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보 두다멜과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기적을 만드는 마법의 지휘봉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3월 1일 12:00 오전

엘 시스테마의 기적을 이뤄낸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펼치는 뜨거운 감동의 현장

2008년 12월 6일, 구스타보 두다멜은 LA에서 새로운 오케스트라와 함께 데뷔 콘서트를 치렀다. 그의 욕심은 끝이 없어 보였다. 이미 2009년부터 미국 대표 악단인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내정된 상태였기에 ‘한지붕 두 가족’ 격으로 또 다른 LA의 오케스트라를 맡는다는 것은 지나친 과욕으로 느껴질 법도 했다. 두다멜의 LA 필하모닉 취임 연주회는 2009년 10월 8일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가졌으니, 그보다 1년 가까이 빠른 LA 무대 데뷔였다.

실상은 이랬다. 2007년 LA 필하모닉은 산하 오케스트라로 ‘LA 유스 오케스트라(Youth Orchestra LA, 이하 YOLA)’를 창단했다.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 시스템인 ‘엘 시스테마’에서 힌트를 얻은 것. LA 남쪽의 엑스포지션 공원 구역에 거주하는 6세 이상 어린이 300명을 대상으로 엑스포 센터에 둥지를 틀고 오케스트라를 통한 음악교육을 실시하게 된 것이다. 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계획한 LA 필하모닉 당국이 ‘엘 시스테마’의 수혜자이자 ‘엘 시스테마’가 낳은 클래식 음악계의 슈퍼스타 두다멜에게 도움을 청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결국 1년 뒤 YOLA의 창단 공연은 두다멜의 지휘 아래 월트 디즈니홀에서 막을 올린다.

이건 또 하나의 기적이었다. ‘엘 시스테마’ 구성원의 80% 이상은 베네수엘라의 극빈층이다. 가난하고, 문제가 있는 가정 출신이어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YOLA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사회의 비주류이자 사회문제 발생 원인의 1순위로 꼽히는 중남미에서 온 히스패닉계와, 뿌리 깊은 갈등을 안고 사는 흑인 자녀들을 우선적으로 선발했다. 사회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찬 부모들에게 YOLA의 초창기 담당자들은 워크숍을 개최해 일대일 설득에 임하는 정성을 쏟았다. 악기 지급부터 레슨, 콘서트에 이르는 전 과정을 무상으로 제공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8년이 흘렀다. 두다멜은 미국에서 또 하나의 ‘엘 시스테마’를 기적적으로 일구고 있다. YOLA는 LA에서 가장 못살고 치안이 좋지 않은 우범 지역을 뚫고 들어가, 소외받은 곳에서 ‘오케스트라’라는 도구로 일종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음악에 대한 꿈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아이들에게 세상은 늘 살아볼 만한 것이라는 희망을 불어넣는, 한층 격상된 정신세계의 고양으로까지 도달한 것이다.

‘원조 YOLA’인 엑스포 센터의 ‘YOLA at EXPO’는 현재 300명의 학생들이 세 개의 오케스트라로 나뉘어 일주일에 11시간 연습한다. 이미 월트 디즈니홀은 물론 미국 순회 공연과 해외 공연까지 마친 어엿한 악단으로 급성장했다. 2010년에는 ‘램파트 구역’의 청소년으로 구성된 ‘YOLA at HOLA(Heart of Los Angeles)’를 추가로 만들어 현재 260명이 음악 삼매경에 빠져 있다. 지난해에는 ‘LA 카운티 예술 학교(The LA County high school for the art)’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이를 ‘YOLA at LACHSA’로 명명해 140명을 추가하는 기염을 토했다. 어쩌면 문제아가 될 뻔한 700명의 어린 영혼이 음악으로 인해 새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

LA 필하모닉은 YOLA를 위해 한 해 50억 원의 예산을 편성해 집중 지원하고 매년 예산을 늘리고 있다. 두다멜과 YOLA의 기적은 단기간 내에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 현재 1만 명의 소외 계층 유소년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창단되었다. 그리고 그 결실은 축제로 발전해 2017년 두다멜의 제안으로 ‘National Take a Stand Festival’의 돛을 올릴 예정이다. YOLA의 주 구성원은 우리로 보면 ‘다문화 가정’의 아들·딸이다. 어찌 보면 외국인에게 아무 대가 없는 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 자신의 조국 베네수엘라의 적국이던 미국에서 두다멜은 LA 필하모닉을 통해 두 번째 ‘엘 시스테마’를 차근차근 다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두다멜이 LA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직을 수락한 주원인도 YOLA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만큼 두다멜은 음악의 사회 공헌을 가장 큰 가치로 삼고 있다.

두다멜은 2009년 10월 8일 LA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역사적인 취임 연주회를 치르게 된다. 이때 그가 선곡한 교향곡은 역시 말러 교향곡 1번이었다. 우고 차베스 정부하의 베네수엘라는 쿠바와 함께 미국에 대항하는 남미 국가의 대표 주자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919년 창단해 당시 90주년을 맞이한 미국 대표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토종 베네수엘라 사람인 두다멜이 임명되었으니, 이는 음악계뿐 아니라 세계의 이목을 끈 일대 사건이었다. 그리고 취임 첫해에 두다멜이 받은 연봉은 10억 원이 넘었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지휘자만이 받을 수 있는 액수다.

더구나 클래식 음악으로 보면, 그때까지 베네수엘라는 변방 중의 변방이었다. 하지만 예술의 힘은 모든 정치적 난제를 극복하고, 심지어 이길 수도 있음을 두다멜과 LA 필하모닉은 보여주었다. 실로 위대한 승리였다. 24세의 두다멜이 2005년 9월 할리우드 볼에서 LA 필하모닉을 지휘하며 미국 무대에 데뷔할 때부터 기적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음반으로 출시한 두다멜의 취임 콘서트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역동성을 바탕으로 한 젊은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LA 필하모닉의 말러 교향곡 6번과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두다멜과 LA 필하모닉의 끈끈한 관계는 현재 세계 어느 오케스트라보다 공고하다. 공식 취임을 위해 월트 디즈니홀 앞에 도착했을 때 LA 필하모닉 총감독과 단원 전원이 밖으로 나와 두다멜을 맞아준 일화가 그 단적인 예다. 단원 노조의 입김이 상당한 미국 오케스트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시민을 위한 무료 콘서트 ‘구스타보 환영합니다!(I Bienvenido Gustavo!)’는 티켓 오픈 1시간 만에 매진되었고, LA 거리 곳곳에 환영 현수막을 걸어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이러한 두다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두다마니아(Dadamania)’라는 신조어를 낳으면서 LA를 중심으로 미국 전역에서 열혈 팬이 생겨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럼 두다멜이 LA 필하모닉에서 거둔 음악적 성과는 어떨까? 그건 2013년 출시한 LA 필하모닉과 첫 번째 공식 음반, 말러의 교향곡 9번에서 확인된다. 이별과 죽음의 노래로 점철된, 말러의 교향곡 가운데서도 가장 심오하고 철학적인 9번은 두다멜이 삶의 중간 기착지에서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푯대와도 같았다. 실황으로 녹음한 이 연주는 LA 필하모닉의 보금자리인 월트 디즈니홀의 생생한 현장감과 디테일이 살아 숨 쉰다. 특히 4악장 아다지오의 비장함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템포는 젊은 거장의 오케스트라 장악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2012년 2월 17일 두다멜과 LA 필하모닉은 카라카스에 나타났다. 말러 서거 100주기를 맞아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합동 공연을 하기 위해서였다. 베네수엘라 공연 예술의 자존심과도 같은 테레사 카레뇨 극장의 2400석 리오스 레이나홀은 객석 규모와 맞먹는 200명의 오케스트라 단원과 2000명의 합창단으로 무대는 장관이었다. 엘 시스테마 산하의 전국 각지에서 선발한 합창단원은 앳된 얼굴의 소년·소녀들이었다. 그들이 선곡한 음악은 말러의 교향곡 8번. 파이프오르간까지 합세한 장엄한 대서사시가 피날레에 이르자 아브레우 박사를 비롯한 객석은 모두 기립했다. 합창단원들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LA 필하모닉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을 두다멜이 이끌어낸 것이다.

LA 필하모닉은 2014/2015 시즌 ‘두다멜 펠로(Dudamel Fellows)’를 발표했다. 차세대 젊은 지휘자의 데뷔 프로그램이다.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클루센과 뉴질랜드 출신의 여성 지휘자 제마 뉴가 영예의 주인공으로 낙점되었다. 지난 여섯 시즌 동안 두다멜은 자신이 어릴 때 받은 은혜를 세계 각국의 예비 거장들에게 대물림하기 위해 매년 두 명씩 월트 디즈니홀에 데뷔 무대를 마련해주었다. 나눔을 실천하는 그의 인간미가 그대로 전해지는 대목이다.

LA 필하모닉은 최근 오케스트라 창단 100주년이 되는 2019년까지 두다멜과 계약을 연장했다. 예전과 달리 장기 계약이 쉽지 않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관계를 생각하면 파격적인 소식이다. 엘 시스테마는 올해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우선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유럽 7개 도시 순회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두다멜은 2015년을 그 어느 해보다 분주히 보낼 예정이다.

두다멜이 2008년에 이어 두 번째로 내한한다. 이번에는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SBYO)가 아닌 LA 필하모닉과 함께한다. LA 필하모닉도 2008년 에사 페카 살로넨과 함께한 이후 7년 만에 우리 땅을 밟는다. 두다멜은 일찍부터 우리나라와 각별한 사이였다.

“저는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느낍니다. 한국에서 온 마에스트로 곽승은 엘 시스테마에서 저의 첫 지휘 선생님 중 한 분이었고,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한국과의 인연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3월 25일은 말러 교향곡 6번 ‘비극적’, 단일 프로그램이 기다리고 있다. 두다멜이 지휘하는 말러 연주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다. 다음 날은 LA 필하모닉 취임 연주회 때 초연한 존 애덤스의 ‘시티 누아르’가 처음으로 예술의전당에서 연주된다. 그리고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가 온 악단에 의해 모습을 드러낸다.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이었지만 ‘나의 어린 놈(mi chiquito)’이라며 애지중지했던 할머니의 사랑으로 음악을 하게 된 두다멜은 이제 성인이 되어 전 세계에서 ‘자신의 어린 놈’들에게 할머니의 사랑을 음악으로 전하고 있다. 그 사랑을 3월 내한 무대에서 우리에게도 나눠줄 것이다.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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