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연 협연, 임헌정/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0월 1일 12:00 오전

9월 12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통영 바다에 울린 ‘아우성’

9월 12일 저녁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이 앙코르로 연주한 윤이상의 ‘작은 새’는 더 이상 작은 새가 아니었다. 3분여 소품 속에 갖가지 우리 악기들이 다 녹아 있는 듯 글리산도와 기막힌 트릴을 구사하며 지저귀고 또 지저귀었다. 소름이 돋았다. 바이올린은 때로는 해금으로, 때로는 피리로 변신하며 어느덧 우리 전통악기로 화했다. 윤이상 음악의 정수이자 통영의 소리였다.

임헌정 체제 하의 코리안심포니를 필자는 통영에서 처음 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임 지휘자의 아카데믹함에 임헌정은 연륜을 덧입혀 한층 높은 단계의 음악을 지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음악을 객석에서 감동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또 하나 조력자는 홀의 음향이었다. 1300석 규모의 콘서트홀은 세계 정상급 콘서트홀에서 느낄 수 있는 환상적인 어쿠스틱을 뿜어냈다. 작년 3월 개관 당시보다 무르익은 사운드는 현악기의 배음을 그윽하게 울려주었다. 가히 국내 최고라 할 만했다.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은 리모델링 비용으로 무려 1조 1000억 원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예술에 대한 투자다. 러시아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500억 원의 건축비가 소요된 통영국제음악당은 참으로 알뜰하게 지어져 그 어떤 해외 유명 공연장에도 뒤지지 않는 내실을 보여주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끌어낸 원동력은 인구 15만 예술도시 통영의 자존심이었다.

김수연이 만들어내는 차이콥스키 협주곡은 작곡가의 격렬한 로맨스가 불을 뿜었다. 자로 잰 듯한 테크닉은 나무랄 데 없고 난삽한 음표들은 간단하게 제압됐다. 1악장 카덴차는 더할 나위 없이 매끄럽게 빛났다. 차이콥스키 협주곡은 그저 러시아의 낭만이 아니다. 러시아 사실주의 화가의 대표주자인 바실리 수리코프와 일리야 레핀의 그림에서 보이는 민중의 참상과 시대의 아픔도 고스란히 배어 있다. 김수연의 슈베르트 음반에서 감지됐던 덤덤한 광기는 협주곡 2악장에서 차이콥스키의 입체적인 가슴을 속속들이 읽지 못했다. 이건 시간과 삶의 과정 속에서 풀어야 할 과제다. 그 부족한 면을 임헌정은 오케스트라 안에서 자신이 정한 틀을 과도하게 벗어나지 않고 담담히 받쳐주었다.

하지만 임헌정의 절제미는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에서 마음껏 풀어져 인간미 가득한 슬라브 음악을 높은 수준으로 표현했다. 백미는 3악장이었다. 강렬한 스케르초와 트리오의 대비는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특히 두 번째 트리오의 리듬감은 탁월했다. 1990년, 체코의 위대한 지휘자 라파엘 쿠벨릭이 민주화된 조국에 42년 만에 돌아와 체코 필하모닉과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을 리허설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 부분은 세계 어느 오케스트라에서도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늦추지 마세요! 모든 음표에서!” 거장의 외침이 코리안심포니의 음률에서도 들려왔다. 여기에 더해 다이내믹의 고저(高低)는 극명하게 갈렸다. 마이크를 직접 잡고 곡목을 소개하며 관객과 소통하는 임헌정이 앙코르로 ‘대니 보이’를 들려줄 때 코리안심포니와 객석은 하나가 됐다.

다음 날 오전 청마 유치환의 시비(詩碑)가 있는 난망산에 올랐다. 불멸의 명시 ‘깃발’에 나오는 ‘소리 없는 아우성’은 이제 ‘소리 있는 아우성’으로 변해, 음악의 바다를 향해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으로 나부끼고 있었다. 그건 세계에서 더 주목하는 ‘음악도시’ 통영의 저력이었다.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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