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트홀 신년음악회 선우예권 피아노 독주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2월 1일 12:00 오전

2016년 1월 7일
금호아트홀

단정히 건넨 첫인사

무대에 오른 사람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 진실된 마음으로 보내는 응원과 박수다. 팬이라는 단어에는 여러 의미와 종류, 층이 존재하겠지만 아이돌 그룹에 환호를 보내는 조직화된 팬덤이나, 내 마음의 우상을 무작정 좋아하고 존경하는 심리나 결국 그 중심은 ‘사랑’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오랜 시간 꾸준히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바라보며 그 성장과 아픔, 성공을 함께하는 것이 더 바랄 나위 없는 팬심이다.

클래식 음악계에도 이렇듯 바람직한 팬덤이 형성되고, 청중이 연주자들을 위해 다양한 응원을 펼칠 수 있는 음악회가 나타나고 있어 반갑다. 4년째 상주 음악가를 선정해 그들이 다양한 가능성을 펼칠 수 있도록 조력하는 금호아트홀의 기획은 그중 대표 격이다. 올해 선정된 연주자는 미국과 유럽의 콩쿠르와 페스티벌 등에서 선보인 탁월함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다.

선우예권은 연주자가 가져야 할 미덕과 해석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음악적 무기가 무궁무진한 젊은이다. 무대 위 집중력과 제어력, 단단한 질감의 음상을 만들어내는 능력과 견실한 테크닉을 구사한다. 거기에 프레이즈를 조절하는 균형 감각이 매우 예민하여, 즉흥성을 보이더라도 과도함의 선을 넘지 않아 단정하고 규범적인 건강함을 전달한다. 흘러넘칠 듯 풍부한 그의 재능은 사실 ‘양날의 검’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선택하고 사용해야 한다. 상주 음악가로서 첫 무대임을 의식해서인지, 그의 선택은 신중함과 모범적 정서, 보편타당한 악상 전개와 중용의 템포 감각 등에 집중됐다.

알프레트 그륀펠트가 편곡한 요한 슈트라우스 ‘박쥐’ 모음곡은 20세기 초 작곡된 빈 왈츠 편곡 중 독보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곡이다. 선우예권이 구사한 밀도 짙은 음상과 스케일 큰 리듬감,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다이내믹 폭의 변화 등은 작품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현란한 피아니즘과 연주자 자신만의 연출을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됐다. 이어지는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C장조 K330은 갈랑 스타일의 전형을 보여주는 곡이다. 악보에 지시된 반복 기호를 꼼꼼히 지키며 프레이징의 빈 곳을 촘촘히 메운 선우예권의 해석은 작품을 진지하고 묵직한 품격의 곡으로 바꿔놓았다. 의식적으로 설정한 듯한 모노톤의 표현 역시 세 악장 전체를 감싸는 고급스런 풍미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는 정확하면서도 호쾌한 테크닉과 타건, 외향적으로 연출된 표현과 동시에 세심하게 절제된 아고기크의 균형 있는 배열로 성공을 거둔 호연이었다. 작곡가 특유의 수다스러운 리듬과 텍스트, 변덕스런 오케스트레이션 묘사와 이와 대조적으로 피아노 편곡에서만 맛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루바토 등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프로그램의 피날레였던 라벨의 ‘라 발스’는 흥청망청 풀어놓고 즐기는 ‘광란의 왈츠’이기보다 말쑥하고 단정한 느낌이 강했다. 사려 깊게 처리된 왈츠 리듬의 스윙감과 꼼꼼하게 채워나간 텍스트의 충실한 구현, 박력 있는 다이내믹의 점층적 연출 등은 흠잡을 데 없었으나, 새삼 라벨이 구상해놓은 음표들의 교묘한 조합과 그 해체 과정의 난해함을 생각하게 하는 연주였다.

선우예권이 풀어낼 다양한 음악적 성과와 발전 과정을 지켜보는 특권은 일 년 동안 금호아트홀을 찾아와 그의 미래를 응원할 팬들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일 것이다. 슈베르트·프로코피예프 등으로 이어질 무대에서 그가 꺼내놓을 새로운 무기와 잠재력이 어떤 종류일지 기대된다.

사진 금호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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