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아벨 콰르텟은 밝은 표정으로 등장했다. 곧이어 들려준 연주도 표정만큼 산뜻하고 날렵했다. 윤은솔(제1바이올린), 이우일(제2바이올린), 김세준(비올라), 조형준(첼로)으로 구성된 아벨 콰르텟은 네 연주자가 독일 유학 중이던 2013년 결성했다. ‘생명력’ ‘숨’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아벨’처럼 이들의 연주는 자연스럽고 리듬감과 색채감이 돋보였다.
재작년의 아우구스트 에버딩 콩쿠르 2위, 작년 하이든 실내악 콩쿠르 1위와 리옹 실내악 콩쿠르 2위 등 이들이 5개월 만에 거두었던 성적은 괄목할 만하다. 작년과 올해 공연을 아쉽게 놓친 필자로서는 이들을 처음 접하는 무대였다.
리사이틀은 모차르트 현악 4중주 21번 ‘프러시안’으로 시작했다. 2악장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거침없는 흐름을 보인 이들은 부유하는 우아함을 예민한 감성으로 잡았다. 3악장에서는 일사불란함으로 절도 있는 연주를 보여주는 가운데 완급을 조절했다. 4대의 악기가 아니라 복잡한 메커니즘으로 된 악기 한 대의 소리를 듣는 듯했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4악장에서, 악기들이 번갈아 연주하는 전개와 표정의 변화가 물 흐르는 듯했다.
리게티의 현악 4중주 1번 ‘변형된 녹턴’은 음울하고 불길하게 시작했다. 긴 단악장 형식이었지만 17개 파트로 구성돼 지루하지 않은 곡이었다. 점차 격렬해지면서 냉정하고 기계적인 반복이 지속됐다. 네 사람은 복잡한 리듬도 막힘없이 연주했다. 비올라의 긴 보잉에 맞춰 제2바이올린이 노래하더니 첼로와 제1바이올린도 가세했다. 리드미컬하고 맹렬한 부분이 이어졌다. 간혹 비발디의 반복적인 악구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첼로의 조형준이 악보를 넘기다 떨어뜨리는 해프닝도 있었으나, 이후 그는 아예 암보로 연주했다. 긴 밤 같던 피날레로 끝이 났다.
인터미션 후 아벨 콰르텟은 슈만 현악 4중주 2번 Op.41을 연주했다. 1악장이 시작되자 독일 남부 전원 지역의 그림 같은 집들이 지나가는 듯했다. 맑고 푸른 하늘 같은 음색이었다. 호흡이 척척 맞았다. 2악장에서 각 악기의 울림은 관악기같이 두터웠다. 네 연주자들의 상체는 무용수의 무보처럼 움직였고, 약음도 잘 내주었다. 3악장에서는 투명하고 명징한 아르페지오와 불투명한 격렬함 사이의 긴장이 돋보였다. 발랄한 트리오는 맛깔스러웠다. 홍일점인 제1바이올린 윤은솔의 프레이징이 절묘하면서도 자연스러웠다. 4악장은 한마디로 명쾌했다. 이들은 복잡할 수도 있는 부분을 소화가 잘되도록 풀어 제시하고 있었다. 4중주가 아닌 2중주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이 한 소리를 내고, 비올라와 첼로가 다른 한 소리를 내는 2중주. 앉아 있는 위치도 그러했고, 긴밀한 대화가 4대의 악기를 2대의 악기처럼 보이게 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이들은 모차르트 현악 4중주 14번 ‘봄’ K387 중 4악장, 바흐 ‘G선상의 아리아’, 하이든 현악 4중주 Op.74-3 ‘기수’ 중 4악장을 앙코르로 들려줬다. 자신감과 자연스러움, 유연함과 절도가 함께한 앙상블이었다. 이들이 보여준 풋풋함은 성숙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되지만, 아벨 콰르텟이 우리나라 실내악의 한 축을 담당할 단체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사진 MOC프로덕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