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진중하게, 때로는 재치 있게. 더블베이스의 무한한 가능성에 주목하라!
더블베이스는 크다. 정말 크다. 물론 하프나 탐탐만큼 거대하진 않지만 연주자가 직접 소지하고 다니는 악기 중에서는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음악대학 캠퍼스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여학생이 악기 케이스를 들어주는 남자친구와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참 훈훈한데, 더블베이스 전공생의 남자친구는 진정 그녀의 생존을 위해 대신 사투를 벌이는 느낌이다. 건장한 남학생이라도 더블베이스를 이고(?) 언덕을 영차, 영차 올라가면 마치 달팽이가 새집으로 이사를 가듯 힘겨워 보인다. 더블베이스 주자들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에도 주변 승객의 눈치를 봐야 하며, 택시를 탈 때도 앞좌석을 완전히 젖혀 대각선으로 눕히는 수고를 해야 한다.
큰 덩치에 반해 더블베이스는 과거 관현악곡에서 다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바로크 시대에는 통주저음(주어진 저음 위에 즉흥적으로 화음을 보충하면서 성부를 완성하는 작곡 기법)의 화성을 짚어주는 역할을 했고, 고전 시대에 다다를 때까지는 주로 곡의 저음부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 첼로의 선율을 한 옥타브 아래에서 중복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베토벤이 첼로와 더블베이스를 분리해 작곡하기 시작했고,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뛰어난 더블베이스 주자였던 조반니 보테시니가 수십 개의 더블베이스 독주곡, 협주곡을 작곡·연주하며 더블베이스는 비로소 솔로 악기로 우뚝 섰다.
현재 말러 교향곡 1번(3악장)과 2번(1악장), R.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다리우스 미요의 ‘천지창조’ 등 더블베이스가 독립적 파트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여러 곡이 사랑받고 있지만, 여전히 더블베이스 협주곡은 흔치 않다. 다른 현악기에 비해 현이 굵고 길어 빠른 패시지를 연주하기에 민첩성이 떨어지고, 독주로 연주할 때는 음량이 작아 오케스트라에 다소 묻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더블베이스는 코끼리의 뒤뚱뒤뚱 귀여운 모습(생상스 ‘동물의 사육제’)부터 무시무시한 동굴 속 공포(R. 슈트라우스 ‘살로메’)까지 다양하게 변모하며 무한 매력을 펼친다. 35년째 서울시향의 든든한 ‘베이스’가 되고 있는 더블베이시스트 안동혁 수석에게 악기의 이모저모에 대해 들었다.
더블베이스의 활이 짧고 뚱뚱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바이올린·비올라·첼로의 활에 비해 더블베이스의 활은 짧고, 두껍고, 무겁다. 몸집이 크니 활도 길어야 하는 것 아닐까? 긴 패시지를 한 번의 보잉으로 연주하려면 말이다. “더블베이스가 내는 소리는 진동수가 적어요. 기준음인 A 음이 1초에 440번 떨리니까 그보다 높은 음역을 주로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음을 길게 유지하려면 활을 빠르게 그어야 하죠.” 진동수가 클수록 음이 지속되는 주기는 짧아진다. “더블베이스는 천천히 진동해 소리를 내니 빨리 긋지 않아도 소리가 길게 유지됩니다.”
멸종 위기의 활 현악기 활의 활대 재료는 브라질 페르남부쿠 주에서 생산한 나무를 최상의 것으로 친다. 목질이 단단하고 탄력성이 좋아 소리의 전달력이 높다. 하지만 현재 이 나무는 멸종 위기 종으로 분류, 일반 거래가 금지되었다. 좋은 활과, 이 나무로 악기를 만들던 장인들이 사라질 거라는 두려움에 저널리스트 러스 라이머는 ‘Out of Pernambuco’(2001)라는 출판물을 발행하기도 했다.
4현은 솔로용, 5현은 오케스트라용? 더블베이스는 네 개의 현을 가진 악기와 다섯 개의 현을 가진 악기가 있다. 악기를 정면에서 바라볼 때 가장 왼쪽에 있는 현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음이 높아진다. 4현은 높은음부터 아래로 G(솔)-D(레)-A(라)-E(미) 음이고, 5현은 보통 그 아래의 C(도) 음이 추가된다. 5현 더블베이스는 첼로 음역 중 가장 낮은 음인 C 음까지 한 옥타브 아래에서 중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안되었다.(4현 더블베이스로 연주하면, E 음 아래의 음은 한 옥타브 위에서 연주해야 하기에 때때로 첼로보다 높은 음역을 연주하는 경우가 생긴다) 5현 더블베이스는 4현 더블베이스보다 울림통이 커서 깊은 울림을 주기 때문에 대규모 편성에 활용된다. 그렇다면 4현은 솔로용, 5현은 오케스트라용으로만 사용되는 걸까? “꼭 그렇지는 않아요. 현재 서울시향도 4현과 5현을 같이 사용합니다. 연주자마다 자신에게 맞는 악기를 고르죠. 일부 연주자들은 4현 악기에 ‘익스텐션’을 쓰기도 해요.” 익스텐션은 악기의 목 부분에 장착하는 일종의 기구로, 평소에는 잠금장치를 걸어두고 사용한다. “필요 시, 브랜드에 따라 버튼을 꾹 누르거나 손잡이를 살짝 돌리는 등 간단한 ‘조작’을 하면 C 음을 연주할 수 있습니다.”
앉으나 서나 중요한 것 오케스트라의 더블베이시스트는 높은 의자에 앉아 악기를 몸 쪽으로 기댄 후 연주하고, 솔리스트로 나선 연주자는 테크닉을 자유롭게 발휘하기 위해 서서 연주하기도 한다. 엔드핀으로 고정해 지탱하기는 하지만 큰 몸집의 악기를 몸 전체 또는 손목의 힘으로 지탱해야 하니 때로는 무리가 간다. “아무래도 다른 현악기에 비해 많은 힘을 필요로 하니 연주할 때면 몸 전체가 긴장하죠. 말러의 교향곡 같은 난곡을 연주할 때면 ‘저 연주자가 이 곡에 목숨을 걸었구나!’ 싶을 만큼 무리를 해서 간혹 목 디스크나 허리 디스크를 앓는 연주자도 있어요. 사실 더블베이스 외에 다른 악기 연주자들도 각자 ‘직업병’이 있잖아요. 평소 연습할 때 바른 자세를 유지하면 크게 아플 일은 별로 없어요. 모두 바른 자세로 연습합시다.(웃음)”
운지법 왼손이 담당하는 운지법에는 몸통 부분의 현을 짚는 상위 포지션과 목 부분의 현을 짚는 하위 포지션이 있다. 상위 포지션에서 2번 손가락은 독립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3번 손가락의 운지를 따라다니기만 한다. 하위 포지션에서는 2번 손가락과 4번 손가락도 사용한다.
서울시향의 역사가 담긴 뮤트 안동혁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낸 뮤트(약음기)는 언뜻 보기에도 꽤 낡았다. “서울시향에 들어온 지 35년이 되었으니 이 뮤트는 서른네 살이네요.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당시에는 악기에 필요한 액세서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누군가 흑단으로 만든 뮤트를 쓰고 있기에 보고 따라 만들었죠. 요즘에는 고무·금속·플라스틱 등 다양하지만, 저는 연주 때마다 이 뮤트를 지니고 다녀요.”
브랜드 바이올린으로 유명한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넬리에서는 더블베이스를 찾아보기 힘들다. “만들었는데 보존이 잘 안 된 건지도 몰라요.” 안동혁은 현재 1901년산 카를로 카레티 악기를 사용하고 있다. 최근 타계한 프랑스의 악기 제작자 크리스티앙 노가로의 악기와 베이시스트 게리 카가 사용하는 아마티가 유명하다. 이외에도 에마누엘 빌퍼·만 등 여러 브랜드가 있다. 전공자들을 위한 악기의 가격대는 1000만 원대부터 1억 원대까지 다양하고, 취미로 배우려는 사람은 100만~500만 원대에서 적절한 악기를 선택할 수 있다.
소리를 결정하는 현 현의 재료는 거트·강철·구리·나일론 등 다양하다. 어떤 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악기의 소리가 결정된다. “예전에는 양 창자를 꼬아 만든 거트밖에 없었어요. 굵고 거칠어 글리산도 주법을 한 번 슥 긁고 나면 손에서 타는 냄새가 날 정도로 뜨겁죠. 그래도 거트만의 매력적인 소리가 있어요. 요즘은 주로 강철로 만든 현을 사용하는데, 거트에 비해 얇아서 정교하게 연주할 수 있습니다. 뭐가 더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 없어요. 연주자마다 원하는 음색이 다르니까요.”
그가 휘파람을 부는 이유 앞서 말했듯, 더블베이스는 운반이 쉽지 않다. 해외나 지방 투어를 다닐 때의 에피소드가 궁금해 물으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더블베이스 주자들은 연주 여행을 갈 때 휘파람 불면서 가요.(웃음) 크기가 가장 작은 악기를 연주하는 피콜로 주자들이 제일 행복할 것 같지만, 가장 좋은 건 우리죠. 다들 각자 악기를 손에 들고 다니는데, 더블베이스는 악기 매니저들이 관리·운반하거든요. 그냥 빈손으로 연주회장에 가면 악기가 놓여 있어요. 이동할 때, 특히 비행기를 탈 때는 케이스가 정말 중요해요. 악기를 안전하게 지켜주면서도 무겁지 않은 하드 케이스를 골라 사용합니다.” 안동혁은 이 말을 하며 기자의 휴대폰으로 이동 시 사용하는 케이스 사진을 전송했다.
많아도 문제, 적어도 문제 현악 주자들은 항상 습도와 전쟁을 치른다. 습도가 높아 수분이 많아지면 나무가 팽창하고, 반대로 습도가 낮아 수분이 부족해지면 나무가 수축해 악기가 쩍 갈라지기도 한다. “겨울에는 가습기, 여름에는 제습기를 필수로 사용합니다. 야외 공연을 할 때면 혹여 햇볕이 들지는 않을지, 또 물이 닿지는 않을지 극도로 조심하죠. 습도를 조절하는 ‘댐핏’은 장거리 이동 시 유용해요.” 댐핏은 몸체에 난 구멍(f홀)에 넣는 가습 도구로, 긴 호스로 되어 있다.
송진? 그때그때 달라요 활의 털에 문질러 현과의 마찰을 가감하는 송진은 입자가 가는 것부터 굵은 것까지 종류가 천차만별이다. 송진에 대한 설명은 ‘객석’ 2014년 5월호 악기 탐구 시리즈 ‘비올리스트 김남중’ 편에 자세히 나와 있다. 현악기의 종류에 따라서도 각각 사용하는 송진의 종류가 다르지만, 같은 악기라도 솔로 연주를 할 때나 오케스트라 연주를 할 때, 날씨가 더울 때나 추울 때 등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송진을 쓴다. “저는 솔로 연주를 할 때는 입자가 고운 송진을, 오케스트라에서는 그보다 조금 더 끈적끈적한 것을 보통 사용해요. 선택은 지극히 연주자 개인의 취향입니다.”
재즈에서의 더블베이스 클래식 음악에서의 더블베이스와 재즈곡에서의 더블베이스는, 운지법은 대부분 같지만 주법은 완전히 다르다. “현을 손가락으로 퉁기는 피치카토 주법은 클래식 음악이나 재즈곡에서 모두 중요하게 사용되죠. 하지만 클래식 음악에서는 ‘둥~’ 퉁긴 후 여운을 가지고 가는 반면 재즈에서는 ‘답! 답!’ 하면서 울림을 멈추는 ‘슬랩’ 주법으로 많이 연주해요. 악기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영역이에요.”
사진 박진호(Studio B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