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부지휘자, 빛나는 음악의 조력자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6월 14일 8:10 오후

SPECIAL ISSUE

이 사람들이 궁금하다!

부지휘자, 빛나는 음악의 조력자들

 

국립오페라단·서울시향 ‘트리스탄과 이졸데’ 리허설 현장의 송민규 서울시향 부지휘자(사진 왼쪽) ©서울시향

 

 

 

 

 

 

 

 

 

 

 

스포트라이트는 늘 한 명의 지휘자를 향해 비추지만, 음악이 완성되기까지 리허설 현장에서 악단의 흐름을 붙들고 치열하게 호흡을 다듬는 또 다른 지휘자가 존재한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사이에서 리허설의 빈틈을 메우고, 단원들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음악의 깊이를 함께 유영하는 부지휘자들의 세계. 악단의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호흡과 과정을 통해 부지휘자라는 자리를 새롭게 들여다본다

총괄 유내리 기자

 


 

COLUMN

두 번째 포디움의 주인공

음악·사람·조직 사이에서 완성되는 리더십

공연은 흥미와 관심, 호기심 등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으로 관객을 불러 모은다. 관객은 객석에 앉아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마치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처럼! 그리고 공연이 끝나면 갈채로 공간을 채우며 최면에 빠졌던 것 같은 마법의 시간에서 빠져나온다.

관객은 이러한 무대를 보고 환상을 품지만, 사실 그 뒤에는 냉혹한 현실이 존재한다. 음악회라면 무대 위에 오르는 수많은 연주자와 이들을 통솔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뿐 아니라, 무대 뒤의 부지휘자와 여러 감독, 행정 스태프들의 노고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다. 매 공연마다 이뤄지는 이들의 성취는 가히 기적에 가깝다. 특히 부지휘자는 무대 뒤에서 좋은 공연을 위한 음악적 완성을 도와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고, 계약에 따라 이를 위한 다양한 업무와 책임을 맡기도 한다.(‘부지휘자’는 조력자에 가까운 ‘assistant conductor’와 동료에 가까운 ‘associate conductor’의 구분이 있지만, 본 글에서는 이 차이를 두지 않기로 한다.)

 

준비된 순간을 기다리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부지휘자의 임무는 예정된 지휘자의 갑작스러운 유고 시 투입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는 일이다. 교통이 발달하여 먼 거리도 빠르게 올 수 있는 요즘은 동급의 다른 지휘자를 급히 섭외하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이러한 긴급 상황 덕분에 알려진 지휘자들이 제법 있었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번스타인이다. 1943년, 당시 25세의 뉴욕 필하모닉의 부지휘자였던 그는 객원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독감으로 지휘할 수 없게 되자 리허설도 없이 급히 포디움에 올랐고, 단숨에 스타가 되었다. 정명훈도 비슷한 경우였다. 1980년대 초 LA 필하모닉의 부지휘자였던 그는, 당시 음악감독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건강 문제로 지휘를 하지 못하게 되자 대신 무대에 올랐고, 이는 1984년 독일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취임으로 이어졌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종종 있었는데, 특히 예정된 외국인 지휘자의 취소가 잦았고, 대체할 지휘자를 구하기 어려웠던 팬데믹 시기에는 부지휘자에게 전에 없던 기회가 주어졌다. 서울시향의 경우, 당시 부지휘자였던 윌슨 응이 주요 공연을 비롯한 많은 공연을 지휘하며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그 이름을 각인했고, 2022년에 계약이 만료된 이후 현재도 국내 여러 무대에 초청받고 있다.

실제로 부지휘자에게 일반적으로 요구되고 행해지는 임무는 성공적인 공연을 위한 리허설과 음악적 모니터링이다. 부지휘자는 악보 리딩과 파트 연습, 밸런스 등을 위한 리허설을 진행하여 연주자들이 미리 곡을 익힐 수 있도록 한다. 특히 객원지휘자가 예정된 경우는 리허설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어, 부지휘자가 주도하는 리허설이 성공적인 연주에 필수다.

리허설 중 객석 모니터링도 중요한 활동이다. 무대에서 듣는 것과 객석에서 듣는 것의 차이가 공연장마다 달라, 모니터링과 피드백은 공연의 성공 여부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여기에 리허설과 공연 진행 과정에서 지휘자·단원·스태프 사이의 소통을 조율하고, 공연 운영 전반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지원하는 일 역시 부지휘자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다.

각종 사회적 활동 또한 부지휘자의 업무에 포함되기도 한다. 물론 악단마다 이는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면 경기필하모닉 부지휘자 시절의 정나라는 경기아트센터 유튜브 채널의 클래식 음악 코너인 ‘경기필포유’에 고정 출연하기도 했다. 이 또한 앞서 언급한 소통의 연장선에 있다.

 

‘부’를 떼는 방법

하지만 어떤 지휘자도 영원히 부지휘자로만 머물 수는 없다. 누구든지 상임지휘자로서 포디움에 올라 주요 음악회에서 무게감 있는 작품을 지휘하고 싶을 것이다. 다만 현재 몸담고 있는 악단에서 상임으로 오르는 경우는 흔치 않으며, 주로 다른 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임명되면서 음악감독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번스타인은 스타덤에 오르고 2년 후인 1945년, 스토콥스키가 창단한 뉴욕 시티 심포니를 맡았고, 정명훈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독일에서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이것은 전통이라기보다, 부지휘자의 계약 종료 시점과 상임지휘자의 공석이 맞물리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부지휘자를 역임한 이들은 대부분 다른 관현악단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부’를 뗀다. 서울시향 출신의 부지휘자들 가운데 성시연은 경기필하모닉, 최수열은 부산시향, 데이비드 이는 강남심포니에서 상임지휘자의 호칭을 받았다. 앞서 언급했던 정나라도 현재 공주시충남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활동 중이며. 여러 합창단의 부지휘자들도 자리를 옮기면서 상임지휘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한 명의 상임지휘자가 만들어지는 과정

상임지휘자로 임명되기 위한 리더십을 검증하기는 매우 쉽지 않은 일이기에, 부지휘자였을 때의 활동과 성과는 매우 중요하다. 부지휘자로서의 성과는 여러 업무를 통해 얻어지며, 추후의 커리어 활동에 큰 영향을 끼친다. 우선 실제 지휘 경험에서 얻는 음악적 성취는 무게감 있는 정기 연주회는 아니더라도, 지휘자로서의 음악적 역량을 기르고 다지는 중요한 기회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적 경험만으로는 지휘자의 리더십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단원들, 그리고 스태프들과의 소통을 비롯한 공연 운영 전반에 걸친 업무들은 음악회를 열고 단체를 운영하는 생리를 몸에 익히게 하며, 이에 필요한 신뢰와 역량을 자라게 한다. 결국 다양한 경험들이 부지휘자의 성과로 쌓여 상임지휘자가 되는 균형 잡힌 밑거름이 되며, 탄탄한 음악적 리더십을 세운다.

그렇기에 악단 역시 부지휘자를 단순히 ‘준비된 대타’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음악가와 관객, 행정조직을 연결하는 핵심 인력으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적절한 임무를 부여해야 하며, 관객들이 그의 활동을 주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혹시나 이 과정에서 과도하거나 부당한 업무에 시달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부지휘자의 모든 활동의 목적은, 처음에 언급했던 대로 ‘좋은 공연’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현재 전임·부지휘자로 재직 중인 6인 인터뷰

박근태
대전시향 전임지휘자

명료한 해석, 절묘한 통합 사이에서

함께 써 내려가는 교향악의 색채, 이제 막 시작된 호흡

 

최근까지 베를린 노이에 필하모니와 루마니아 바나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유럽 악단에서 활동해 온 박근태는 각 악단이 지닌 고유한 사운드와 소통 방식, 문화적 차이를 몸소 경험해왔다. 긴 시간 그가 배운 것은 악단이 가진 언어를 먼저 이해하고, 이미 형성된 색깔을 존중하는 일. 그리고 그 안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음악이 살아날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역시 지휘자의 몫이라고 말한다. 오랜 시간 유럽 무대에서 활동해 온 그는 지난 3월, 대전시향에 새 둥지를 틀었다.

 

 

 

대전시립교향악단 전임지휘자로 취임하신 소감 부탁드립니다.
지난해 4월, 대전시향과 객원지휘자로 함께한 두 번의 공연으로 인연이 이어져 전임지휘자로 함께해 달라는 제안을 받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하며, 동시에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전임지휘자가 대전시향에서 수행하는 핵심적인 역할은 무엇인가요?
대전시향의 기획공연인 ‘디스커버리 시리즈’, 찾아가는 음악회의 프로그램 구성과 협연자 선정, 지휘와 해설에 이르기까지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 전체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기획 과정에서부터 사무국과 긴밀히 협업하고, 단원들과도 자연스럽게 긴 호흡으로 작업하게 되지요. 시간을 거듭하며 서로의 신뢰가 쌓이고, 하나의 팀으로 음악을 만들어간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동시에 책임감이 강해졌어요. 무엇보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분들이 음악을 조금 더 편하게 느끼고 가까워지는 순간들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피아노 석사와 지휘 학사 과정을 동시에 공부했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 가장 크게 체득한 것은, 긴 호흡이 필요한 작품을 끝까지 혼자 책임지고 끌고 가는 감각이었어요. 이를테면 베토벤 소나타 ‘함머클라비어’를 연주할 때는 긴 시간 동안 관객의 집중을 어떻게 붙들고, 어디에서 긴장을 풀고 조일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좌절을 겪으며 음악의 밀도를 쌓는 방법을 몸으로 익혔지요. 지휘 역시 하나의 거대한 호흡과 서사를 설계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의 방향성과 순간의 생동감을 만들어가는 감각은 피아니스트로서의 경험에서 출발해 지금의 지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전시향의 ‘걸음마 콘서트’ ‘EQ-UP 콘서트’ 등 아이들이 대상인 기획공연은 일반 정기연주회와는 또 다른 접근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럼요, 아무래도 아이들의 집중 시간은 짧으니까요. 그래서 명확하게 흐름을 설계하고, 리듬과 색채, 대비가 또렷하게 드러나는 이야기 음악회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음악의 흐름에 맞춰 배우들의 대사와 동선을 정리하고, 조명과 영상, 발레단과의 협업까지 함께 고민합니다. ‘이해해야 하는 음악’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몸으로 느끼는 음악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

한 번의 연주를 완성하는 객원지휘자와 악단과 장기적으로 작업하는 전임지휘자는 어떤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하나요?
객원 지휘는 제한된 시간 안에 하나의 해석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리허설을 통해 그 방향을 빠르게 공유해 무대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순간의 집중력과 설득력이 중요하지요. 반면 전임지휘자로서의 작업은 하나의 결과에 그치기보다, 지속적인 시간을 두고 사운드와 해석을 축적해 나가는 과정에 가까워요.
두 방식 모두 중요하지만, 전임지휘자는 시간이 쌓일수록 악단의 음악이 변화하고 깊어지는 과정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보다 근본적인 고민과 성장을 요구하는 작업이라고 여겨집니다.

여자경 예술감독에게서 배우고 싶은 점, 혹은 인상 깊게 느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직 감독님과 함께한 시간이 길지는 않아 조심스럽지만, 가장 인상적으로 느낀 부분은 감독님이 악단을 대하는 책임감이었습니다. 제가 맡은 공연 리허설에도 직접 오셔서 지켜봐 주시고,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셨거든요. 오케스트라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많은 고민과 노력을 기울이시는 모습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사람을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느껴졌고, 그것이 결국 오케스트라의 분위기와 음악에도 중요한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임지휘자로서 대전시향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 음악적 방향이 있다면?
작곡가마다의 고유한 색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음향입니다. 그리고 매 작품마다 요구하는 질감과 균형을 정확하게 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안에서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통일된 방향 속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이 형성되는 앙상블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일방적인 지시보다는 음악에 대한 공감과 몰입 속에서 이루어질 때 가장 효과적이지요.

유내리 기자 사진 대전시향

 

찾아가는 음악회 ‘화목한 문화산책’

EQ-UP 콘서트 ‘호두까기 인형’

 

 

 

 

 

 

 

 

 

 

 

PERFORMANCE INFORMATION
박근태/대전시향(협연 박근태)
7월 2일 오후 7시 30분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R. 슈트라우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K467 외
박근태/줄라이 페스티벌 오케스트라(협연 이관욱)
7월 31일 오후 8시 대학로 예술가의 집 3층
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 생상스 피아노 협주곡 2번, 라벨 ‘쿠프랭의 무덤’
박근태/국립심포니(협연 박재홍)
10월 6일 오후 8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교향곡 6번 ‘비창’

박근태(1991~)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에서 피아노 석사와 지휘 학사 과정을 졸업했으며, 베를린 예술대(UdK)에서 지휘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2022년 프랑스 드 보줴 오페라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함부르크 심포니 등 주요 악단을 지휘했다. 베를린 노이에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에서 수석지휘자를, 루마니아 바나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부지휘자를 역임했다.

 


 

정한결
인천시향 수석부지휘자

소통과 존중으로 만들어가는 좋은 음악

묵묵히 악단의 조력자로 활약해 온 젊은 지휘자의 내면

‘서로에 대한 존중과 세심한 소통’. 정한결은 이것이 좋은 공연을 만드는 힘이라고 믿는다. 정한결은 2022년 3월 인천시향의 부지휘자로 선임되어 올해 3월 같은 악단의 수석부지휘자로, 같은 시기 인천시립청소년교향악단의 창단과 함께 상임지휘자 자리에도 임명됐다. 스스로를 인천시향의 ‘맏아들’ 같다고 표현한 그는, 인천시향의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구성원들 사이의 소통을 담당하는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22년부터 인천시향의 부지휘자를 거쳐, 수석부지휘자로 임명되었습니다. 실질적으로 어떤 업무를 수행하고 계신가요?
우선 예술감독을 보조하는 것이 부지휘자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예술감독 리허설 전 사전 연습을 진행하거나, 리허설·공연을 참관하고 전반적인 진행 상황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등 공연 진행을 보조하는 부분을 맡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구성에 참여하거나, 일부 정기·기획·초청 공연을 직접 지휘하기도 합니다.

지난해 인천시향 부지휘자로서는 최초로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무대에 올랐죠.
당시 예술감독이 부재했던 시기였죠. 거의 1년 동안 감독대행 업무를 맡으며 모든 공연을 기획하고, 주요 회의에 참석하며 행정적인 결재까지 처리해야 했어요. 그리고 전임 예술감독님(이병욱)에 이어 새로운 예술감독님(최수열)이 취임하시기 전까지 그 중간 시기를 잘 연결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간 부지휘자 생활을 하며 익혀온 노하우와 기획·연주단원들의 응원과 격려로 큰 어려움 없이 수행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지휘자 시기에만 경험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면요?
오케스트라, 특히 시립교향악단의 운영 구조를 일찍이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교향악단은 시(市)나 도(道)에 소속된 공립 예술단 형태로 운영되는 만큼, ‘시립’교향악단으로서 악단이 수행해야 할 역할과 행정 체계를 배우며 제 역량을 검증해 나가는 시기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예술감독과 단원, 양쪽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 또한 부지휘자만이 해낼 수 있는 역할이겠죠. 수석부지휘자가 된 후로는 더 많은 정기공연을 맡게 되었는데, 비교적 젊은 나이부터 다양한 공연과 작품을 지휘하며 레퍼토리를 쌓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커리어에 있어 큰 도움이 되는 부분입니다.

지난 3월 인천시립청소년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에 선임되기도 했습니다. ‘상임지휘자’로서 새로 느끼게 된 바와, 아직 프로가 아닌 연주자들을 지도할 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제가 ‘악단을 대표한다’는 사실 자체로 더욱 큰 책임감을 갖게 됐죠. 단순히 최고의 ‘청소년’ 교향악단이 아니라 하나의 성숙한 악단이 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만 13세부터 24세까지 청소년·청년 연주자들을 지도하는 만큼 눈높이에 맞춰 자세히 설명하고, 면담을 통해 단원들의 상태를 살피기도 합니다. 지휘자로서는 좋은 지도자이자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물론 단원들을 학생으로만 생각하지는 않고, 프로 연주자를 대하듯 똑같이 존중하려고 합니다.

여러 단체와 음악적 장르를 망라해 활동하는 과정에서, 한 악단의 부지휘자를 맡고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주나요?
어떤 악단의 객원 지휘를 맡든, 제가 인천시향이라는 단체의 이미지를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현장에 참여합니다. 연주라는 결과물뿐 아니라 저의 행동 하나하나가 지금 몸담고 있는 교향악단의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책임감이 드는 것이죠.

단원들과의 소통에 있어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상호 간 존중과 세심한 소통입니다. 축구팀의 감독이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선수들을 돕는 역할을 하듯, 지휘자는 일방적인 지시를 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조력자’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적인 요구가 아닌 존중을 바탕으로 상호 간 피드백을 나누고,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결국 좋은 공연을 만드는 힘이죠.

현재 함께하는 최수열 예술감독에게 배우고 싶은 점은 무엇일까요?
역시 단원들과의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점입니다. 연습이 예상한 만큼 수월하게 흘러가지 않아 서로 예민해질 수 있는 상황에도 ‘여러분을 믿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차분하게 단원들을 격려하죠.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악단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을 우선시하고, 보다 참신하게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하는 모습에서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서울시향에서 부지휘자(2014~2017)를 역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부지휘자의 입장과 고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십니다.

부지휘자 시기에 공부해 두면 훗날 큰 자산이 된다고 생각하는 곡이 있다면요?
스트라빈스키의 작품들(‘병사의 이야기’ ‘봄의 제전’ ‘불새’)과 R. 슈트라우스 ‘돈 후안’은 젊은 지휘자들이 공부해야 할 필수적인 레퍼토리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연주에 올릴 기회는 많지 않지만, 입시나 콩쿠르에서 흔하게 다루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제가 올해 인천시향과 이 작품들을 지휘할 예정이기도 하네요. 앞으로 부지휘자들의 연주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장지현 수습기자 사진 인천시립예술단

©인천시향

인천시향 제430회 정기연주회 ©인천시향

 

 

 

 

 

 

 

 

PERFORMANCE INFORMATION
정한결/TIMF앙상블
6월 16·20일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 외
마우리치오 카겔 ‘바리에테’, 서주리 ‘롱도, 오스티나토 그리고 판타지아’, 전예은 ‘별의 노래’
정한결/인천시립청소년교향악단
(협연 김다미)
7월 25일 오후 3시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브람스 ‘대학 축전 서곡’·교향곡 1번,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정한결/인천시향 ‘조조 클래식’(진행 최수열)
8월 20일 오전 11시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
(협연 임채문)
반할 더블베이스 협주곡 D장조,
거슈윈 ‘파리의 미국인’
11월 12일 오전 11시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
(협연 유성권)
베버 바순 협주곡 F장조,
스트라빈스키 ‘불새’ 모음곡

 

정한결(1991~)
서울대·만하임 국립음대에서 지휘를 전공했다. 2021년 독일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3위 및 청중상을 수상했으며, 쾰른 WDR 방송교향악단· 국립심포니·KBS교향악단 등 국내외 교향악단 및 앙상블을 객원 지휘했다. 현재 인천시향 수석부지휘자·인천시립청소년 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재직 중이며 연세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송민규
서울시향 부지휘자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체감하는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의 언어를 배우고, 완성도를 위한 용기를 익히다

 

송민규는 “지휘자는 본인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운 직업이라, 단원들과의 유대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2월 서울시향 지휘 펠로십에 참가했고, 같은해 6월 부지휘자로 선임된 그는 1년 남짓한 시간을 통과해오며, 오케스트라의 사운드와 단원 개개인의 소리를 더욱 면밀히 듣는 지휘자로 변모했다. 무엇보다 단원들에게서 받은 세세한 피드백은 그에게 악단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든 훌륭하고 값진 자산. 동시에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 곁에서 완성도를 높여가는 과정과 태도를 체득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는 좋은 음악을 위해서는 때로 더 과감하게 요구하고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직접 체감하는 ‘부지휘자’는 어떤 자리인가요?
오케스트라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호흡하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부지휘자는 단원들과 비교적 가까이 소통할 수 있는 점이 있거든요. 저는 그게 부지휘자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악단의 주체는 단원들이고, 각 악기 분야에서는 최고의 전문가들이잖아요. 그분들과 가까이 소통하면서 배우는 게 정말 많습니다. 단원들과의 대화 속에서 새롭게 음악을 마주한다는 느낌이 들만큼요. 가끔은 지휘자의 시선과 실제 연주자분들이 체감하는 음악이 다르다는 걸 실감합니다. 음악감독에게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들도 부지휘자에게는 비교적 편하게 말씀해주시는 경우가 많고요.

리허설 현장과 오케스트라 운영 속에서 특별히 배우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요?
리허설 때는 보통 관객석 뒤쪽에 앉아 음향을 체크하는 편이에요. 포디움 위에서 듣는 소리랑 홀에서 들리는 소리가 다르거든요. 쉬는 시간과 리허설이 끝난 후에는 츠베덴 감독님과 어떤 부분을 보완하면 좋을지에 대해 대화를 나눕니다. 감독님도 제 의견을 궁금해하시고요. 또 사무실 안에서 어떤 과정으로 공연이 운영되는지도 가까이서 익히게 됩니다. 부지휘자의 시기는 오케스트라가 움직이는 전체 흐름을 함께 흡수하는 시간이라고 여겨져요.

약 1년간 현장을 경험하며, 처음 자리에 들어왔을 때와 지금을 돌아보았을 때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부지휘자로 부임해서 처음 맡았던 공연이 지난해 ‘퇴근길 콘서트’였어요. 당시에는 긴장도 많이 했고, 오케스트라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익숙하지 않은 상태였죠. 그런데 올해 다시 ‘퇴근길 콘서트’를 맡게 되면서, 자연스레 지난해와 비교하게 되더라고요. 1년 정도 시간이 지나며 단원들과의 유대감도 많이 쌓였고, 여러 조언들을 들을 수 있었어요. 예전보다 훨씬 면밀하게 현장을 바라보게 됐고, 리허설 현장과 본 무대에서도 더욱 주체적으로 움직이게 된 것 같습니다.

부지휘자로 가까이에서 경험한 서울시향만의 음악적 성향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예전부터 느껴왔지만, 서울시향의 가장 큰 장점은 ‘유연성’입니다. 해외 악단들, 특히 독일 오케스트라 같은 경우에는 자신만의 색깔을 굉장히 강하게 지키려는 경향이 있거든요. 납득하지 않으면 쉽게 바꾸지 않으려는 부분들도 분명 있어요. 반면 서울시향은 지휘자가 원하는 음악적 방향을 굉장히 빠르게 캐치합니다. 작품마다 그렇고, 어떤 객원지휘자가 오느냐에 따라서도 굉장히 유연하게 반응해요. 서울시향만의 아주 큰 강점입니다. 지휘자 입장에서는 정말 감사한 오케스트라죠. 츠베덴 감독님께서도 늘 강조하시는 부분이 그런 유연성이에요. “어떤 작품이든, 오페라든 발레든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가 되어야 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계시거든요. ‘카멜레온 같은 오케스트라’를 지향하는 셈이에요.

현재 함께 하는 음악감독에게 반드시 배우고 싶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츠베덴 감독님은 원래 바이올리니스트로, 암스테르담에서 오랫동안 악장으로 활동하셨잖아요. 그래서인지 현악기 사운드에 대한 이해와 디테일이 남다르세요. 서울시향과 리허설하는 모습을 보면 ‘이렇게까지 디테일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정밀한 음향을 만들어가십니다. 또한 원하는 소리가 날 때까지 집중해서 다듬어가세요. 이 모습은 요즘 세대의 젊은 지휘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지휘자들은 아무래도 오케스트라와의 관계나 리허설 분위기를 세심하게 고려해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기술적인 부분을 직접 설명하기보다는, 음악이 지닌 방향과 이미지를 공유하는 데 더 집중합니다. 반면, 감독님은 음악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은 놓치지 않고 완성도를 끌어올리세요. 결국 우리의 목표는 좋은 음악을 만드는 거니까요.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높은 완성도를 향한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음악을 위해서는 더 과감하게 시도하고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부지휘자로서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시간을 지나며 가장 크게 남았다고 느끼는 변화와 배움은 무엇인가요?
학생으로 지휘를 공부할 때나 객원지휘자로 오케스트라를 만날 때는, 아무래도 서로 나눌 수 있는 것과 받을 수 있는 피드백에 한계가 있어요. 반면, 부지휘자로 함께하는 시간은 조금 다릅니다. 단원들과 유대감이 쌓이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훨씬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거든요. 지휘자는 사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가 쉽지 않은 직업이에요. 리허설을 매번 녹화해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서울시향이라는 최고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이 부분은 이렇게 리허설 해주면 좋겠다” “이렇게 표현해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면밀하게 해주시니 제게는 너무나 값진 트레이닝이죠. 감독님께서도 세밀한 피드백을 아낌없이 주시고요. 이곳에서 받은 조언과 경험들은 지휘자로 다음 스텝을 밟더라도, 제게 아주 큰 자산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유내리 기자 사진 서울시향

‘퇴근길 토크 콘서트’(2026) ©서울시향

서울시향 ‘운명’(남양성모성지 대성당, 2026) ©서울시향

 

 

 

 

 

 

 

 

PERFORMANCE INFORMATION
송민규/서울시향 ‘퇴근길 토크 콘서트’
7월 14일·16일 정동제일교회 외
모차르트 ‘후궁으로부터의 탈출’ 서곡,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서곡 외
10월 1일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송민규/서울시향 ‘행복한 음악회, 함께!’
11월 13일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

 

송민규(1993~)
독일 데트몰트 국립음대와 베를린 예술대(UdK)에서 지휘 과정을 졸업했다. 2024년 귀도 칸텔리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히로시마 지휘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거뒀다.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쾰른 WDR 방송교향악단 등 유럽의 주요 악단과 호흡을 맞춰왔다. 국립오페라단 스튜디오 지휘자로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슈트라우스 ‘박쥐’ 등 주요 프로덕션에 부지휘자로 참여했으며 TIMF앙상블과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작품을 초연했다.

 


 

이준
광주시립합창단 부지휘자

유대와 신뢰로 모으는 소리

완성도 높은 합창을 이끌어내는 ‘원활한 소통’ 만들기

 

 

2009년 5월 광주시립합창단의 부지휘자로 부임한 이준은 17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부지휘자 자리에 오르기 전부터 20년간 단원으로 활동하며 광주시립합창단과 긴 세월의 연을 쌓아온 그에게는 단원들과의 유대감과 신뢰가 활동의 원동력이다. 그는 부지휘자라는 직책에 대해 상임지휘자의 음악적인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단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가교’가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시립합창단에서 오랜 시간을 활동했는데, 그 연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대학교 1학년 재학 중에 광주시립합창단의 당시 지휘자님으로부터 활동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때는 비상임 베이스 단원으로 시작했는데, 일찍이 입성하게 된 합창단 생활을 통해 학부시절부터 훌륭한 지휘자분들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합창에 깊은 매력을 느끼며 점차 성악보다는 지휘 분야에 더 매료되었고, 합창지휘자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은 계기도 그때의 경험에서 비롯했습니다.

단원에서 부지휘자로 승격할 당시의 부담감은 없었나요?
부담감이 없지는 않았으나, 동시에 설렘도 컸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무조건 실력으로 인정받아야겠다는 마음이 앞섰는데, 부지휘자로 지낼수록 더 나은 합창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단원들과의 소통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단원들과 돈독히 지낸 세월이 있었던 덕에 단원들은 제가 부지휘자로 부임하고 나서도 스스럼없이 대해주곤 했으며, 저도 그들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원만한 소통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소통에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평시에 진솔한 대화를 통해 구축하는 신뢰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긴 시간 믿음의 연대를 이룰 수 있었던 합창단에 그저 감사한 마음입니다.

현재 광주시립합창단의 임창은 상임지휘자에게 어떤 면모를 배우고 싶나요?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침착한 자세를 유지하는 모습, 그리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동시에 프로그램을 구상할 때에는 과감하고 도전적인 작품을 선정하는 모습 또한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늘 열정적으로 합창단을 이끌어가려는 모습에서 큰 동기부여를 받곤 합니다.

현재 지역 내 아마추어 합창단 지휘자도 맡고 있습니다. 프로와 아마추어 단원을 대할 때에 어떤 차이가 생기나요?
실력적인 부분을 떠나서, 프로와 아마추어는 음악을 이해하는 방식과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아마추어를 이끄는 지휘자는 이를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빠르게 인지해야 합니다. 또한 그 안에서도 남성·혼성·시니어·교회 등 다양한 형태의 합창단이 각자 다른 결을 지니기 때문에 연주 때마다 리허설 방식을 모두 달리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부지휘자 활동으로 쌓은 경험이 다양한 합창단을 지도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느낍니다.

직접 지휘봉을 잡는 연주에서는 관객과의 호흡을 중시한다고 들었습니다. 원활한 호흡을 이루기 위해 신경을 기울이는 요소에는 무엇이 있나요?
우선적으로 가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합창은 ‘언어’로 이루어진 음악이기 때문에 가사가 전달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음악을 잘 살렸다 하더라도 실패한 연주가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마치 시를 낭송하듯, 가사를 명확히 전달하는 데 중심을 두고 주력하는 편입니다. 또한,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에서의 지휘를 주로 맡는 입장이다 보니 선곡 면에서도 높은 난도를 요구하는 음악보다는 대중 입장에서 편안함과 친밀함을 느낄 만한 작품을 택하는 편입니다. 물론 비교적 쉽고 간단한 연주곡이라도 그 작품이 가지는 음악적인 특성을 잘 나타내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죠.

직접 지휘봉을 잡은 공연에서 뿌듯함을 느낀 에피소드를 떠올린다면?
2년 전쯤에 지휘했던 가족음악회에서 시민들을 통해 앙코르 공연을 요청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 작품도 아니고 동일한 공연을 다시 듣기 원한다는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받기는 쉽지 않은 일이니 말입니다. 소리를 한데 모아 관객들의 마음에 감동을 일으킬 수 있었다는 그 때의 기쁨이 아직도 선합니다.

긴 시간 부지휘자로 활동하며, 해당 경험을 통해 얻어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느꼈나요?
제각각의 다양한 음악 스타일과 개성을 지닌 여러 상임지휘자님들을 거치며 안목이 넓어짐을 느꼈고, 부지휘자 활동 속에서 겪은 다양한 실무 경험을 통해 스스로도 합창을 좋은 방향으로 지도하고 이끌어낼 튼튼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수업을 통한 이론적인 설명과 실질적으로 겪는 현장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다양한 실무 경험이 귀중한 시점에서 부지휘자는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을 가진 직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최성혁 기자 사진 광주시립합창단

광주시립합창단 ‘가족음악회’ ©광주시립합창단

 

 

 

 

 

 

 

 

 

이준(1969~)
전남대학교 음악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을 거쳐 광주대학교 대학원에서 지휘전공으로 졸업했다. 2017년 전국지역신문협회 선정 한국문화예술대상·KFCM한국합창총연합회 주최 제2회 합창지휘콩쿠르 대상·전국 합창경연대회에서 다수 수상한 바 있다.

 


 

최석문
대구시립합창단 부지휘자

소중한 경험의 순간

음악부터 실무에 이르는 모든 분야를 거치며

 

크고 작은 연주회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에서 리허설·무대·악기·연주자·악보 등에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상임지휘자를 뒷받침하는 것이 부지휘자의 역할이라고 최석문은 말한다. 2024년 4월 대구시립합창단 부지휘자로 부임한 이후 3년 차에 접어든 그는 밀려드는 연주 속에 많은 긴장, 부담과 함께 정신없이 지냈던 지난 시간을 회고했다.

 

유학 시절부터 부지휘자 직책을 맡았는데, 어떤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었나요?
자원한 것은 아니었는데도 뜻밖의 기회가 주어진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오케스트라 지휘를 공부했던 위스콘신대학교에서는 전액장학금과 함께 오케스트라 부지휘자 및 대학원 조교를 함께 맡을 수 있었고, 오클라호마대학교에서는 대학원 조교로 일하던 중 코로나로 인해 전임교수님의 건강에 문제가 생겨 생각지도 못하게 교내 합창단 지도를 맡게 되었습니다. 유학생에게는 실질적으로 지휘봉을 잡을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는데, 좋은 기회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들이었습니다.

합창지휘 전공으로 학위를 이어가던 중 위스콘신대학교에서는 오케스트라 지휘를 공부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초등학생 때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당시 선생님께서 주셨던 카세트테이프로 오케스트라 작품을 들으며 일찌감치 오케스트라 음악에 매료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작곡 공부를 거쳐 최종적으로 합창지휘를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오케스트라 지휘를 공부하고 싶다는 갈망이 남아있었어요. 그러던 중 오페라·오라토리오·미사곡처럼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합창곡을 다룰 때마다 오케스트라를 리드하는 데에 부족함을 느꼈고, 정식으로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체감했습니다. 확실히 오케스트라 지휘를 공부한 이후로 스코어를 읽어내는 시야가 크게 확장됐고, 새로운 지휘 테크닉을 익히며 결론적으로 합창지휘에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국내외에서 부지휘자를 경험하며 느낀 인식이나 시스템의 차이점은 없나요?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습니다만, 어느 단체에서 부지휘자를 맡고 있느냐에 따라 하는 일에 차이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내 시립합창단에서는 정기공연의 보조 외에도 시에서 주관하는 행사나 시민들과 함께 하는 연주를 부지휘자가 맡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환경은 추후 상임지휘자로서 활동하기 전에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재 소속된 대구시립합창단에서는 부지휘자로서 어떤 경험을 쌓을 수 있었나요?
상임지휘자인 공기태 예술감독께서는 정기공연 이외의 공연들(토요시민콘서트·수요상설공연·찾아가는 음악회) 등 연간 40회 이상의 연주회에서 제가 지휘를 할 수 있도록 이끌며, 공연 준비 과정에서 온전히 제게 맡겨 주시는 덕에 스스로 음악을 빚어낼 수 있는 기회를 얻곤 합니다. 그 분의 배려심과 겸손함,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맞서는 리더의 모습 또한 제게 큰 귀감이 됩니다. 더불어, 시민 대상의 연주에서는 동요 메들리나 K팝, 사랑과 희망을 담은 친근한 프로그램을 구성하며 대중적인 레퍼토리의 폭이 넓어졌고, 직접 대본을 준비해 사회를 보는 무대에도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한번은 초등학교 연주회에서 학생들이 종이와 펜을 들고 와서 제게 사인을 요청하더라고요. 살면서 사인 요청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요.(웃음) 이런 소소한 추억들도 이곳에서의 생활의 원동력입니다.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는 단원들과의 많은 소통이 필요합니다. 그 안에서 세우는 본인만의 원칙이 있나요?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배려한다면 상호 간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원들과 협업할 때 제 일방적인 생각을 전달하고 진행하기보다 대화를 통해 전반적인 상황을 점검하고 그에 맞는 결정을 내리려고 노력합니다. 그 외에도, 정해진 시간에 리허설을 잘 준비하는 것, 그리고 저의 음악적인 생각을 분명한 언어로 잘 전달하는 것 또한 음악적 신뢰를 쌓아나가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부지휘자를 거쳐갈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요?
사실 저는 꽤 많은 부지휘자 오디션에 떨어졌었는데요. “떨어져도 잘 떨어지자” “좋은 인상을 남기자”라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던 것 같습니다. 떨어지면서 더 단단해지기도 했고,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더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죠. 그런 시간들이 쌓여 부지휘자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지금도 그 당시의 저와 같은 고민을 가진 후배님들이 계실 텐데요, 가까운 시기에 꼭 좋은 기회가 올 것이니 절대 포기하지 말고, 한국 합창음악 발전에 기여해 주시길 부탁드리는 마음입니다.

최성혁 기자 사진 대구시립합창단

대구시립합창단 ‘수험생을 위한 특별음악회-Begin again’

 

 

 

 

 

 

 

 

 

 

 

PERFORMANCE INFORMATION
최석문/대구시립합창단
‘DAC 문화가 있는 날-수요상설공연’
6월 10일 오후 7시 대구문화예술회관 동편 야외무대
조혜영 ‘못잊어’, 이범준 ‘기쁨에게’ 외

 

최석문(1983~)
계명대 음대 및 한세대 음악대학원에서 합창지휘전공을 거쳐 위스콘신대 오케스트라 지휘 석사, 오클라호마대 합창지휘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위스콘신대 UWM심포니·오클라호마대 OU합창단·최훈차콰이어 부지휘자 및 계명대·한세대 강사를 역임했다. 현재 대구시립합창단 부지휘자 및 단국대학교 대학원 합창지휘과 외래교수를 맡고 있다.

 


엄보영
부산시립합창단 부지휘자

소리의 시작점을 맞춘다는 것

55명의 목소리를 하나의 음악으로, 합창의 외연을 넓히다

 

부산시립합창단 연습실, 단원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인다. 2025년 8월 부산시립합창단의 부지휘자로 부임한 엄보영은 하반기 공연 준비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부지휘자를 “합창단의 든든한 조력자인 동시에 미래의 상임지휘자로 성장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예술감독의 음악적 방향을 함께 구현하는 한편, 리허설과 단체 운영 전반을 책임지는 실무 또한 현장에서 몸으로 익혀가는 중이다.

 

 

 

합창지휘와 관현악 지휘를 모두 전공한 경험이 곡을 해석하고 단원을 이끄는 데 어떤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나요?
음악사 전반을 살펴보면 합창과 기악이 함께 어우러지는 대작들이 참 많습니다. 오케스트라 지휘를 전공한 덕분에 각 악기의 포지션과 특성을 조금 더 편안하게 이해하며 리허설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죠. 하지만 지휘자로서 어느 정도 재량이 쌓이고 나면 사실 전공의 경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합창이든 기악이든 그 안에 담긴 음악적 본질을 꿰뚫어 보고 구현해 내는 것이 지휘자의 역할이니까요.

개성이 강한 성악가들의 목소리를 하나의 소리로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디테일은 무엇인가요?
프로 합창단원들은 거의 모든 분이 성악을 전공한 전문가들입니다. 모두 훌륭한 기량을 갖춘 솔리스트들이지만, 합창이라는 하나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때로 자신의 개성을 조금씩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죠. 그래서 저는 소리의 출발점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이 합창의 정교함을 결정하는 핵심 디테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원들에게 딕션의 모음을 입안 어느 지점에서 시작할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편이에요.

오는 7월 23일, 취임 연주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을 소개해 주세요.
이번 공연의 부제는 ‘Rhythm Fantasy’입니다. 네 가지 장르의 리듬을 통해 여름밤의 열기를 식혀드릴 예정이에요. 조지 거슈윈의 ‘포기와 베스’ 메들리로 시작하는 재즈 블루스부터 북미 팝 음악으로 구성된 영화음악, 삼바와 보사노바가 어우러진 정열적인 남미의 리듬, 그리고 마지막 K팝 무대까지 알차게 준비했습니다. 다양한 음악과 함께 여름밤의 더위를 시원하게 날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어린이 음악극 ‘꿈을 향해!’에서 연출적인 감각도 보여주었죠. 그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한 지휘자로서의 자산이 있다면요?
음악극은 영상·안무·의상 등 신경 써야 할 요소가 굉장히 많습니다. 감사하게도 이기선 예술감독님께서 음악극 경험이 있는 제 경력을 보시고 이번 프로그램을 맡겨주셨어요. 대본 각색부터 곡 의뢰까지 긴밀하게 소통하며 준비했는데, 특히 대사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직접 레치타티보 악보를 썼던 경험이 기억에 남습니다. 지휘자가 아무리 공을 들여도 연주자들이 받쳐주지 않으면 좋은 음악이 완성될 수 없는데, 그 세밀한 호흡을 완벽하게 살려주신 반주자님과 주역 단원들의 열연 덕분에 공연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곧 부산 초연으로 선보일 벤저민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에도 기대가 모입니다. 이 과정이 자신에게 어떤 밑거름이 되고 있나요?
부산시립합창단·대구시립합창단·광주시립합창단·해운대구립소년소녀합창단 등 네 합창단과 챔버오케스트라(부산시향)가 참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인 만큼, 세밀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연주자들의 동선 체크는 물론, 자막의 위치나 관객의 시야 확보 같은 음악 외적인 부분까지 꼼꼼하게 챙겨야 하죠. 이런 복잡한 현장을 조율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지휘자로서의 근육을 키워주는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있습니다.

후배 지휘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부지휘자용 특화 레퍼토리’가 있을까요?
특정한 곡을 정해두기보다는 최대한 다양한 장르를 한 작품씩이라도 깊이 있게 경험해보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무반주부터 피아노, 기악 앙상블, 복합창, 그리고 대규모 오케스트라 합창 음악까지 말이죠. 관객의 취향과 시대의 흐름은 계속 변하지만, 장르별로 확실한 레퍼토리를 갖추고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상임지휘자인 이기선 예술감독에게 가장 배우고 싶은 지휘자의 덕목은 무엇인가요?
음악적인 깊이는 두말할 것 없고, 단원들을 진심으로 아끼시는 인격적인 면모를 꼭 닮고 싶습니다. 지휘자가 갖춰야 할 리더십의 본질은 결국 뛰어난 음악성과 훌륭한 인격, 그리고 사람을 향한 마음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데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홍예원 기자 사진 부산시립합창단

어린이 음악극 ‘꿈을 향해!’ ©부산시립합창단

엄보영/부산시립합창단 ©부산시립합창단

 

 

 

 

 

 

 

 

PERFORMANCE INFORMATION
엄보영/부산시립합창단 제201회 정기연주회 ‘2026 SUMMER FANTASY-리듬’
7월 23일 오후 7시 30분 부산문화회관 중극장
거슈윈 ‘포기와 베스’ 외

 

엄보영(1986~)
총신대에서 합창지휘를 전공하고, 이화여대에서 관현악 지휘 석사를, 연세대에서 합창지휘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이후 앙상블 음감 음악감독 등을 역임했으며, 오페라 ‘라 보엠’ ‘라 트라비아타’ 등의 부지휘를 맡았다. 2024년 한국합창지휘자협회 선정 국립합창단 신진지휘자 초청연주회 객원지휘자로 발탁되었으며, 현재 부산시립합창단 부지휘자와 율쳄버콰이어 전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SUGGESTION

 

왜 부지휘자를 육성해야 하는가?

국내 교향악단 내 부지휘자 직책 현황과 변화하는 환경에 맞는 운영법

해외 주요 악단들은 이미 부지휘자 혹은 지휘 펠로십을 젊은 지휘자 양성의 핵심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LA 필하모닉의 ‘두다멜 펠로우’는 2009년 구스타보 두다멜과 LA필이 만든 프로그램이다. 젊은 지휘자들이 음악감독의 멘토링을 받으며 오케스트라·교육·커뮤니티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설계되었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카라얀 아카데미 역시 ‘지멘스 지휘 장학생’ 제도를 통해 수석지휘자와 객원지휘자의 프로젝트를 보조하고, 카라얀 아카데미의 ‘카르트 블랑슈’ 콘서트에서 직접 지휘할 기회까지 제공한다. 이는 악단 안에서 부지휘자를 성장하는 미래의 음악 리더로 간주하는 방식이다.

스위스 루체른 심포니의 부지휘자 공모는 그 역할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리허설 참관, 악보와 프로그램 준비, 녹음 지원, 객원지휘자 보조는 물론이고, 파트 리허설 진행, 긴급 대체 지휘, 독자적 콘서트 지휘 기회까지 직무에 포함된다. 프랑스 오페라 코미크에서 2023년 9월부터 아카데미 소속 부지휘자로 활동한 새미 엘 가다브는 부지휘자를 ‘그림자의 직업’이라고 설명하며 “언제든 지휘자가 부재할 때 음악적 책임을 이어받을 수 있을 만큼 같은 수준으로 준비된 존재”라고 말한다.

아시아권의 부지휘자 제도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자리 잡아왔다. 일본 도쿄도교향악단의 연혁에는 1967년 고이즈미 히로시가 부지휘자로 취임했고, 1970년 이노우에 미치요시가 부지휘자로 임명된 기록이 있다. 중국국가교향악단은 부지휘자를 조리지휘(助理指挥)라는 이름으로 두고 있으며, 베이징 국가대극원 오케스트라도 2022년 쑨이판과 라이자징을 조리지휘자로 임명했다.

직책은 있으나 제도는 미흡한 국내 상황

그렇다면 한국은 어디쯤 서 있는가. 기록상 국내 교향악단의 부지휘자 직제는 적어도 1958~1959년 김희조(1920~2001)가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로 재직한 사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시향의 현대적 계보 역시 비교적 분명하다. 성시연(2009~2013), 최수열(2014~2017), 윌슨 응(2019~2022), 데이비드 이(2020~2025), 피터 빌로엔(2024, 수석부지휘자), 송민규(2025~현재)로 이어지는 부지휘자 명단은 서울시향이 이 직책을 일정한 제도로 관리해 왔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사정은 다르다. 부지휘자라는 이름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안정된 직무기술서와 임기, 훈련 과정, 평가 체계, 독자적 지휘 기회로 이어졌는지는 여전히 단체마다 차이가 크다.
2026년 5·6월 현재 공개 자료와 공식 홈페이지, 공연 정보, 채용·위촉 자료를 기준으로 보면, 한국에서 부지휘자·상임부지휘자·전임지휘자 제도를 갖춘 공립 교향악단과 합창단은 공개 자료상 16곳 안팎으로 파악된다. 교향악단의 경우 서울시향(송민규), 인천시향(정한결), 대전시향(박근태), 부산시향(백승현), 대구시향(박혜산), 수원시향(신은혜) 등이 부지휘자 직책을 맡고 있다. 구 단위에서는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이탐구)가 예외적 사례이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KBS교향악단이 부지휘자 직책이 있으나 현재는 공석이다. 합창단의 경우 국립합창단(성다혜)을 비롯해 인천시립합창단(장민혜), 부산시립합창단(엄보영), 대구시립합창단(최석문), 광주시립합창단(이준), 대전시립합창단(조은혜), 수원시립합창단(박선이), 안양시립합창단(송현아), 강릉시립합창단(김도형) 등에서 부지휘자 또는 이에 준하는 전임지휘자 직책이 있다.

다만 이 통계는 ‘제도가 완전히 정착했다’는 뜻이라기보다, 공개 자료상 직책과 현직자가 확인되는 최소한의 현황에 가깝다. 직무 범위 역시 리허설 보조, 교육 공연, 기획 공연 지휘, 행정 협업 등도 악단마다 편차가 크다.

위와 같은 통계를 살펴보면 부지휘자 제도는 대체로 상임단원 규모와 연간 공연량을 갖춘 광역 단위 시립 예술단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제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예산, 공연 제작량, 교육 프로그램의 폭이 아직 부지휘자라는 별도 직무를 안정적으로 떠받칠 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객석의 ‘귀’, 악단의 ‘눈’이 되는 중요한 직책

중요한 것은 직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의 부지휘자(2022~23)와 수석부지휘자(2023~25)를 역임한 이승원은 “한국에서도 부지휘자 제도가 더욱 활성화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에게 부지휘자 경험은 음악감독이나 상임지휘자가 되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할 중요한 과정에 가깝다. “사실 행정적인 경험은 음악가로서 평소 접할 기회가 드물지만, 어느 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기 전에 이런 경험을 꼭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미국행을 택했습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부지휘자는 단순히 악보를 더 많이 공부하는 자리가 아니라, 악단이라는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배우는 자리다.

그는 아쉬운 점으로 ‘리허설 환경’을 꼽았다. “해외 오케스트라는 실제 공연장에서 며칠 동안 리허설을 진행하며 홀 음향에 적응하는 경우가 많지만, 국내 오케스트라는 울림이 거의 없는 리허설룸에서 대부분의 연습을 마친 뒤 공연 당일 짧은 시간만 홀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객석에서 소리를 들어줄 ‘제3자의 귀’가 필요합니다. 지휘자는 포디움 위에 서 있기 때문에 객석에서 어떻게 들리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의 부지휘자 제도는 이제 악단의 운영 안정성과 차세대 지휘자 육성을 함께 담당하는 제도로 정착해야 한다.

외국인 지휘자 체제일수록 꼼꼼한 관리가 필요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국내 교향악단의 지휘자 운영 구조다. 국내 주요 악단 가운데 해외 활동 기반을 지닌 음악감독이나 상임지휘자를 초빙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악단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새로운 음악적 자극을 불어넣는 장점이지만, 동시에 상임지휘자가 악단의 일상적 훈련과 내부 운영에 상시적으로 관여하기 어려운 구조를 낳기도 한다.

객원지휘 체제가 잦고, 음악감독의 체류 기간이 제한적일수록 악단 안에는 리허설의 기억을 축적하고, 단원들과 지속적으로 호흡하며, 음악적 방향을 일상적으로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다. 이때 부지휘자는 상임지휘자의 부재 시간 동안 악단의 컨디션을 살피고, 프로그램 준비와 리허설 과정을 점검하며, 객원지휘자와 악단 사이의 음악적 언어를 이어주는 중간 리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부지휘자 제도는 국내에서도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 외부 음악감독·객원지휘 중심 운영 구조의 보완 장치이기도 하다. 특히 공립 교향악단은 특정 지휘자의 카리스마에만 의존할 수 없다.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악단이라면, 음악감독의 부재 여부와 관계없이 일정한 예술적 수준과 조직적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부지휘자는 악단 내부의 음악적 연속성을 지키는 제도적 장치이며, 한국 오케스트라가 보다 안정적인 공공 예술기관으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강화해야 할 직책이다.

송현민(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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