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현대 악기로 되살아난 고전의 환희
5월 12일 화요일 저녁 8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펼친 공연이었다. 안스네스는 청년 정신의 아티스트다. 독주·협연·가곡·반주·지휘 등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시도와 새로운 음악적 만남을 추구한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와 슈베르트 가곡을 아이슬러의 곡과 엮어 연주했을 때, 그리고 꽤 오래전 노르웨이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LG아트센터에서 공연했을 때의 신선함이 이번 공연에서도 느껴졌다.
‘베토벤 여행’이라는 제목에 어울리게 안스네스의 피아노와 지휘에 맞춰 베토벤 청년 시절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그의 마지막 협주곡인 5번 ‘황제’를 각각 1·2부에 나누어 연주했다. 섬세한 피아니시모에서 화끈하고 웅장한 포르티시모로 시작된 1악장에서 안스네스는 확실한 셈여림의 다이내믹으로 작품을 이끌어, 마치 피아노를 치면서 지휘하는 베토벤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악기는 현대 악기지만 요즘 음악계의 트렌드인 당대 연주 스타일을 도입, 짧게 끊어 연주하는 보잉으로 절충주의적 연주를 만들어냈다. 아름답고 간명하게 피아노를 연주한 안스네스는 음표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꼼꼼히 연주해나갔다. 클라리넷이 부드럽고 풍부하게 표현해내는 레가토는 피아노와의 훌륭한 대화를 이끌어갔다. 3악장에서는 역시 팀파니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저돌적인 올드 팀파니는 전투력 있게 음악을 이끌었고, 음악의 분위기를 활기차고 생동감 있게 만들었다.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에 의해 1997년에 말러 유겐트 오케스터로 탄생해 루체른을 본거지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주축 멤버이자 현대음악 연주에도 앞장서 왔다. 지휘자 대니얼 하딩과 함께 성장했고, 한국에서도 하딩과 함께 싱싱한 연주를 들려준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안스네스와도 예술적 파트너로서 다년간 활동해왔다. 이런 경험과 친분이 이번 공연에서도 발휘되어 정확한 터치와 리듬감, 치밀한 대화와 일사불란하고 박력 있는 연주로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특유의 밝고 긍정적이며 상쾌한 연주회를 만들어냈다.
2부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5번 ‘황제’. 안스네스의 솔로는 오케스트라와 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곡을 진행해나갔다. 특히 느린 2악장에서는 낭만주의적 해석과 다른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건조한 듯 빠른 템포로 현을 짧게 가져갔는데, 로맨틱한 해석이 그리웠다. 작품의 완성도와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은 1부의 1번 협주곡이 더 만족스러웠다. 기립 박수를 받은 안스네스와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앙코르로 역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의 3악장을 연주하여 더 듣고 싶어 하는 청중에게 달콤한 감로주를 선사했다.
마지막 앙코르는 안스네스 자신의 솔로로 베토벤의 바가텔 Op.33을 연주, 그야말로 베토벤의 작품만으로 이뤄진 진부하지 않고 신선한 독창적 연주회를 만끽하게 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1년간 상주 음악가로 활동한 음악적 경험이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를 더욱 음악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연주회였다.
사진 고양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