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기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8월 1일 12:00 오전

1. 이토록 따뜻한 음악!

베를린 필하모닉 카메라타 내한 공연
7월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는 단원들이 주도적으로 구성한 40여 개의 실내악단이 있다. 이건산업·이건창호 등 이건 관계사가 주최하는 이건음악회는 최근 몇 년간 베를린 필의 실내악단을 국내에 소개해왔다.(2012년 베를린 필하모닉 금관 앙상블, 2014년 베를린 필하모닉 목관 5중주단)

지난해 베를린 필하모닉 목관 5중주단의 내한 공연이 인상 깊었는데, 아호·리게티·닐센 등 20세기 레퍼토리로 편성된 프로그램을 메세나 형식의 연주회에서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위한 연주회에서 ‘대중적이지 않은 곡’의 조화가 절묘했다고나 할까.

올해는 악장 안드레아스 부샤츠가 소속돼 있는 현악 5중주단인 베를린 필하모닉 카메라타가 한국을 찾았다. 이번 공연은 초기 바로크 음악 발전에 영향을 끼친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작품과 후기 바로크 음악에 공헌한 독일 작곡가 작품을 중심으로 연주됐다. 연주 시작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홍승찬 교수가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올라 바로크 시대 음악을 조목조목 유쾌하게 설명했다.

베를린 필 트럼펫 수석인 가보르 터르쾨비가 협연한 첫 곡 타르티니 트럼펫 협주곡 D장조 D53부터 바로크 시대의 명랑함이 선연하게 전달됐다. 악장 부샤츠의 도드라지는 제1바이올린 연주가 다른 악기를 잡아먹을까 우려됐지만, 그의 소리는 앙상블에 촘촘히 녹아들었다. 치밀하고도 부드러운 현악기 앙상블에 트럼펫의 노련한 다이내믹이 더해져 활기참과 서정성을 동시에 불러왔다.

부샤츠의 ‘배려의 미덕’은 중·저음을 반짝반짝 빛나게 했다. 첼로 슈테판 콘츠와 더블베이스 야누시 비지크의 찰떡 호흡은 최강 콤비였다. 이 둘의 조화에서 현악 4중주가 아닌 현악 5중주로 승부수를 띄운 이들의 개성을 번뜩 알아차렸다. 연주자 간의 정교한 호흡을 통해 14년간의 연륜(2001년 창단)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2부 첫 곡이던 레스피기 류트를 위한 옛 춤곡과 아리아 모음곡 3번 2악장에서 비올라 볼프강 탈리르츠의 감미로운 솔로가 인상 깊었는데, 비올라의 선율을 기반으로 애틋하게 어루만지며 연주자들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프로그램 전반적으로 크리스티안 리거의 하프시코드 연주가 곁들어져 바로크 음악을 듣는 재미가 풍부했다.

인천에 터전을 둔 이건창호 박영주 회장이 지역을 위한 봉사 정신으로 시작한 이건음악회. 26년 동안 전석 초대로 이루어졌으며, 이번에도 인천·고양·대구·부산을 투어하며 지방 공연까지 세심한 손길을 뻗쳤다. 2011년부터는 공연팀이 연주할 ‘아리랑’을 공모전을 거쳐 선정해왔는데, 이번 베를린 필하모닉 카메라타는 한양대 작곡과 4학년 학생 김사무엘 의 아리랑을 앙코르로 선보였다. ‘메세나’에 대한 개념이 생소하던 1990년부터 지금까지 실력 있는 해외 음악가들을 국내에 소개해온 이건음악회. 경영상 이득을 위한 이벤트성 지원이 아니라, 사회 공헌의 하나라는 측면이 강하게 다가오는 이건의 행보는 한국 기업 메세나의 모범사례로 남을 것이다.  장혜선

2. 춤추는 슬픈 감정

송영훈·쿠아트로시엔토스 리사이틀 ‘그랑 탱고’
7월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980년대 크로노스 4중주단이 선두에서 일으킨 탱고에 대한 폭발적 관심으로 사람들은 탱고 음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당시 아스트로 피아졸라는 아르헨티나의 반도네온 연주자이자 탱고 작곡가로 자신만의 새로운 탱고 스타일을 만들어 주목을 끌었다. 특히 그의 작품을 다니엘 바렌보임, 요요 마, 기돈 크레머 등 유명 음악가들이 다양한 악기 구성으로 연주해 큰 사랑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크로스오버 음악 베스트셀러일 뿐 아니라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높이 평가된다. 지난 7월 7일 첼리스트 송영훈이 일본의 대표적인 탱고 밴드 쿠아트로시엔토스와 오랜만에 탱고의 아름다움을 전하며 여름밤을 매혹적인 선율로 적셨다.

1부는 청중이 아무 선입견 없이 탱고 자체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프로그램 역시 장황한 곡 설명을 뺀 심플한 작품 순서만으로 이루어졌다. 연주가 시작되자 탱고 특유의 자유롭고 슬픔에 찬 선율이 순식간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졌다. 실험 정신과 다양성이 돋보이는 피아졸라의 대표곡 ‘망각’ ‘리베르 탱고’ ‘그랜드 탱고’ ‘천사의 밀롱가’가 바이올린·피아노·더블베이스·반도네온으로 구성된 탱고 밴드의 선율 속에 녹았다. 피아졸라의 탱고 작품들 속에는 클래식 음악이 바탕이 된 견고한 구조 속에 불협화음과 푸가, 재즈적 요소가 가미되어 더욱 특별한 매력을 선사했다.

2부에서는 송영훈이 해설을 하며 진행했다. 송영훈의 해설 음악회는 많이 들어봤지만 이날만큼 해설이 공연과 어울렸던 적은 없다. 그는 간결하고 담백하게, 따뜻한 마음을 담아 자신의 음악 친구들을 한국 청중에게 소개했고, 함께 연주하는 순간을 진심으로 즐겼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기 전 불안했던 순간,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은 탱고 작품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며 피아졸라의 ‘잘가요 할아버지’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날 마지막 앙코르 곡은 바이올리니스트 아이다 모모코가 부른 피아졸라의 ‘길 잃은 새’였다.

150여 년 전 수백만 명의 이민자가 향수를 달래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항구에서 시작되어 전해진 그들의 음악이 지금, 아름다운 선율로 우리의 외로움을 가만히 쓰다듬고 있었다. 러시아 최고의 무용수 바츨라프 니진스키와 그의 아내인 발레리나 로몰라 니진스키가 처음 만났던 선상에서 바라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했던 글이 묘하게 음악과 겹쳤다.

“밤이 되어 오고 있었어요. 생생한 빛의 연주가 지평선을 장식했고, 선상에서 우리들의 마지막 밤, 탱고를 들으면서 우리는 슬픔을 노래했어요. 저 멀리 보이는 보름달의 그 푸른 빛깔. 그것이 부에노스아이레스였어요.” -‘니진스키의 일기’ 중.  국지연

3. 오늘도 유효한 청년의 초상

극단 청년단의 ‘모험왕’
7월 10~14일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마감으로 인해 연속 구성된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의 ‘신 모험왕’(7월 16~26일) 리뷰를 함께 싣지 못함을 미리 밝혀둔다.)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와 극단 청년단의 ‘모험왕’은 10대 시절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세계 여행을 떠났던 작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만든 초기작이다. 무대는 1980년 경제 호황기를 누리던 일본을 떠나 타국을 옮겨 다니는, 방랑자와 여행자들이 모인 터키 이스탄불의 한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룸이다. 유럽이든 아시아든, 어디로든 떠나고 싶지만, 1980년 인근 대륙들의 불안한 정세는 이들을 이스탄불에 붙잡는다.

히라타 오리자는 이들의 일상에서 하루 한나절을 툭 잘라, 무심한 듯 자연스레 무대에 펼쳐놓는다. 그의 작품에서 마주치는 ‘현대구어’와 ‘일상성’은 히라타 오리자와 계속 교류하며, 그의 연극 세계를 꾸준히 소개해온 극작가 겸 연출가 성기웅의 노력 덕에 이젠 친숙하다.

경제 고도 성장기의 일본을 등진 채 ‘홀로 떠났던’ 이들은, 이스탄불의 한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룸에 ‘모여 살기’를 자처한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30대. 한창 일할 나이에 이들은 사회의 역군이 되기보다, 여행생활자가 되기를 택했다. 여행객의 필수 관광 코스는 사양한다. 대신 하루 종일 침대 위에서 뒹굴고, 카페에서 마신 홍차 맛에 행복을 느낀다. 자국의 최근 소식을 궁금해하고, 새로운 트렌드에 흥미를 느끼지만, 정작 가까운 미래에 일본으로 돌아갈 생각은 대체로 없다. 누구든 이곳에서 헤어질 땐 결국 ‘기약할 수 없는 안녕(사요나라)’을 고한다. 때때로 터키어로 ‘안녕’이라 고하지만 과연 누가 남고 누가 떠나는 것인지… 이곳에선 그 경계조차 불분명하다. 한 방에서 서로의 시간을 중첩시키고 있지만, 각자의 침대에 엉덩이를 붙인 것처럼 모두가 홀로 외롭고, 허무한 존재들이다. 이러한 감정은 극 중반부에 인용한 카네코 미쓰히루의 시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 이 모든 것이 허전함이 만들어낸 소행인 게다. (…)”

‘허전함’이라는 단어와 함께 일본 특유의 허무함과 쓸쓸함, 와비사비의 정서가 한껏 밀려든다. 극의 마지막, 갈라타 다리에서 차를 마시면서 유럽 쪽으로 해가 지는 것을 즐기자는 말에서 한껏 느껴지는 정서 역시 마찬가지다.

‘모험왕’은 제목 그 자체로 모순적인 동시에 일본인의 초상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극 중엔 위험을 무릅쓰고 할 만한 ‘모험’은 등장하지 않고, ‘왕’처럼 사는 이도, 그렇게 살고 싶은 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안정적인 고국의 삶을 등진 채 타국을 전전하는 사람들. (극 중에 등장하지 않지만) 이후 일본의 거품 경제가 붕괴되면서 다가올 상실의 텃밭을 일궈야 했을 그들의 삶에서 오늘날 한국의 20, 30대 어깨에 내려앉은 ‘삼포 세대’의 무게가 때때로 밀려왔다.

히라타 오리자가 인용한 카네코 미쓰히루의 시구, ‘누구의 탓도 아닌, 이 모든 것이 허전함이 만들어낸 소행’처럼, 시의 마지막 구절인 ‘홀로 버티며 허전함의 근원을 파고들기 위해 세계와 함께 걸어가는 단 한 사람의 의욕도 주변에서 느껴지지 않음’에도, 극 중 스기자키 마리코의 말처럼 ‘뭔가 애쓸 구석을 찾으려고 여행하는’ 것이 30대로 2015년을 살아가는 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김선영

4. 라이토 그리고 엘, 우리 꼭 다시 만나요

뮤지컬 ‘데스노트’
6월 20일~8월 15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뮤지컬 ‘데스노트’는 개막 이후 연일 혹평을 받았다. 일본 누계 3000만 부 가량 판매되고 35개국에서 번역된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프랭크 와일드혼(작곡)·잭 머피(작사) 콤비와 이번 멘첼(각본) 등 걸출한 제작진이 참여해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지난 4월 일본에서 초연됐고, 한국에서 첫 라이선스 체결을 했다.

국내 대다수 평단은 주연 배우인 홍광호·김준수의 연기 외에는 칭찬할 것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스토리, 음악, 무대 등 여러 부분에서 미흡한 점이 지적됐다. 한 평론가는 수십 년 간 관람한 뮤지컬 중 가장 실망스러운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기자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작품을 관람했다. 덕분에 의외의 재미와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소재 면에서 새로웠다. 현대의 한국 뮤지컬은, 다양한 접근이 이루어지긴 하지만, 여전히 대극장은 서구적 배경이 점령하고 있다. 판타지를 겸한 현대물에 일본 특유의 감성이 더해져 신선했다. 다만 추리물임에도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느슨하게 전개되는 점은 아쉬웠다.

음악 역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들을 수 있던 와일드혼 특유의 드라마틱한 감성이 살아 있어 좋았다. 똑딱똑딱 시계 소리와 긴장감을 유발하는 음악이 은은하게 깔려 작품을 지루하지 않게 이끌었다. 극적인 화려함보다는 스토리에 충실했다. 다만 미사(정선아)가 부르는 넘버들이 다소 통속적인 것은 거슬렸다. 가수라는 미사의 직업적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철 지난 대중가요가 반복하는 듯한 느낌은 작품 전체의 흐름을 방해했다. 김문정 음악감독이 이끄는 오케스트라는 정돈이 잘된 느낌이었다. 각 인물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도 안정적인 연주를 들려줬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라이토를 연기한 홍광호와 엘 역의 김준수는 각각의 캐릭터 대해 높은 이해도를 지니고 있었다. 라이토가 엘에게 자신의 존재를 밝히고 본색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홍광호의 변신은 놀라웠다. 거칠게 바뀐 음색과 살기 어린 눈빛은 극에 완전히 빠져들게 만들었다. 김준수 역시 몸짓 하나하나(예를 들면 뒤에서 누가 부르면 꼭 반대 방향으로 돌아보는 느릿하면서도 반항적인 모습)에 엘을 담아냈다. ‘킹키부츠’에서 가능성을 완전히 입증한 강홍석 역시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다.

중앙의 회전 무대는 부실했고, 사신이 등장할 때 함께 나오는 검은 돌상 등은 유치했다. 스토리 역시 늘어지며 어색한 결말을 맞았다. 그러나 발전 가능성이 전혀 없는, 형편없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버라이어티 쇼는 없지만 흥미로운 요소는 분명 있었다. 연극에 능한 연출가인 구리야마 다미야가 장르적 특성을 살려 보완한다면 재공연도 기꺼이 찾아가 볼 용의가 있다.  김호경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