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기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8월 1일 12:00 오전

뜨겁고 차가운 감성

2016 제6회 연천 DMZ 국제음악제
7월 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연천 DMZ 국제음악제는 휴전선과 맞닿은 경기도 연천 지역에서 세계가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 행사로 지구촌이 하나 되는 글로벌 음악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향하는 음악제다. 7월 23일부터 31일까지 펼쳐지는 음악제의 성공을 기원하는 음악회가 7월 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다.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협연자인 피아니스트 아비람 라이케르트,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은 강철같이 강렬한 타건이 돋보이는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과 조국 핀란드에 대한 애국적 열정이 담겨 있는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음악 언어로 마음껏 풀어냈다.

명쾌하고 생동감 넘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쇼스타코비치 ‘축전 서곡’에 이어진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낭만주의와 현대의 기로에 선 듯한 두 시대의 조화를 프로코피예프만의 혁명적인 리듬과 음색, 타건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곡을 피아니스트 라이케르트는 강렬하고 폭발적인 자신만의 피아니즘으로 순식간에 객석을 삼켜버렸다.

1악장, 깊은 애수를 느끼게 하는 클라리넷 선율이 흐르며 서정적인 피아노 멜로디가 특별한 조화를 이뤘다. 이후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치열한 긴장이 이어지다 어느 순간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아름다움이 폭발했다.

백주영의 시벨리우스는 전반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북구의 고독한 정서를 노래했다.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으로 바이올린의 섬세한 기교와 부드러운 테마가 인상적인 가운데 냉철하면서도 차가운 감성이 돋보이는 2악장 아다지오의 애절한 바이올린 선율이 관현악의 풍성한 흐름과 어우러져 시벨리우스 음악 감성을 잘 표현했다.

축제의 계절 여름, 이날 뜨겁고 차가운 선율이 무대를 감쌌다. 프로코피에프의 열정이 지나간 자리에 시벨리우스의 스산함이 남았다. 국지연

‘센 언니’와 마주한 순간

윤소영 바이올린 리사이틀
7월 14일
금호아트홀

‘센 언니’ 전성시대다. TV, 영화, 책 가릴 것 없이 강하고 쿨한 여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녀들의 매력은 ‘거침없고’ ‘숨김없는’ 데 있고, 대중은 이런 시원함에 열광한다.

클래식 음악계에도 센 언니가 여럿 있다. 기자는 그중 한 명으로 주저 없이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을 꼽는다. 그녀의 시원시원한 보잉은 가슴을 뻥 뚫는다. 고난도 테크닉을 너무나 거침없이 소화하는 모습에선 묘한 쾌감마저 느껴진다.

윤소영의 실연을 한국에서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반갑게도 올 들어 그녀는 두 번이나 한국의 청중을 만났다. 첫 번째는 두 달여 전,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KCO)와의 비발디 ‘사계’ 협연이었다. 이날 윤소영의 솔로는 KCO를 견인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강렬했다. E현이 두 번이나 끊겼을 정도다.

두 번째는 지난 7월 14일 열린, 한국에서의 5년 만의 리사이틀이다. 레퍼토리는 베토벤 소나타 8번, 브람스 소나타 2번, 프랑크 소나타. 전체적으로 여유로운 템포가 느껴지는 선곡이었다. 화려한 테크닉이나 강렬한 보잉과 같은 윤소영의 매력을 100퍼센트 드러낼 수 있는 레퍼토리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시종 청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시원스레 작품을 소화했다.

산뜻한 도입부와 함께 베토벤 소나타 8번이 시작됐다. 재기 넘치는 주제 선율과 강렬한 트레몰로 패시지의 대비가 흥미로웠다. 의외로 인상 깊었던 것은 2악장의 나직한 선율.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뽑아낸 음들은 조심스러웠고, 꼿꼿한 자세로 이어나간 선율은 고혹적이었다. 피아스트 김다솔과의 호흡 또한 훌륭했다. 두 사람은 1·3악장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유니즌을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이어진 브람스 소나타 2번은 로맨틱한 정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느린 템포와 시적 화성은 베토벤과 프랑크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여유로운 선율 속에서도 한 음 한 음 꾹꾹 눌러 담은 프레이징은 여전히 윤소영 특유의 매력을 발산했다. 3악장은 명쾌한 고음과 대조되는 깊은 저음이 인상적이었다.

프랑크 소나타에서는 4개 악장에 대한 적절한 힘의 안배가 돋보였다. 힘을 뺀 선율은 우아하게 흘렀고, 비축했던 에너지를 쏟아 부은 몇몇 패시지에선 범접할 수 없는 오라가 뿜어나왔다. 절정은 4악장 중반부의 옥타브 도약. 단 몇 개의 음으로 40초가량을 잇는 단조로운 선율이지만, 그녀는 꽉 들어찬 활로 말을 걸었고, 청중은 그녀의 당당한 선율에 숨을 죽였다. 그녀의 프랑크 소나타는 강인하고도 아름다웠다.

피아니스트 김다솔과는 연주 전날 처음 만났다고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호흡은 마치 오래된 친구의 그것같이 자연스러웠다. 김다솔에겐 그간 많은 바이올리니스트와의 무대로 다져진 여유로움이 있었다. 조곤조곤한 음색과 이에 대비되는 확실한 다이내믹으로 바이올린 선율을 조력했다. 그러나 반주가 까다로워서일까, 피아노가 좀 더 박차고 나왔어야 할 프랑크 소나타가 아쉬웠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현악기를 이해하는 반주 덕에 편안한 연주였다.

연주가 끝나고, 두 곡의 앙코르가 이어졌다. 끊이지 않는 호응으로 ‘한 곡 더 하지 않을까?’ 희망고문을 당할 청중을 위해 윤소영은 아예 바이올린을 놓고 커튼콜에 임했다. 청중은 웃었고, 그녀는 함박웃음으로 화답했다. 역시, ‘센 언니’다운 호탕한 결말이다. 전윤혜

익숙함과 새로움의 줄타기

국립극단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 발표회 ‘새로움을 찾아서: 여러 가지 볼거리’
7월 1~3일
백성희장민호극장

국립극단의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는 만 31세 이하, 프로 연극 데뷔 3~4년 차 연극인의 역량 강화를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이다. 올해 5년차를 맞이하면서 예술감독 김윤철은 한예종 연극원 초대원장을 역임한 연출가 김우옥에게 총지휘를 맡기고, 기존 교육 방식에 ‘공동창작’이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더했다. 이전까지 ‘배우’만을 위한 교육과정은 올해부터 연출·극작·무대미술 등 ‘전 영역에 걸친 연극인’으로 그 대상이 확대됐다.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4개월가량 이뤄진 교육과정의 결과물을 선보이는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 발표회를 찾았다.

교육생들이 한 명의 연출가와 함께 하나의 연극 작품을 선보이던 기존과 달리, 올해 발표회는 공동 창작 방식으로 완성된 작품들과 교육과정 중 우수했던 개인 발표까지 총 11개가 올랐다. 이번에 선보인 여러 가지 볼거리 가운데 ‘재해석’이라는 측면에서 시선을 끈 작품은 ‘새 맹진사댁 경사’와 ‘춘향전’이었다. 너무나 잘 알려진 고전이거니와 기존에도 다양한 장르에서 비틀고 새롭게 해석한 시도가 많았기에 ‘과연 어떨까?’라는 기대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공연을 보고 난 뒤, 생각은 달라졌다.

‘새 맹진사댁 경사’는 맹진사댁 규수와 결혼을 앞두고, 자신을 못생긴 병신이라 헛소문을 퍼뜨린 김판서댁 아들 미언이 사이에 벌어지는 에피소드 말미에 원작과 다른 결말-알고 보니 돈 없는 양반-을 배치했다. 여기에 21세기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10분 남짓한 공연 곳곳에 담겨 해학과 웃음은 그대로 살리되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작품으로 이끌어냈다.

‘춘향전’은 최근 방송계에서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 세대 사이에 자리 잡은 새로운 트렌드가 십분 활용됐다. 춘향과 변사또, 이몽룡 간 대화를 ‘랩 배틀’을 통한 대결 구도로 설정한 것. ‘춘향전’을 두고 지금까지 여러 장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왔지만, 이처럼 직설적이고 통쾌한 작품은 아마 없었을 것 같다.

이 외에 고민의 흔적과 노력이 눈에 띈 지점들도 있다. 세 번째 순서로 공연된 ‘두드리자’는 서사성과 완성도라는 미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익숙한 재료(북)가 주는 식상함을 벗어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동일하게 익숙한 재료(물)지만 생략을 통한 강조, 비움과 채움의 역설이 돋보였던 마지막 작품은 지난 몇 년 사이 기성 공연에서 볼 수 없었던 참신함과 예술성이 느껴졌다.

올해부터 새로운 항해를 시작한 국립극단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가 이후에도 지속적인 ‘공동창작’의 돛을 활짝 펼치고 나아가길 바란다. 이를 위해 방향성에 따른 커리큘럼의 내실을 다지는 것뿐 아니라 결과물을 내놓는 자리가 공연계의 다양한 관계자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공유되어 신진 발굴과 아이디어 도출의 장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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