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프랑크 페터 치머만 & 발레리 소콜로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3월 1일 12:00 오전

바이올리니스트 프랑크 페터 치머만 & 발레리 소콜로프

타고난 재능과 구도자적 탐구를 멈추지 않는 바이올린 거장들의 서로 다른 음악 세계 비교


연초부터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의 내한 공연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1월 힐러리 한 독주회에 이어 2월에는 세르게이 하차투리안이 서울시향과 협연해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3월에는 프랑크 페터 치머만과 발레리 소콜로프의 무대가 기다리고 있으니, 올해 국내 음악 애호가들은 현존하는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매달 만나는 셈이다. 특히 3월에 내한하는 프랑크 페터 치머만과 발레리 소콜로프는 서로 다른 스타일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현재 그 연주력이 절정에 달해 더욱 기대를 모은다.

3월 13일, 베를린 방송교향악단과 협연하는 프랑크 페터 치머만은 독일 출신 바이올리니스트로 안네 조피 무터·크리스티안 테츨라프와 함께 독일계 바이올리니스트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그는 무터 못지않은 신동이었지만 치밀한 연구와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통해 갈수록 설득력 있는 작품 해석을 보여주는 노력파 연주자로 알려졌다. 반면 3월 24일 서울시향과 협연할 발레리 소콜로프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힘들이지 않고도 풍부하고 호소력 있는 톤을 만들어내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타입이다. 특히 다비트 오이스트라흐와 레오니드 코간 등 러시아 바이올린 악파의 소리에 요하네스 크라이슬러를 닮은 부드러운 톤이 더해진 그의 바이올린 음색은 듣는 이를 끌어들이는 강력한 힘이 있기에 음반보다는 무대에서 그를 만나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다.

프랑크 페터 치머만, 참된 소리를 찾아 나선 바이올린의 구도자
프랑크 치머만의 경력을 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11세 때 독일 청소년 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 외에는 별다른 콩쿠르 경력이 없지만, 그는 이미 10대 후반부터 세계 무대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로린 마젤과 다니엘 바렌보임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그의 연주를 듣고 그 놀라운 가능성을 감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84년 19세의 치머만은 거장 로린 마젤에게 자신의 연주 테이프를 보냈다. 이를 들어본 마젤은 특별한 경력도 없는 젊은 치머만에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의 연주회를 주선했다. 그해 치머만은 파리에서 열린 모차르트 페스티벌에서 이츠하크 펄먼 대신 모차르트의 협주곡을 협연하는 큰 기회를 잡았다. 병이 난 펄먼이 연주를 할 수 없어 바렌보임의 주선으로 치머만이 대신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거장들의 인정을 받아 빠르게 세계 무대에서 입지를 굳힌 치머만은 20대 초반에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메이저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으며, 루체른 페스티벌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등 세계적인 페스티벌에 초청받았다. 그가 유서 깊은 독일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창단 250주년 기념 공연에 초청받았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만 27세였다.
치머만이 청년기부터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바이올린 연주에 배어 있는 자연스러운 음악성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치머만은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음악을 접하며 음악과 함께 성장했다. 치머만의 할아버지는 유명한 헝가리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시게티와 함께 연주할 정도로 실력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였고 그의 아버지는 첼리스트, 어머니는 바이올리니스트다. 그의 한국인 부인도 바이올리니스트로 학업 차 독일에 와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다 협연자인 치머만을 만나 결혼했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도 바이올리니스트다.
부인이 한국인인 만큼 한국이 친근할 만도 한데, 치머만의 국내 데뷔는 다소 늦은 편이다. 치머만이 본격적으로 국내 팬에게 이름을 각인시킨 것은 2001년 내한 독주회 때였던 것 같다. 그해 10월 말 예술의전당에서 펼친 치머만의 독주회를 관람한 이들은 아직까지도 그날의 감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어떤 가식도 없이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드러낸 자연스러운 연주는 기존의 어떤 바이올리니스트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었다. 자아를 내세우기보다는 음악 자체에 헌신하는 치머만의 겸허한 모습은 바이올린을 통해 참된 소리를 찾아가는 구도자의 모습 그 자체였다. 이후 치머만은 2008년과 2009년 서울시향과 뉴욕 필의 협연 무대를 통해 베토벤과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선보이며 독일 음악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주로 EMI 클래식스 레이블을 통해 발매한 치머만의 여러 음반을 들어보면 나이가 듦에 따라 그의 연주와 표현력이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필자가 처음 들어본 치머만의 음반은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소나타 음반인데, 당시 그 음반을 들으며 상당히 로맨틱하고 음색이 풍부하다고 느꼈다. 폭넓은 비브라토, 적극적인 강약 표현, 강렬하지만 과하지 않은 악센트 덕분에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제2번은 매우 탐미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후 들어본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에서는 한결 단정하고 정갈한 음색, 정확하고 분명한 리듬감이 돋보였다. 그야말로 정통 독일 바이올린 악파의 엄격함이 묻어나는 연주였다. 이후 오랜 세월이 흘러 발매한 음반에서는 작품에 따라 수백 가지 표정을 만들어내는 치머만의 다채로운 표현력에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처럼 자유자재로 음악을 표현해내기까지 그가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이번 베를린 방송교향악단과의 협연 무대에서 치머만이 연주할 곡은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치머만이 이미 두 차례 녹음한 곡이지만, 그의 시벨리우스 음반을 들어본 사람이라도 이번 무대에서는 치머만의 새로운 시벨리우스를 듣게 될 것이다. 똑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그의 활 끝에선 항상 새롭고 참신한 음악이 탄생하니 말이다.

발레리 소콜로프, 타고난 바이올리니스트
발레리 소콜로프 역시 치머만처럼 국내에 알려진 시점은 다소 늦어졌다. 1986년 우크라이나 태생의 소콜로프는 올해 만 29세로 이미 어린 나이에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1999년 그가 사라사테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13세였으니, 그가 세계 무대에 알려진 지도 벌써 15년이 넘었다.
아마도 소콜로프가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브뤼노 몽생종의 영상물 덕분인 듯하다. 소콜로프가 예후디 메뉴인 음악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제작자 브뤼노 몽생종의 눈에 띄어 2004년에 이루어진 툴루즈의 독주회 실황이 DVD로 발매됐는데, 이 영상물을 보면 ‘타고난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제목 그대로 너무도 쉽고 자연스럽게 프로코피예프 소나타의 난해한 악구들을 풀어내는 그의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브뤼노 몽생종은 2008년 아시케나지가 지휘하는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영상물도 제작했다. 이 역시 국내에 발매되면서 국내 음악 팬에게 ‘소콜로프’라는 이름이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2년 전 서울시향과의 협연 무대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소콜로프의 뛰어난 연주는 국내 음악 팬을 놀라게 하며 소콜로프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013년 7월 5일 소콜로프가 서울시향과 함께 연주한 곡은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으로, 바이올린 협주곡 중에서도 독주자의 기교와 카리스마가 매우 중요한 곡이다. 이 쉽지 않은 협주곡에서 소콜로프는 첫 음에서부터 마지막 한 음에 이르기까지 청중을 끌어들이는 풍부한 톤과 역동적 연주로 경탄을 자아냈다. 첫 소절을 연주하는 순간부터 그 소리에 담긴 힘과 부드러움에 압도되었다. 힘들이지 않는 것 같은데도 그의 활이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힘차고 풍부한 소리가 뻗어 나왔다.
소콜로프의 바이올린 톤은 다비트 오이스트라흐나 레오니드 코간을 연상시키는 러시아 바이올린 악파의 농밀한 톤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헨리크 셰린크를 닮은 놀라운 레가토와 크라이슬러를 닮은 우아함까지 갖추어 그야말로 모든 바이올리니스트가 꿈꾸는 이상적인 소리라 할 만했다. 특히 1악장 중간부의 몽환적 음색으로부터 2악장 스케르초의 카랑카랑한 스피카토, 그리고 3악장에서 4악장으로 이어지는 카덴차와 4악장에서 선보인 폭발적 연주에 이르는 다채로운 표현력은 보통의 바이올리니스트가 흉내 낼 수 없는 높은 경지를 보여주었다.
더욱 흥미로웠던 점은, 그날 앙코르로 연주한 바흐의 파르티타였다. 그의 바흐 연주는 날렵한 춤곡풍 연주 스타일이 유행하는 요즘의 경향을 전혀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음 하나하나에 무게를 실어 충실히 표현해내는 그의 연주는 설득력이 있었으며, 레오니드 코간이나 다비트 오이스트라흐 등 ‘옛 거장’의 풍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서울시향과의 이번 협연 무대에서 소콜로프가 연주할 곡은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하이페츠와 오이스트라흐 등 옛 거장들이 탁월하게 연주해낸 이 협주곡은 오늘날 여러 바이올리니스트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곤 하지만, 소콜로프가 협연자로 나서는 만큼 옛 거장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무대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글 최은규(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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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페터 치머만 협연, 마레크 야노프스키/베를린 방송교향악단
3월 13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외

발레리 소콜로프 협연, 안토니 비트/서울시향
3월 24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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