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세종대왕릉 ‘세종대왕의 꿈, 여민락’

꽃별의 ‘거기서 들려오는 소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1월 1일 12:00 오전

해금 연주자 꽃별이 특별한 여행을 시작합니다. 음악이 탄생한 지역을 여행하며 소리의 근원을 수집하고, 우리 음악이 동시대에 지니는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그녀가 일기처럼 남긴 이야기를 통해 독자 분들이 우리 음악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칼럼을 시작하며 제일 먼저 꺼내고 싶은 말은 ‘더불어 즐기다’이다. 우리 음악이 ‘현재를 살고 있는 나 자신’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수도 없이 해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답을 찾는 것이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이 칼럼을 통해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우리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길 위에서 받은 수많은 영감과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음악과 글에 실을 수 있어 기쁘다.

우리 음악을 한다고 한복을 입고 다닐 것이라는 오해도 받지만, 물론 그렇지 않다. 서양 어법에 의해 지어진 동요를 부르며 자랐고, 지금도 우리 음악만큼 클래식 음악과 재즈를 즐겨 듣는다. 그러니 독자 분들과 음악적 발자국, 혹은 취향이 그렇게 동떨어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어느 날 문득, 대금 소리가 작은 바람이 되어 당신의 귓가에 스치길 빈다.

‘아름다운 것이 무엇일까. 음악을 대체 왜 하는 것일까.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 조국을 떠난 난민, 고통을 겪는 환자들을 돌보거나 파괴되어가는 지구를 보호하는, 급박하고 막중한 일이 있음에도 왜 나는 ‘아름다운 음’을 위해 시간을 바치고 있는가?’

한동안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도 가끔 한다.

‘음악이라는 것이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일까? 과연 ‘예술’이라는 것이, 그 안에 그토록 중요한 무언가를 담고 있는가?’

여전히 이런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산다.

인생의 가장 힘든 순간 떠났던 어느 긴 여행에서 하루에 40킬로미터를 걷고 죽을 것같이 힘들었을 때, 숙소의 작은 침대에 누워 임동혁의 피아노 연주로 ‘골드베르크 협주곡’을 들으며 내내 울었다. 그 아름다움은 마치 천국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음악은 진심으로 나의 몸과 마음을 다독여주고 있었고, 그때 느낀 평화로움을 되새길 때마다 경외심이 인다.

중학교 시절, 국악 중학교에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갔다. 2학년 때 해금을 선택하고 궁중음악과 풍류음악을 먼저 익혔다. 전 바탕을 연주하려면 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유속이 느껴지지 않는 깊은 물처럼 큰 굴곡 없이 흘러가는 우리 음악이 좋은지도, 싫은지도 몰랐다. “코에 파리가 앉아도 꼼짝 않고 연주 호흡을 이어가라”는 가르침을 받으며 열다섯 살 아이는 ‘우리 음악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했다. ‘黃大太夾姑仲蕤林夷南無應(황대태협고중유임이남무응)’ 12개의 한자로 쓰인 정간보를 익히고 외우면서도 그 안에 담긴 뜻은 잘 몰랐다. ‘우리 조상의 음악은 참 어렵고 느리구나’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것이 우리 조상의 음악이 아닌, 나의 음악이 되기까지는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걸렸다. 멀고 어렵게 느끼던 우리 음악을 나의 음악으로 받아들이게 된 결정적 이유는 ‘여민락’이라는 음악 때문이다.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뜻을 품은 음악. ‘여민락’에는 세종대왕의 깊은 사랑이 담겨 있다.

세종대왕. 한글을 만든 과학적 힘도 위대하지만, 모든 백성이 말과 맞는 글을 알게 하겠다는 그 어진 마음은 떠올릴 때마다 뭉클하다. ‘여민락’을 연주하면서 생각한 것은, 외우기 어렵지만 일단 그 파도를 타기 시작하면 막힘없이 음악이 흘러간다는 것이다. 분명한 선율이 존재하고, 그 선율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변주하는 등 형식미를 갖춘 음악과는 전혀 다르다. 반복인 듯 반복이 느껴지지 않고 기승전결이나 클라이맥스 역시 느낄 수 없는 음악이다. 당연히 서양 음악에 익숙한 귀로 듣자면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선입견 없이 듣고 있으면, 긴장과 이완이 없고 어떤 극적인 감정 표현도 없는 음악이 선사하는 평화로움이 어떤 것인지 느끼게 된다.

평화로움. 네 번째 음반을 만들기 전, 나는 폭풍 같은 시절을 보냈다. 감정은 늘 격정적이었고,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두려웠다. 긴 여행을 하면서 마음에 엉켜 있는 끈들을 풀어보려 했지만, 한번 헝클어진 마음은 멀어서 닿지 않았다. 마음의 소리는 귀에 닿지 않았고, 희미해진 삶의 목적 역시 나의 하루하루에 닿지 않았다. 원인이 있던 슬픔이나 미움, 분노의 감정이 더 이상 원인을 기억하지 못하는 채로 커져 더욱 해결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나는 그때 삶과 죽음이 얼마나 가까운지 헤아려보고 있었다. 그런 시간을 겪은 후 음반에 토해내듯 음악을 담았다. 녹음실에서 끝없는 길이 펼쳐졌고, 수없이 싸웠고, 헤매고 아팠다. 참 많은 얘기를 했다. 나의 슬픔이 얼마나 크고 절대적인지 쏟아냈다. 그러고 나니 아팠던 마음이 조금씩 나아졌다.

다섯 번째 음반에 그 모든 감정이 지나간 후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때부터 평화로운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고, 여전히 나의 음악은 평화로움을 향해 걷는다. ‘여민락’에는 그런 평화로움이 담겨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세상에 있는 평화로움이 아니다. 전쟁 같은 시간이 수도 없이 지난 어느 날, 그 무참하고 서글픈 땅 위에 피어나는 그런 평화로움 말이다. 평화로움은 대지를 적시고, 다시 땅은 부풀어 오르고 생명이 자란다. 작은 싹들은 나무가 되고 숲을 이룬다. 세종대왕은 그런 작은 새싹 같은 백성을 아낀 것이다. 그들이 잘 자라나고, 결국 숲을 이루어 살기를 바란 것이다.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가.

‘여민락’에 담긴 평온함, 그리고 생명력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릉에 가보니, 아래서 올려다보는 능도 고요했고, 능에서 바라보는 세상도 고요했다. 죽은 이의 고요와 산 사람의 고요는 다를 것이다. 능 앞에 앉아 한참 세상을 바라봤다. 눈이 부신 세상이었다. 여기서 보기에는 고요하지만 저 안쪽의 삶은 복닥거릴 터였다. 삶은 늘 그렇게 복잡하고 왁자지껄하게 이어지니까.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로 사람들은 역사를 쓰고, 사랑을 전한다. 그가 바라던 ‘백성과 더불어 즐기는 음악’은 ‘여민락’뿐 아니라 낮은 곳으로 흐르는 모든 마음에 담겨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종대왕이 묻힌 영릉(英陵)에서 내려오면 왼쪽으로 소나무 숲이 펼쳐지고, 그 뒤로는 오솔길이 나 있다.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으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표지가 보인다. 열 발자국만 들어서면 숲길은 세상과 아주 멀어진다. 비스듬히 자라난 소나무들, 아무 겁낼 것 없이 커진 향나무와 느티나무들, 그리고 색이 들기 시작한 단풍나무들이 가을볕을 퉁겨내고, 성급하게 떨어진 나뭇잎들에서는 여전히 향긋한 냄새가 났다. 아무도 없는 길에는 나의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천천히 걸을수록 숲은 더 나에게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이 숲에는 온갖 수종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숲은 더 건강하고, 견고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솔길 역시 아무렇게나 구불구불 이어졌다. 수시로 작은 언덕이 나타났다. 지나치게 깎거나 얹어서 낸 길이 아닌, 생긴 대로 만든 길은 걷는 재미도 있고, 몸이 저절로 리듬을 가지게 만들었다. ‘여민락’이나 ‘수제천’ 같은 우리 음악도 그렇다. 지휘자의 호흡을 따라가는 오케스트라와는 개념이 다르다. 지휘자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는 ‘집박’이 있는데, 음악을 시작하라는 박을 한번 치고, 연주자들의 연주가 다 끝나면 세 번 친다. 일단 연주가 시작되면 ‘목피리’라는, 말하자면 악장 같은 피리 주자의 호흡을 모든 피리 주자가 따라간다. 중간에 호흡이 모자라면 서로서로 숨을 나누어 쉰다. 다른 악기들은 피리의 호흡을 연결해주거나 완전히 다른 선율로 섞여들기도 하고, 같은 선율로 밀고 나가기도 한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음악적 굴곡이 만들어진다. 느려지기도 하고, 빨라지기도 한다. 놀라운 건 때때로 음정도 전체적으로 조금 올라간다. 이런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모든 연주자가 자신도 모르게 그 흐름을 타게 된다. 우리 음악에는 그런 특별함이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에서 전율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 음악에서는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호흡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숲길에는 유난히 질경이가 많았다. 거친 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라나 있었다. 질경이는 경쟁을 피하기 위해 척박한 땅을 선택해 자라는 것이라고 한다. 질경이라고 순하고 차진 땅에서 살기 싫었겠는가. 하지만 거친 땅에서 더 강하고, 좋은 성질을 키우며 살아간다. ‘여민락’과 질경이가 저 안쪽에 품은 순응과 생명력은 아마도 같을 것이다.

길의 끝에서 세종대왕릉을 향해 꾸벅 절을 했다. 먼 하늘이 투명할 것처럼 맑았다.

글 꽃별

해금 연주자 꽃별은 경계를 허무는 평화로운 음악을 꿈꾼다. 해금으로 세상의 수많은 삶과 이야기를 노래하는 한편, 국악방송 ‘꽃별의 맛있는 라디오’를 통해 우리 음악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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