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필하모닉 마스터 시리즈 3 ‘박쥐’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월 1일 12:00 오전

12월 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기획·연출·연주 삼박자가 선사한 악흥의 순간

구자범에 이어 성시연 체제로 이어지는 경기필하모닉의 약진이 눈부시다. 평단은 국내 정상급 오케스트라 가운데 하나로 경기필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비단 일취월장한 실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타 악단이 구태의연한 프로그램으로 10년, 20년 전과 비슷한 공연을 나열하는 동안 경기필은 설득력 있는 기획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경기필의 예산이 서울시향이나 KBS교향악단을 따라잡기에는 버거울 터. 경기필은 스타 객원지휘자나 협연자 없이도 청중에게 소구할 수 있는 공연 레퍼토리로 앞서 나간다. 물론 단원들의 피나는 리허설이 뒷받침된 결과다. 여기에 탄탄한 금관악기군이 앙상블의 안정에 중요한 몫을 담당했다.

2012년 1월 경기필의 신년음악회는 훔퍼딩크의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모음곡과 쳄린스키의 교향시 ‘인어공주’로 수놓았다. ‘바그너의 후예들이 들려주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타이틀부터 신선했다. 그리고 지난 12월 11일, 경기필이 세 번째 마스터 시리즈로 한 해를 마무리하며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 갈라, 왁스만 ‘카르멘 환상곡’,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을 마련했다. 악흥과 진득한 음악성을 동시에 추구한, 4년 전 신년음악회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느낀 시간이었다.

연출가 이소영이 콘서트홀로 옮겨온 ‘박쥐’의 무대는 매력적이었다. 레드 카펫이 무대를 가로질렀고, 객석 왼편으로 붉은 휘장을 둘러 축제 분위기를 돋웠다. 서곡에서부터 팽팽한 사운드가 성시연의 다이내믹한 지휘와 맞물려 왈츠의 나긋나긋함과 정연함, 그리고 화려함까지 다층적인 구도로 예술성을 입혔다. 아이젠슈타인과 팔케를 노래한 바리톤 안갑성과 김영주는 극의 분위기에 맞게 부파적인 목소리를 마음껏 뽐냈고, 로잘린데와 아델레 역의 소프라노 박은주와 이현은 한정된 동선임에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테너 김범진의 활약이 발군이었다. 1막에서 알프레드의 아리아 ‘마셔요, 내 사랑, 빨리 마셔요’의 사랑스러운 미성으로 객석을 감전시켰다.

2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은 여전히 날 선 칼처럼 녹슬지 않은 테크닉을 선보였다. 각양각색의 주법을 구사하며 ‘카르멘 환상곡’의 난삽한 음표들을 하나하나 제압했다. 경기필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으로 한 해 동안 갈고닦은 음악성을 선보였다. 호른과 바순이 울부짖는 1악장 도입부터 비극이 감지됐다. 작곡가의 고통은 때로 몸부림치듯 격렬했고, 사이사이의 멜랑콜리는 더없이 서정적이었다. 2악장 오보에 독주가 끝나고도 앞서 가지 않고 넉넉한 템포를 견지한 성시연의 모습에서 여유로운 ‘마에스트라’의 연륜이 감지됐다.

3악장, 현악기의 피치카토는 묵직했고 마침내 4악장에서 관악기가 완전연소하며 민중의 축제를 극대화했다. 러시아 민요 ‘들에 서 있는 자작나무’를 노래하는 목관은 애써 담담했다. 질감이 느껴지는 사운드가 곳곳에서 번득였고, 2시간 30분에 걸친 음악의 끝은 화려하게 마무리됐다.

사진 경기도문화의전당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