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뛰어난 음악성 못지않게 외모도 함께 주목받는 시대다. 하지만 책받침의 스타 사진을 보고 자랐던 예전 세대들에게도 미남, 미녀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의 인기는 지금 못지않았다. 올봄 한국과 유난히 인연이 깊은 꽃미남 연주자들의 내한 연주가 눈에 띈다.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과 피아니스트 보리스 베레좁스키. 환한 미소를 하고 무대에서 청중을 사로잡았던 시대의 아이콘들이 이제 원숙한 음악성을 겸비한 40대 중년의 중후한 모습으로 한국을 찾는다.
바이올리스트 조슈아 벨 , 가슴을 파고드는 간절한 선율
아마도 2007년 조슈아 벨의 내한 공연 때였던 것 같다. 한 여성 관객이 무대를 향해 “사랑해요, 조쉬!”(I love you Josh!)라고 외치자 벨은 “영어 잘하시네요”(Good at English)라 답했다. 객석은 곧 웃음바다가 되었다. 당시 조슈아 벨이 여성 팬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는지를 증명해준 사건이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벨의 연주회는 아이돌 스타의 공연을 방불케 했다. 바이올린 연주만으로도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를 ‘꽃미남 바이올리니스트’란 수식어로 홍보하던 당시의 관행에 불만을 품었다가도, 공연장에 가서 항상 열성 여성 관객들의 과도한 애정 표현을 목격하다 보면 ‘조슈아 벨=꽃미남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등식에 어쩔 수 없이 수긍하게 되었다.
사실 필자도 조슈아 벨이 KBS교향악단과 협연을 마쳤을 때 친구와 함께 무대 뒤로 가서 사인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연주가 훌륭해서 그렇기도 했지만 그를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바람에서 굳이 사인을 받으러 무대 뒤까지 갔던 것 같다.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친절했던 그의 태도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러고 보면 신체적인 매력은 클래식 음악가들에게도 큰 이점이 되는 모양이다. 단지 연주만 좋았다면 필자 역시 굳이 무대 뒤로 가서 사인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일찍이 ‘피플’지가 선정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에 오를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 조슈아 벨. 그러나 음악가의 외모만으로 그의 연주나 가치관을 추측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벨은 생각보다 매우 혁신적이며 강인하고 다재다능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벨은 왕자 같은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곤 한다. 그중 주목할 만한 사건은 지난 2007년에 거리의 악사가 되어 워싱턴 D.C의 지하철역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인 것이다. 그는 마치 영화 ‘바이올린 플레이어’의 주인공처럼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역의 플라자에서 신분을 숨긴 채 바흐의 ‘샤콘’을 연주했다. 시가 약 40억 원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들고 슈베르트와 바흐의 춤곡에 이르기까지 모두 6곡을 연주하는 동안 그가 벌어들인 돈은 32달러 17센트. 그러나 입장권 최고 가격이 130달러에 달하는 콘서트홀의 화려한 무대보다 더욱 의미 있는 연주회였다. 음악을 들을 여유도 없이 각박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여유와 가치를 일깨워준 시간이었기에.
벨의 다재다능함도 그의 왕자 같은 외모에선 예측할 수 없는 점이다. 벨은 일찍이 “작곡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 말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벨의 음반에선 그가 편곡한 작품들을 들을 수 있다. 직접 작곡한 브람스와 모차르트 등의 주요 바이올린 협주곡의 카덴차나 거슈인의 ‘포기와 베스에 의한 환상곡’과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카덴차를 들어보면 카덴차를 스스로 작곡하던 옛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떠올리게 된다. 새로운 음악, 새로운 표현에 대한 그의 욕구는 급기야 작곡가 멘델스존이 직접 써넣은 카덴차를 빼고 벨의 자신이 작곡한 새로운 카덴차로 대체해 음반을 내놓는 과감한 시도로 이어지기도 했다.
물론 영화음악과 현대음악에서도 빛나는 벨의 파격적 행보 역시 주목할 만하다. 영화 ‘레드 바이올린’을 더욱 빛낸 벨의 연주 덕에 영화 속 주인공이 선보이는 악마적인 바이올린 연주는 더더욱 돋보였다. 그런가 하면 몇 해 던 내한 공연에서 벨은 오케스트라의 리더로서 베토벤의 교향곡 연주를 리드하며 지휘자로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벨의 진면목은 그 특유의 가냘프고 섬세한 바이올린 톤에 있다. 음반으로나 혹은 연주회에서나 벨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바이올린을 감미롭고 부드러우며 달콤하게 연주하는지 알 수 있다. 그는 마치 사랑하는 연인에게 말을 걸듯 조심스러우면서도 간절하게 연주한다. 가늘고 빠르게 떨리는 그의 비브라토는 음 하나하나에 담긴 미묘한 표정 변화를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그의 연주는 마치 서정적인 아리아 리릭 소프라노 처럼 들린다.
아마도 벨의 음반 가운데서도 짧은 바이올린 소품들을 담은 음반들이 인기를 모은 것도 그 특유의 서정적인 연주 덕인 것 같다. 수년 전에 발매된 벨의 ‘바이올린 로망스’ 앨범은 빌보드 클래식 차트에서 12주간 연속 1위를 차지했고 50주 동안 탑 10에 들었다. 이후 발매된 바이올린 소품집 ‘바이올린의 목소리’와 ‘At home with friends’ 역시 단순함 속에 특별함을 가미하는 벨의 뛰어난 재능을 엿볼 수 있는 음반이다.
물론 벨 특유의 서정적인 연주는 실제 공연 무대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지난 2007년 내한 공연에서 벨이 앙코르로 연주한 차이콥스키 ‘멜로디’의 그 특별한 여운을 필자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웅장하고 화려한 톤으로 청중을 압도하기보다는 가냘프고 섬세한 톤으로 선율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벨의 바이올린 연주는 바이올린이란 악기가 얼마나 매력 있는 악기인지를 깨닫게 한다.
한동안 내한 공연이 뜸했던 조슈아 벨이 오는 4월 11일, 2007년 이후 9년 만에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리사이틀을 연다는 소식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클래식 애호가들이 많이 늘어난 대구에서의 공연이니만큼 관객들의 반응은 더욱 뜨거울 전망이다. 특히 이번 공연에선 바이올린 명곡 중의 명곡으로 꼽히는 비탈리의 ‘샤콘’과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9번 ‘크로이처’ 등 불멸의 명곡들이 연주될 예정이어서 주목되며, 그 밖에 재즈의 요소가 가미된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연주된 후 이후 공연의 곡목은 공연 당일 발표된 후 연주된다. 모든 프로그램을 정해놓지 않고 공연 당일 즉석에서 곡목이 발표된 후 연주되는 공연 방식도 매우 흥미로운 데다 본 공연 프로그램으로 연주될 곡목 역시 조슈아 벨의 서정적이고 호소력 있는 표현력이 잘 드러날 만한 작품이기에 이번 공연은 특히 기대를 모은다.
아마도 오는 4월 11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공연장은 서울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몰려든 클래식 음악 팬들로 붐빌 것 같다. 클래식 애호가라면, 특히 바이올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조슈아 벨의 리사이틀을 결코 놓칠 수 없으니까.
글 최은규(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수성아트피아
피아니스트 보리스 베레좁스키, 폭발할 것 같은 강한 터치
긍정적인 이야기보다 부정적 측면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도 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는 비유가 있다. 이른바 ‘수저론’이다. 경제적으로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금, 은, 흙 등 다른 가치의 소재를 갖다 붙여 자신을 은유하는데, 그 어느 때보다 불공평함을 많이 느끼게 되는 사회 초년생들의 푸념이 섞여 더 많이 회자되는 듯하다. 취업난이나 경제 불황이 젊은이들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지만, 자신이 흙수저임에 우울해하거나 자격지심에 빠지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자격지심까지는 아니더라도, 보리스 베레좁스키의 연주를 접하고 자신이 지닌 수저를 떠올려보지 않은 피아니스트는 없을 듯하다. 굳이 수저론에 대입하자면 베레좁스키는 금수저보다 더 단단하고 값어치도 높은 ‘다이아몬드 수저’쯤을 소유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마치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한 모든 조건을 갖고 태어난 듯한 베레좁스키, 그에 대해 우리가 지니고 있는 가장 확실하고 강한 이미지는 주로 육체적 강건함과 파워, 폭발에 가까운 열정 등이다.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사건’ 이 2009년 내한 공연에서의 돌발 상황이다. 세 곡의 협주곡을 내리닫이로 연주하는 무대에서 첫 곡의 첫 악장을 연주하던 중 피아노 줄이 끊겼다. 놀라운 것은 솔리스트였던 그의 대처 방식이었는데, 전혀 당황하지 않고 끊긴 줄의 나머지 부분을 악기에서 제거한 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편안히 연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 객석에 앉아 있는 청중을 오히려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피아노 현이 한 번의 강한 타격으로 끊기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인데, 그럼에도 베레좁스키의 강한 터치가 마치 피아노 건반마저 놀라게 했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의 건장한 체구와 거기서 자연스레 뿜어 나오는 터프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정작 그는 연주에서 보여주는 에너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6년 만의 내한 공연을 앞두고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베레좁스키는 짧지만 정확한 지적을 하고 있다.
“제가 정말 스포츠를 많이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무대에서의 에너지는 육체적 측면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는 지금 다루고 있는 작품을 좀 더 정확히 구현해내고 싶어 하는 욕망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에너지가 순간적으로 샘솟는 듯합니다.”
물리적 힘이든 정신적 힘이든, 실체가 분명한 그 힘이 원할 때마다 슈퍼맨처럼 솟아오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부러움을 살 만한 일이다. 여기까지가 지금껏 알려진 베레좁스키의 장점과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미지이며, 이대로도 그의 연주 생활은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잘 타고난 신체적 조건과 틈틈이 운동으로 관리하는 건강, 한 번 연주해본 곡이면 아무리 오래되었더라도 사흘의 시간만 주면 너끈히 무대에 올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연주력까지 있으니, 내가 그라면 밥을 안 먹어도 행복할 듯하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연주를 끝내고 백스테이지에 막 들어왔을 때죠.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준비한 것의 대부분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되면 정말 뿌듯합니다. 그리고 가족들과의 일상도 역시 빼놓을 수 없죠. 지금 이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제 아들이 옆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궁금해하며 저를 열심히 쳐다보고 있어요. 아이와 있을 때는 저도 그냥 평범한 아빠인데요, 이 소중한 시간이 제겐 꼭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힘이 40대 중반 피아니스트가 나아갈 변화의 길에 적절한 방향타가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의 ‘변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언뜻 완벽해 보이는 그의 음악 세계에도 적절한 자극과 새로운 동기부여가 필요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레퍼토리도 여러 가지 다채로운 변모가 있었고, 신선한 탐구의 느낌이 강하게 드는 작품들도 꾸준히 무대에 올라가고 있다. 쇼팽/고도프스키의 연습곡이나 힌데미트의 ‘루두스 토날리스’ 등 대위법의 극한을 시험하는 난곡들과 아울러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 등 피아노 문헌 가운데 최중량급 작품들과 러시아 작곡가 메트너와 보로딘 등의 소품, 스크랴빈과 메트너의 협주곡까지, 그가 흥미를 보이는 분야는 자유분방하고 캐주얼한 평소 성격답게 예측 불허의 서프라이즈가 함께한다. 국내에서는 주로 협연 무대를 가졌으며 러시아 레퍼토리를 포함한 낭만 위주의 프로그램 구성 탓에 그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음악적 ‘표정’을 감상할 기회가 적었던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만에 돌아온 리사이틀 무대에서 그가 들려줄 프로그램은 모든 곡이 흥미롭다. 바르토크, 그리그, 스트라빈스키에 스카를라티까지 어우러지는 선곡에 대해 물으니 역시 예상치 않은 답변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모두 민속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물론 스카를라티의 음악은 쳄발로로 연주되던 바로크 음악이지만, 제게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민속적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되는군요. 러시아 작곡가인 스트라빈스키는 말할 필요도 없죠. 작품들을 연습할수록 내가 태어난 뿌리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게 되고 연주하는 순간 제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헝가리 마자르 음악이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버르토크의 소나타, 노르웨이의 자연과 거기서 숨 쉬는 사람들의 삶 그 자체인 그리그의 서정 소품집, 거기에 스카를라티의 투명하고 맑은 유희성은 어떤 모습으로 어울릴지 궁금하다. 아울러 러시아 민속음악의 울림을 의식적으로 생경한 음악 언어로 만들어 탈바꿈시킨 스트라빈스키의 소나타와 ‘페트루슈카’로 꾸며질 하이라이트는 베레좁스키만이 끌어낼 수 있는 백열적 음향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음악은 어떤 것이나 황홀하고 굉장한 존재여서 진지하게 다뤄야 하지만,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볼 때 반드시 진지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저 주어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죠.”
툭툭 던지는 듯한 말투처럼 편안하게 건반을 두드리지만, 단순한 대답 속에 깊은 성찰이 들어 있는 그의 말처럼 작품의 어느 구석에서 예측 불허의 음악적 스파크가 일어날지 기다리는 것도 그가 제공하는 음악회의 재미다. ‘연주에서 음악 그 자체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으며, 온전히 즐기고 감동하는 무대를 만드는 것 외에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도 않는다’고 소신껏 밝히는 건반 위의 자유주의자 베레좁스키가 만들어낼 건반 위의 새로운 봄이 기다려진다.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사진 마스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