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1세기형 비르투오소의 탄생
클래식 음악계의 슈퍼스타 랑랑의 독주회가 2015년 12월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내한 연주는 2012년 11월 28일 김대진/수원시향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 협연 후 3년 만이며, 독주로는 5년 만이다.
2003년, 랑랑이 처음 내한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생경한 리듬과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해석을 들려주는 가운데 남다른 초절기교가 빛을 발했다. 그저 테크닉이 뛰어난 피아니스트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속단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후 랑랑은 자신의 음악을 급속도로 연마해나갔고, 내한 때마다 껍질을 깨고 새로 태어난 듯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속 테크닉을 통한 새로운 음향과 신선한 감수성의 폭발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했다. 랑랑이 기준에 연연하지 않는 진정한 비르투오소로 태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내한 공연 프로그램은 최근 발매한 ‘파리의 랑랑’의 레퍼토리인 차이콥스키 ‘사계’ 전곡과 쇼팽 4개의 스케르초로 구성했고, 두 곡 사이에 바흐의 ‘이탤리언 협주곡’을 배치했다. DVD의 영상은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촬영했으며, 음반은 바스티유에서 녹음했다. 광채가 작열하는 음색과 초절기교를 바탕으로 낯설 정도의 새로운 감흥을 불어넣은 결과물은 이번 공연에 대한 호기심을 높였다.
벽력같은 환호와 함께 콘서트홀로 들어선 랑랑. 부산 공연을 마친 뒤라 더욱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콘서트 내내 특유의 과도한 몸짓과 스타다운 매너로 음반과는 확연히 다른 템포와 긴장감을 선사하는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 고도의 테크닉과 팽팽한 리듬,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낯선 서정성을 내뿜으며 매순간 즉흥적인 표현과 흡인력 높은 전개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특히 ‘사계’ 중 5월 ‘별이 빛나는 밤’과 6월 ‘뱃노래’의 아름다움은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을 통해 듣던 정서와 사뭇 달랐다. 10월 ‘가을의 노래’나 12월 ‘크리스마스’의 표현력과 8월 ‘추수’ 및 11월 ‘트로이카’의 터치와 리듬도 흥미로웠다.
쇼팽 스케르초는 랑랑이 비르투오소로서 자리매김했음을 알려준 증거였다. 연주마다 각기 다른 해석을 선보이는 전통적인 비르투오소의 연주처럼 음반과 전혀 다른 음악을 들려줬다. 시시각각 테크닉과 포인트를 변화시키며 음악의 변화무쌍함을 보여준 동시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음향 효과, 새로운 내성과 프레이징의 강조, 경이로운 트릴과 장식음의 신비로운 효과, 장대한 클라이맥스와 19세기적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광포한 코다에 이르기까지 자신만의 개성을 환원한 음악으로 청중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아카데믹한 피아니즘과는 상반된, 그리고 전통적인 비르투오소의 개념을 뛰어넘은 21세기형 비르투오소의 모습을 선보인 연주였다. 랑랑이 앞으로 보여줄 또 다른 파격과 흥분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사진 마스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