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인생 만세(Viva La Vida)! 찬란한 인생에 찬사를 바치는 ‘인생예찬’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제16회 대전실내악축제의 서막이 올랐다. 음악감독 이경선 교수가 이끄는 서울비르투오지챔버오케스트라가 실내악 축제의 첫 무대에 섰다. 올해 축제의 특징 중 하나는 ‘주제가 있는 창작음악회’로 진행했다는 점이다. 일전에 한국 무대에서 접하기 어려운 작품과 현대곡 등 5곡을 초연하며 각각의 음악회에 다채로운 색깔을 더했다.
첫 공연의 레퍼토리는 바로크 후기에서 20세기 초에 이르지만, 전반적으로 관객들이 부담스럽지 않게 경청할 수 있는 전통적인 작품들을 선곡했다. 현대적 성격을 지닌 버르토크의 작품은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범주보다는 전통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버르토크의 ‘루마니아 민속 무곡’ Sz56는 개성 있는 짧은 춤곡 6개가 하나의 작품으로 묶여 있는 곡이다. 귀에 익숙한 발랄한 분위기의 선율도 있고, 선법을 사용해 민족적 감성을 물씬 풍기는 색채도 강하다. 대체로 무난한 연주였으나 각 곡의 개성이 좀 더 뚜렷이 드러났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겼다.
비발디 2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A단조 RV522는 협연자인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비드 헬렌(David Halen)과 리더 이경선의 듀엣으로 본격적인 연주회가 시작됐다. 그러나 비발디의 작품은 역시 바로크 음악의 연주가 결코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 예다. 전체적인 조화로움을 추구하지 못한 헬렌의 연주 스타일은 듀엣뿐 아니라 오케스트라와도 겉돌았다. 듀엣과도, 앙상블과도 충분히 함께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부조화였다. 다행히 뒤 이은 사라사테 ‘2대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나바라(Navarra)’ Op.33에서부터 조화로운 울림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경선의 유려하고 섬세한 음색이 사라사테의 예리한 선율과 어울리면서 헬렌의 음악과 조화를 이루었고, 스페인풍 음악의 색깔이 자기 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작곡가, 교육자, 연주가로 활동하는 브라이언 슈츠(Brian Suits)의 창작곡 ‘아리랑’은 매우 직관적인 아리랑이었다. 반음계 트릴로 현악기 선율이 깔리면서 바이올린이 홀로 아리랑 선율을 연주하면 이어 합주로 해당 선율이 반복되고, 점점 선율이 뚜렷해지는 음악이었다. 아리랑과 진도 아리랑은 몇 번에 걸친 전조와 한국적 리듬 위에서 춤추듯 어우러졌다. 서로 다른 두 아리랑의 선율이 독립적으로, 때론 결합되어 새롭게 확대된 슈츠의 ‘아리랑’은 격정적인 흥을 돋우기보다는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으로 관객에게 신선한 기쁨을 선사했다.
마지막 곡인 차이콥스키 ‘현을 위한 세레나데’ 무대는 예상대로 많은 시간 공을 들인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 순서였다. 좋은 울림은 연습과 연주한 시간에 비례한다. 공연 후반부였음에도, 연주자들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며 최고의 연주 기량을 보여주었다. 세레나데가 품고 있는 음악적 감성은 때로는 열정적으로, 때로는 처연하게 다가왔다. 마치 인생은 이렇게 찬란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때로는 비애를 안고 있음을 알려주듯이.
대전실내악축제는 이날 서울비르투오지챔버오케스트라의 연주로 호기롭게 시작을 알렸다. 첫 공연이 시사하듯, 다양한 성격의 연주자와 작품의 만남은 음악회를 풍성한 잔치로 이끄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 부조화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남은 축제의 성패는 다양한 색채를 지닌 무대들을 밀도 있게 소화해낼 수 있는 음악적 앙상블의 균형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사진 대전예술의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