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금호아트홀 라이징 스타 시리즈3 홍은선 첼로 리사이틀

뜨겁되 은은하고, 치열하되 안정적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3월 1일 12:00 오전

2015 금호아트홀 라이징 스타 시리즈3 홍은선 첼로 리사이틀
2월 12일
금호아트홀

뜨겁되 은은하고, 치열하되 안정적인


▲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에 재학 중인 스물여섯의 첼리스트 홍은선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지난해 가을이다. 루마니아 에네스쿠 콩쿠르 1위 입상 후, 그 소식이 단신으로 널리 돌았던 것. 그녀가 출전 시 지났을 관문을 더듬어보기 콩쿠르 홈페이지를 살펴보았다. 9월 11·14·17·19·20·21일로 이어진 긴 여정이다. 작곡가 조르지 에네스쿠(1881~1955)를 기리기 위한 콩쿠르였기에 참가자들이 섭렵해야 할 레퍼토리도 바로크 시대부터 현대 곡까지 다양하다. 기교와 해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음악사를 방랑하며, 불안과 꿈이 교차했을 그녀의 긴 여정이 느껴졌다.
홍은선은 이날 드뷔시 첼로 소나타 D단조, 베토벤 소나타 3번 A장조, 쇼스타코비치 첼로 소나타 D단조, 퍄티고르스키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선보였다. 드뷔시를 통해 연주자의 ‘감성’을 읽을 수 있었다. 베토벤은 ‘기초’를, 쇼스타코비치는 ‘해석’을, 퍄티고르스키를 통해 ‘기교’를 읽을 수 있는, 연주자의 면면을 고루 볼 수 있게 한 구성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녀가 준 인상은 ‘풍성’과 ‘안정’이다. 드뷔시의 도입부에서 왼손의 기교가 기선을 제압한다. 그리고 이어진 풍성한 보잉이 금호아트홀의 공기를 다스린 첫인상, 이 인상은 막이 내릴 때까지 흔들리지 않는다. 표현의 확장을 위해 기교의 한계에 괘념치 않고 악보를 휘갈긴 드뷔시나 쇼스타코비치는 그 기교의 지대를 지나야 하는 연주자나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을 늘 불편하게 한다. 하지만 홍은선은 안정적이다. 드뷔시의 3악장, 네 개의 현을 받치는 브리지에 최대한 밀착해 활을 긋는 술 폰티첼로 주법이나 지판 위에서 활을 쓰는 술 타스토 주법에서도 여유가 돋보인다. 난해한 주법이기에 일어나기 쉬운 잡음을 제련하며 작곡가와 약속된 배음을 명료하게, 그러면서도 안정적으로 뽑아내는 솜씨가 놀랍다. 베토벤에선 건반을 뜯어내는 듯한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게라지메츠의 거친 울림을 온화한 프레이징으로 감쌀 줄도 안다. 쇼스타코비치에서는 판을 꿰뚫고 패를 돌리는 고수처럼 그 어떤 음표 앞에서도 담대하고 안정적이다. 파가니니의 기교와 첼리스트 퍄티고르스키의 영혼이 포개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이 젊은이는 뚝딱 해치워 객석을 흥분의 도가니로 만든다. 치열하다. 수직으로 깊이 들어가 첼로의 묵음(默吟)을 끄집어내면서도 피아니스트와 수평을 이루는 솜씨가 놀랍다. 객석의 첼리스트 정명화는 베토벤 곡이 끝나자 ‘브라비!’를 외친다. 퍄티고르스키의 곡에서 이어진 환호와 박수를 홍은선은 ‘타이스의 명상곡’으로 매듭짓는다. 첼로에 사용하는 네 개의 현은, ‘은’색으로 된 ‘선’들이다. 나는 ‘은선’이라는 이름과 첼로와의 운명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금호아트홀의 ‘라이징 스타 시리즈’는 국제 콩쿠르 입상자와 국내 관객을 잇는 소중한 가교다. 청년들은 입상 후의 연주라고 안도하지 않는다. 3월 5일에는 오보이스트 정예창이 오른다. 예전에는 공연장에 예술 중·고등학교의 교복을 착용하고 악기를 든 학생들이 많았다. 그들은 세계무대를 앞둔 언니·오빠들을 보며 꿈을 키웠다. 요즘은 이런 풍경을 쉽게 볼 수 없어 조금은 그립다. 이날도 그들이 홍은선의 연주를 봤다면 카카오톡에 ‘대박 언니’로 오르내렸을 텐데.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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