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바젤 심포니 오케스트라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5월 1일 12:00 오전

지휘자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바젤 심포니 오케스트라

제14회 통영국제음악제 리뷰 ①

작곡가의 철학을 담은 지휘봉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의 주제는 ‘여정’이었다. 1935년 통영에서 시모노세키·오사카에 다다른 윤이상의 첫 여정은 도쿄·홍콩을 거쳐 이스탄불·파리·베를린 등 유럽으로 이어졌다. 유럽에서 다시 탱글우드·애스펀·샌프란시스코·LA·시카고·뉴욕 등 미주를 거친 그의 여정은 한국에서 (거리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가장 먼 북한까지 다다른다.

올해 음악제의 레지던스 아티스트인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의 여정은 미국에서 시작됐다. 줄리아드 음악원을 나오고 미네소타의 세인트 폴 체임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거쳐 유럽으로 건너간 그는 슈투트가르트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빈 방송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를 역임했으며, 린츠 브루크너 오케스트라와 바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필립 글래스를 비롯해 현대음악의 수호자라 불리는 그의 지휘 여정은 다른 한편으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과 브루크너 교향곡이라는 유구한 전통과 균형을 이루고 있다.

3월 27일 저녁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개막 공연이 열렸다. 두 마리 갈매기 형상의 음악당은 멀리서도 잘 보였다. 걸어가는 길에 차지 않은 바닷바람이 불었다. 음악당 로비에서 광장으로 나오면 예쁜 바다가 보인다.

단원들에 이어 등장한 데이비스는 생각보다 왜소했지만, 그의 지휘는 거침없었다. 모차르트 교향곡 32번 K318은 연주회의 첫 곡으로 손색없었다. 춤을 추듯 마치 권법과도 같은 데이비스의 지휘는 날렵하면서도 속이 꽉 찬 모차르트를 구현했다.

다음 곡은 윤이상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 콜로라도 심포니 악장인 한국계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유미 황 윌리엄스가 협연했다. 데이비스는 현대음악 스페셜리스트답게 신중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해석으로 곡을 이끌었다. 윤이상 선생의 작품 중에서 납득이 가는 설득력 있는 작품이었다. 객석의 집중력도 느껴졌다.

인터미션 뒤 레너드 번스타인 교향곡 2번 ‘불안의 시대’가 연주됐다. 콘서트홀의 음향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오케스트라의 울림 하나하나가 바람처럼 피부에 느껴졌다. 바닥이 나무라 청중의 발소리까지 또렷이 들리는 건 조금 아쉬웠다. 사실상 피아노 협주곡인 이 곡은 이번 페스티벌의 상주 작곡가이자 연주자인 파질 사이가 협연했다. 바젤 심포니의 사운드는 장엄하고 현대적이었다. 총주는 명징했고, 피아노는 발랄하게 울렸다. 첼로 음에 맞춰서 하강하는 피아노의 패시지에서 급격한 경사가 느껴졌다. 느린 부분에서 글렌 굴드처럼 왼손을 지휘하듯 흔들던 파질 사이는 재즈 피아니스트처럼 건반 위를 누볐다. 특히 2부의 ‘가면극’ 부분은 압권이었다. 현대적 오케스트라와 쫓고 쫓기는 듯한 피아노, 총주의 아찔함이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다 끝이 났다.

 

 
황홀한 풍경, 매혹적인 음악의 결합

하늘도 바다도 함께 푸르렀던 3월 28일 오후 2시, 한낮의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바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두 번째 공연이 열렸다. 첫 곡은 힌데미트의 ‘베버 주제에 의한 교향적 변용’. 데이비스와 바젤 심포니는 일사불란한 음악을 호쾌하게 만들어갔다. 심벌즈의 타격은 맥주 거품같이 시원했다. 저음현은 꿈틀댔고, 각 악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실로 살아 있는 연주였다. 서정적이고 고즈넉한 2악장과 활기찬 3악장의 대비가 눈에 띄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은 파질 사이가 협연했다. 1악장에서 사이는 개성적인 아티큘레이션을 선보였다. 파격적인 카덴차는 피아노 소나타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2악장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정적 속에서 한껏 아름다움이 반짝였다. 3악장에서 사이는 왼손 성부를 강조하며 바흐의 건반음악을 연상시키는 연주를 선보였다.

휴식 시간에 봄날의 남쪽 바다를 구경할 수 있는 건 통영국제음악제의 특권이었다. 파란 바다 위를 천천히 지나는 배들을 지켜보며 2부를 기다렸다.

스트라빈스키 ‘불새’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바닥부터 저음이 울려왔고 관악의 색채감은 화사했다. 약음이 잘 들리고 하프의 음 하나하나까지 분리된 사운드로 다가왔다. 호른으로 둥글게 시작된 피날레는 점차 거대해졌다. 팀파니 주자가 있는 힘을 다해 북채를 내리치며 장엄하게 마무리했다.

민속 의상과 탈을 쓴 단원들이 나와 앙코르로 스위스 최대의 축제인 바젤 파스나흐트의 행진곡을 연주했다. 바젤 심포니는 이 곡으로 존재감에 방점을 찍었다. 그 어느 해보다 외국 페스티벌에 와 있는 듯한 자유로운 기분을 만끽했다.

밤 10시에는 블랙박스에서 데이비스와 그의 아내인 나메카와 마키의 피아노 듀오 콘서트가 열렸다. 네 손 버전으로 연주한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은 부부의 손이 묘하게 얽혀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연주가 끝나고 데이비스를 만나 네 손 피아노 연주가 꽤 선정적이었다고 말을 건네니 “수많은 결혼이 이뤄지는 작품”이라며 웃었다.

음향이 훌륭한 콘서트홀과 약간 건조한 음향이지만 다목적인 블랙박스가 한 건물에 있다며 통영국제음악당 건물을 칭찬한 그는 “빼어난 작곡가 윤이상이 상징하는 페스티벌인 것과 아름다운 장소, 멋진 콘서트홀, 축제를 지원하는 사람들 모든 것이 좋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점도 마음에 든다”라고 말했다. 현대음악에 조예가 깊은 데이비스는 윤이상 음악의 의의를 ‘통합’과 ‘결합’에 두고 있었다.

“윤이상의 음악이 중요한 것은 유럽 문화의 좋은 요소와 조국에 대한 사랑, 즉 한국적 요소를 결합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동과 서를, 사람들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철학을 갖고 있었어요. 윤이상은 그 철학을 음악으로 실현하려 했지요.”

자신과 더불어 상주 음악가이면서 상주 작곡가이기도 한 파질 사이에 대해서도 자세한 견해를 피력했다.

“파질 사이는 연주를 할 줄 아는 작곡가입니다. 작곡가로서 그는 연주자를 이해하고 비르투오소로서의 특징을 반영합니다. 연주가로서 그는 작곡가처럼 베토벤과 번스타인을 이해하죠. 단순히 음표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밑에 놓인 의미를 이해하며 연주합니다. 윤이상과 마찬가지로 작곡가 사이는 서양음악을 공부했지만 자신의 조국인 터키의 요소를 서양음악에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바젤 심포니에 대해서는 “콘서트 오케스트라이기도 하지만 오페라 연주를 많이 해서 훈련이 잘돼 있다. 오페라를 연주하지 않는 오케스트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랑했다.

지휘 철학을 묻는 질문에도 인상적으로 대답했다.

“지휘할 때 저는 작곡가를 대신해 말하려 합니다. 작곡가의 관심을 살피려 노력하죠. 단원들이 긴장하지 않고 잘 연주할 수 있도록 두려움 없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저의 중요한 일입니다.”

데이비스는 바로 다음 주부터 린츠 브루크너 오케스트라와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전곡 연주를 시작한다고 차기 ‘여정’을 밝혔다. 밤늦게 연주를 끝냈음에도 그의 두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사진 통영국제음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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