더 깊이 생각해야 할 때도 많고요. 무엇보다 사명감을 갖고 더 좋은 앙상블 연주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아가서는, 아직 더 많은 성장이 필요한 실내악 부분에서의 교육에도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실내악 발전이 오케스트라와 음악계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을 테니까요.

이승원 앙상블 단체를 계속 유지하려면 열정만큼 책임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요. 무엇보다 저는 행복하게 음악을 하고 싶어요.

김재영 서른이 넘으면서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요.(웃음) 그래서 새해부터는 운동도 시작하고 건강도 챙기려고요. 실천을 안 해서 문제지만요.(웃음) 앙상블 활동을 하다 보면 보람 있는 순간도 있지만, 해외 연주도 많고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아 사실 스트레스도 큽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해왔고 이제는 제 삶이 되어 자연스러워졌지만, 어느 순간에는 내가 누구인가, 나는 잘 살고 있는가 물을 때가 있어요. 단체의 리더로서 느끼는 외로움도 크고, 앞으로 음악가로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할 때도 많고요. 하지만 너무 힘들 때면 생각하곤 합니다. ‘내가 원해서 선택한 일이 아닌가. 누가 떠밀어서 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꿈꾸던 일들이 이루어졌는데, 더 감사하자’라고요. 언제나 느끼는 것은, 좋은 연주가가 되는 일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연주뿐 아니라 인격, 정신, 가치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을 모두 갖춰야 하니까요. 앞으로 어떤 길이 펼쳐질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여정을 멤버들과 행복하게 걸어가고 싶습니다.

리더와 막내, 형과 동생 사이에 흐르는 친근함, 눈빛에서 서로에 대한 끈끈한 우애가 느껴진다. 옆에서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노부스 콰르텟의 매니저 이샘 대표가 한마디 던졌다. “예전에 어느 지방 공연에 노부스 콰르텟과 갔다가 힘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기차를 기다리며 플랫폼에 앉아 재영이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누나! 연주를 하는 게 왜 이렇게 힘들어요?’ ‘이게 너희들이 그렇게 꿈꾸던 길이잖니’ 재영이가 피식 웃더군요. 사실 그때 마음이 아프고 안쓰러웠지만 무대에서 음악으로 청중의 환호와 감동을 이끌어내려면 얼마나 많은 외로움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지, 노부스 콰르텟 멤버들이 알았으면 했어요. 힘든 일정을 마치고 플랫폼에서 서로 기대어 다음 기차를 기다리던 멤버들. 온갖 마음의 짐으로 지쳤지만 그때 우린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 승원이는 음악에 대한 욕심이 대단해요. 열정도 많고 낙천적인 성격이라 걱정이 많은 저로서는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

사진  심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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