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쇼팽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 갈라 콘서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3월 1일 12:00 오전

2월 2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작은 영웅’의 고뇌를 지켜줄 때

‘조성진 효과’는 아직까지 국내 클래식 음악계를 강타하고 있었다. 빈 필도, 베를린 필의 내한 공연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피아노 한 대만으로 드넓은 2,400석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매진시킬 수 있는 피아니스트가 과연 몇이나 될까?

저녁 시간도 아니었다. 2월 2일 오후 2시 제17회 쇼팽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 갈라 콘서트가 열린 예술의전당은 합창석까지 가득 차, 때 아닌 축제 분위기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콩쿠르 결선에 진출했던 6명의 동량지재(棟梁之材)가 다시 한 번 모였다. 첫 무대를 장식한 드미트리 시시킨은 초창기 모스크바 음악원 피아노 스쿨을 이끈 거장 네이가우스의 애제자였던 비르살라제를 사사한 러시아 피아니즘의 적자다. 스케르초 2번은 그의 손끝에서 감정적으로 흐르지 않고 절도 있고 강력한 타건으로 마무리되었다. 표면적으로는 무색무취해 보일 수 있으되, 선을 넘지 않는 절제미에서 향후 무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였다. 전주곡 가운데 5곡을 발췌한 에릭 루는 탁월한 선곡으로 쇼팽 음악의 진수를 선보였다. 4번 E단조, 오른손의 선율선보다 반음계적으로 변화하는 16분음표의 집요한 화음 연타가 압권이었던 왼손은 탁월했다.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3위에 오른 케이트 리우는 협주곡 1번에서 남성미 넘치는 거대한 스케일로 청중을 몰입하게 했다. 또한 느린 로만체 악장의 중간부, 독주 피아노로 노래하는 분산 화음은 갈고닦은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났다. 협주곡 2번을 연주한 샤를 리샤르 아믈랭은 조성진과 치열한 경합을 벌인 2위 입상자답게 시적인 표현은 물론 젊은 쇼팽의 질풍노도의 웅혼한 기상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치며 박수를 받았다.

드디어 조성진, 대중가수의 콘서트에서나 들릴 법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녹턴의 분위기를 만끽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그도 고국에서 이토록 많은 청중 앞에서 연주하기는 처음이었고 부담을 가졌을 터다. 하지만 필자가 공연장에서 평소에 보던 조성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만큼 담담하고 냉정했다. 중간부에서는 쇼팽 연주자들이 흔히 간과하는 광기(狂氣)마저 뿜어 나오며 전율을 느끼게 했다.

난곡으로 꼽히는 ‘환상곡’은 10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서사시적 웅혼함에까지 도달했다. 이른바 2개의 행진곡 사이로 난맥처럼 얽히고설킨 음표들은 정연하게 제압되었다. 조성진은 놀랍게도 악보에 지시된 것 이상의 ‘템포 루바토’를 결코 넘지 않았다. 스타니슬라프 부닌조차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망가졌던, 쇼팽 음악의 필요악이다. 조성진은 스스로를 철저하게 억누르며 소위 ‘오버’하지 않고 진중했다. 이는 자신의 ‘비밀병기’와도 같은 폴로네즈 6번 ‘영웅’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영웅의 포효’보다는 ‘영웅의 고뇌’가 조성진에게 더 어울렸다.

조성진의 콩쿠르 우승은 분명 침체된 국내 클래식계에 바람을 몰고 왔다. 하지만 어쩌면 조성진은 이제부터 프로페셔널의 시작이다. 언론은 연일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를 아낌없이 퍼부으며 찬사 일색이다. 하지만 지나친 관심은 독이 될 수 있다. 어찌 이제 약관인 그의 연주를 만년의 루빈스타인·폴리니·지메르만에 비교할 수 있으랴! 2001년 세밑, 피아니스트 강충모가 같은 공연장에서 연주한 바흐의 ‘평균율’에서 느끼던 동일한 감동을 조성진에게도 받고 싶다. 20년 후 끊임없는 자기 채찍질로 담금질된 ‘거장 조성진’의 바흐가 기다려진다. 쇼팽 콩쿠르 우승 후 8년을 은둔한 폴리니의 예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사진 크레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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