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기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5월 1일 12:00 오전

우아하고 아름다운 실내악 선물

세종 체임버 시리즈1
3월 13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세종문화회관이 클래식 전용홀인 체임버홀을 활성화하고 뛰어난 아티스트와의 교류와 협력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몽블랑과 함께 기획한 ‘세종 체임버 시리즈’. 첫 무대는 첼리스트 양성원이 함께한 실내악 연주였다. 연주 전 양성원은 렉처 무대를 통해 실내악의 매력과 아름다움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실제로 트리오 오원의 멤버인 그는 “실내악은 우리의 음악을 더욱 깊게 해준다. 앙상블 연주를 통해 성향이 전혀 다른 세 사람이 만나 같은 악보를 통해 보게 되는 음악의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며 상주 음악가로서 이번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

비발디의 두 대의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G단조, 오케스트라의 외투를 벗은 산뜻한 실내악 선율이 비발디 음악의 아름다운 시정을 따뜻하게 품으며 첫 무대의 시작을 알렸다. 다양한 색채가 귀를 즐겁게 하는 가운데 두 번째 곡은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1번, 서울시향 단원으로 구성된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화려하고 매혹적인 화성과 양성원의 담백한 첼로 선율이 따뜻한 봄날의 기쁨을 노래하듯 잔잔히 흘렀다. 이어지는 매혹적인 선율의 차이콥스키의 현악 6중주 ‘플로렌스의 추억’은 색다른 분위기를 전했다. 행복한 듯 서정적인 속삭임이 갑자기 불협화음의 주제로 바뀌었다 다시 피치카토의 반주 위에 우아한 바이올린 선율로 무대를 수놓았다. 봄밤, 실내악으로 펼쳐진 인생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어느새 눈을 감고 인생을 추억하던 시간. 청중의 마음이 따뜻하게 데워졌다.

양성원은 앙코르곡으로 드보르자크의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를 연주했다. “음악을 하면서 좋은 선생님을 많이 만났지만 어린 시절 제 귀에 들려주시던 어머니의 노래가 제게는 가장 훌륭한 음악 공부였습니다.”

영원히 살아갈 힘을 주는 어머니, 더없이 아름다운 계절에 한 편의 시가 음악으로 승화된 작품을 듣고 있으니 원곡의 가사가 스쳐 지났다. ‘늙으신 어머니 나에게 그 노래 가르쳐주실 때 어머니 눈에 눈물이 곱게 맺혔었네, 이제 내 어린 딸에게 그 노래 들려주노라니 내 그을린 두 뺨 위로 한없이 눈물 흘러내리네···.’ 국지연

최수열의 웃음

‘아르스 노바’ 시리즈1
4월 1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오랜만에 유쾌한 현대음악회를 만났다. 4월 첫날 열린 ‘아르스 노바’ 시리즈1 공연을 보는 내내 즐거웠던 건, 흥미로운 레퍼토리 덕분이기도 했지만 지휘자 최수열 덕분이기도 했다.

서울시향은 ‘아메리칸 매버릭스’라는 주제로 1910~1940년대 쓰인 미국의 급진적 음악가의 작품을 연주했다. 이날 연주한 곡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엘리엇 카터의 목관 5중주였다. 한국인에겐 다소 낯선 엘리엇 카터는 미국에서 태어나 찰스 아이브스를 사사했고, 프랑스에서 유학했다. 카터의 음악은 논리적 구조를 갖추면서도 독자적 음조직 형태, 자유로운 박자의 변환 등 독창성을 지녔지만, 당대 작곡계 주류 흐름과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카터는 음악적·사회적으로 고독한 길을 걸어야 했다. 이번에 연주한 목관 5중주 역시 다섯 대의 악기가 대위법적 흐름 안에서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특유의 음색을 표현하는 곡이다. 최수열은 군더더기 없이 명확한, 깔끔한 연주로 곡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보였다. 꾸밈없는 단정한 연주는 각기 다른 느낌의 텍스처가 만드는 독특한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이 곡의 앞뒤로 연주한 존 케이지의 작품과 찰스 아이브스의 작품에는 각기 다른 관찰자의 시선이 느껴져 재미있었다. 케이지의 ‘거실 음악’은 거실에서 들을 수 있는 우연한 소리를 음악으로 표현한 곡으로, 작곡가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서울시향 단원들의 자연스러운 연주는, 거실 한구석에서 가족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순수한 소년 케이지를 떠올리게 했다. 찰스 아이브스의 ‘보는 자’는 한 노인이 마을의 가게 앞에 앉아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지켜보는 모습을 표현한 곡이다.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곡이지만, 박자의 흐름이나 선율의 움직임에서 왠지 괴팍한 노인의 이미지가 그려졌다. 뒤이어 아이브스가 도로 위 수많은 소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곡한 ‘톤 로즈’ 1·3번 외 여러 곡을 연주했는데, 가게 앞에 있던 노인이 도로 위로 자리를 옮긴 듯 첫 곡의 잔상이 꽤 오래도록 남았다.

흥미는 테리 릴리의 ‘In C’까지 이어졌다. 이 곡의 악보는 단 한 장으로, 53개로 끊어진 오선보에 각기 다른 선율이 그려져 있다. 악보마다 도돌이표가 그려져 있지만 몇 번을 반복해야 하는지, 몇 분을 연주해야 하는지, 심지어 어떤 악기로 연주해야 하는지도 명기되어 있지 않다. 각 악보의 연주를 맡은 연주자들은 각자 주어진 시간의 척도를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

이번 무대에는 10여 명의 현악·관악·타악 주자들이 올랐다. 주자마다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연주하는 점이 독특했다. 중심음인 C음을 비브라폰, 피아노, 마림바가 이어받으며 신비로운 색채를 만들어냈다. 15분쯤 지나자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빠져들었다. 프레이즈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묘한 화음이나 선율이 만들어지며 쾌감을 선사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C음이 C음이 아닌 다른 음이 되고, 각 악기의 음색도 경계가 모호해졌다. 연주자들은 저마다 ‘할당량’을 소화한 후 한 명씩 무대를 빠져나갔고, 오르간을 연주하다 마림바 채를 넘겨받은 최수열은 홀로 남아 멍한 표정으로 C음을 한참 동안 반복했다. 결국 최수열은 웃음을 터뜨렸고, 이를 지켜보던 청중도 함께 큰 소리로 웃었다. 최수열의 웃음은 연주에 대한 장난스러운 태도가 아닌, 관객과 함께 음악적 유희를 성공적으로 즐긴 자가 짓는 기쁨의 표정이었다.

2011년부터 어시스트 지휘자로 ‘아르스 노바’ 시리즈와 함께한 최수열은 이번 공연에서 처음 포디엄에 올랐다. 최수열은 관객에게 각 작품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프로그램의 순서를 바꾸고, 새로운 방식의 연주를 시도하는 등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얼마 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작품이 관객의 마음에 닿는 데 절반의 책임은 작곡가에게, 나머지 절반의 책임은 지휘자와 연주자에게 있다”라고 말한 것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작품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앞으로도 그를 크게 웃게 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호경

러시아의 온도, 스산했던 서울의 봄

금호아시아나솔로이스츠 리사이틀
4월 2일
금호아트홀

한 나라를 알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활자 매체를 통해 나라의 구석구석을 탐독하거나, 영상 매체를 통해 생생한 현장성을 느끼기도 한다. 한 나라의 예술을 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인간의 관점과 사고방식은 자라온 문화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술가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한 예술가를, 더 나아가 한 나라의 향취를 맡는다.

지난해 금호아트홀은 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활동한 빈 악파의 음악을 소개하는 ‘비엔나 스쿨 시리즈’를 총 스무 번의 공연으로 선보였다. 올해는 총 열두 번의 ‘러시안 시리즈’를 준비했고, 대망의 첫 문을 금호아시아나솔로이스츠가 열었다.

금호아시아나솔로이스츠는 연주마다 구성 단원이 바뀐다. 이번에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다채로운 음악가 지원 프로그램과 함께 성장한 연주자들이 주축이었다. 피아노 손열음·김다솔, 바이올린 권혁주·김재영, 비올라 이한나, 첼로 이정란·김민지가 무대에 올랐다.

프로코피예프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C장조는 제1바이올린을 김재영이, 제2바이올린을 권혁주가 맡았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김재영이 자랑할 만한 무기는 특유의 날카롭고 서늘한 고음 처리다. 이에 권혁주의 넓은 음색이 더해져 소리를 단단하게 한다. 도입부에서 김재영의 바이올린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다. 바이올린의 고음을 아슬아슬하게, 하지만 거부감 없이 뽑아내는 능력이 대단하다. 문득 김재영이 바이올린과 참 잘 어울리는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권혁주의 제1바이올린을 휘감는 선율의 농도 조절은 실로 놀랍다.

이어서 아렌스키 피아노 3중주 1번을 김다솔·김재영·이정란이 선보였다. 김다솔은 실내악에서 탁월한 재주를 보인다. 김재영과 이정란이 당당하고 우아하게 음악을 만들 때, 고음부터 저음까지 건반을 자유로이 휘젓는 김다솔의 음악은 매우 자연스럽다. 그의 피아노는 두 현악기 선율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마지막으로 손열음·권혁주·김재영·이한나·김민지가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5중주 G단조를 선보였다. 1악장부터 이들이 만들어내는 색채감이 선득하다. 악장마다 서정적인 선율이 파고들었다. 휘날리는 눈보라, 마음마저 얼어버릴 것 같은 러시아의 쓸쓸함이다.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러시아 색을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다만 연주자 간 색깔이 정밀하게 일치하지 않았고, 호흡이 다소 어긋났으며, 3악장 스케르초부터 불분명했던 음정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1990년, 금호 현악 4중주단이 탄생했다. 10여 년이 흐른 뒤 잦은 구성원 교체가 문제로 제기됐고,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은 2002년에 해단을 발표했다. 당시만 해도 솔리스트로 대성하기를 원하는 연주자들이 실내악단 활동을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기량 있는 젊은 연주자들이 실내악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있다. 이제는 동일한 구성원으로 ‘롱런’하는 실내악단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장혜선

매화가 흩날린 자리에 남은 대답

서울예술단 ‘이른 봄 늦은 겨울’
3월 21~29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이른 봄 늦은 겨울. 제목이 좋았다.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단어 조합은 귀로 듣는 순간, 가슴으로 텍스트를 읊조리게 만들었다.

공연 기간 중 극장 로비에는 미디어아트 작가 이이남의 ‘달항아리 풍경’ ‘아사천의 매화 꽃이 피었네’를 전시하고 있었다. 관객이 극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막이 내리고 객석을 떠나기까지 경험하는 모든 과정을 하나의 작품이라 볼 때, 매화를 소재로 한 미디어아트는 공연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는 동시에 깊이 각인시키는 긍정적 요소였다.

시선을 무대로 돌려보자. 한밤의 적막한 갤러리에 걸린 그림에 빠져들며 시작된 극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해 총 13개 에피소드로 90여 분간 이어졌다. 매화가 등장하는 설화나 문학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배삼식 작가의 시적 언어는 대사와 노랫말, 때로는 랩으로 발화되었는데, 아쉽게도 리듬과 멜로디에서 발견한 작가의 언어는 텍스트 본연의 맛이 반감된 상태로 존재하는 듯했다.

연출가 임도완은 달항아리를 손에 든 여인들의 정중동을 보여주는가 하면 나부산에서 매화 향에 취해 길을 잃은 조사웅이나, 님 떠나보낸 도공의 이야기 등을 각기 다른 스타일로 드러냈다. 무엇보다 매화의 ‘고독’이나 ‘정적’을 바라는 이의 기대를 수용하면서도 매화를 향유하는 군상의 ‘인간’적 이야기를 다양한 ‘움직임’으로 푼 것이 흥미롭고 신선했다. 극과 극에 끌리는 관객의 심리를 파악하고, 동시에 양 극단을 모두 획득하려는 생산자의 계산(?)이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객석에서 만난 누군가는 이번 옴니버스 구성은 그동안 서울예술단이 시도해온 작품의 연장선에서 새로운 시도이며, 정체성의 재조명이라는 말을 건넸다. 그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번 작품만 두고 생각하면 아쉬운 지점도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에피소드마다 다른 감정을 강요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를테면, ‘난 이렇게 보일 거야!’ ‘이래도 웃지 않을 텐가?’ ‘정적의 순간을 만끽하시오’ ‘이게 바로 고독이라네’ ‘우린 이제 극을 마치려고 해’ 뭐 이런 식의 것들 말이다.

물론 노래·춤·연기의 각 요소가 번갈아가며 강조된 몇몇 에피소드는 공연 후에도 인상적으로 남았고, 단원들의 각기 다른 재능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극적 요소가 한데 버무려진 ‘총체적 감동을 경험했는가?’라는 자문을 해보면, 지금도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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