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그 남자의 반전 매력
6월 7일 첫 내한 공연을 갖는 카우프만.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두 여성, 소프라노 김수연과 오페라평론가 이용숙의 시각
‘객석’은 지난 3월,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Jonas Kaufmann)과 런던 현지에서 진행한 단독 인터뷰 기사를 게재한 후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공연장에서, 그리고 SNS를 통해 많은 피드백을 받으며 카우프만의 인기를 새삼 실감했다. 무엇이 사람들을 이토록 열광하게 하는 걸까.
출중한 외모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짙은 눈썹과 우수에 젖은 눈, 날씬한 몸매는 카우프만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데 큰 몫을 했다. 연예계 비즈니스 방식의 많은 영향을 받는 오페라계에서 카우프만의 등장은 실로 대단한 ‘사건’이었다. ‘가디언’지는 ‘나 자신의 섹시한 이미지에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는 제목으로 카우프만의 인터뷰를 싣기도 했다.
카우프만은 데뷔 당시 테너가 아닌 바리톤으로 오해를 받을 만큼 깊고 어두운 음색을 지녔다. 이는 남성적 매력과 함께 풍부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장점이 되었고, 동시에 카우프만만의 존재감을 갖게 했다. 특히 바그너 레퍼토리를 부를 때 거친 숨을 몰아쉬며 흐느끼듯 노래하는 모습은 ‘테스토스테론 과잉’이라는 평론가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나름대로 굴곡진 삶을 산 카우프만. 1969년 뮌헨에서 태어난 그는 바그너와 말러의 음악을 사랑했던 부모님 덕에 클래식 음악을 가까이할 수 있었다. 안정적 직업을 갖기 위해 수학 학도의 길을 걸었지만, 결국은 성악으로 전공을 바꿨다. 단역 생활을 하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운전기사로 일했던 그의 과거는 유명하다. 졸업 후에는 독일 자르브뤼켄 주립극장의 전속 가수로 2년간 일했지만 줄곧 발성에 어려움을 겪었고, 성악 트레이너 마이클 로즈를 만나 비로소 자신에게 맞는 목소리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1999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데뷔로 자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2001년 취리히 오페라 ‘피델리오’로 평단의 인정을 받았다. 2006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데뷔작 ‘라 트라비아타’는 세계 스타 테너의 탄생을 알렸다.
폭넓은 레퍼토리는 카우프만이 부지런히 욕심을 내고 있다는 증거다. ‘영웅 테너’로서 바그너 스페셜리스트로 인정받는 동시에 ‘카르멘’ ‘돈 카를로’ ‘토스카’ ‘마농 레스코’ 등의 작품을 흥행시켰다. 또 카우프만은 연출가에게 자신의 의견을 가장 많이 제안하는 성악가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 해석 능력이 뛰어나 연극적 아이디어가 많은 것. 카우프만이 작품마다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여기까지는 평단에 알려진 카우프만의 스토리. 그를 더 깊이 알기 위해 두 명의 여성에게 우리가 모르는 카우프만의 모습에 대해 물었다. 지난해 7월, 체코의 체스키크룸로프 페스티벌 개막 공연에서 카우프만과 오페라 갈라 공연을 가진 소프라노 김수연과 오페라평론가 이용숙이 말하는 카우프만의 ‘진짜 매력’을 지면에 옮긴다.
소프라노 김수연
작년 7월 18일, 요헨 리더/프라하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라 트라비아타’의 ‘축배의 노래’를 카우프만과 함께 불렀습니다. 총 세 번의 리허설을 가졌고, 1시간쯤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40대 중반인 카우프만은 아직 20대인 제게 음악적으로 많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성악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일은 건강한 소리를 오랫동안 지키는 것’이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레퍼토리 선정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죠.
뉴욕에서 공부할 때 카우프만이 출연하는 오페라를 보기 위해 극장을 자주 찾았거든요. 매번 화려한 무대 위의 모습만 봐서 그런지 소탈한 성격이 새롭게 느껴졌어요. 옷도 아무렇게나 입고 다니시더라고요.(웃음)
작품이 아닌 콘서트 무대임에도 극에 완전히 몰입하는 그의 모습에 놀랐어요. 상대 배역도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했죠. 덕분에 저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알프레도를 바라볼 수 있었어요. 따뜻한 미소와 스킨십을 주고받으니 설죠. 가까이에서 들은 카우프만의 음색은 다크하지만 풍성한, 아름다운 소리였습니다. 카우프만과의 만남은 제게 소중한 기억이에요. 이번 내한 공연에서 한국 관객도 값진 추억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오페라평론가 이용숙
1960~1970년대 활발히 활동했던 파바로티는 고운 목소리를 타고 났고, 스스로도 아름다운 벨칸토로 유명한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네모리노 역을 가장 좋아했다고 해요. 많은 인기를 얻으며 레퍼토리를 확장했고, 리릭·스핀토·드라마틱 테너 배역을 모두 훌륭히 소화했죠. 카우프만도 비슷한 경우에요. 드라마틱 테너의 음색을 가지고 있지만 강하고 무거운 표현과 서정적인 표현 모두를 다채롭게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카우프만의 이러한 장점은 탁월한 연기력에서 비롯됩니다. 때로 노래와 연기를 구분해서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페라 가수에게 노래와 연기는 하나에요. 텍스트와 음악의 내용, 정서, 심층적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지닌다면, 진정한 연기를 선보일 수 있는 거죠. 그 점에서 카우프만은 성공적인 가수입니다.
지난 10년간 오페라 강의를 해오면서 많은 영상을 수업 자료로 활용하는 데요. 카우프만의 역량에 매번 놀란답니다. 일단 카우프만이 등장하면 관객의 몰입도가 대단하거든요.(웃음) 오페라는 무대예술이기에 배우의 외모도 무시할 수 없어요. 오페라의 테너 배역들은 대부분 젊고 기품과 매력을 갖춘 인물로 설정되어 있는데, 실제로 가수가 그 배역의 이미지를 지녔다면 당연히 더 큰 공감을 얻을 수 있겠죠. 메트 오페라 바그너 ‘발퀴레’ HD 영상이 영화관에서 상영됐을 때도 카우프만이 지크문트로 출연하자 많은 여성 오페라 관객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했습니다. 특별히 긴 상영시간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죠. 카우프만은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그랬듯 오페라 산업 유지와 발전에 큰 공을 세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만한 가수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많은 레퍼토리들이 이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했겠지요.
다만 카우프만은 공연마다 기량이나 완성도에 편차가 있어요. ‘로엔그린’ ‘발퀴레’ ‘파르지팔’ 등 바그너 레퍼토리나 ‘카르멘’ ‘베르테르’ 등의 프랑스 작품은 훌륭하게 소화하지만, 베르디 레퍼토리는 때때로 평이 갈리죠. 리트를 부를 때도 과한 해석이라는 평을 종종 받고요. 자신만의 색을 지키면서도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마도 오랫동안 사랑받을 거예요. 카우프만이 30대에 출연했던 오페라 한 편을 추천할게요. 2002년 취리히 오페라의 슈베르트 ‘피에라브라스’ 실황 영상인데요. 카우프만이 상당히 경망스럽게 등장해요! 그의 또 다른 면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사진 소니 뮤직·SM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