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9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떠나온 길에서 본 베토벤의 풍경
상주 아티스트인 첼리스트 양성원이 이끄는 2015 세종 체임버 시리즈가 점입가경이다. 시리즈의 하나로 9월 8·9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펼쳐진 트리오 오원의 베토벤 피아노 3중주 전곡은 녹록지 않은 프로젝트로 관심을 모았다. 완성도 높고 성공적인 전곡 연주회의 본보기를 제시한 셈이다.
첫날인 8일, 공연에 앞서 마이크를 들고 양성원이 등장했다. 베토벤 피아노 3중주 전곡을 준비하면서 ‘온몸에 베토벤이 스며든 것 같았다’고 감회를 밝히며 베토벤의 생애에 대해 이야기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라는 근본을 익힌 베토벤의 지적인 수업 시대에 주목한 그는, 인류의 삶을 향상시키는 음악을 하리라는 베토벤의 원대한 포부를 강조했다.
은회색 상의를 맞춰 입고 트리오 오원이 무대에 올랐다. 베토벤 피아노 3중주 1번에서 이들의 앙상블은 서로가 맞물리며 활기차게 움직이는 톱니바퀴를 연상케 했다. 적극성을 띤 만큼 절제도 돋보였다. 에마뉘엘 스트로세는 물 흐르듯 유려한 피아니즘을 선보였고, 올리비에 샤를리에의 가냘픈 바이올린이 감동을 안겨주었다.
4번 ‘가센하우어’에서는 샤를리에의 바이올린이 다른 악기와 밸런스를 미묘하게 유지해가는 것이 느껴졌다. 양성원의 첼로와 스트로세의 피아노도 완급을 조절했다. 피아노를 중심으로 첼로와 바이올린이 삼각형의 균형을 이루었다. 그곳에 연습과 시행착오의 단면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첫날의 마지막 곡은 5번 ‘유령’이었다. 1악장에서는 뜨겁게 달아오른 앙상블의 온도감을, 2악장에서는 창백한 악상을 밀어붙이는 저류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세 악기가 맞아떨어지는 타이밍이 노련했는데, 특히 3악장에서는 피아노 속에 바이올린과 첼로가 녹아드는 듯했다.
둘째 날, 첫 곡인 2번은 절제 속의 탐색전이었다. 가을의 우수를 더해주는 첼로의 그윽한 저음이 중후하면서도 일품이었다. 두 현악기의 활 놀림은 적재적소의 앙상블을 보여주었다.
6번에서 양성원이 천천히 활을 들었다. 첼로와 바이올린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가운데 볼륨이 점차 커져 갔다. 고즈넉한 가운데 미묘한 긴장이 흘렀고, 완급을 조절하던 4악장에서 세 악기는 비상하듯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틀간 연주회의 대미를 장식한 작품은 7번 ‘대공’이었다. 1악장에서 트리오 오원은 약간 빠른 템포를 견지하며 적극적인 자세로 역동적인 순간들을 만들었다. 양성원의 첼로는 하염없이 걸어가는 꿈길의 풍경 같았다. 이들은 확실한 목적지를 향해 언덕에서 구르는 바위처럼 한 덩이로 움직였다.
드디어 이틀간의 여정이 끝을 맺었다. 지나온 길을 복기해보니 베토벤이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구석구석 마련하고 있었나 새삼 놀라웠다. 정성껏 차린 상에 하나둘 올려놓은 트리오 오원 덕이었다. 트리오 오원의 이번 시리즈는 실내악의 묘미와 베토벤의 발견,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보기 드문 수연이었다.
사진 세종문화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