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내홍 딛고 선보인 의욕적 호연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인파로 북적댔다. 이 시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히는 길 샤함의 협연과 말러 교향곡 5번이라는 의욕적인 레퍼토리는 음악 애호가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최근에 기존 KBS교향악단 단원 40여 명이 재단법인 KBS교향악단으로 소속 이전해 2년 7개월여를 끌어온 노사 갈등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으니, 새롭게 전열을 가다듬은 KBS교향악단의 연주가 궁금한 이도 많았으리라.
첫 곡인 멘델스존 ‘핑갈의 동굴 서곡’을 연주할 때만 해도 KBS교향악단의 합주력은 아직 정비가 덜된 듯했다. 현악군의 수는 말러 교향곡을 연주할 때와 같은 어마어마한 규모지만 관악군은 악보에 있는 그대로 2관 편성이었으니, 관악기군의 소리를 집어삼킬 듯한 스트링 사운드가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또 악보에 나타난 세부의 표정이 살아나지 않은 밋밋한 연주는 청중에게 깊은 감동을 전하기에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다음 곡으로 연주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오케스트라의 날렵한 연주, 카리스마와 인간미를 두루 갖춘 길 샤함의 바이올린 연주가 멋진 하모니를 이루었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은 바이올린 협주곡의 대명사라 해도 좋을 만큼 널리 알려진 명곡이지만, 바이올리니스트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기 어려운 곡이다. 바이올린 독주는 음역의 특성상 바이올린의 한 현에서 계속 위치를 바꿔가며 연주하는 부분이 많기에 정확한 인토네이션으로 템포에 맞게 선율을 연주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쉴 틈 없이 활의 주법을 변화시켜야 하므로 생동감 넘치는 템포감각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길 샤함의 연주를 듣는 동안 이 곡의 기술적 어려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통상적 방식과 다른, 매우 독창적인 운궁법과 운지법으로 참신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길 샤함의 연주는 시종일관 경탄을 자아냈다. 그는 음표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정렬해내며 쓸데없는 템포 루바토나 감상적 제스처를 모두 생략한 채, 오직 선율의 단순한 아름다움을 담백하면서 견고한 소리로 표현해냈다. 충실하면서도 명료한 그의 바이올린 톤 덕분에 음표 하나하나가 귀에 쏙쏙 들어왔고, 선율을 분절해내는 독창적 프레이징에서는 멘델스존 음악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KBS교향악단의 연주는 3악장에선 다소 흔들렸지만, 1악장에서부터 길 샤함의 빠른 템포를 바짝 따라가는 의욕적인 모습으로 협연자와 교감하는 인상을 주었다.
말러 교향곡 5번은 트럼펫 수석의 활약 덕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악장 도입부의 트럼펫 연주는 청중이 곧바로 음악에 몰입할 수 있을 만큼 압도적이었고, 클라리넷과 트롬본 등 목·금관 수석들의 활약도 주목할 만했다. 교향곡 5번이 말러 교향곡 가운데서도 오케스트라 주자에게 매우 뛰어난 기량을 요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2악장과 3악장의 호연은 높이 평가할 만했다. 5악장에서 여러 악기의 다성적인 텍스처가 잘 살아나지 못했고, 템포가 다소 느슨해진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으나, 이번 공연은 앞으로 KBS교향악단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했다.
사진 KBS교향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