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먼스 페스티벌 여는 더하우스콘서트 박창수
‘증명’에 관한 짧은 리포트
더하우스콘서트의 행보를 7월 한 달 내내 주목해야 하는 이유
더하우스콘서트 사무실 벽에 걸린 대한민국 전도를 본 적이 있다. 알록달록한 포스트잇을 겹겹이 붙여놓은지라, ‘지도’라는 설명이 없으면 게시판이 아닐까 생각했을 거다. 매니저들이 직접 발로 뛰며 완성한 이 지도는 정복이 아닌, 디아스포라의 기록이다. 문화 예술이 얼마나 더 넓고 깊게 퍼질 수 있는지… 먹구름 너머를 내다보고, 발 딛고 있는 현실의 깊이를 가늠해낸 흔적이다.
또 ‘증명의 역사’다. 거대 자본 혹은 연주자가 직접 돈을 지불하지 않고도 공연을 올릴 수 있고, 예술가와 관객 모두 만족하는 무대가 열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증명’ 말이다.
더하우스콘서트, 치열한 증명의 역사
2002년 7월 12일, 연희동 가정집에서 바닥에 앉아 듣는 음악회로 시작한 박창수의 더하우스콘서트는 지난 6월 15일까지 444회의 공연을 올렸다. 서른아홉에 시작한 더하우스콘서트가 열세 번째 여름과 마주하는 사이 박창수는 이제 쉰둘이 됐다. 해가 바뀌는 동안 그는 아무리 뛰어난 기량을 갖춘 연주자도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설 수 있는 무대가 적고, 과거에 비해 턱없이 좁아진 기회의 폭이 연주자의 실력에 끼치는 영향을 목격하고, 체감했다. 연주자에게 필요한, 끝내 그들이 발 딛고 서야 할 곳은 관객 앞이자 무대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예술가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박창수가 연간 5000회의 공연을 올리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 우려와 의문이 그 앞에 쏟아졌다. 그 말을 증명하기 위한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의 생각 또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더하우스콘서트가 10주년을 맞이한 2012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증명의 움직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과정엔 숫자가 빠질 수 없다. 먼저 더하우스콘서트가 조사한 전국의 객석 500개 이상 극장의 연간 공연 횟수는 약 10회. 공간에 비해 공연 수는 턱없이 부족한 터였다.
연주자들은 무대가 필요하고, 극장은 공연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내린 결론은 각각의 공연장 무대에 연주자들이 서는 횟수를 늘림으로써 각각의 목적과 필요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증명은 2012년 일주일간 전국 공연장에서 100개의 공연을 올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일주일에 100개씩, 52주(1년) 동안 5000개 공연이라는 계산. 맞는 셈이지만, 가능보다 불가능으로 마음이 기울면 선뜻 동조하기 어려운 수치다.
그래서, 또 그렇게 ‘무(모)한 도전’이 시작됐다.
지난 3년간 더하우스콘서트의 손길이 닿은 공연은 2012년 130회, 2013년 259회, 2014년 515회로 매년 두 배 정도씩 늘어났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물음표’를 던졌고, 그는 ‘느낌표’로 답했다. 크고 작은 변화도 생겼다. 처음에 지방 공연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연주자들이 이제는 먼저 가겠다며 자원하기 시작한 것. 크고 작음을 떠나 공연과 무대가 주는 감동과 소중함을 몸소 겪은 예술가들은 꾸준히, 조용히 늘어나는 중이다.
2014년 말, 더하우스콘서트가 5년간 머물던 도곡동을 떠나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새로운 시즌을 시작한 것은 가장 눈에 띄는 변화다. 대한민국 공연 예술의 거리로 손꼽히지만, 이제는 상업 문화에 잠식된, 길거리 버스킹 외에는 음악 공연을 찾아보기 힘든 대학로에서 총 두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에는 예술가의 집 3층 다목적홀 마룻바닥에서 하우스콘서트가, 수요일에는 1층 예술나무카페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의 공동 기획으로 이뤄지는 하우스토크가 그것이다.
대학로 입성(?) 첫 시즌인 올해, 더하우스콘서트는 겨울 내내 추위만큼 혹독한(!) 값을 치렀다. 대학로 예술가의 집을 하우스콘서트 공연장으로 사용하면서 지난 몇 년간 이어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금이 중단된 것. 설상가상 여러 해 진행했던 다른 공공 지원 기금 사업도 줄줄이 떨어졌다.
“잘나가는 단체라고 여겨서인지, 지금까지 했으면 이젠 골고루 나눠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당시 상황을 전하는 박창수의 말끝에 그 겨울의 씁쓸함이 맴돌았다.
지난해 문화융성위원회가 신설한 ‘문화가 있는 날’ 운영 사업체로 연간 250회의 공연을 내놓았지만 이 사업이 올해 ‘작은 음악회’로 명칭이 변경됐고, 전체 공연을 더하우스콘서트와 그 외 한 개 업체가 나눠 진행하게 됐다.
올해 총 공연 수는 320개로 한 업체당 160개씩 맡았다. 지난해에 비해 총 공연 수가 70개가량 늘었지만, 관객 입장에서 박수 칠 일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창작 생태계에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고 그에 대한 필요충분조건의 기간을 1년으로 단정 짓는다면 앞으로 그 누가 가지 않는 길을 걸어가려 하겠는가.
올해 더하우스콘서트가 공연을 위해 확보한 총예산은 지난해 대비 3억 원이 줄어든 6억 원이다. 잘 알려져 있듯, 박창수는 더하우스콘서트를 운영하며 지난 10여 년간 초창기에는 쭉 적자였고 수익이 날 것 같은 해에는 무료 공연을 열어 돈을 다 써버렸다. 지난해에도 같은 방법으로 1000만 원 적자를 봤다. 사람들의 오해를 살 법한 “이윤 추구를 위해 공연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그의 소신은 이 적자로써 그 진정성을 증명하는 셈이다. 더불어 한 개의 공연이라도 더 만들겠다는 마음, 돈이나 경제 논리에 예술이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언행일치’로 증명하고 있다.
“공연 하나를 올리는 데 몇백만 원이 드는지 따지기에 앞서 연주자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얻는 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 순간적인 효과와 돈에 맞춰 움직이고 있어요. 각기 다른 가치가 경제적 기준 아래 환산되고, 판단되죠. 다양한 가치를 판단하기 위한 각각의 기준은 개인의 의식 수준이 높아졌을 때 가능합니다. 계속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기초 문화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유죠. 다량, 확산의 대중화보다 관객 스스로 공연과 예술가를 판단하고 선택하는 힘을 갖출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이라는 거대한 우주 속에 내밀하게 자리한 가치를 발견하는 안목, 그 가치를 발굴해 세상과 공유하고 자생력을 갖출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하는 것. 예술가와 예술 관계자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필요하다 여기지만, 동시에 지극히 비현실적인 이야기인 걸까.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문화 예술에 대한 민간 지원이 점차 늘고 있지만 그 범위가 대중적이거나, 소위 유명세를 타는 부분에 한정되어 있는 것을 볼 때 과연 이 지원이 문화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이해에서 비롯된 것인지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더하우스콘서트는 올봄, 처음으로 민간 지원을 받았다. 물론 지난 13년간 스폰서를 만날 기회가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일 터. 그 오랜 시간 동안 ‘스폰서십’을 거부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스폰서십에 따른 복잡다단한 조건, 엇갈리는 우선순위는 그에게 ‘예스’보다 ‘노’를 외치게 했다.
누군가는 그가 뻣뻣한 사람이라 했다. 허리를 쉽게 굽히지 않는 건, 사실 그도 인정하는 바다. 이는 예술가의 자존심 혹은 개인의 고지식함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박창수의 정체성이 ‘기획자’가 아닌 ‘예술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SBS 문화재단이 더하우스콘서트 앞에 내놓은 후원금 5000만 원은 숫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지키고 키워온 방향에 대한 지지와 응원, 이보다 확실하고 선명한 표현방식과 실천이 또 있을까.
그 여름, 뜨거운 디아스포라의 기록
2012년 일주일간, 전국 21개 도시, 100개 공연, 예술가 158명
2013년 하루 동시, 전국 38개 도시, 65개 공연, 예술가 294명
2014년 하루 동시, 한·중·일 56개 도시, 94개 공연, 예술가 400여 명
매년 7월, 그들이 써 내려간 기록이다. 더하우스콘서트는 올해도 새로운 기록을 갱신한다. ‘언제나 문화가 있는 삶을 위한 한 달간의 축제’를 표방하며, 7월 한 달 내내 31일간 매일 27개국 155개 도시에서 1500여 명의 예술가와 432개의 공연을 올린다. 박창수와 함께 더하우스콘서트를 운영하는 세 명의 매니저(강선애·한진희·허정은)까지 총 네 사람이 말 그대로 일당백 공연을 기획한 셈이다.
각각의 무대에는 정경화(바이올린)·황병기(가야금)·강태환(색소폰) 같은 거장부터 신예에 이르기까지, 연령과 장르를 초월한 다양한 예술가가 동참한다. 재즈 아티스트 프레드 허시와 케니 배런(피아노) 같은 재즈 거장도 눈에 띈다. 공연이 열리는 장소도 더욱 업그레이드(?)됐다. 기존 국내에서 공연을 가진 전국 문예회관과 갤러리, 카페, 가정집, 초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 캠퍼스, 천문대, 공원, 그리고 해외에서는 수도원과 성당, 재즈 클럽까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곳은 곧 공연장이 된다. 바로 그곳에서 피어난 생생한 예술은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좁히고, 이념과 문화의 차이를 허물며, 예술의 본질 자체를 경험하는 시간을 만들어줄 것이다. 디아스포라의 기록, 증명의 역사는 계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본다. 언젠가는, 이런저런 증명 없이도 이해하고 공유하며 이 모든 일을 실행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사진 심규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