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김선욱 ‘6월의 베토벤’을 노래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6월 1일 12:00 오전

6월에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과 피아노 3중주 작품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김선욱에게 듣는 베토벤의 음악세계

 

피아니스트 백건우

‘베토벤 음악의 시작은 외로움’

음악가에게는 언제나 산 같은 존재인 베토벤. 백건우와 김선욱은 둘 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 피아니스트다. 그들에게 베토벤은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그들은 각자의 연륜과 패기로 베토벤의 ‘외로움’과 베토벤의 ‘위대함’을 피아노 안에 담아낸 이들이다. 6월, 백건우와 김선욱이 다시 베토벤을 만난다. 이번에는 피아노 솔로곡에서 한 걸음 나아가 협주곡과 피아노 3중주 무대다. 피아노 협주곡과 피아노 3중주로 만나는 베토벤만의 소리는 어떤 색채일까. ‘건반 위의 순례자’ 백건우, ‘건반 위의 젊은 혁명가’ 김선욱이 말하는 베토벤의 음악 세계, 그 진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먼저 6월 26일과 27일, 드레스덴 필하모닉과 펼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무대다. 그는 유독 베토벤의 음악과 만났을 때 청중의 기대치가 높은 연주자다. 그의 훌륭한 인품과 음악성이 음악의 우주를 담은 베토벤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과 4번, 베토벤 ‘피델리오 서곡’과 교향곡 7번을 함께 연주할 드레스덴 필하모닉과 백건우의 만남은 묘하게 어울리는 부분이 있다. 동독 관현악의 품격을 갖춘 드레스덴 필하모닉과 백건우의 순수한 피아니즘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지 그래서 더욱 기대를 모은다.

2007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셨습니다. 이번에는 협주곡 3번과 4번을 연주하는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와 협주곡은 음악적으로 어떤 다른 특징이 있을까요.

독주와 협연은 여러모로 차이가 있지요. 우선 협주는 서로 음악적인 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만의 음악 세계를 들려주는 솔로 연주와는 많이 다르고 필요한 요소도 많습니다. 지휘자와의 이해, 오케스트라와 밸런스의 조화가 중요하지요. 이번에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과 4번, 특히 3번부터는 베토벤 음악의 본격적인 특징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의 가장 근본적인 형태가 이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그동안 많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셨는데, 드레스덴 필하모닉과 함께 연주하는 소감이 궁금합니다.

지휘자 미하엘 잔덜링을 만난 적은 있지만, 함께 연주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와 형제인 토마스 잔덜링과는 함께 연주를 한 적이 있지요. 둘 다 훌륭한 음악인이고, 아버지 부르트 잔덜링 역시 워낙 좋은 음악가인 만큼 이번 무대에 대해 기대감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과 4번에서 베토벤이 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두 곡 모두 대곡이고, 많은 시간과 연습을 필요로 하는 작품입니다. 제게도 새롭게 도전이 되는 곡들이고요. 소나타와 협주곡은 형식이 다르지만 베토벤 자체의 성격은 변함없었기에 ‘음악’ 자체는 같은 흐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가 정말 위대한 음악가였다는 것은 그의 음악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시기로 넘어갈수록 말 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후기로 갈수록 피아노 소나타에서의 베토벤 소리는 교향악적이지요. 그의 음악은 워낙 스케일이 컸습니다. 분명 이전의 모차르트나 하이든과는 다른 소리였지요. 어쩌면 베토벤은 본인도 감당하기 힘든 음악성을 갖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토록 불우한 환경에서도 작곡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 음악이 그토록 중요했다는 거군요.

사람에게는 누구나 운명이 있지만, 베토벤은 그야말로 음악 없이는 살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이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베토벤의 음악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가 누구보다 ‘외로움’에서 음악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또 인간을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에 그의 음악은 따뜻하고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그의 음악은 강하고 패기 넘치기도 하지만, 때로는 너무나 연약하고 부드럽습니다. 대책 없는 다혈질 성격이었지만 수줍음도 많았어요. 그런 것들이 음악에 그대로 드러나 있지요. 작곡가인데 나중에 귀가 안 들렸을 때의 고통을 생각해보세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 있었는지, 참 신기하기만 합니다.

베토벤을 통해 어떤 영향을 받으셨나요.

문헌을 보면, 베토벤의 연주는 강하고 열정적이면서도 무척 부드러웠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극단적인 음악가였던 거지요. 베토벤 음악은 어린 시절부터 연주해 왔지만 할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고 커튼에 가려진 것을 다시 보는 것처럼 신비롭습니다. 물론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그래도 이제는 그와 함께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만은 맞는 것 같습니다. 베토벤 작품 자체에 더 가까워지길 바랄 뿐이지요.

베토벤의 음악에서는 보이지 않는 신에 대한 존재의 인식이 느껴집니다.

결국 예술이라는 것이 언제나 우리 안에서 시작하기에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출발하지요. 예술 자체가 인간이 하는 것이고, 인간 내면을 초월한 더 큰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음악도 신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베토벤의 음악에서도 그런 부분이 느껴지고요. 그래서 진정한 음악가의 생애는 종교적인 삶과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연주자로서 어느 때 가장 기쁨을 느끼고, 어느 때 가장 좌절하시나요.

음악을 해 보니 ‘음악’처럼 아름답고 완전한 것이 없다는 것을 날이 갈수록 더 깊이 느끼게 됩니다. 좋은 음악, 좋은 예술은 결국 내가 사라지고 음악 그 자체가 남을 때 가능하지요.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음악가들은 진정한 예술의 길에 잘못 들어선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음악을 했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매일매일 기쁨이 늘어가니까요. 그중에서도 가장 큰 기쁨을 느낄 때는 온전히 평화로운 자연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그때 내 참모습을 보게 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행복합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많이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특히 한국의 교육 현실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걱정이 앞섭니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가 너무 이기적인 것이 문제입니다. 정말 병이지요. 자기 것만 소중하고 옆에 있는 사람은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을 표현하는 음악이 발현되고 예술의 아름다움을 나눌 수 있을까요.

예전에 음악공부를 하던 시절은 그래도 낭만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우리 나이 때 사람들이 유학을 간 시절만 해도 정말 음악을 하기엔 모든 것이 부족했던 때지만 우리에겐 가장 중요한 음악에 대한 동경, ‘순수함’이 있었습니다. 자연을 즐길 줄 알았고, 친구들과 함께 웃을 줄 알았고,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았으니까요. 고등학교 때 점심시간이 되면 시간을 아끼고 아껴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서로 토론하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도 그때 같은 클래스에서 웃고 함께 음악을 들었지요. 낭만과 여유가 있었기에 행복하게 음악을 할 수 있었고, 추억이 있었기에 음악도 따뜻한 정서를 담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많이 사라진 것 같아 정말 안타깝습니다.

음악가로서가 아닌 보통의 한 사람으로서 추구하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지요.

이 시대는 경쟁이 너무 심합니다. 경쟁은 진정한 배움을 막습니다. 음악은, 삶은 누구와의 경쟁이 아닙니다. 특히 음악을 하려는 사람은 결국 ‘음악’ 그 자체가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이 있는데, 남의 인생을 살려고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이 없지요. 둘러보면 우리 주위에는 아름답고 좋은 것이 많은데, 남들이 하는 것만 따라 하려다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것, 의미있는 것들은 다 놓치는 거지요. 행복해야 할 시간을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나 이외에 타인의 삶에도 관심을 갖고 둘러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는 아내 때문에 꽃을 참 좋아하는데, 그러니 사람도 꽃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요즘 부쩍 많이 듭니다. 각자 태어날 때부터 내면에 심어진 씨앗을 마음껏 꽃피우고 아름답게 가꾸기 바랍니다.



백건우와 드레스덴 필하모닉이 들려줄 베토벤 음악

교향곡 제7번

1812년에 완성한 이 교향곡은 베토벤의 왕성했던 창작력이 실연의 상처와 건강의 악화로 잠시 주춤했던 시기를 지나 탄생한 작품이다. 어두운 그림자를 물리치는 생명력이 응축된 밝은 A장조의 이 작품에는 40대 초반의 베토벤이 얼마나 강인한 정신을 보유한 인간인지 드러난다.

예술에 대한 베토벤의 태도는 확고했다. “오직 나의 신성한 예술 안에서 나는 내 삶의 최상의 것을 천상의 뮤즈에게 희생하도록 하는 근거를 발견한다.” 그는 1812~1818년의 일기에서 예술을 위해 자신을 제물로 바쳐야만 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그에게 삶과 예술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위대한 작품의 작곡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네 개의 악장 모두 리듬이 지배하는 것이 특징인데, 마음이 흐려져 갈팡질팡하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를 지난 베토벤이 추진력 있는 리듬으로 모든 장애물을 격파해나가는 듯하다. 위풍당당한 서주로 시작하는 1악장은 유쾌한 춤곡으로 이어진다. 한 걸음씩 장엄하게 진행하는 2악장은 마음 깊이 서서히 파고드는 호소력을 지니며, 변화무쌍한 스케르초 3악장은 약동하는 기운으로 들썩인다. 거침없이 휘몰아치는 마지막 4악장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박진감을 선사한다.

‘영웅’의 호기, ‘운명’의 투쟁, ‘전원’의 여유를 지나 베토벤은 이 교향곡에서 춤곡으로 유희한다. 바그너는 리스트가 연주하는 이 작품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음악에 깊이 몰입하는 순간, 강렬한 행복감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이것은 생의 찬미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진부한 말이 참신한 음악적 언어로 재탄생하는 순간을 기대해보자.

글 서주원(음악 칼럼니스트)

 

피아노 협주곡 3·4번

피아니스트들에게 가장 친근한 작곡가를 뽑으라면 베토벤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을 것이다. 베토벤의 특별한 정신, 음악에 대한 분명하고 순수한 정신 때문에 피아니스트들은 그에게 열광한다.

이런 베토벤의 정신이 가장 설득력 있게 진술된 작품이 피아노 협주곡 3번과 4번이라고 할 수 있다. 두 협주곡은 베토벤의 음악적 철학에 기초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성향을 띤다. 협주곡 3번을 베토벤의 독창성의 시발점이라고 한다면, 그보다 5년 후에 작곡한 협주곡 4번은 작곡가의 원숙기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30세의 베토벤이 음악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상상력을 모두 쏟아부은 작품이 바로 피아노 협주곡 3번이다.

C단조의 조성으로 만든 이 작품은 교향곡 5번 ‘운명’과 바이올린 소나타 등의 작품들과 같은 조성을 가지고 있다. 이 시기에 많은 작품이 C단조의 조성을 사용한 것은 우연한 일은 아니다. 청각을 잃어가는 고통과 고뇌의 시기에 베토벤의 내면을 담아내기 가장 적합한 비극적 감성을 지닌 조성인 동시에 존엄을 지켜주기에 충분한 위엄에 찬 조성이 C단조이기 때문이다.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C단조 안에서 베토벤은 자신의 음악적 언어를 확립하면서 독일 음악의 전통을 계승한다.

베토벤 악풍의 또 다른 위대한 변화를 대변하는 작품은 피아노 협주곡 4번이다.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의 협주곡인 피아노 협주곡 3번에 비해 이 작품은 형식의 혁신을 시도한 작품으로 오케스트라의 도입부 없이 피아노 솔로로 오프닝을 연다. 악기를 불문하고 베토벤의 협주곡 중 가장 서정적이고 자유로운 흐름을 띠는 이 작품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베토벤의 삶을 향한 희망의 노래고, 육체의 고통을 넘어설 수 있는 자유의 갈망이라고 할 수 있다. 고난 속에서 부른 자유와 희망의 노래, 오직 베토벤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언어 앞에서 겸허하고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피아니스트에게 베토벤은 언제나 정답이다.

글 최현숙(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 김선욱

 ‘나의 지평을 넓혀주는 베토벤’

요즘은 덜하지만 과거에는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내한하는 경우가 그리 흔치 않았고, 더구나 그들의 연주를 함께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더욱 부족했다. 그런 면에서 1980년대와 1990년대, 액스-김-마 트리오로 알려진 피아니스트 이매뉴얼 액스와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 첼리스트 요요 마의 음악적 조합은 신선한 것이었다. 2015년 6월, 그때의 그들처럼 절정의 기교를 내뿜는 한중일 연주자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연주 소식이 들려온다.

한국의 피아니스트 김선욱, 일본의 바이올리니스트 카미오 마유코, 중국의 첼리스트 지안 왕. 6월 5일과 6일 양일간에 걸쳐 이들이 한·중·일 컬래버레이션 무대를 갖는다. 들려줄 레퍼토리는 베토벤 3중주 5번 ‘유령’, 베토벤 피아노 3중주 7번 ‘대공’, 차이콥스키 피아노 3중주 ‘어느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 브람스 피아노 3중주 1번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카미오 마유코는 2007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로 탁월한 기교를 자랑하며, 첼리스트 지안 왕은 중국을 대표하는 연주자로 특히 한국 연주자들과 친분이 남다른 연주자다. 그야말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연주자들의 만남인 만큼 이들이 전할 앙상블 음악에 팬들의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특히 2009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과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를 마친 김선욱은 이제 베토벤 피아노 3중주로 청중을 만나게 되었다. 이번 무대를 앞두고 그는 다시 설렘에 빠졌다. 그에게 베토벤은 언제나 새로운 음악적 지평을 넓혀주었던 위대한 존재였기에.

처음 트리오 제의를 받은 것이 2012년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 그야말로 이번 연주회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연주자들이 만나는 무대인데요.

각각 다른 세계를 가진 연주자들이 서로 의견을 공유하고 음악으로 대화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궁극적인 실내악의 목적이자 가장 큰 매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모든 것을 이끌어나가는 독주회보다 어려운 작업일 수도 있어요. 세 가지 다른 색깔을 섞었을 때 어떤 새로운 색이 나올지, 아직 리허설을 하지 않아 모르겠지만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베토벤을 선곡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피아노 3중주 작품들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가요.

이번 투어 프로그램인 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와 차이콥스키 피아노 3중주는 유명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해도 정말 명곡 중 명곡입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 5번은 2악장의 음산한 분위기 때문에 ‘유령’이라는 표제가 붙었지만(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은 아니니까요) 저는 이 곡에 젊은 베토벤의 자신감, 패기가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해요. 이 곡을 쓴 시기에 교향곡 5번, 교향곡 6번 그리고 첼로 소나타 3번, 오페라 ‘피델리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등 왕성한 창작력을 드러냈지요. 다이내믹, 화성, 설득력 있는 드라마 그리고 그 속의 유머까지 베토벤 그 자체예요. 차이콥스키 피아노 3중주는 스케일이 어마어마합니다. 각 악기가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치의 표현을 요구하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와 피아노 3중주 작품에서 피아노의 역할은 어떻게 다른가요.

베토벤에게 악기는 그의 음악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 작곡 형식이 달라져도 그의 음악 세계는 혁신적이고 광활하며 지금도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베토벤 자신이 다양한 악기를 섭렵했고, 각 악기의 특성을 꿰고 있었기에 훌륭한 실내악곡을 많이 작곡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연주할 베토벤 피아노 3중주 5번의 2악장 같은 경우 악기는 피아노지만 현악기의 트레몰로를 표현해야 합니다. 오케스트라가 작게 연주하는 트레몰로 같은 느낌으로요. 그 부분은 피아노라는 메커니즘의 한계를 넘어서는 듯합니다.

2009년에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을, 2012년부터 2013년까지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주했습니다. 지금, 선욱 씨에게 베토벤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사실 2014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를 마치고는 베토벤을 피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거의 10년간 베토벤에 미쳐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뭐든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하고 싶어요. 피아노를 시작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땐 사실 베토벤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베토벤의 악보를 보면 다른 작곡가들보다 음표가 많아 당황스러웠거든요. 대신 바흐와 슈베르트, 모차르트를 더 좋아했지요. 하지만 학창 시절 콩쿠르와 실기 시험에 베토벤이 끊임없이 등장했기 때문에 마주할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시작된 베토벤과의 만남이 지금까지 제 음악 인생에 가장 중요한 레퍼토리가 된 것 같아요.

베토벤을 연주하기 전, 굉장히 깊고 넓게 준비한다고 들었습니다.

모든 작곡가가 그렇지만, 베토벤 음악 또한 하나의 곡을 해석하기 위해 여러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지요. 독일 본에 직접 가서 자필 악보와 베토벤이 쳤던 피아노로 연주해보기도 하고 곡마다 베토벤의 감정 변화를 유추해 연주에 대입하기도 했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제 해석과 연주에 스스로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것이죠. 특히 베토벤은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체크해야 합니다. 페달의 양, 하나의 한 음, 화음마다 건반을 누르는 무게, 트릴, 템포, 악장 사이의 시간 조절뿐 아니라 자필 악보, 초판본, 현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악보를 비교하는 작업 등 무대에 오르기 전 체크해야 할 부분이 상상을 초월하죠. 무대 위에 올라 그 실연의 희열 때문에 자연스럽게 음악이 흘러나오기를 기대할 수는 없죠. 그래서 그의 작품은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 같아요.

앙상블에서 피아노의 역할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앙상블 연주를 하다 보면 아무래도 피아노는 다양한 성부, 화성을 연주할 수 있기 때문에 단선율을 연주하는 현악기는 피아노에 의지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잘 서포트하면서 조화롭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베토벤 피아노 3중주 7번 ‘대공’, 차이콥스키 피아노 3중주, 브람스 피아노 3중주 1번 등을 보면 피아노가 나머지 악기보다 먼저 나지막이 이야기를 시작하죠. 그 이야기를 할 때 목소리의 질과 톤이 중요합니다. 그게 바이올린과 첼로의 소리에 영향을 미치고 곡 전체의 흥망을 좌우할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실내악을 하면서 얻는 기쁨은 무엇인가요.

요즘 들어 실내악이 많이 보편화되고 여러 실내악 페스티벌도 열리지만, 우리나라의 음악 교육은 사실 솔로이스트를 집중적으로 양성하는 데 목표와 초점을 두고 실내악은 약간 등한시하지 않았나 싶어요. 특히 피아니스트들은 현악 연주자들보다는 사람들과 같이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현저히 적기 때문에 실내악을 많이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 사람의 대화에서도 듣는 것이 중요하듯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상대방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어야 내 소리도 더 잘 들을 수 있어요.

피아노는 혼자 하는 악기지만 실내악을 하면서 많은 음악 친구를 만날 수 있을 텐데, 음악을 더 깊고 넓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연주자로서 음악을 대하고 공부하는 자세와 노력은 단기간에 이룰 수 없어요. 많은 경험과 연습이 필요하고, 때로는 음악을 통해 기쁨과 좌절도 느껴야만 하지요. 나무의 나이테가 천천히 생기듯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그렇게 하다 보면 제 음악의 나이테도 점점 깊어지겠지요.

김선욱·지안 왕·카미오 마유코가 들려줄 베토벤 음악

피아노 3중주 5번 ‘유령’, 피아노 3중주 7번 ‘대공’

‘영웅’ ‘운명’ ‘전원’ ‘합창’ ‘황제’ ‘월광’ ‘비창’ ‘열정’. 베토벤의 작품에서 부제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피아노 3중주 ‘유령’과 ‘대공’도 마찬가지다.

흔히 ‘유령 3중주’라 불리는 베토벤 피아노 3중주 5번 ‘유령’은 교향곡 5번 ‘운명’과 교향곡 6번 ‘전원’ 사이 1808년에 작곡했으며, 이듬해에 출판했다. 헌정자는 안나 마리에 에르되디 백작부인으로, 수입이 없어 힘든 시기를 보내는 베토벤에게 빈의 하일리겐슈타트에 있는 그녀의 집에 묵도록 배려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유령’이라는 제목은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뒤 1842년에 그의 제자였던 카를 체르니가 2악장에 대해 ‘햄릿’에 등장하는 유령에 빗대 “지하 세계에서 온 유령처럼 무시무시한 악몽과 같다”라고 말한 뒤부터 붙여졌다. 베토벤은 우아한 고전미와 강렬한 에너지를 간직한 1악장과 3악장 사이에 왜 이렇게 불편한 악장을 넣은 것일까. 베토벤이 당시 오페라로 구상하던 오페라 ‘맥베스’의 스케치로부터 왔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3중주인 7번 ‘대공’은 ‘교향곡 7번’이 착수되기 직전인 1811년에 완성했다. 이 곡은 오스트리아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해 일명 ‘대공 3중주’라 불린다. 1814년에 이루어진 초연은 베토벤이 피아노를 엉뚱하게 치는 바람에 청각 장애를 공개하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초연에 참석한 이그나츠 모셸레스는 “얼마나 많은 작품에 ‘새롭다’는 말이 잘못 붙여지고 있는가! 베토벤의 경우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 작품은 특히 더욱 그러하며, 독창성으로 가득하다”라고 말하며 피아노 3중주 7번 ‘대공’으로부터 받은 감동을 표현했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김선욱, 지안 왕, 카미오 마유코 피아노 3중주 리사이틀

6월 5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미하엘 잔덜링/드레스덴 필하모닉 내한 공연(협연 백건우)

6월 26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6월 27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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