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필립 글래스

음악이 이끄는 삶의 조각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3월 1일 12:00 오전

13년 만에 내한하는 일흔아홉의 그가 우리에게 보여줄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

오래전, 작곡을 공부하던 친구가 ‘현대음악 입문자용’이라며 건넨 음반이 기억난다. CD를 플레이어에 걸자 잔잔한 듯 영화음악인가 싶다가도 무한반복 선율 속에서 ‘정신줄을 놓은’ 기억이다. 단순하게 반복되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길을 내는 변주. 기호학을 전공한 내게 분석해보고 싶은 대상이자, 쉽게 풀고 싶지 않은 그런 느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굳이 이런 이야기가 아니어도, 이 페이지를 펼친 사람은 필립 글래스에 관한 크고 작은 개인적인 기억이 있거나, ‘미니멀리즘’에 심취해 있거나, 또는 앞선 것들을 새로운 기억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 아닐까 싶다.

음악과 이미지에 대한 지속적인 실험

필립 글래스의 음악과 이미지의 만남은 그의 첫 출세작인 로버트 윌슨 연출의 ‘해변의 아인슈타인’(1976)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10월 광주 아시아예술극장에서 올려지기도 한 이 단막 오페라는 아인슈타인의 삶과 이론을 별다른 서사 없이 음악과 이미지, 무용을 통해 드러낸 5시간짜리 작품이다. 아비뇽 페스티벌 초연 후, 뉴욕 메트오페라에서 재공연되면서 필립 글래스의 이름은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광주에서 공연을 직접 관람한 관객 중 일부(혹은 상당수)는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충격과 당황스러움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1981년 네덜란드 오페라 위촉으로 자신의 두 번째 오페라 ‘사티아그라하’에서 간디·톨스토이·타고르·마틴 루터 킹 주니어를 다뤘고, 이듬해 슈투트가르트 오페라 위촉으로 이집트 파라오 아크나텐을 주로 한 오페라 ‘아크나텐’을 제작하면서 역사 속 인물을 다루는 ‘초상 3부작’을 완결 지었다. 이 작품들에서 필립 글래스는 산스크리트어, 고대의 바빌론·히브리·이집트 언어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동시에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을 선보였다.

그는 역사 속 인물을 주제로 한 오페라를 지속적으로 써왔는데, 탐험가 콜럼버스(‘여정’, 1990), 바스코 다 가마(‘흰 까마귀’, 1991), 천체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케플러’, 2009), 월트 디즈니(‘완벽한 미국인’, 2011)가 바로 그것이다.

20세기 예술, 영화를 향한 무한한 애정

영화음악 작곡가로서 그의 첫 이력은 1978년 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갓프리 레지오에게 콰씨 3부작-‘균형 잃은 삶’ ‘변형 속의 삶’ ‘전쟁 속의 사람’-의 영화음악을 제안받으면서 시작됐다. 환경 파괴와 기계에 매몰되는 현대사회의 비극을 그린 작업물을 보면 대사, 내레이션, 자막 한 줄조차 없는 영화의 영상을 이끄는 것은 오직 필립 글래스의 미니멀리즘 음악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래서일까, 이 시기는 그로 하여금 음악과 영상의 상관관계를 두고 그만의 철학을 확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필립 글래스의 초창기 영화 작업 이력을 보면 다소 독특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오페라를 통해 어느 정도 안정된 명성을 획득했음에도 메이저 상업영화보단 신인감독의 실험영화나 오컬트·호러·다큐멘터리 등 소위 ‘B급 영화’를 더 선호했다는 점이다. 그가 참여한 영화들은 흥행과 상관없이 대중에게 명작으로 손꼽히게 됐는데, 그런 면에서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트루먼 쇼’(1998) ‘디 아워스’(2002) 또는,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2013)’ 같은 작품들은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어느 쪽이든 필립 글래스의 영화음악 작업은, 20세기에 새롭게 탄생한 예술 장르를 향한 애정에서 온전히 비롯됐다. 그는 “100년간 영화는 새로운 종류의 문학을 탄생시켰다. 과거 역사소설, 연극, 시가 새로운 음악극의 바탕이 되었듯 라이브 음악, 실험극, 무용, 그리고 오페라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장르가 바로 영화다”라는 말로 특히 장 콕토 영화에 바탕을 둔 자신의 작업의 발상적 근거를 이야기했다.

반복 구조의 음악을 쓰는 작곡가

1937년 볼티모어에서 태어나 라디오를 수리하며 음반점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필립 글래스는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재즈·록·비밥 등 다양한 장르 환경에 노출된 상태로 성장했다. 여섯 살에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가 시카고 대학에서 수학과 역사학을 공부한 것 역시, 줄리아드 음악원 입학 전에 거쳐야 했던 일종의 관문이었으리라. 아인슈타인이든 갈릴레오든 그가 내놓는 작품에 대한 상당수 아이디어의 연관성을 떠올려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줄리아드 졸업 후 1964년 파리로 건너가 작곡가이자 지휘자이며 많은 음악가를 배출한 전설의 스승 나디아 불랑제를 사사하면서 그의 음악 세계는 급진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다. 스스로 미니멀리스트이기보다 “반복 구조의 음악을 쓰는 작곡가”로 불러달라는 필립 글래스가 인도 음악의 반복 구조 리듬을 통해 미니멀리즘의 근간을 확립해나간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하지만 ‘해변의 아인슈타인’이 브로드웨이에서 흥행하기 직전까지 그는 택시 운전과 급사 일로 생계를 이어가며 무명 작곡가로 활동했다. 그는 10개의 교향곡 외에도 협주곡, 현악 4중주, 솔로극 등을 작곡하는 데에도 힘을 쏟았다. 특히 지인인 지휘자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가 필립 글래스의 상당수 교향곡을 위촉하고 초연했다. 또한 글래스는 1970년대 데이비드 보위와 브라이언 에노의 음악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교향곡 재료로 삼기도 했다.

필름 오페라로 피어난, 장 콕토에 대한 오마주

2003년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균형 잃은 삶’ 이후, 필립 글래스가 영상과 음악의 혁신적인 결합을 시도한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1946)를 들고 13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반가운 마음도 크지만 79세 노장을 한국에서 마주하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묘하게 교차된다(그는 3월 27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자신의 피아노 작품들을 직접 들려주며 관객의 대화 시간을 갖는다).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는 한마디로, 앙상블과 영화를 위한 오페라다. 95분간 흑백 오페라를 실황으로 감상한다는 설명도 가능하겠다. 대사·음악 등 영화 속 모든 소리가 완전히 제거된 장 콕토의 흑백영화가 무대 위 스크린에 상영되고, 필립 글래스가 영화를 위해 작곡한 음악을 필립 글래스 앙상블이 연주한다. 여기에 소프라노·메조소프라노·테너·바리톤이 영화 속 배우들의 대사에 맞춰 노래하는 형태로 공연이 이뤄진다. 필립 글래스는 ‘장 콕토 3부작’이라 부를 만큼 감독과 그의 작품에 심취했는데, ‘미녀와 야수’ 외에도 장 콕토의 영화 시나리오를 리브레토(오페라 대본)로 사용한 첫 작품 ‘오르페’(1993)와 무용과 동명의 영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무용극으로 탄생한 ‘앙팡 테리블’(1996 완성)이 바로 그것이다.

“장 콕토 영화 중에서도 ‘미녀와 야수’는 처음엔 단순한 동화로 보일지 모르지만, 관점을 조금만 달리하면 결국 이 영화가 예술 창작의 본질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의 핵심은 언제나 명확하다. 창작 과정, 바로 그 자체다. ‘미녀와 야수’에서의 여정은 무의식을 통해 창작의 장소로 옮겨가는 과정이 된다. 즉, 예술가가 자기 자신이 되는 그 과정 말이다.”

생의 전부를 창작에 몰두하는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1946년 필립 글래스의 이러한 관점이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이야기는 분명하다. 한계를 넘어, 내면의 연금술을 통해 유일무이한 자신의 결과물 앞에 다다르는 과정의 고찰, 또는 그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 그대로다.

“야수는 그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지만, 그 자신이 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창의적인 작업을 하려고 할 때 놓이는 상태 아닐까? 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이 되는가?”

장 콕토의 영화 ‘미녀와 야수(La Belle et la Bete)’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 영화감독, 화가, 철학자로 활동하며 20세기 초 ‘르네상스맨’으로 불린 장 콕토(Jean Cocteau)가 장 마리 르프랭 드부몽이 쓴 18세기 동명의 동화를 1946년 영화화했다.

장 콕토의 ‘미녀와 야수’ 하면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라기보다 한 편의 시처럼 해석한 로맨틱 판타지 영화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CG나 고도의 분장술이 발전하기 훨씬 이전에 촬영된 것임에도 트릭 샷이나 극도로 섬세한 촬영과 최면에 걸린 것처럼 꿈꾸는 듯한 인물들의 움직임 등으로 몽환적이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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