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벤저민 그로브너

진정한 음악가로 가는 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8월 1일 12:00 오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고 KBS교향악단과 협연하는 그의 꿈과 음악이야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고 KBS교향악단과 협연하는 그의 꿈과 음악이야기

2015년 4월, 천재 피아니스트로 불리던 벤저민 그로브너가 바흐-부소니 ‘샤콘’, 쇼팽 마주르카 등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첫 내한 공연을 가졌다. 청초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가 이번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고 다시 한국 음악팬들과 만난다.

그로브너는 여섯 살에 피아노를 시작하며 연주자로서 지금껏 화려한 길을 걸어왔다. 열한 살에 BBC 영 뮤지션 컴페티션에서 최우수 피아노 연주자상을 수상한 그는 열세 살에 카네기홀에 데뷔했고, 열아홉 살엔 BBC 프롬스 사상 최연소로 개막 연주에 참여했다. 최연소이자 60년 만의 첫 영국인 피아니스트로서 데카 클래식스와 계약을 했다. 데카 클래식스에서 발매한 음반 ‘쇼팽, 리스트&라벨’로 2012 그라모폰 어워즈에서 최연소로 최우수 연주 음반상과 올해의 젊은 음악가상 수상하기도 했고, 20세에는 런던 왕립음악원을 수석 졸업하며 엘리자베스 여왕 2세가 수여하는 상을 받았다. 나아가 2009년 열일곱 살에 발매한, 스카를라티부터 카푸스틴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첫 데뷔 음반뿐 아니라 ‘춤곡’이라는 장르에 집중한 2014년 음반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담은 4장의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이런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로브너는 자신의 음악 세계가 ‘천재음악가’라는 세상의 틀 속에 갇히기를 거부한다. 대신 끊임없는 레퍼토리 개발과 다양한 도전을 통해 성숙한 음악가로 성장하길 원한다. 그로브너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지금껏 굉장히 특별한 커리어를 쌓아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BBC 프롬스 무대에 섰던 것만큼은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난다. 특히 2011년 로열 앨버트홀에서 진행된 BBC 프롬스의 개막 무대에 서고 4년 후엔 폐막 무대에서 연주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다. 또 몇 번의 마스터클래스를 했던 것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모든 학생은 다 다르기에 마스터클래스를 하면서 학생들 개개인에게 맞는 제안을 해주려고 노력했다. 나의 조언으로 인해 그들이 실제 변화하는 것을 경험했는데, 그때 굉장한 경이로움을 느꼈다.

지난 5월엔 브리튼 신포니아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을 지휘·협연하며 음악감독으로 깜짝 데뷔를 했다. 음악감독으로서 첫 경험은 어떠했나?

무대에 오르기 전엔 걱정이 조금 앞서긴 했다. 그러나 공연을 하며 그것이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조금 더 큰 규모의 실내악 연주를 하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이 서로 음악에 주의를 기울이고 또 반응하는 시간이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프레이징, 아티큘레이션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브리튼 신포니아 그리고 악장인 재클린 셰이브와 함께한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어린 나이에 성공을 했는데, 특별히 도움을 준 사람이 있나?

가족을 꼽고 싶다. 피아니스트인 어머니는 나의 첫 선생님이다. 이후 다른 선생님들께 레슨을 받거나 투어를 다니는 동안에도 어머니가 많은 코치를 해주셨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친형도 나에게 큰 영감을 준다. 뿐만 아니라 런던 왕립음악원의 크리스토퍼 엘턴에게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엘턴은 음색에 매우 민감한 음악가이자 학식이 높은 교수다. 그러나 그는 난해한 이론이 아닌 아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나를 가르쳤다.

연주자가 아닌 평범한 청년 벤저민의 일상이 궁금하다.

연습! 거의 모든 시간을 연습에 쏟지만 그 외엔 수영, 달리기와 같은 운동을 즐긴다. 책도 읽고 독일어도 배우는 중이다. 요즘엔 요리나 잔디 깎기처럼 정말 일상적인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음식에 관심이 많은데, 3년 전부터 함께 연주를 해온 바이올리니스트 박혜윤이 한식을 추천해주어 이번에 한국에 가면 꼭 먹어보고 싶다.

수식어가 필요 없는 음악가가 꿈

어린 시절과 지금의 연주를 비교해본다면?

많은 것이 변했다. 아주 어릴 적의 연주를 가끔 듣곤 하는데, 마치 다른 사람이 연주를 한 듯한 느낌이다. 어린 나이엔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본능적으로 흘러갔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음악에 대해 깊이 탐구하게 됐고, 그것이 지금의 연주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시선을 건반에 고정한 채 연주하는 자세가 인상적이다.

‘소리’와 가까워지고 싶기 때문이다. 가끔 연주회장에 울려 퍼지는 음향을 느끼고 싶을 땐 피아노가 아닌 그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연주에 특별히 좋은 자세는 아니다. 연습을 할 때는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지금껏 상당히 다양한 레퍼토리를 연주해왔다. 그중 가장 관심 있는 레퍼토리는 무엇인가? 혹시 하나의 레퍼토리에 몰두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항상 새로운 작품을 공부한다. 다양한 작품을 연주하는 것이 즐겁다. 현재 베토벤과 더불어 모차르트·스크랴빈·리스트, 그라나도스의 곡을 연습하고 있다. 앞으로는 드뷔시의 작품과 러시아 작곡가들의 레퍼토리를 연주해보고 싶다. 세상엔 내가 아직 연주해보지 못한 수많은 작품이 있다. 피아니스트라서 얼마나 행복한지! 언젠가 한 명의 작곡가를 깊게 연구하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을 만나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지난해에 이은 두 번째 내한이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선택한 이유는?

내가 아주 ‘사랑’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기쁨이 넘치고, 햇살이 가득한 듯한 느낌을 지녔다. 청중이 내 연주를 통해 이러한 느낌을 전달받길 바란다. 특히 이번 연주회 때엔 1·3악장에서는 위트와 반짝임을, 2악장에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부드러움을 강조하고 싶다. 덧붙여 베토벤 작품 해석은 슈나벨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그의 연주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남성미도 함께 표현하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리스트 협주곡으로 할레 오케스트라와 영국에서 투어를 연다. 10월엔 리카르도 샤이 지휘로 라 스칼라 극장 데뷔를 앞두고 있다. 11월엔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처음 선보이는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음악가로서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 배우고 싶은 레퍼토리가 많아 꽤 오랫동안 바쁘게 지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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