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아시아 투어 동행 취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5월 1일 12:00 오전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아시아 투어 동행 취재

제14회 통영국제음악제 리뷰 ④

 

음악 실은 함대, 아시아의 물길을 가르다

올해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이하 TFO)가 음악제 홍보대사로서 5일 폐막 공연에 이어 일본 가나자와(7일)와 홍콩(9일)으로 첫 해외 공연을 떠나는 기념비적인 해다. 폐막 공연에서 만난 김동진 통영시장은 “한국과 일본 사이의 아픔과 갈등을 음악이라는 공통 언어로 풀어나갈 예정”이라며, 순회공연을 추진한 통영국제음악재단 플로리안 림 대표의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

다국적 단원이 모인 TFO라는 함대의 키를 잡은 이는 크리스토프 포펜. 한국 TIMF 앙상블과 포펜이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약하는 홍콩 신포니에타를 비롯해 일본 가나자와 앙상블 오케스트라·오사카 필하모닉, 독일 NDR 심포니·남서독일 콘스탄츠 필하모니, 스위스 장크트갈렌 심포니·바젤 체임버, 헝가리 부다페스트 심포니, 미국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심포니와 크레메라타 발티카의 수석부터 일반 단원들이 모였다.

통영의 바다

서울과 통영에서 4일간 연습한 TFO는 윤이상의 1996년 작 ‘예악(禮樂)’으로 여정의 신호탄을 쏘았다. 착! 허공을 가르는 포펜의 지휘봉에 맞춰 전통음악에 쓰이는 박(拍)의 울림이 허공을 ‘쩍’ 하고 갈랐다. ‘예악’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작곡가가 곡에 담았다는 동양적 사상보다는 음향으로 빚은 섬뜩한 소릿결이 피부로 다가왔다. 제1·2바이올린은 오르간 소리를 연출하는 듯했으나, 다시금 귀 기울이면 대금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첼로·더블베이스가 현을 강하게 퉁기며 내는 ‘탁! 탁!’ 소리는 마치 현을 술대로 강하게 내리찍는 거문고의 대점처럼 다가왔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인 박찬욱 영화감독은 “‘예악’을 실연으로, 그것도 통영에서 들어본 적은 처음이고 또 의미 있는 일”이라며 “타악기들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리게티의 음악을 쓴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예로 들며, “‘예악’이 리게티의 곡보다도 더 영화적 상상력을 불러일으켜, 윤이상의 곡을 영화에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듣는 내내 떠올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진 순서는 기돈 크레머가 협연한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1악장부터 3악장까지, 크레머는 악보에만 집중하며 혼신의 연주를 선보였으나 전압이 흐르던 옛적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터미션 후 말러 교향곡 4번을 선보였다. 포펜은 1부와 달리 제1·2바이올린을 양편으로 나눴고, 차분하게 말러 특유의 맥을 짚어나갔다. 현재 홍콩 신포니에타 악장으로 활약하는 제임스 커드퍼드는 이번에 TFO 악장으로도 활약하며 독주가 있는 2악장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4악장에선 소프라노 카롤리나 울리히가 차분한 매력을 선사했다. 포펜은 합(合)을 지향하기보다는 각 음을 올올히 살리는 편이었다. 울리히는 R. 슈트라우스의 ‘모르겐’을 앙코르로 불렀다. 통영 바다의 출렁이는 물결이 가슴속으로 애잔하게 밀려오는 듯했다.

가나자와의 빗방울

6일, 새벽 4시. TFO는 가나자와로 향했다. 가나자와는 약 45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며, 전통문화와 현대식 생활이 자연스럽게 끄트머리를 맞대고 있는 도시다. 현재 전통 공예로 유네스코 창의도시에 등록되어있고, 5월에 유네스코 창의도시 연례 총회 개최를 앞두고 있었다. 그렇기에 음악 분야를 내세워 창의도시 선정을 위해 노력하는 통영의 본이 될 만한 도시였다.

TFO의 공연이 오를 이시카와 온가쿠도 음악당(石川.立音樂堂)은 가나자와 역과 연계되는 접근성이 좋은 홀이었다. 3월 14일 신칸센이 개통했다는 소식과 기념 음악회를 예고하는 포스터도 보였다. 전통문화가 현 생활과 공존하는 도시답게 음악당에는 일본 전통음악을 올리는 방악(邦樂) 전용 홀도 있었고, 1560석 규모의 콘서트홀에는 독일의 카를 슈케사의 파이프오르간이 무대 정면에 놓여 있었다. 이번 음악제에서 안숙선의 심청가(4월 2일)가 많은 관객을 모았고, 수준 높은 음향의 홀을 갖췄지만 파이프오르간이 부재한 통영국제음악당에도 이와 같은 조건이 갖춰지는 날이 오기를 속으로 바랄 뿐이었다.

입국한 6일, 현지 학생들을 지도하는 마스터클래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로도 명성이 높은 포펜은 피곤한 기색 없이 두 명의 바이올린 학도에게 가르침을 베풀었다. 그리고 7일, 오전의 강도 높은 리허설을 치른 TFO는 오후 7시에 윤이상의 ‘예악’으로 막을 열었다. 통영에서 들을 때만큼의 섬뜩함이 느껴지지는 않았고, 약간 느슨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자로 잰 듯 통영에서와 같이 11분의 연주 시간이 나왔다. 소리를 부드럽게 감싸는 콘서트홀의 음향적 특징으로 그렇게 들린 것 같다. 홀이 연출하는 부드러움은 기돈 크레머의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의 선율을 유려하게 흐르게 했고, 말러 교향곡 4번에도 부드러운 깃털을 달아주었다. 앙코르 곡은 R. 슈트라우스의 ‘모르겐’이었다.

막이 내린 뒤 기모노를 착용한 젊은 관객이 눈에 띄었다. 윤이상을 아느냐고 묻자, 상냥한 표정으로 ‘모른다’고 답했다. 그녀는 ‘익사이팅!’을 거듭 말하며 기돈 크레머의 팬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발행하는 ‘객석’을 안다는 또 다른 관객은 말러 교향곡 4번을 꼽았다. 관객은 대부분 기돈 크레머라는 ‘스타’, 아니면 말러 교향곡 4번이라는 ‘레퍼토리’를 보고 TFO의 공연을 찾은 듯했다. 대부분 윤이상에 대해서는 모른다며 ‘예악’에 대해서는 ‘디피컬트!’라 답했다. 통영의 폐막 공연에서부터 내리던 비는 가나자와에서 보내는 이틀 동안 우리를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홍콩의 밤 풍경

8일, 가나자와 공항을 떠나 인천공항을 경유해 홍콩에 도착했다. 비는 어김없이 우리를 따라다녔다. TFO의 공연이 오를 곳은 홍콩문화센터(香港文化中心). 지하철과 연계되어 있고, 홍콩의 명소 빅토리아 항구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위치했기에 현지인은 약속 장소로도 많이 활용한다. 8일 저녁 잠시 들른 센터 로비에는, 역시 무역도시답게 각국의 기라성 같은 솔리스트와 단체들이 선보일 무대가 곳곳에 홍보되고 있었다.

9일 오후 8시. 윤이상 ‘예악’의 문을 여는 박(拍)이 ‘쨍’하고 2019석 콘서트홀의 공기를 갈랐다. 통영과 일본에서 들은 박 소리가 아니었다. 윤이상·시벨리우스·말러가 새롭게 들려왔다. 통영국제음악당의 소리는 ‘뻗어나가는 전달력’이 있었다면, 이시카와 온가쿠도 음악당은 ‘부드럽게 감싸는 힘’이 느껴졌고, 홍콩은 음이 한 올 한 올 살아나는 ‘디테일’이 있었다. 무대를 중심에 두고 관객을 둘러앉히는 빈야드 스타일의 콘서트홀. 통제와 자유를 적절히 허용하며 올올히 소리를 뽑아내는 포펜 특유의 지휘력과 살을 쏙 발라내는 듯한 음향이 합쳐졌다.

기돈 크레머의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말러 교향곡 4번 모두 선명하고 명징하게 다가왔다. 8000개의 파이프로 된 오스트리아제 파이프오르간도 공연 내내 눈길을 끌었다. 또다시 떠오른 통영국제음악당···. 1309석 규모의 국제적인 수준의 음악당이지만 홀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파이프오르간이 부재하는 상황에서 ‘국제’적이고 또 전문 ‘음악당’으로 어떻게 자리매김할지 의문이 들었다. 공연이 끝난 후 무대 뒤에서 조촐한 리셉션이 열렸다. 나는 로비에서 음악회를 자주 찾는 듯한 젊은 부부에게 다가가 소감을 물었다. 그들은 기돈 크레머에게 열광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TFO와 윤이상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했다. 4월 5일, 통영 폐막 공연을 시작으로 5일간의 여정이 끝난 밤이었다. 앞으로 통영국제음악제가 할 일은 분명하다. 세계 어디를 가든 통영-윤이상-한국을 알리는 일이리라. 통영에서 일본을 거쳐 따라온 빗줄기는 빅토리아 항구가 보이는 야경을 기분 좋게 적시고 있었다.

올해 14회를 맞은 통영국제음악제가 일본과 홍콩으로 이어진 셈이다. 음악제의 주제이기도 한 ‘여정’의 길이와 넓이를 확장하기 위한 음악제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음악제가 세계로 뻗친 여정은 이제 해외 관객과 음악가를 통영으로 불러모으는 여정이 되었으면 했다.

사진 통영국제음악제·홍콩신포니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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