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 오페라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팔리아치’와 ‘마리아 스투아르다’

두 한국 성악가의 눈부신 행보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3월 1일 12:00 오전

테너 이용훈과 베이스 연광철이 활약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화제의 공연 스케치

2월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국제적으로 맹활약하는 한국의 두 남성 성악가가 나란히 무대에 섰다. 2월 6일 토요일 오후 1시 마티네 공연(메트에서 객석 점유율이 가장 높은 공연 중 하나다)을 보러 링컨 센터 광장에 들어서는데, 며칠 후 신작으로 올릴 푸치니 ‘마농 레스코’ 걸개그림이 커다랗게 메트 오페라 전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공연은 1시 7분쯤 시작되었다. 현 메트 오페라 음악감독인 제임스 러바인이 부상으로 메트를 비웠을 때 대신 음악감독 역할을 한 바 있는 현 메트 오페라 상임지휘자 파비오 루이지가 포디엄에 올라왔고, 뒤돌아 청중에게 인사를 하며 공연이 시작되었다.


▲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중 투리두 역을 맡은 테너 이용훈

상반된 연출의 미학,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팔리아치’

오늘은 마스카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레온카발로 ‘팔리아치’를 공연하는 날.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는 테너 이용훈이 군대에서 제대하고 마을에 돌아와 옛 애인 롤라와 불륜에 빠졌다가 남편인 알피오에게 살해당하는 시칠리아 청년 투리두 역을 불렀다. 연출가 데이비드 맥비커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팔리아치’에서 극과 극의 연출을 선보였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서는 시칠리아인들이 즐겨 입는 검은색 의상을 모든 출연진에게 입게 했는데, 부활절을 앞둔 사순절 기간 동안의 금욕을 상징하기도 했다. 장례식을 연상케 하는 극도로 어두운 무대를 선보인 맥비커 연출은 청중으로 하여금 극을 시종일관 산투차의 시선으로 바라보게끔 했다. ‘인테르메조’가 울려 퍼질 때도 무대 중앙에는 산투차가 서서 자신의 남자를 롤라에게 빼앗긴 설움을 한탄하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미사가 끝난 뒤 투리두의 선창으로 시작되는 와인 파티 장면도 모두 산투차는 왼편 구석 의자에 앉아 괴로워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극이 시작하면서 투리두의 오프닝 곡 ‘우윳빛 셔츠같이 하얀 롤라’가 밖에서 울려 퍼질 때부터 막이 내리기까지 산투차는 단 한 번도 무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연기를 해냈다. 산투차가 극을 이끌어나가는 가장 중요한 역할인 것이다. 투리두의 애인인 산투차 역의 비올레타 우르마나는 관록의 가창으로 무대를 이끌어갔는데, 50대 중반 나이에 들어서도 목소리가 넓어지지 않고 여전히 젊은 시절 목소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서 자기관리의 철저함을 느끼게 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시칠리아 마을 사람들은 부활절임에도 여자들을 함부로 대하고 무시하며 폭력적인 면이 강조된 마초적 캐릭터들이었다. 최근 메트에서 도니체티 ‘사랑의 묘약’과 베르디 ‘팔스타프’ 등에서 최고의 코믹 연기와 발군의 가창을 들려준 바리톤 암브로조 마에스트리는 복수의 화신 같은 용서 없는 무시무시한 캐릭터의 알피오를 불러내 마초의 세계인 시칠리아 마부 보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알피오가 등장하면서 부르는 ‘마부의 노래-말들은 날뛰고’에서 들려준 리드미컬하고 파괴력 있는 목소리와 카리스마는 청중을 달아오르게 했으며, 이 노래에 맞춰 뛰노는 말들을 연상케 한 남성들의 춤도 화려한 볼거리를 추구하는 맥비커의 스타일을 반영한 장면이었다.


▲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서 산투차(비올레타 우르마나)가 투리두와 롤라의 불륜을 털어놓자 대노하며 복수를 다짐하는 알피오(암브로조 마에스트리)

남성적인 근육질의 목소리인 이용훈은 다혈질의 주인공 투리두의 피 끓는 기질을 마음껏 발산했는데, 산투차를 부른 우르마나와의 2중창 장면은 두 사람의 목소리 톤이 조화롭지는 않아서 더 뜨겁게 불타오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이용훈의 가창이 가장 돋보인 순간은 바로 마지막 피날레를 앞두고 어머니 앞에서 부른 ‘이 술은 너무 독해요’였다. 죽음을 예감하며 부른 최후의 아리아. 그는 애절함의 극치로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이 곡을 통렬하게 불러냈고, ‘브라보’ 연호와 박수갈채를 받았다. 맥비커가 보여준 검은 의상과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의 장례식 같은 연출은 바로 투리두의 죽음을 위한 것이었다. 한편 맥비커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회전무대를 지나치게 많이 썼다’거나 ‘지나치게 어둡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 ‘팔리아치’ 2막 연극 장면에서 연극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고 분노하며 넷다(바르바라 프리톨리)를 위협하는 카니오(로베르토 알라냐)

2부 ‘팔리아치’가 시작되기 전 메트의 막은 반짝이는 파란 무대 막으로 바뀌어 있었다. 청중이 모두 오페라 극장이 아니라 유랑극단의 무대를 즐기러 온 것처럼 착각하게끔 맥비커는 무대 막에서부터 청중을 환상적인 엔터테인먼트의 밤으로 안내했다. ‘팔리아치’의 무대가 열리자 앞선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공연 때와는 무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맥비커는 색채미와 유머가 넘치며 화려하고 서커스적인 유랑극단의 무대를 만들어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는 상반된 연출을 보여준 것이다. 광대 토니오을 부른 조르제 가니체의 프롤로그 ‘신사숙녀 여러분’에서 파비오 루이지가 뽑아낸 메트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선율미는 가니체의 묘사적인 빼어난 가창과 어우러져 뭉클함을 이끌어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매우 심각했다면 ‘팔리아치’는 매우 재미있었다. 처음부터 두 작품을 하룻밤에 연주하도록 한 손초뇨 출판사의 의도이기도 했는데, 이번 맥비커의 연출은 더욱 극명했다.

넷다 역의 소프라노 바르바라 프리톨리의 몸을 던지는 과감한 연기, 테너 마르코 베르티가 폭포수처럼 시원한 고음을 터트린 카니오의 ‘의상을 입어라’는 객석을 들었다 놓았다 했을 정도로 장쾌한 홈런 같은 곡이었다. 사실 이 작품의 카니오는 원래 로베르토 알라냐의 몫이었고, 실제로 그가 몇 번 이 작품을 메트에서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소프라노 크리스티네 오폴라이스와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이 함께 출연하기로 한 메트의 푸치니 ‘마농 레스코’에 리허설 때부터 요나스 카우프만이 심한 감기로 한 번도 참가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요나스 카우프만은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메트 오페라 공연을 취소하고 말았다. 그러자 메트 오페라 디렉터인 피터 겔브는 다음 날 아침 한창 ‘팔리아치’를 공연 중이던 로베르토 알라냐에게 전화를 걸어 ‘마농 레스코’에 출연을 부탁했다. ‘마농 레스코’를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는 알라냐는 처음엔 거절했지만 결국 프랑스 기사 데 그리외를 부르기로 결정했고, 연쇄적으로 메트에서 ‘투란도트’의 칼라프 왕자 역을 자주 부르던 테너 마르코 베르티가 ‘팔리아치’에 캐스팅됐다. 결과적으로 카니오역에는 마르코 베르티가 더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알라냐보다는 베르티 같은 볼륨감 있고 시원한 목소리의 스핀토 테너야말로 카니오에 적격인 목소리를 갖췄기 때문이다. 한편 러시아 바리톤 알렉세이 라브로프는 하이바리톤으로서 외모와 목소리 모두 넷다의 애인 실비오 역에 매우 적격이었다.

이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팔리아치’ 공연은 1970년대부터 이어져온 프랑코 제피렐리 연출 작품이 훌륭한 새 옷으로 갈아입은 기분 좋은 공연이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라는 것이 메트 디렉터 피터 겔브의 생각이었고, 그는 맥비커에게 이 두 작품을 맡겼다.

무대 위에 재탄생한 비운의 여왕, ‘마리아 스투아르다’

2월 8일 월요일 저녁 7시 30분 이탈리아 지휘자 리카르도 프리차의 지휘로 메트에서 올린 작품 역시 데이비드 맥비커가 연출한 도니제티 작 튜더 여왕 3부작 중 ‘마리아 스투아르다’였다. 전작 ‘안나 볼레나’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인데, 세 작품이 모두 한 명의 대형 소프라노 손드라 라드바놉스키를 위해 이번 2015/2016 시즌에 만들어지고 있다. 그동안 메트에서 푸치니 ‘토스카’와 베르디 ‘가면무도회’ 등 볼륨감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맡아온 손드라 라드바놉스키에게 주어진 일생일대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이 역할은 벨칸토 오페라에 적격인데다가 메트에서 도니체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사랑의 묘약’ ‘돈 파스콸레’ 게다가 ‘안나 볼레나’까지 공연했으며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맡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메트의 선택은 라드바놉스키였다. 이름은 동유럽권 성을 갖고 있지만 라드바놉스키는 일리노이 주 출신의 미국 소프라노다.


▲ ‘마리아 스투아르다’ 2막 마리아의 거처를 찾아온 엘리사베타 여왕(엘자 반 덴 휘버)이 마리아 스투아르다에게 굴욕적인 언어 공격을 하는 장면. 화려한 엘리사베타의 의상과는 달리 수수한 의상을 입었지만 당당한 마리아 스투아르다(손드라 라드바놉키)

3부작은 이번 2015/2016 시즌에 모두 공연될 예정인데 튜더 여왕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로베르토 데브뢰’는 3월 24일 메트에서 프레미어 공연을 올리게 된다. 1970년대에 소프라노 베벌리 실스가 뉴욕 시티 오페라에서 세 오페라를 모두 부른 이후 최초의 도전이다. 베르디·푸치니의 파워풀한 역할을 주로 맡아온 그녀에게는 매우 영광스럽고도 도전적인 시즌이 펼쳐지고 있는데, 라드바놉스키는 저음에서 고음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음역과 정확하고 파워풀한 고음으로 2막 오프닝 곡인 ‘보라 저 아름답고 훈훈한 들판을’과 2막 피날레 ‘만약 당신의 팔이 어느 날 나를’을 통해 비운의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 역을 소화해내 청중을 매료시켰다. 맥비커는 마리아 스투아르다와 호각지세를 이루며 등장하는 또 한 명의 주인공 영국여왕 엘리사베타 역의 남아프리카 출신 소프라노 엘자 반 덴 휘버로 하여금 호화로운 의상을 입었지만 행동이 남자 같고 뒤뚱거리며 걷는 우스꽝스런 모습을 연기하도록 하여 라이벌인 수수한 의상을 입은 마리아 스투아르다가 더욱 우아하게 보이는 효과를 자아냈다.


▲ ‘마리아 스투아르다’ 3막 체칠 경이 고민하는 엘리사베타를 찾아와서 마리아를 처형하는 문서에 사인하라고 간언하는 장면

1막은 대영제국의 기틀을 세운 엘리자베스 여왕이 지배하지만 2막부터는 다르다. 2막에서부터 억울한 마음으로 가득 찬 마리아 스투아르다의 무대가 시작된다. 드디어 실제 역사 속에서는 이뤄지지 않았던 영국국교회를 신봉하는 엘리사베타 역의 엘자 반 휘버와 가톨릭을 신봉하는 스코틀랜드의 마리아 스투아르다 역의 손드라 라드바놉스키 이 두 소프라노의 운명의 만남이 성사된다. 엘리사베타는 빨간 모자와 드레스, 그리고 드레스 밑에 바지를 입고 뒤뚱거리며 등장했으며 스투아르다는 수수한 회색 의상을 입고 등장하여 두 사람의 처지와 입장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여왕과 죄수. 이렇게 한쪽으로 권력이 심하게 기울어진 상태에서 두 사람은 대화를 시작했는데도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이들의 2중창 ‘세상에서 격리되고 왕좌에서 물러나’는 카바티나에서 카발레타에 이르기까지 매우 박진감 있게 펼쳐졌다. 엘리사베타가 스투아르다를 남편 살해범이라며 비난하자 스투아르다가 “앤 불린의 음탕한 딸이여! 당신은 사생아이고 첩의 자식이며 왕위를 물려받을 자격도 없소. 영국의 왕좌가 비속한 당신의 존재로 더러워졌다는 것을 아시오!”라며 카운터펀치를 날리자 완전히 한 방 먹은 엘리사베타는 씩씩거리며 퇴장한다. 이 장면은 상당히 통쾌하지만 결국 스투아르다를 사형으로 이끌게 되는 장면으로, 맥비커는 스투아르다의 꼿꼿한 자존심을 보여주는 이 장면을 상당히 입체적으로 표현해냈다.


▲ ‘마리아 스투아르다’ 중 탈보 역을 맡은 베이스 연광철

특히 심복인 귀족 탈보 역의 베이스 연광철은 시종일관 따뜻하고 풍부한 감성과 기품 있는 가창으로 18년째 이 성, 저 성에 갇혀 살고 있는 스코틀랜드 여왕 마리아의 훌륭한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연광철은 무대에 등장하는 첫 장면 엘리사베타의 궁전 장면에서부터 진심으로 마리아 스투아르다를 걱정하는 충신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심각하고도 정중한 연기로 무대에 깊이를 더했다. 특히 스투아르다의 사형이 집행되기 전 최후의 참회를 하는 흑백 톤의 연출 장면에서 참수당하기 전 머리를 짧게 깎은 스투아르다와 이제 가톨릭 사제가 된 탈보의 2중창 장면은 연광철의 빛나는 가창을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 편지로 배경을 가득 채운 채 두 주인공의 회색빛 머리와 블랙·그레이 컬러의 전통 시대 의상 그리고 조명과 블랙·화이트·그레이만으로 강렬하게 채색된 무대에서 스투아르다가 마지막 고해성사를 하는 장면은 이 오페라의 백미라 할 만했다.

연광철은 ‘마리아 스투아르다’와 같은 시기에 메트에서 베르디 ‘일 트로바토레’의 페란도 역으로도 출연했다. 5월에는 빈 슈타츠오퍼에서 바그너의 ‘로엔그린’, 6·7월에는 파리 오페라에서 베르디 ‘아이다’ 그리고 2017년 파리 오페라에서 ‘리골레토’에 출연할 예정이며, 2016/2017 시즌에는 모차르트 ‘돈 조반니’와 로시니 ‘윌리엄 텔’을 메트에서 부르게 되어 기대를 모은다.
칠레 산티아고 오페라와 2010년 메트에서 베르디 ‘돈 카를로’로 본격 세계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 이용훈은, 메트 공연 이후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에서 베르디 ‘일 트로바토레’와 푸치니 ‘투란도트’, 시드니 오페라에서 비제 ‘카르멘’, 9월에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에서 조르다노 ‘안드레아 셰니에’, 11·12월에는 파리오페라에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2017년 4·5월에는 댈러스 오페라에서 벨리니 ‘노르마’ 공연을 앞두고 있다. 메트 오페라가 믿고 찾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두 남성 가수 연광철과 이용훈의 다음 시즌도 무척이나 기대된다.

사진 Metropolitan Opera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