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새들러스 웰스에서 열린 실비 기옘 은퇴 공연

‘전설’이 작별하는 방식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7월 1일 12:00 오전

지난해 은퇴 소식을 알리며 해외 투어에 오른 실비 기옘의 은퇴 공연 무대는 또 다른 여운을 남겼다


▲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마츠 에크의 ‘안녕(Bye)’ ©Leslie Spinks

2005년 12월 오사카 페스티벌홀에서 실비 기옘이 공연한 모리스 베자르의 ‘볼레로’를 보던 무용평론가 장인주는 전성기에 비해 부푼 배와 함께 플리에를 밟는 동안 자신의 말총머리를 여러 차례 반대편으로 넘기는 그녀의 노련함에 웃음 지었다. ‘볼레로’를 추면서 머리를 넘기는 건 피아니스트 김주영이 말처럼, 데니스 마추예프가 신문을 넘기며 피아노를 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데뷔 이후 언제나 전설로 회자됐고, 공연마다 성황을 이룬 실비 기옘의 발레 무용수 인생이 종착역을 향하고 있다. 기옘의 은퇴 공연 ‘성장하는 삶(Life in Progress)’이 지난 3월 이탈리아 모데나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로마와 폴란드 로츠를 거쳐 5월 25일부터 31일까지 런던 새들러스 웰스에 올려졌다. 투어는 호주·프랑스·스페인·미국을 거쳐 타이완·중국·싱가포르에 이어 올 12월 일본에서 마무리된다. 2007년 ‘신성한 괴물들(Monstres Sacres)’로 단 한 번 내한했지만 아쉽게도 한국은 은퇴 투어지에서 빠졌고, 주로 거주해온 스위스도 제외됐다.

자신을 기른 파리 오페라 발레 그리고 로열 발레의 수석 무용수로 전성기를 누린 그녀가 영국이 아닌 일본에서 은퇴하는 건 의미심장하다. 2014년 8월, 자신의 은퇴를 공식적으로 처음 알린 곳도 일본공연예술진흥회(NBS)를 통해서였다. 2011년 동일본 지진으로 해외 초청한 대다수 클래식 음악·발레 공연이 취소됐지만 기옘은 ‘Hope Japan’이라는 이름으로 파리와 도쿄에서 이재민 지원을 위한 자선 갈라를 개최한 데 이어 재해 지역인 후쿠시마와 이와테로 직접 가서 주민들을 위로하는 ‘볼레로’를 췄다. 1981년 첫 방문 이래 30회 넘게 일본을 찾은 기옘은 기존작 ‘성장하는 삶’ 외에 일본에서만 특별히 말리펀트의 ‘둘(Two)’과 베자르의 ‘볼레로’를 추가로 공연한다.

지난해 NBS를 통해 발표한 은퇴의 변이 그대로 5월 새들러스 웰스의 프로그램북에도 실렸다. 공연 관계자 거의 모두에게 까칠했지만, 관객에게는 다감했던 기옘의 마음이 글에서 느껴진다.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 시절, 흔히 ‘작은 생쥐’라 불리는 학생들은 언제나 존경의 뜻으로 직업 무용수나 선생님을 만나면 인사를 해야 했습니다. 위대하면서 고고한 자태를 지닌 그들은 생쥐들이 지각을 면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릴 때마다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났고, 우리는 미끄러운 바닥에서 급브레이크를 걸며 V자 모양으로 약 0.5초간 양팔을 떨어뜨리는 포지션을 취해야 다음 교실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균형의 법칙에 어긋나기에 이런 상투적인 인사가 우아하다고 볼 순 없지만, 어쨌든 임무는 완료됐습니다.

이제 저는 39년의 연습을 거쳐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2015년이 무용수로서 마지막 해입니다. 여전히 춤을 사랑하지만, 왜 멈출까요? 간단합니다. 행복한 동안 자존심과 열정을 갖고 해오던 것을 마무리 짓고 싶기 때문입니다. 자제력을 잃고 끊임없이 무대에 오를 때 그런 저를 제거할 수 있도록 살인 허가를 내준 스파이 역할의 친구가 있습니다. 이제 그 역할을 나누고 싶습니다. 아주 신나는 여행이었지만, 이제는 멈출 순간입니다. 진로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성장하는 삶, 그것이 제 인생입니다.”


▲ ©Ann Ray

뛰어난 신체 비율과 자유로운 움직임의 소유자

1965년 파리에서 태어난 기옘은 어려서 기계체조를 배웠다. 12세에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국내 예선을 통과했지만, 당시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장 클로드 베시가 스카우트해 1977년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에 입학하고 1981년 파리 오페라 발레에 입단했다. 클로드 베시는 기옘의 다리를 청동처럼 만들었고, 활처럼 휘는 아치형 발등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프리미에르에 오른 지 불과 5일이 지난 1984년 12월 29일, 파리 오페라 발레 예술감독인 누레예프는 ‘백조의 호수’가 끝나자마자 기옘을 사상 최연소 에투알(수석 무용수)로 무대에서 호명했다. 뛰어난 신체 비율과 틀에 얽매이지 않는 포르 드 브라(팔의 연결적인 움직임), 파트너의 홀딩에 갇히지 않는 적극적인 해석과 강력한 하체로 만들어내는 역동성으로 말미암아 기옘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고고함과 강건함을 동시에 머금게 되었다.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6시 포즈’ ‘11시 아라베스크’는 기옘의 해외 공연 때 그녀를 수식하는 대명사였다. 드라마틱 발레에서 보이는 섬세한 마임이나 컨템퍼러리 발레에서 보여준 뛰어난 애크러배틱 역시 놀라움을 안겨줬다.

외부 공연에 제약을 가하는 파리 오페라 발레에 불만을 느낀 그녀는 1988년 런던으로 건너가 로열 발레에서 객원 수석 무용수로 2007년까지 활동했다. 로열 발레 상임 안무가 케네스 맥밀런이 자신의 요구대로 추지 않는 기옘의 연기를 비난했고, 로열 발레 특유의 의상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해 단장 모니카 메이슨과도 갈등을 겪었다. 하지만 런던에선 컨템퍼러리 무용에 출연할 수 있기에 그녀는 보다 자유로웠다.

은퇴 공연은 실비 기옘과 원활하게 교류한 안무가들의 작품으로 추려졌다. 파리 오페라 발레 시절, 스물둘의 기옘에게 ‘상승의 한가운데(In the Middle, Somewhat Elevated)’를 선사한 포사이드, 로열 발레 ‘카르멘’에서 기옘에게 시가를 물게 한 마츠 에크, 2003년 ‘부러진 추락(Broken Fall)’으로 활동의 중심을 코번트 가든에서 새들러스 웰스로 옮겨준 러셀 말리펀트, ‘신성한 괴물들’에서 서로의 성장 시절을 각자의 춤으로 이야기한 아크람 칸이 기옘의 마지막 여정에 동참했다. 5월 25일 새들러스 웰스에는 발레계 셀러브리티가 총출동했고, 로열 오페라 지휘를 위해 런던을 찾은 마르크 민코프스키의 모습도 보였다.

은퇴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마츠 에크의 ‘안녕’

첫 작품은 아크람 칸의 신작 1인무 ‘예술’(Techn?)이었다. ‘숙련된 연습으로 얻은 지식’이란 뜻의 그리스어에서 제목을 가져온 이 작품은 퍼커션과 비트박스, 바이올린과 목소리가 함께하는 칸 특유의 어지러운 음악으로 시작됐다. 가상의 나무가 유령 같은 존재로 중앙에 서 있고, 기옘은 자신이 나뭇가지가 되거나 흙이 된 듯 주변을 배회하면서 비틀거렸다. 언뜻 맥락이 없는 움직임의 연결로 보였지만, 칸은 “인간이 시도하는 정확한 기억의 실체는 결국 모호한 것”이라며 “애써 기억을 찾으려는 욕구가 부질없는 것임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노트에 적었다. 음악을 빼면 칸의 기존작과는 수준 차이가 컸다.

이어진 작품은 포사이드의 1996년작 2인무 ‘듀오(Duo)’였다. 무용수 브리겔 조카와 라일리 와츠가 나섰다. 남성 두 사람이 미세한 간격을 보이며 같은 동작을 이어나가는 시간차 싱크로나이즈로 작품이 진행됐다. 무용수 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빚어지는 작은 스파크까지 마치 즉흥의 요소인 듯 순간의 재치로 커버하는 유쾌함에서 포사이드의 거장성이 새삼 부각되었다. 이성 간에 추더라도 전혀 문제없을 작품이라 기옘이 로랑 힐레르나 니콜라 르 리슈와 함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 이어졌다.

다음 작품은 말리펀트의 신작 2인무 ‘앞으로(Here & After)’. 기옘과 스칼라 발레의 에마누엘라 몬타나리가 듀오로 나섰다. 몬타나리는 기옘의 추천으로 스칼라 발레에서 마시모 머루와 ‘지젤’을 함께했고, 2003년 기옘과 함께 일본 투어에 나서 맥밀런의 ‘겨울 이야기(Winter Dreams)’를 함께한 베테랑이다. 그러나 기옘 옆에 있으니 둘 사이의 기량 차이는 확연했다. 말리펀트는 기존에 기옘이 갖고 있던 컨템퍼러리 스타일을 작품에서 계승하겠다고 했는데, 여성 2인무에선 그 꿈이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작품 내내 기옘이 몬타나리를 리드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마츠 에크의 2011년작 ‘안녕(Bye)’이었다. 조명으로 만든 작은 문과 실제 문 사이에서 기옘은 순간 이동을 거듭하며 슬랩스틱으로 유머를 이어갔고, 즉흥의 주제는 어린 시절 만난 어느 여인에 관한 추억을 호기심과 자유의 코드로 풀어갔다. 목을 급격히 꺾는 동작에선 자연스레 안무가와 댄서가 함께했던 ‘카르멘’이 연상됐다. 이미 여러 차례 갈라에서 상연한 작품이지만, 은퇴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었다.

기옘은 ‘안녕’을 마친 뒤 커튼콜에서 활짝 웃었다. 기옘이 그동안 춘 가장 강렬했던 춤들로 채워지진 않았지만, 전설이 작별하는 방식은 이렇게 또 여운을 남겼다. 2005년 마지막으로 ‘볼레로’를 추겠다고 했지만 베자르가 죽고 지진이 나자 ‘볼레로’를 다시 춘 그녀다. 2015년 이후 언젠가 그녀가 다시 댄서로 돌아온다 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그 또한 ‘성장하는 삶’이리라.

글 한정호(런던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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