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말러매니아’

말러의 음악 속에 담긴 알마의 흔적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5월 1일 12:00 오전

음악극으로 재현하는 말러의 삶과 고뇌, 그리고 알마와의 사랑

베를린 도이치 오퍼는 2012년 재개관하면서 오페라가 아닌 독특한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베를린에서 새롭고 창의적 시도로 정평이 난 극단 니코 앤 더 네비게이터스와 공동 제작한 작품으로, 말러의 삶을 100분이라는 시간에 녹여낸 음악극 ‘말러매니아’였다.

빈 슈타츠오퍼의 상임지휘자로 비제의 ‘카르멘’, 차이콥스키의 ‘스페이드의 여왕’ 등 수많은 오페라의 오스트리아 초연을 지휘할 정도로 신작 상연에 적극적이던 말러는 동시대 음악에도 관심이 많은 지휘자였다. 지휘자로서 찬사를 받으며 바쁘게 살았던 말러가 빈 사교계에서 스캔들로 유명한 지적인 여인 알마를 만나게 된 건 그의 일생에 커다란 사건이었고, 이 작품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두 명의 말러, 한 명의 알마가 공존하는 무대

‘말러매니아’는 중년 여인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말러 사후 중년의 알마다. 연출가 니콜라 휨펠은 이 작품을 알마의 독백으로 진행하는 이유를 “알마는 말러라는 복잡한 인간의 내면으로 나를 인도해주는 실마리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자서전과 일기를 읽으면서 알마가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알마가 말러와 함께한 시간은 10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알마는 말러의 인생에서 절대적이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말러가 죽은 뒤 알마는 말러가 일생 동안 남긴 모든 작품을 완벽하게 정리했다. 항간에서는 그녀가 말러의 작품을 소유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라고 설명했다.

말러 교향곡 4번 3악장 ‘평안하게’가 체임버 악단 편곡 버전으로 흐르면서 괴로워하는 남성 무용수의 몸짓이 펼쳐진다. 반유대 정서 속에서도 빈의 음악계를 휩쓴 명지휘자이자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곁에는 인생의 동반자 알마 말러가 있었다.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바탕으로 지휘자로서, 작곡가로서 입지를 높여가는 말러와 달리 알마는 허무와 우울감에 점점 지쳐간다. 결국 알마는 말러보다 젊고 성공한 예술가이자 건축가인 바우하우스의 발터 그로피우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런 알마의 행동은 말러를 절망에 빠뜨린다.

말러는 스스로를 학대하면서 작업에 더욱 몰두한다. 첫 장면은 지난 시절을 이야기하는 중년의 알마와 괴로워하는 말러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분위기가 변해 젊은 말러와 알마가 등장하고,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바리톤 음성으로 부르는 ‘그녀의 결혼식 날’이 울려 퍼지면서 두 사람은 결혼한다. 교향곡 1번 3악장의 ‘졸리니, 존?’의 테마에 맞춰 한 쌍의 젊은 청춘 남녀가 같은 길을 반복해 여행한다. 처음엔 보통 빠르기로, 이후 반복될수록 점점 빨라지면서 이들은 인생의 환희를 느낀다. 말러와 알마의 좋았던 시절, 행복한 시간이다. 하지만 결혼 전에도 인기가 많던 알마의 인기는 결혼 후에도 계속된다. 말러는 알마를 혼자 독차지하고 싶어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젊은 날의 가곡과 노래’ 중 메조소프라노의 음성으로 ‘강한 상상력’과 ‘추억’ 그리고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의 ‘후광’이 흐르며 알마는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를 비롯한 다양한 남자들과 만나고 연애도 한다.

말러는 이를 알고 괴로워한다. 가슴속에 큰 상처를 입은 말러. 심장이 좋지 않던 그는 이 일로 심장병이 실제로 악화되기도 했다. 중년의 알마가 나오면서 세르비아 출신 메조소프라노에게 외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어려움에 대해 묻는다. 오스트리아에서 체코인으로, 유대인으로, 늘 이방인으로 살아온 말러의 인생과 같다고 할까. ‘젊은 날의 가곡과 노래’ 속 ‘자만’,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속 ‘기상나팔’이 바리톤 음성으로 흐른다. 교향곡이 중요하게 등장하지만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젊은 날의 가곡과 노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와 같은 가곡을 중심으로 극이 전개되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성악가들의 짙은 표현력 때문이다.

인기 많은 알마 옆에는 늘 남자들이 있다.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중 ‘너의 엄마’와 ‘난 자주 그들이 잠깐 밖에 나갔다고 생각했네’가 흐르고 이어 교향곡 1번의 3악장이 다시 흐른다. 테마는 아주 즐거운 민요풍에서 카바레풍으로 바뀐다. 붉은 의상을 입은 알마는 말러와 오두막집을 지으며 즐겁고도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 이유는 1908년부터 1910년까지 말러와 알마가 오스트리아 마이에르니그에 있는 뵈르테르제 호수 인근에서 살았고, 물가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집에서 작곡하곤 했기 때문이다. 이 오두막은 말러가 ‘대지의 노래’를 작곡하고 여생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번에 떠나는 여행은 앞서 둘이 떠난 여행과는 전혀 다르다. 두 사람은 웃는 얼굴 대신 시름이 가득하다. 같이 있으되 고독하고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부 사이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단조의 교향곡 1번 3악장으로 들려준다.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바리톤이 부르는 ‘그녀의 파란 두 눈이’, 바리톤과 메조소프라노가 함께 부르는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중 ‘아름다운 트럼펫 소리 울리는 곳’, 뤼케르트 가곡 중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가 흐르는 동안 뉴욕에 사는 중년의 알마가 등장해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와의 연애담을 회상한다. 젊은 알마는 애정과 욕망의 상징인 사과를 먹기도 한다. 과연 언제 나올까 궁금하던 말러 교향곡 5번의 4악장 ‘아다지에토’가 이때 등장한다. 실내악단의 연주가 아닌 피아노 독주다. 원래 알마에 대한 말러의 음악적 연애편지로 알려진 이 곡은, 여기서는 피아노 솔로로 연주되면서 자유분방하면서 개방적인 바람둥이 알마의 모습을 그려낸다. 말러는 괴로워한다.

피날레는 ‘대지의 노래’ 중 ‘고별’로 바리톤과 메조소프라노가 함께 부른다. 구스타프 말러에게 깊은 상처와 영감을 안겨준 뮤즈 알마는 결국 그의 곁을 떠난다.

니코 앤 더 네비게이터스의 니콜라 휨펠의 연출, 베를린 도이치 오퍼의 상임지휘자이자 ‘말러매니아’ 초연 지휘자인 모리츠 그난이 지휘를 맡고 탄탄한 실력의 TIMF앙상블이 이번에 연주를 맡는다. 연출가 휨펠은 말러의 예술가로서 고뇌와 사랑의 실패로 인한 고통을 다루는 이 작품에 대해 “말러와 스무 살 연하인 알마의 관계는 어떤 면에서 말러가 살던 시대를 비유적으로 잘 보여준다. 나이가 많던 말러는 낭만적이고 전통적인 부부관계를 원했지만, 한편으로는 광적으로 음악작업에 몰두하며 알마와 많은 시간을 갖지 못했다. 알마는 해방의 기쁨과 개방적 사고를 갖고 작곡에 대한 열정을 발견한다.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공존한 것 자체가 그 당시 음악의 과도기적 양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말러는 시대적 변화와 모순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했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한다.

5월 8일과 9일, 의정부 음악극 축제의 개막작으로 의정부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지는 ‘말러매니아’. 나이가 많고 적은 두 명의 말러와 알마, 성악가와 무용수, 연기자가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을 통해 말러의 음악에 알마가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사진 Antonella Travascio / Falk Wenzen / Thomas Au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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