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브레겐츠 페스티벌·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보존과 공존을 위한 음악 유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9월 1일 12:00 오전

오랜 시간 이어온 축제에서 인간·도시·전통·현재를 잇는 음악의 ‘힘’을 느끼다

7월 27일, 뮌헨의 풍경이 내 앞에 펼쳐진다. 순간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역학 작용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뮌헨 중앙역에서 숙소로 가는 길들. 수백 년 전의 양식을 입은 건축물과 현대식 건물이 공존하고 있었고, 현대식 건물들은 고성당의 높이를 침범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일제히 제 키를 낮춰 과거의 전통을 떠받들고 있는 듯 보인다. 그것이 설령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말한 ‘만들어진 전통’이라 할지라도.

미래파가 내건 ‘전통 파괴’의 미학은 전통과 유산의 무게가 지겨울 정도로 산재하고 일상화된 이곳, 뮌헨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사조일 것이다. 그런 곳이 뮌헨이었다.

미술관 속 당대연주의 매력


▲ 알테 피나코테크의 음악회

뮌헨. 이곳에서 전통이란 단순히 보존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와 상생하는 공존체다. 문화유산의 ‘풍부함’보다, 과거를 지금으로 끊임없이 호출하고 인용하는 그 ‘힘’이 놀랍고 부러웠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당대악기 실내악 축제를 보기 위해 알테 피나코테크로 향한다. 이곳은 14~18세기 르네상스·바로크의 미술품을 모아놓은 미술관이다. 공연은 중세회화, 19세기에 활약한 라흐너·슈베르트·부르크뮐러(이상 1부)와 20세기에 활동한 칸·라이네케(이상 2부)의 실내악곡, 그리고 21세기 연주자들의 조합이었다. ‘국내의 미술관 음악회려니···’라고 생각했던 필자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그들만의 ‘힘’에 또다시 놀란다.

프로그램 북에는 곡마다 사용하는 악기 프로필을 상세히 적어놓았다. 마르쿠스 쇤이 연주한 클라리넷과 요하네스 덴글러의 호른은 1800년대 초반에 제작된 것. 피아니스트 요제프 브라이늘은 야콥 베르트셰의 1815년산 포르테피아노와 베히슈타인 피아노를 연주한다. 보존이 잘됐는지 제작되던 때부터 품고 있는 사운드를 낭창하게 꺼내놓는다. 쉬는 시간이 되자, 청중은 악기 근처에 와 부지런히 눈을 움직인다. ‘촬영은 공연장 밖에서만 가능합니다’며 제어하는 안내원도 없다.

공연이 끝난 밤, 버스를 기다린다. 바로 길 건너편에는 근대미술(인상·낭만)을 전시한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른과 현대미술을 주로 다루는 노이에 피나코테크가 있다. 중세·근대·현대가 함께 존재하는 길 한복판. 서울과 뮌헨 사이의 시간이 주는 시차(時差), 그리고 전통을 바라보는 뮌헨 시민과 우리들의 시차(視差) 사이로 피로감이 몰려왔다. 아니, 그냥 솔직히 말하자. 그들의 문화가 부러웠던 것이다. 밤거리를 살짝 걷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의 자랑


▲ 차이콥스키 ‘오네긴’. 왼편의 의자에 앉아 있는 타티아나(안나 네트렙코) ©Wilfried Hösl

다음 날,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6월 24일~7월 31일)이 열리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로 간다. 트램(노면전차)에 올라탔다. ‘슈타츠오퍼’란 말은 오페라 좌(座), 가(歌)극장, 주립극장, 오페라극장 등 다양하게 번역·통용되고 있다. 지금은 클래식 음악 마니아 사이에서 그냥 ‘슈타츠오퍼’로 통용된다. 그만큼 한국 클래식계도 유럽과 동시성을 형성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트램 매표원이 승차권을 검사한다. 공연 입장권을 보여주니 ‘OK!’ 하고 지나간다. 공연 관람객은 몇 시간 전부터 극장으로 향하는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정책이다.

뮌헨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음악 도시다. 작년에 서거한 로린 마젤이 마지막까지 지휘봉을 잡았던 뮌헨 필, 마리스 얀손스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그리고 키릴 페트렌코가 음악감독으로 있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가 있는 곳이다(며칠 전 베를린 필의 새로운 수장으로 임명된 페트렌코는 2018년부터 베를린 필을 이끈다).

또 다른 자랑거리는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이다. 이 페스티벌은 1875년 이래 140년 간 매년 수준 높은 오페라를 선보이고 있다. 페스티벌 기간에는 지난 시즌의 오페라와 발레 공연 중 가치 있고 인기를 끌었던 프로덕션을 선별해 한 달 동안 선보인다. 즉, 극장의 한 시즌을 총정리하는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작곡가 진은숙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2007년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올랐을 때, 이 페스티벌은 한국인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진은숙은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역사상 처음으로 작품을 상연한 여성 작곡가라는 기록도 세웠다.

전통에 혁신을 입힌 3편의 오페라

푸치니 ‘마농 레스코’(7월 28일)를 시작으로 차이콥스키 ‘오네긴’(29일), 베르디 ‘돈 카를로’(30일)를 관람했다. 연출가가 고전을 새롭게 요리하는 레지 테아터의 옷을 입은 작품들이다.


▲ 푸치니 ‘마농 레스코’ ©Wilfried Hösl

‘마농 레스코’를 앞두고 남은 시간은 5분. 부리나케 극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극장에 들어선 순간 숨이 턱하고 막힌다. 막이 오르기 전의 긴장감, 하얗게 센 은발의 노인들, 고급 드레스, 가득 메워진 객석. 객석의 중간으로 난 통로도 없다 보니 정중앙에 있는 필자의 좌석은 아득히 멀어 보인다. 앞좌석과 무릎의 간격도 좁다 보니 십 수 명, 아니 수십 명의 관람객이 차례로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내준다. 필자의 존재감은 외양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이질적인 얼룩처럼 느껴졌다. 1950년대에 ‘모든 오페라극장은 폭파하라’며, 음악사를 해체하고 새 양식을 뿜어내던 피에르 불레즈의 외침이 떠오른다. ‘폭파’라는 단어를 쓸 만큼, 그곳은 단단하고 보수적인 곳이었다. 자막도 오로지 독일어뿐. 국·영문을 병기하는 한국 생각이 나기도 했다.

‘마농 레스코’에는 최고 주가를 달리고 있는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이 데 그리외 역을, 소프라노 크리스티네 오폴라이스가 마농 역을 맡았다. 한스 노이엔펠스의 연출은 19세기 작품을 21세기적 감수성으로 몰아갔다. 4막에선 시각적 장치를 밀어버렸다. 원작 속 황량한 사막의 느낌만을 상징하는 화이트 큐브 같은 무대뿐. 그 속에서 카우프만과 오폴라이스는 오로지 노래와 연기만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박수와 환호. 난리가 났다. 무대에 커튼이 내려온 후, 두 사람은 수없이 커튼 사이를 오가며 인사를 해야했다.


▲ 차이콥스키 ‘오네긴’ ©Wilfried Hösl

‘오네긴’에는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타티아나 역을 맡았다. 연출가는 크시슈토프 바를리코프스키. 그의 작품 중 ‘잔혹 미학극’이라고 불리는 ‘정화된 자들’은 2006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개막작으로 오르기도 했다. 바를리코프스키 역시 19세기 작품에 현대적 감각을 입혔다. ‘편지 장면’에서 밤새워 오네긴에게 편지를 써야 하는 타티아나는 녹음기에 이어진 마이크를 잡고 순정의 목소리를 카세트테이프에 담는다. 텔레비전 정규 방송이 끝나 밤이 깊었음을 알리고, 다시 정규 방송이 시작되면서 그녀가 밤을 지새웠다는 것을 알려주는 연출도 흥미로웠다.


▲ 베르디 ‘돈 카를로’의 김재형 ©Wilfried Hösl

‘돈 카를로’는 5막 버전이었다. 연출·무대미술·조명·의상을 도맡은 위르겐 로제는 중세회화풍의 무대를 선보였다. 마치 알테 피나코테크에서 본 중세회화 속 풍경과 인물이 무대에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관객은 필리포 2세 역을 맡은 베이스 르네 파페에 열광한다. 4막에서 파페가 부른 아리아 ‘그녀는 나를 사랑한 적이 없다’는 자막이 독일어뿐이라 어떤 내용인지 가물가물해도, 소리의 묵직한 존재만으로도 권력자의 외로움과 내면적 고통을 느끼게 했다.

이 공연은 며칠 전 취소 통보를 해온 라몬 바르가스를 대신해 무대에 오른 테너 김재형의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데뷔 무대이기도 했다. 그는 주인공인 돈 카를로 역을 맡았다. 1막을 여는 김재형의 열연을 지켜보며 같은 한국인으로서 박수와 응원을 보냈다. 하지만 눈동자와 머리카락 색이 다른 그곳 관객들의 반응은 미지근하거나 서늘했다. 박수에도 뜨거움이 없었다.

‘오네긴’의 연출가가 렌스키와 오네긴의 우정을 동성애로 그렸을 때도 그들은 어디선가 공연을 보고 있을 연출가를 향해 거침없이 야유를 보내는 것 같았다. 그들의 비평 행위는 그 자리와 그 순간에 바로 행해지는 것이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무대와 성악가를 보며 쌓아올린 ‘마농 레스코’ ‘오네긴’ ‘돈 카를로’의 상이 확고하게 있는 듯했다. 그리고 보편적인 형상을 빚는 ‘반복’의 고리를 끊는 ‘차이’를 담은 새로운 무대가 나오면 열렬히 환호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공공의 유산 오페라

프로그램 북에는 공연 종료 시간이 명기돼 있었다. 귀가하는 관객의 교통 이용을 위한 배려였다. 하지만 밤거리를 천천히 걷기로 했다.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앞 막스 요제프 광장에는 거대한 스크린이 설치돼 있었다. 며칠 뒤에는 공연 실황을 야외에서 동시 상연한단다. 이에 대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티켓 구하기는 현지인 사이에서도 ‘하늘의 별 따기’로 통하기 때문이다. 정통 턱시도를 말쑥이 갖춰 입고 ‘Suche Karte(티켓 구함)’이라고 적힌 종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기다리는 은발의 신사를 극장 앞에서 수없이 볼 수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공연 콘텐츠를 어떠한 형태로든 향유·소비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배면에는 오페라는 공공적 문화자산이며 다 함께 공유하고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바이에른 슈타츠오퍼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전소한 적이 있다. 이후 복원 시 재정 부족으로 현대식 극장으로 재건하려 했다. 하지만 뮌헨 시민은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할 것을 요청했고, 심지어 건립에 필요한 모금운동까지 벌였다고 한다.

전통의 시간이 생필품이라 생각하는 곳. 과거와 전통이 현재와 미래를 위한 중요한 연료로 취급하는 곳. 오페라도 미술도 건축도 그리고 시민도 모두 그렇게 존재하는 곳. 그곳이 뮌헨이었고, 뮌헨의 오페라 문화였다.

밤 호수 위의 공연, 브레겐츠 페스티벌


▲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푸치니 ‘투란도트’ ©Andreas Gassner

7월 31일, 린다우 역을 거쳐 오스트리아 브레겐츠로 간다. 브레겐츠호의 첫인상은 호수라기보다 해안 같았다. 오래된 건물과 골목이 눈을 가득 채운 뮌헨과 달리, 브레겐츠호와 청명한 하늘은 눈을 말끔히 씻어냈다.

1945년 시작된 브레겐츠 페스티벌(7월 22일~8월 23일)은 일단 ‘눈으로 먹고 들어가는’ 오페라를 선보인다. 호수에 띄운 수상 무대. 유럽의 관광객들이 눈독을 들이듯,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친숙하고, 동경을 자아낸다.

많은 이가 브레겐츠에는 오페라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숙소에 비치된 브레겐츠의 안내 책자를 보니 야외 오페라 극장이 맞닿아 있는 브레겐츠(실내)콘서트홀에 매월 좋은 공연이 오른다고 안내돼 있다.

올해 오른 작품은 푸치니 ‘투란도트’. 연출은 스위스 출신 마르코 아르투로 마렐리로 그는 푸치니가 지녔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에 잔뜩 힘을 주었다. 낮에 들른 무대 뒤는 공사 현장 같았다. 335개의 벽돌로 쌓은 성벽은 중국의 랜드 마크인 만리장성 일부를 뚝 떼어 옮긴 것 같았다. 진시황 무덤 속 144개의 토용은 무한 복제된 듯 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 아마도 ‘무한 복제’라는 키워드로 본다면 진시황이야말로 진나라의 앤디워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공연에선 그 속에 조명을 비춰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처럼 울긋불긋 빛을 냈다.

오후 9시에 공연이 시작했다. 야구장 관람석처럼 느껴지듯 객석은 어젯밤 뮌헨과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빈 좌석 찾아보기 어려운 객석과 한눈에 보아도 관광객임을 알 수 있는 편한 복장이 많았다.

비교적 좋은 상석에서 관람했지만, 배역의 큰 움직임은 보여도 미세한 표정까지 읽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호수에서 진행되는 오페라답게 ‘밤’과 ‘물’은 관객에게 색다른 맛을 제공했다. 호수의 밤이 깊어질수록 환한 빛을 내는 무대는 더욱 집중력을 유도했다. 중국식 전통 등불과 함께 배를 타고 등장한 투란도트 공주, 그녀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이방의 왕자는 참수된 후 성벽 꼭대기에서 호수로 버려졌다. 그리고 오리 한 떼가 날아오더니 꽥꽥 울기도 했다. 때로는 음악이 피아노로 흐르는데, 오리의 울음은 포르테여서 관객은 재미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기도 했다.

뮌헨에서 관객은 주인 의식이 있었다. 이곳은 내가 지킨다, 나는 산증인이라는. 지금까지 봐온 무대와 꾸준히 변화를 입고 있는 새로운 프로덕션의 간극을 재어보는 ‘매의 시선’으로 공연을 즐겼다. 반면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관객은 호수의 관광객이기도 하다. 그들은 오페라를 여흥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조금은 가볍고 부담 없는 느낌. 하지만 ‘가볍다’는 말이 나쁜 말이 아니다. 종합성과 역사를 담은 예술품을 ‘일상’의 문화로 순치시키는 그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전설을 빚고 있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 밤 12시가 넘어 끝난 소콜로프 리사이틀 ©Marco Borrelli 

8월 1일, 잘츠부르크에 도착했다. 각기 다른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반겨주는 것은 하늘이었다. 전통양식의 건축물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뮌헨, 뻥 뚫려 있어 가슴을 시원하게 했던 브레겐츠, 그리고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선 높은 하늘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오래된 성당의 위용을 위해 일제히 제 키를 낮춘 건물들의 겸손함. 이곳도 뮌헨처럼 과거와 전통이 현재와 공존하는 음악 도시였다.

오후 9시에는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의 리사이틀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낮의 잘츠부르크는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작은 규모의 도시지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7월 18일~8월 30일)이 강한 영향력을 선보이기에 이들은 해가 지면 공연장으로 들어갈 사람들처럼 보였다. 길 가다 잠시 들른 음악서적매장의 쇼윈도에는 작곡가 볼프강 림의 악보가 가득했다. 볼프강 림은 서울시향의 아르스 노바 시리즈를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현대작곡가다. 이유를 묻자 그의 ‘멕시코 정복’이 오른다고 한다. ‘오페라 극장을 폭파하라’고 하며 반(反)전통의 기수였던 불레즈는 올해 탄생 90주년을 맞아 여러 연주자가 그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두 작곡가는 이곳에서 천천히 ‘신화’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콜로프의 리사이틀은 대축제극장에서 있었다. 이 극장은 2014년에 선보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 DVD에서 본 적이 있다. 오페라에선 무대미술이 가득해 크기를 실감하지 못했는데, 실제로 보니 음향판과 피아노만 덩그러니 있는 무대는 널찍하다 못해 휑한 느낌을 준다. 성악가가 무대를 누비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심지어 뛰어다니는 광경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약속된 시간이 됐다. 소콜로프는 마치 영화감독 히치콕이 자신의 영화에 무뚝뚝한 걸음으로 출연하는 카메오처럼 등·퇴장했다. 등장, 인사, 곧바로 연주, 인사, 퇴장. 하지만 그가 선사한 바흐 파르티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7번,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D784 그리고 앙코르로 이어진 쇼팽의 곡들은 감탄사를 자아냈다. 최고의 꽃향기만을 모아 만든 향수에 취하듯 소콜로프의 유려한 연주와 대축제극장만의 음향에 취하고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 잘츠부르크의 밤은 굵은 빗줄기에 젖어들고 있었다.

도시와 사람, 전통과 현재 그리고 음악

도시와 사람과 음악을 엮는 ‘힘’은 대단했다. 뮌헨·브레겐츠·잘츠부르크는 제각각의 방법으로 그 힘을 이어가고 있다. 흘러가는 시간을 한곳에 담아 전통으로 만드는 힘. 그 힘은 후대의 창조를 위한 에너지가 될 것이다. 결국 미래를 향해 달리면서 그들은 전통을 쌓아간다. 뮌헨의 밤거리를 걸을 때도 마리엔 광장에 있는 뮌헨 시청사의 고풍스러운 장식에 고인 네온사인의 불빛은 인상적이었다.

전통·과거와 현대·현재의 시간은 그렇게 맞물려 있었다. 추상적이거나 형이상학적으로 다가오는 ‘전통’이 아니라 촉각적이고 물질적이고 일상으로 다가오는 ‘전통’들. 이들은 플라스틱으로라도 전통을 복원·재현하고 그 위에 과거의 장식을 씌운다. 신고전주의는 여기서 나온 것이다. 장식들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는 그것을 제거했다. 추상주의는 이런 과정을 통해 나온 것이고. 그런 과거와 현재라는 정(正)·반(反)이 미래라는 합(合)을 향해 달리는 곳.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 힘들이었다. 글·사진 송현민(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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