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0주년을 맞이한 히차커 음악 주간. 베를린 필의 수석 오보이스트 알브레히트 마이어가 새롭게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며 새 바람이 불다!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히차커 음악 주간. 베를린 필의 수석 오보이스트 알브레히트 마이어가 새롭게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며 새 바람이 불다!
부활절을 몇 주 앞둔 지난 3월 초순, 독일 북부 니더작센 주에 자리한 엘베 강변의 작은 마을 히차커. 그림 형제의 동화에나 나올 법한 이 아름다운 마을에서 실내악 축제 히차커 음악 주간(Musikwoche Hitzacker)이 열흘 동안 펼쳐졌다. 인구 4900여 명의 아름답고 조용한 이 마을은 1946년부터 히차커 여름 음악제(Musiktage Hitzacker)를 개최했다. 지난 1987년부터는 초봄에도 음악제를 개최하기로 뜻을 모아 히차커 음악 주간을 만들었고, 트럼펫 주자 루트비히 귀틀러가 지난 29년 동안 음악감독을 맡았다. 올해 30주년을 맞아 베를린 필의 수석 오보이스트인 알브레히트 마이어가 새롭게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다시 한 번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올해 주제는 목관악기 주자들에게 있어 자신들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한 ‘전원(Pastorale)’이었다. 오랜 전통을 지닌 음악제를 두 개나 보유한 마을답게 작은 마을임에도 페르도(Verdo)라는 이름의 800석 규모의 현대적인 연주홀을 갖추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실내악 축제의 새로운 지표를 제시하다
3월 4일 개막 공연에서는 함부르크 심포니가 참여해 음악감독 알브레히트 마이어의 지휘로 하이든 교향곡 94번 ‘놀람’과 바흐의 오보에 협주곡 D단조 BWV1059 등을 연주했다. 특히 바흐 오보에 협주곡 D단조는 독특하게 이란 출신 하프시코드 주자 마한 에스파하니가 오보에와 하프시코드 이중 협주곡으로 직접 편곡해 협연했다.
3월 6일 마이어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비트와 함께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1번과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을 오보에를 위한 소나타로 편곡하여 연주해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히차커의 옛 시가지는 엘베 강변의 작은 섬이었는데, 지은 지 수백 년 지난 옛 건물들이 완벽한 상태로 보존된 그림같이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섬의 중앙에 있는 성 요한 교회도 주 공연장으로 이용됐다. 3월 11일 저녁에는 ‘바위 위의 목동’이라는 제목의 연주회가 펼쳐졌다. 베를린 필의 수석 클라리넷 주자인 안드레아스 오텐자머, 독일의 신예 소프라노 아니아 베그리, 첼리스트 가브리엘 슈바베, 영국 피아니스트 니콜라스 리머 등 젊은 연주자들이 슈베르트의 리트와 브람스 클라리넷 3중주 A단조 Op.114 등을 들려주었다. 목가적인 음악들인데도 젊음이 넘치는 생동감 있는 해석으로 청중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음악제 막바지인 3월 12일 오전, 마이어가 오보에를 연주했고, 베를린 방송교향악단과 뮌헨 필의 수석을 역임하고 현재 뉘른베르크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인 헝가리 출신 바순 주자 벤체 보가니와 오랜 세월 마이어의 절친한 음악적 동반자로서 많은 협연을 함께 해온 피아니스트 마르쿠스 베커가 ‘전원 환상곡’이란 제목 아래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목관 음악을 집중 조명했다.
명불허전 마이어의 오보에와 따스하면서도 명징한 보가니의 바순은 절묘하게 어울리면서 완벽한 앙상블을 빚어냈다. 특히 에밀 아넬(1810~1882)의 잉글리시 호른·바순·피아노를 위한 ‘전원 3중주’ Op.1과 테오도르 랄리에(1837~1892)의 오보에·바순·피아노를 위한 3중주 Op.22의 숨이 멎을 듯한 아름다움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음악 주간 마지막 날이던 3월 13일 아침, 성 요한 교회에서는 베를린 필의 전 수석 플루티스트인 안드레아스 블라우의 리사이틀이 펼쳐졌다. ‘플루트와 함께하는 세계 여행’이라는 주제 아래, 세계 각국의 플루트 음악을 블라우 본인의 해설을 곁들여 선보였다. 베를린 필하모닉 활동 후기에 즐겨 쓰던 목관 플루트와 알토 플루트로 연주했다. 1969년 스무 살 나이로 베를린 필 수석 플루티스트로 발탁되어 지난해 6월 은퇴할 때까지 무려 46년간 재직한 그는 명징하면서도 단단한 질감의 음색, 절묘한 호흡 조절, 흔들림 없는 기교로 가히 ‘플루트의 카라얀’이라고 불리기에 전혀 부족함 없는 독일식 완벽주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3월 13일 저녁에 있었던 폐막 연주회에는 카머아카데미 포츠담이 참가하여 마이어의 지휘로 바흐의 오르간을 위한 ‘전원곡’ F장조 BWV590과 올해 주제를 가장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을 현악 합주로 편곡해 들려주었다. 이 폐막 공연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스위스 태생의 작곡가이자 오보이스트인 고타르트 오데르마트(1974~)의 신작 오보에 협주곡 ‘물의 색깔들(Les couleurs de l’eau)’ Op. 22의 세계 초연이었다. 이미 마이어의 음반에 ‘여름’ Op.18이 수록됐고, ‘오보에 다모레를 위한 콘체르티노’ Op.19 초연 등을 통해 마이어와 인연이 깊은 오더마트. 이번 신작은 놀라운 음악적 아이디어를 겸손한 어조로 담담하게 펼친, 작곡가 본인의 인품이 그대로 담긴 작품이었다. 현대음악이지만 낭만주의적 악상을 지닌 이 곡은 마치 벨칸토 아리아를 듣는 듯 기교적 선율미가 돋보였다. 그 가운데 1악장에선 오보에로서는 상당히 높은 하이 G음까지 도약하는 등 연주가에겐 만만치 않은 난곡이었지만, 제목 그대로 다양한 색채를 뿜어내는 선율에 금세 도취되고 몰입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곡이었다. 유유히 흐르는 엘베 강변에서 물을 주제로 하는 음악을 듣는 것 역시 분명 예사롭지 않은 예술적 체험이 아닐까 싶다.
금년 히차커 음악 주간이 작지만 최고 수준의 실내악 축제로 큰 성공을 거둔 것에 대한 찬사는 마땅히 음악감독 알브레히트 마이어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는 음악제 프로그래밍은 물론 연주자 섭외부터 오보에 연주와 지휘, 심지어 해설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악회를 세심히 살피며 그야말로 ‘열일하는’ 음악감독의 열정적 면모를 보였다. 또한 인상적이었던 것은, 조직위원장을 비롯한 음악제 관계자 모두가 본업이 따로 있는 상태에서 지역사회 공동체와 혼연일체가 되어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그 결과 차분한 가운데에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음악제가 진행되는 모습이었다. 품위와 격조가 느껴지고 음악적 열정이 충만하면서도 작은 마을 특유의 인정이 넘쳐나는 분위기는 다른 대규모 음악제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감동이었다.
2017년 히차커 음악 주간은 3월 3일에서 12일까지 열흘간 ‘환상’을 주제로 개최되며,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피아니스트 윤홍천도 참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