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회 BBC 프롬스 폐막

‘레이트 나이트 프롬스’에서 만난 요요 마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0월 1일 12:00 오전

올해 121회째 맞는 BBC 프롬스가 9월 12일 폐막 공연 ‘라스트 나이트 오브 더 프롬스’를 끝으로 9주간의 축제를 마감했다. 올해 프롬스는 가족 관객을 겨냥한 ‘뉴 선데이 마티네’를 신설하고 불레즈의 90세 생일 기념 이벤트를 주요 이슈로 내세웠다. 일렉트로닉과 힙합을 다루는 BBC 라디오의 다른 채널들과 협력해 이비자 클럽 스타일의 디제잉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2012년 런던 올림픽, 2013년 바그너 ‘링’ 사이클, 2014년 슈트라우스 기념 공연에 비해 질과 양에서 허전한 느낌이 완연했다. ‘인디펜던트’지는 개막 전부터 ‘올해 프로그램은 시시하다’고 비판했고,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전임 감독이 혼자 하던 일을 지금은 셋이서 한다’고 운영의 비효율을 힐난했다.

올해 BBC 프롬스는 시작 전부터 리더십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BBC는 지난 5월, 글라인본 오페라 단장 데이비드 피카드(David Pickard)를 새로운 프롬스 감독으로 임명해 2016년부터 임기를 시작한다고 발표하면서 2015 프롬스는 지난해부터 감독을 맡은 에드워드 블레이크먼(Edward Blakeman)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현 바비컨센터 감독인 니컬러스 케니언(Nicholas Kenyon)과 현 알데버러 페스티벌 감독인 로저 라이트(Roger Wright)의 뒤를 이은 블레이크만은 축제 전부터 현대음악 작품의 방송 커미션과 관련해 잡음을 노출했고, 초연작 재청취 시 플랫폼을 어떻게 제한할지 모호한 태도를 취해 비난받았다.

2016년부터 예산의 대폭 축소가 예정된 가운데 등장한 고육책을 언론이 역설적으로 주목한 시리즈는 ‘레이트 나이트 프롬스’였다. 오후 9시부터 2시간가량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그동안 체임버 오케스트라 규모의 고음악 공연을 중간 휴식 없이 이어가는 포맷으로 진행되어왔다. 그러나 올해는 6000명 규모의 공연장에 독주자 한 명을 세우고 바흐 독주곡을 탐구하는, 보기 드문 기획으로 관심을 모았다. 언드라시 시프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알리나 이브라기모바는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공연했고, 9월 5일 요요 마가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공연장 밖에는 대기열에서 입석 대기표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는 관객이 수백 명을 헤아렸다.

1978년 BBC 프롬스에 데뷔한 요요 마는 2011년 이후 4년 만에 오르는 17번 째 프롬스 무대였고 축제 역사상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연주한 건 요요 마가 처음이다. 요요 마는 다섯 살에 암보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공개 연주했고, 1983년 28세에 레코딩을 출반했다. 1997년 재녹음을 시도하면서 무용·비주얼·피겨스케이팅·건축과 협업하는 과정은 5편의 단편 독립영화로 만들어졌다. 요요 마 인생에 바흐 모음곡은 단순한 연주곡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9·11 테러 이듬해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폐허에서, 보스턴 마라톤 폭발 사고의 희생자를 위로하는 자리에서 그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5번 사라방드를 연주했다. 스티브 잡스 사망 1주기에 애플이 배포한 영상에도 요요 마의 1번 프렐류드가 쓰였다.

런던에서의 바흐도 특별했다. 32년 전, 바흐 앨범으로 그래미상을 수상했을 때 들은 ‘가볍고 경박한 미국식 연주’라는 비판은 이제 예순을 바라보는 그에겐 어울리지 않은 비평이다. ‘가디언’지는 “웅장한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각 소품의 개별성을 알게 한 연주”로 ★★★★★을 부여했다. 춤곡의 성격을 리드미컬하게 보이면서 짧은 스트로크로 끊어서 프레이즈하는 보잉주법은 2000년대 초반 쿠프만과 함께한 시대 악기 연구의 자취를 돌아보게 했다. 두 시간 반의 공연이 끝나고 천장에서 쏟아지는 박수를 받는 그는 익살스러운 표정과 경쾌한 발걸음으로 기립에 호응하던 내한 때 모습과는 또 다른 요요 마였다.

사진 BBC 프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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