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수니스트 유성권, ‘바순’이라는 숨겨진 가능성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6월 22일 1:41 오후

CHALLENGE

바수니스트 유성권

‘바순’이라는 숨겨진 가능성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수석으로 17년. 이제 ‘바순’의 깊고 낯선 세계를 펼친다

 

 

 

13세에 악기를 시작하여 16세에 베를린 국립음대에 입학하고, 21세에 베를린방송교향악단(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 블라디미르 유롭스키)의 수석 주자로 자리했다는 이력을 처음 들었을 때, 먼저 떠오른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인가’하는 놀라움이었다. 1988년생 바수니스트 유성권이 바로 그 행보의 주인공. 준비된 천재와 같은 빠른 성장의 이면에는 남다른 음악적 감각과 더불어, 악기를 향한 집요한 몰입과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리사이틀을 앞두고 그를 만나, 바순의 음색을 닮은 깊고 온화한 대화를 나눴다.

21세에 수석이 된 그가 깨달은 음악의 무게감

초등학교 6학년부터 바순을 배웠는데, 어떤 계기로 바순을 배우고 어떤 매력을 느꼈기에 전공자의 길을 걷게 되었나요?
본격적으로 바순을 잡기 전,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오래 배웠습니다. 두 악기 모두 대중의 사랑을 받는 매력적인 악기지만, 당시의 저는 스스로 연습할 만큼의 재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그러던 중 학교에서 리코더를 불면서 처음으로 관악기의 매력에 끌렸습니다. 그 관심이 자연스럽게 바순으로 이어졌고, 바순 특유의 깊고 따뜻한 음색에 강하게 이끌렸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먼저 찾고 싶고, 계속 붙잡고 싶은 악기였어요.

16세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어린 나이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요.
스승이신 김병엽 선생님께서 중학생이던 제게 “유학을 준비해보는 게 어떻겠냐” 먼저 권유해주셨습니다. 당시 유학이라는 말 자체가 막연히 설레게 들렸고, 음반으로 듣던 연주자들이 있는 독일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물론 막상 가보니,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상상하던 유학 생활과는 꽤 다르더라고요.(웃음) 낯선 환경에서 혼자 버티고 적응해야 하는 시간도 있었고, 음악적으로도 훨씬 치열한 세계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지금의 저를 만든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불과 21세에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수석이 되었고, 이후 종신 수석이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주요한 커리어를 이룬 셈인데요. 동시에, 남모를 부담이나 어려움도 적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유성권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젊은 음악학도들에게 조언을 남겨준다면?
요즘은 ‘지금까지 악기를 불고 있어서 다행이고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주위를 보면 이른 나이에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빠르게 자리를 잡는 연주자들도 많지만, 기대와 압박을 이기지 못해 악기를 내려놓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온 이 기회를 잘 이겨낼 힘이 충분한지, 그리고 이 일을 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어려움들을 건강하게 견뎌낼 수 있는지입니다. 누군가보다 빨리 앞서나가는 것보다, 언젠가 찾아올 자신의 순간을 위해 스스로를 단단히 다져두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바순의 새 목소리를 발견하는 즐거움

바순을 떠올리면 흔히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의 도입부를 생각하게 되죠. 혹시 바순의 매력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다른 작품이 있을까요?
말씀하신 차이콥스키와 스트라빈스키의 작품 역시 제가 사랑하는 곡입니다. 바순이라는 악기가 어떤 음색과 성격을 지닌 악기인지 관객들에게 직접 들려줄 수 있는 곡들이니까요. 모차르트의 작품과 베토벤 교향곡 안에서의 바순도 참 매력적입니다. 한 곡을 꼭 추천해 드리자면,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에서 피아노와 주고받는 바순의 멜로디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바순은 독주 무대가 많지 않은 악기입니다. 잘 알려진 독주 레퍼토리가 제한적이라는 점도 큰 이유일 텐데요.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12월에 세계초연한 류재준의 신작 소나타는 상당히 뜻깊은 작업 아닐까 싶습니다.
저 역시 바순 레퍼토리에 대해서는 늘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작품도 많고, 앞으로 새롭게 쓰여야 할 작품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류재준 작곡가가 바순을 위한 곡을 써주신다고 했을 때 무척 기뻤습니다. 연주자로서는 새로운 작품의 탄생에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큰 자부심이니까요. 기존 레퍼토리를 발굴하는 일과 새로운 작품을 소개하는 일을 함께 이어가고 싶습니다.

 

낯선 화음과 소리에 윤기를 내다

다가오는 리사이틀의 프로그램을 보면, 전반부는 앙리 뒤티외(1916~2013)와 윤이상(1917~1995)의 현대 작품으로 긴장도를 올리고, 후반부는 슈만과 생상스의 작품으로 마무리합니다. 주요 바순 레퍼토리로서 무게감이 상당한데요.
사실 저는 오래전부터 첫 리사이틀에서 꼭 윤이상 선생님의 ‘모놀로그’를 연주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중심에 놓고 앞뒤의 프로그램을 어떻게 구성할지를 오래 고민했어요. 익숙한 멜로디와 리듬도 있지만, 동시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화성과 바순의 낮은음부터 높은음까지 전체적인 펼쳐지는 작품이거든요. 가장 큰 고민은 ‘과연 가능한 프로그램인가’하는 점이었습니다.(웃음)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그래서 더 끝까지 해보고 싶었습니다.

외젠 보자(1905~1991)와 로제 부트리(1932~2019)라는 두 프랑스 작곡가의 작품도 연주합니다. 보자는 조금 앞 세대 작곡가로서 낭만적이지만, 부트리는 강렬한 불협화음과 리듬으로 이목을 사로잡습니다.
보자의 작품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입니다. ‘레시(Récit)’에서는 말하듯 이야기를 열고, ‘시실리엔(Sicilienne)’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펼치며, ‘롱도(Rondo)’에서 빠른 템포로 에너지를 끌어올립니다. 반면, 부트리의 작품은 훨씬 긴장감이 심하죠. 다양한 리듬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피아노와 바순이 서로 대화하듯 주고받는 순간들도 많습니다. 이 곡을 준비하면서 특히 흥미로웠던 건, 불협화음 역시 어떤 순간에는 완벽한 화음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두 작곡가 모두 프랑스 작곡가이기에, 이 연주회 안에서 어떤 이야기로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파이플랜즈

유성권(1988~) 베를린 국립음대(에카르트 휘브너 사사)에서 수학했고, 2009년 21세에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수석으로 입단해 재직 중이다. 베를린 필하모닉·라이프치히 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 등에서 객원으로 활동하며, 2014년부터 베를린 예술대학(UdK)에 출강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유성권 바순 리사이틀(피아노 문정재)
6월 26일 오후 7시 30분 원주시 카페 플레이리스트
7월 1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
로제 부트리 ‘바순과 피아노를 위한 충돌’, 윤이상 ‘모놀로그’,
뒤티외 ‘사라방드와 행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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