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기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2월 1일 12:00 오전

김씨 집안 혈액형은 ‘베토벤’형

김대진·김화라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
2015년 12월 27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피아니스트 김대진’은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과 모차르트 소나타(1998)를 비롯해 쇼팽(1999)·베토벤(2000)·모차르트(2001~2004)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를 가졌고, ‘지휘자 김대진’은 수원시향과 베토벤(2010)·차이콥스키(2013)·시벨리우스(2015) 교향곡 전곡 연주를 가졌다. 그 피가 대물림되어 딸 김화라에게 갔음에 분명하다. 부자·부녀·모자·모녀는 물론 고부가 함께 한 공연은 간간이 접했으나 가족이 함께 하는 전곡 연주는 이번에 처음 접했다.

2015년 12월 20일에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1·2·6·7번을, 26일에는 3·4·10번을, 27일에는 5·8·9번을 선보였다.

필자가 본 날은 마지막 날. 긴 여정이었는데도 김화라는 쌩쌩했다. 무대에서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 아버지를 닮았다. 딸이 아버지의 비호를 받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소나타 5번 ‘봄’의 1악장과 2악장에서 김화라의 선율을 타고 회춘(回春)한 이는 김대진이었다. 바이올린은 악보에 충실했고, 피아노는 경쾌하게 흘렀다. 하지만 아쉬운 점. 대중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소나타 ‘봄’ 연주 중에 호연으로 기억되는 연주에는 대부분 정밀한 음정 사이에 어떠한 들뜸과 가벼움이 배어 있었다. 특히 1악장과 4악장에서. 김대진은 이런 입체감을 입히는 데 도가 텄으나, 김화라는 그런 아버지에 비해 활과 현에 ‘봄’의 기온을 제대로 녹이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있으랴. 김화라는 소나타 8번과 전곡 연주의 대미를 장식한 소나타 9번 ‘크로이처’에서 봄의 기운을 물씬 녹여 넣었다. 소나타 8번 중 빠른 8분의 6박자인 1악장은 경쾌하게, 미뉴에트풍인 2악장은 유려하게 청중에게 흘려보냈다. 9번 ‘크로이처’에선 음악적 수압이 센 베토벤의 세계로 부녀가 서로를 이끌었다.

앙코르는 첫날 선보인 소나타 6번의 2악장. 아다지오로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그들이 함께 걷고 노력해온 지난날들을 느낄 수 있었다.

악성(樂聖)은 지하 깊숙한 곳, 그 누구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곳에 산다. 깊이를 뚫고 내려가 만난 그는 그토록 힘겹게 찾아온 음악가에게 거울 하나 내어줄 뿐이다. ‘이것으로 너의 세계를 보아라’라며. 이번을 계기로 자신의 음악적 자아와 정면으로 마주한 김화라의 행보에 기대를 걸어본다. 김대진은 1998년에 김남윤과 함께 한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를 30년이 흐른 2018년에 다시 해보면 어떠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때는 김화라가 함께 해야 할 것이고. 송현민

사랑의 앙상블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
2015년 11월 21일~ 2016년 2월 14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는 해마다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며 사랑받아온 작품이다. 프랑스 국민작가로 불리는 마르셀 에메(Marcel Ayme) 원작의 이 작품은 기발한 상상력과 엉뚱한 발상으로 ‘몽마르트르의 언덕의 사랑예찬’이라는 부제만큼이나 아름답고 매력 넘친다. 이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 음악가 미셀 르그랑(Michel Legrand)의 아름다운 선율이 더해지면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듀티율은 어느 날 벽을 통과해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을 얻으면서 평범하기만 하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뀐다. 그러면서 그는 프랑스 전체가 들썩이는 사건의 주인공으로 변해간다.

‘벽을 뚫는 남자’는 1940년대 프랑스 몽마르트르를 배경으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기발한 전개로 120분 동안 유쾌하게 펼쳐진다. 이 작품은 대사 없이 음악으로만 극을 진행하는 형식으로 그 어떤 뮤지컬보다 음악이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4명의 악기 연주자로 구성된 소규모 밴드 속에서 건반, 클라리넷, 색소폰, 플루트, 실로폰 등 여러 가지 악기의 앙상블은 이 작품을 더 풍성한 무대를 만들어냈다. 색다른 안무 역시 만화적 캐릭터에 공감을 불어넣는 구실을 했다. 배우들도 각자 자신의 춤을 캐릭터적으로 표현하면서 각 씬의 음악적 특징을 잘 살려냈다. 거기에 더해진 몽마르트르 거리를 재현한 무대와 조명은 그 시대의 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 작품에는 그래서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11명의 배우가 23인 역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배우들을 전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각각의 극적 변신이 호기심과 즐거움을 동시에 안겨주기 때문이다.

듀티율 역의 유연석은 배우 내면에서 느껴지는 선한 매력이 작품의 캐릭터 속에 잘 스며들어 어리숙하지만 용기 있는 듀티율의 진심이 잘 전달되었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가 돋보인 상대 여자 주인공 이사벨 역의 배다혜는 첫 뮤지컬 데뷔였던 유연석 노래와 안무의 부족함을 파트너로서 잘 채워주며 근사한 앙상블을 이뤄냈다.

아름다운 음악과 독특한 스토리. 엉뚱한 발상과 유머가 가득한 무대에서 듀티율이 시종일관 벽을 뚫으며 그동안 넘지 못하던 세상의 벽들을 넘나들 때마다 관객은 환호하고 즐거워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마음속에도 존재하는 벽들, 그것을 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을까? 수많은 벽으로 말미암아 부딪혀보지도 않고 포기하고 말았던 지난날 우리네 사랑들. 벽이 되어 그 곳에 갇힌 그들의 사랑이 그래서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간절한 사랑이 깊은 여운으로 남아 한 겨울의 스산한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져준 밤이었다. 국지연

임현정의 당찬 솔직함

임현정 피아노 리사이틀
2016년 1월 12일 재능문화센터 콘서트홀

때때로 연주자들의 자극적인 해석에 반감을 느낀다. 작품에 대한 사유가 부재한, 그저 기교만 보여주는 연주라면 더욱 그러하다. 피아니스트 랑랑의 경우 청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비르투오소적 작품을 많이 연주한다고 한다. 숨 막히게 몰아치는 연주 끝에 터져 나오는 청중의 환호를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피아니스트 임현정은 유튜브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파리에 거주하는 그녀가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위해 유튜브에 올린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영상이 화제가 된 것이다. 실제로 그녀가 연주하는 ‘왕벌의 비행’은 정말 놀랍다. 민첩한 양손 진행과 넘치는 힘은 영상을 통해 오롯이 느껴진다. 2012년에는 “그렇게 좋아하는 베토벤인데, 첫 음반에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담는 건 베토벤에 대한 배신”이라며, EMI 클래식스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음반을 발매했다. ‘베토벤 스토커’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베토벤에 대해 면밀히 탐구했다는 그녀. 당혹스러울 정도로 파격적인 연주에서 본인 해석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 전달됐다. 그 대담함은 2014년 발매한 라벨·스크랴빈 음반에서도 여전했고, 고전적 틀에서 벗어나니 한결 편해 보였다.

임현정의 피아노 리사이틀을 보기 위해 재능문화센터로 향했다. 지난해 10월에 개관한 재능문화센터 콘서트홀은 소규모 공연을 지향하는 177석 규모의 콘서트홀이다. 임현정은 쇼팽 발라드 1~4번, 라벨 ‘밤의 가스파르’, 드뷔시 ‘기쁨의 섬’을 선보였다.

임현정의 연주는 자극적이다. 당혹스럽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작은 공간에 가득 찬 강렬한 음향은 기존에 듣던 쇼팽 발라드와는 극하게 달랐다. 빠른 템포로 일괄한 큰 틀 안에 작곡가의 의도를 치밀하게 계산해 넣은 고민이 느껴졌다. 다만 거침없이 진행되는 속도감 때문에 발전부의 변화가 산만하게 와 닿았다.

임현정은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에서 진면목을 발휘했다. 첫 악장 ‘물의 요정’의 신비한 선율은 감각적으로 고조됐고, 쓸쓸함이 느껴지던 ‘교수대’를 지나, 고도의 기교가 요구되는 ‘스카르보’에서 색채를 부각시켰다. 기세를 이어 드뷔시 ‘기쁨의 섬’에서도 리드미컬한 진행으로 생동감을 줬고, 음표 하나하나에 힘을 넣는 과감함을 보였다.

이번 리사이틀을 통해 자신만의 음악 스타일을 구축해나가는 임현정을 마주했다. 임현정의 본능적인 움직임은 길들일 수 없는 야생마 같았다. 그녀의 자극적인 해석이 ‘거부감’이 아닌 ‘신선함’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작곡가의 의도 속에 개성을 뽑아내려는 통찰력 덕일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임현정은 말했다. “예술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것이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작곡가도 존중해야 하지만, 자신을 존중하면서 가식적인 연주가 되는 걸 피해야 하죠.” 자신의 음악관을 연주에서도 솔직하게 풀어내는 점이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매력 아닐까. 장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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