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가득한 열정, 뜨거운 첫 만남
우리 시대의 디바,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남편인 아제르바이잔 출신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와 함께 3월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드디어 한국 첫 공연을 가졌다. 야데 비냐미니가 지휘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어우러진 이번 공연의 1부에서 동양적 문양이 그려 있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나온 네트렙코는 칠레아의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 중 ‘저는 다만 창조주의 비천한 종일뿐’을 첫 곡으로 골랐다. 겸손한 태도로 조용히 시작되는 이 곡을 네트렙코는 훌륭하게 컨트롤하며 흠잡을 곳 없는 둥그런 가창으로 우아하게 불렀다. 공연은 네트렙코와 에이바조프가 교차해 부르며 진행됐는데, 에이바조프는 칠레아의 ‘아를의 여인’ 중 ‘페데리코의 탄식’을 불렀다. 소리는 잘 울려 퍼지지만 그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달콤함이 없었다.
네트렙코는 요즘 세계 오페라 극장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베르디 레퍼토리를 부르기 시작했다. ‘일 트로바토레’ 중 레오노라의 ‘하늘엔 별도 없네’를 부를 땐 무대 양옆으로 다가가며 청중을 배려하는 여유를 보였고, 카발레타에서 들려준 트릴도 매우 정교했다. 에이바조프는 ‘일 트로바토레’ 중 만리코의 카바티나 ‘그대는 내 사랑부터’와 카발레타 ‘저 타오르는 불꽃’까지 모두 불렀는데, 정확하지 못한 박자 감각과 마지막 고음을 위해 후반부 가사를 부르지 않는 모습은 매우 아쉬웠다. 1부 피날레를 장식한 베르디 ‘오텔로’의 2중창 ‘밤의 정적 속으로 소란은 사라지고’는 에이바조프의 단조로운 가창 때문에 긴장감이 떨어졌다.
네트렙코는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에이바조프와 함께 듀엣으로 데 쿠르티스의 ‘물망초’에 맞춰 왈츠를 추고 키스를 하며 2부를 시작했다. 푸치니 ‘나비부인’ 중 ‘어떤 갠 날’을 열과 성을 다해 화창한 고음으로 부른 네트렙코에 이어 마스네의 ‘베르테르’ 중 ‘봄바람이여, 왜 나를 잠깨우는가’에서도 에이바조프는 앞부분을 지나치게 느리게 불러 지휘자가 하프를 제지시키고 다시 박자를 잡아 연주하게 했다. 다행히 지휘자 비냐미니의 순발력으로 곡은 무사히 연주됐다.
2부에 들어서 더욱 몸이 풀린 네트렙코는 당당한 발걸음으로 씩씩하게 입장해 드보르자크의 ‘루살카’ 중 ‘달님에게 바치는 노래’에서 사랑하는 이름 모를 왕자를 찾는 ‘물의 요정’이 되어 1절에서는 포르테로, 2절에서는 피아노로 부르며 부드러운 프레이징을 선보였다.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 중 ‘5월의 어느 화창한 날’은 에이바조프와 매우 잘 어울리는 레퍼토리였다. 그는 격정적이고 박력 있는 가창으로 단두대의 처형을 기다리는 혁명기 시인의 애절한 아픔을 윽박질렀다. ‘라 보엠’의 2중창 ‘오 상냥한 아가씨여’를 끝으로 두 사람의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청중은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고, 네트렙코의 장기 앙코르 레퍼토리인 칼만의 오페레타 ‘집시백작 부인’ 중 ‘하이야, 저 산위에서’에서 특기인 춤사위를 선보이며 청중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에이바조프는 앙코르로 푸치니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360도 회전하며 고음을 쏟아내 청중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레하르의 ’미소의 나라’ 중 ‘그대는 나의 모든 것’을 독특하게도 이탈리아어로 부르며 대미를 장식했다. ‘나비부인’ ‘투란도트’ ‘미소의 나라’ 모두 홍콩, 한국, 일본으로 이어지는 동양 청중을 신경 쓴 곡 선정이었다.
사진 빈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