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열 덴마크 발레 런던 공연
밤하늘을 수놓은 부르농빌의 향취
수석과 솔리스트급 무용수 13명이 참가한 갈라로 10년 만에 이뤄진 런던 공연 스케치
1월 9일 저녁 7시. 런던 도심 웨스트민스터에 위치한 피콕 시어터를 뿌연 밤안개가 에워쌌다. 1000석 규모의 극예술 전문 공연장인 이곳은 무용 전문 극장 새들러스 웰스의 기획 시리즈 중 일부를 소화한다. 로열 덴마크 발레(이하 RDB)가 10년 만에 영국 공연을 한 극장도 여기다. 다만 100명 규모의 발레단 전체가 움직이지 않고 수석과 솔리스트급 무용수 13명이 참가한 갈라로 꾸몄다. RDB는 발레단 전체가 아닌 소그룹으로 해외 투어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뉴욕 조이스 극장의 1월 투어 역시 같은 팀이 소화했다. 1985년, 단 한 번뿐인 RDB의 내한 공연도 19명의 정예 단원으로 치러졌다. 무대 크기가 과거 호암아트홀 사이즈라 무브먼트가 제한되고 세트 없이 녹음 반주 음원으로 공연하는 점이 프리뷰에서 줄곧 지적됐다. RDB와 뉴욕 시티 발레에서 오랫동안 스타 발레리노로 군림한 니콜라이 휘베 예술감독이 투어에 합류하지 않아 공연이 열린 9일과 10일 피콕 시어터의 로비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차분했다.
무용사가들은 1748년 왕립발레단의 칭호를 부여받은 RDB를, 1671년 창단한 파리 오페라 발레와 1740년대 설립한 마린스키 발레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클래식 발레단으로 기록하고 있다. 1820년대 파리 오페라 발레의 경험을 기반으로 오귀스트 부르농빌이 덴마크의 실정에 맞게 재창조한 일명 ‘부르농빌’ 스타일이 RDB의 해외 공연에서 현지 관객이 열망하는 정체다. 스토리텔링을 발레의 개별 무브먼트로 어떻게 대입했는지, 낭만 발레의 중심추를 여성에서 남성으로 옮긴 부르농빌의 의지를 이번 투어에서는 누가 구현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20세기 RDB의 히어로는 ‘덴마크 발레의 아버지’ 에리크 브룬이었다. 고탄력 하체에서 매끈한 둔부로 이어지는 탁월한 보디라인, 기기묘묘한 스텝워크에 이은 숨 쉴 곳 없는 베리에이션과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하늘거리는 앙트르샤는 당대의 또 다른 별, 루돌프 누레예프의 그것과 곧잘 대비됐다. 지금도 1960년대 브룬의 스타성이 어땠는지 카를라 프라치와 함께한 ‘로미오와 줄리엣’ DVD로 확인할 수 있다. 브룬의 은퇴 이후 부르농빌 전통 계승의 문제가 불거졌고, 그때마다 RDB에는 덴마크 태생의 스타가 나타나 해답을 제시했다. 1980년대 니콜라이 휘베, 1990년대 요한 코보르, 2000년대 토마스 룬드가 발레단의 간판을 담당했고 2010년대는 1989년생 알반 렌도르프가 RDB의 얼굴을 담당하고 있다. 열한 살 때까지 축구 선수를 선망하다 영화 ‘빌리 엘리엇’을 보고 발레를 시작한 특별한 스토리가 렌도르프와 함께한다. 2008년 감독에 부임한 휘베가 전략적으로 승급시킨 렌도르프는 지난해 잉글리시 내셔널 발레 ‘코펠리아’에서 타마라 로호와 짝을 이뤄 런던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는데, 이번엔 공연 직전 부상으로 투어에서 하차해 큰 아쉬움을 남겼다. 발레단에서 군무를 담당하는 안드레아스 카스가 그를 대신해 무대에 투입됐다.
무대를 빛낸 발군의 무용수들
갈라는 총 여섯 부분으로 나뉘고, 1836년부터 1876년까지 부르농빌이 안무한 작품으로 구성했다. 첫 작품 ‘민담(A Folk Tale)’ 7인무는 부르농빌이 1854년, 마흔아홉에 만든 동명의 3막 발레 가운데 마지막에 등장하는 결혼 장면이다. 16세기 덴마크를 배경으로 요정들의 뒤바뀐 삶을 다룬 코믹 낭만 발레로, 부르농빌 스스로 ‘핵심 작품’으로 칭할 만큼 RDB 프로그래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열정적 사랑과 이별의 아픔으로 번민하기보다 변화된 조건에 순응하는 삶을 강조하는 북유럽의 전통적 사회 인식이 민담의 저변에 깔려 있다. 사랑하는 약혼자를 버리고 또 다른 상대와 쉽게 결혼하고 그것을 행복으로 포장하는 부르농빌의 심미관이 7인무의 짜임 안에서 개별적인 기교로 수미상관했다. 작품에는 RDB의 히로인이 모두 출동했다. 사랑하는 상대를 서로 교환한 귀부인 비르테 역과 요정 힐다 역에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에이미 왓슨과 수자네 그린더가 각각 출연해 부르농빌의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듯 공중을 유영하는 듯한 연속적인 발롱으로 서로의 테크닉을 경염했다. 휘베는 RDB가 남성 위주의 발레단이라는 인식에서 탈피해 여성 무용수의 기량 향상에 집중하겠다고, 2009년 일본 공연에서 밝혔다.
두 번째 작품은 1858년작 ‘젠차노의 꽃 축제’ 중 파드되였다. 작품의 배경인 젠차노는 로마 근교의 소도시로 1년에 한 번, 거리가 무수한 꽃길로 뒤덮인다. 발레 전막은 1929년 코펜하겐에서의 상연을 끝으로 유실되고 지금은 파드되만 남아 유명 갈라에서 알리나 코조카루·요한 코보르가 곧잘 공연하는 작품이다. 파드되의 주인공은 로베르토 볼레와 빈번한 파트너링으로 서유럽에서 유명세를 얻은 솔리스트 디아나 쿠니가 렌도르프를 대신한 안드레아스 카스와 호흡을 맞췄다. 아다지오와 베리에이션, 코다로 이어지는 그랑 파드되의 형식에 담긴 ‘변화’를 담아내는 부르농빌의 지평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단순히 느리게 시작해 변화를 주고 종결을 향하는 3부 구조가 아니라, 움직임의 연결과 형태를 융화하는 안무가의 고민이 화가의 드로잉이나 셰프의 요리 과정을 연상시킬 만큼 느리면서 함축적으로 드러났다. 카스가 쿠니의 허리를 손으로 잡아도 남자의 손길에 속박되지 않고 오히려 남성 파트너를 회전으로 감싸 안는 과정은 기존 그랑 파드되의 남녀 관계를 전복시킨 구조다. 뛰어난 화가가 어느 부분에 하이라이트를 넣거나, 요리사가 양념을 흔들다 식초를 떨어뜨려 신맛을 강조하듯, 부르농빌의 파드되는 어디서 변별되는지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1993년생 카스가 바트리(공중에서 재빠르게 다리를 부딪히는 동작) 시퀀스에 함몰되지 않고 정중한 서포트를 만들어내도록 1975년생 파트너 쿠니가 기울인 성숙하면서 노련한 리드가 RDB 발전의 한 단면이었다.
세 번째 작품은 부르농빌의 전막인 1876년작 ‘시베리아에서 모스크바까지’에서 발췌한 2인무 ‘기수(騎手)의 춤’이다. 이 작품 역시 1904년 마지막으로 전막이 상연됐다가 잊혀졌지만 20세기 초반 기록 필름을 바탕으로 2009년 조지아 내셔널 발레에서 전 RDB 감독 프랑크 안데르센이 재생한 작품이다. 부르농빌은 전막에서 여러 캐릭터 댄스로 유럽 각국이 전쟁의 승리를 바라보는 시각을 조명했는데 ‘기수의 춤’은 영국인의 경마와 파리 템스 강에 대한 애정을 작품에 녹여냈다. 수석 무용수 마르친 쿠핀크시와 군무 등급의 세바스티안 히네스가 기수 복장으로 페어를 이뤘다. 경마의 경쟁 과정을 유쾌한 마임과 기존 발레에선 볼 수 없는 발동작으로 희화화했다. 후반부 첫 작품인 1849년작 ‘콘서바토리’의 파드트루아에선 기존 프랑스 발레와 다른 각도에서 몸과 얼굴의 방향이 파트너를 향했고, 잘 보존된 덴마크식 디베르티스망의 실체가 댄서들의 가벼운 부양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특히 솔로이스트 펨케 슬로트의 빠르고 섬세한 도약이 눈부셨다.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발레단의 시그너처와 다름없는 ‘라 실피드’ 2막과 ‘나폴리’의 6인무와 타란텔라. 1832년작 ‘라 실피드’는 19세기 낭만 발레를 상징한다. 부르농빌 안무가 남성에게 비중을 두었고 덴마크 발레의 주인공이 에리크 브룬이라는 점이 모두 ‘라 실피드’에 수렴한다. 요정 실피드에 노장 구드룬 보예센, 파트너 제임스 역에 울리크 비르캬예르가 짝을 이뤘다. 비르캬예르가 포르 드 브라를 보이자 그의 상체는 다양한 수준의 감정 표현을 분화시켰다. 파트너와 접촉하면 감정이 일렁였고, 그에 따른 상호작용으로 몸은 더욱 섬세하게 반응했다. 설계도를 준비해 오차 없이 계획대로 진행하는 안무가 아니라 실전에서 느낌에 따라 사랑의 형태를 표현하는 노련함이 맴돌았다. 휘베가 감독으로서 단원에게 요구하는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힘, 텍스트를 움직임으로 전환하는 능력을 이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갈라의 마지막 작품 ‘나폴리’ 6인무에 나선 무용수들은 피로한 모습이 역력했다. 기민하게 움직여야 할 스태프들과 풍부해야 할 마임에서 시종일관 기계적인 움직임이 작품의 뒷맛을 씁쓸하게 했다. 이날 공연에 ‘파이낸셜 타임스’지와 ‘가디언’지는 ★★★★, ‘텔레그래프’지는 ★★★을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