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
뜨거운 여름이면 대전예술의전당은 ‘실내악의 도시’로 탈바꿈한다. 2001년 첫선을 보인 ‘대전실내악축제’가 있기 때문이다. 국내 여름 음악축제 가운데 15년 이상 유지되고 있는 음악제는 제주국제관악제를 제외하곤 대전실내악축제가 유일하다. 8월 2일부터 23일까지 펼쳐진 대전실내악축제는 ‘시티 콘서트’ 형식으로 대전예술의전당을 비롯한 대전 전역의 무대에서 성황리에 진행됐다.
쾰른 카머 앙상블 내한 공연이 열린 8월 14일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 이 콘서트는 실내악축제 프로그램에는 속해 있지 않되, 그 내용과 의미는 축제의 품격을 높여주는 훌륭한 기획이었다. 앙상블은 서울과 수도권 8개 공연장 외에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대전예술의전당을 찾았다.
쾰른은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옛 쾰른 필하모닉)를 필두로 여러 오케스트라와 실내악단이 군웅할거하는 음악의 도시다. 1981년 창단한 쾰른 카머 앙상블 또한 쟁쟁한 악단의 틈바구니에서 상위권으로 도약하며, 거의 교체되지 않은 멤버 그대로 35년을 버틴 실내악단이다. 그 중심에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음악감독인 다니엘 레펠트가 있다.
레펠트는 연주에 필요한 음악을 대부분 직접 편곡할 만큼 작곡 실력도 출중하다. 그가 대전에서 선보인 첫 음악은 모차르트 ‘마술피리’ 가운데 유명 아리아를 편곡한 ‘현을 위한 오페라 마술피리 모음곡’이었다. 3화음, 3연음, 3회 반복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서곡에선 13명뿐인 악단임에도 대단히 명징하고 웅장한 음향을 내뿜었다. 레펠트의 ‘마술’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더블베이스가 파파게노의 ‘나는야 새잡이’의 선율을 노래할 때 문득 모차르트가 떠올랐다. ‘궁정사회의 시민음악가 1호’로서 급격한 사회변혁을 꿈꾸던 모차르트는 악기 사용에서도 혁명적이었다. 당시 비주류 악기였던 더블베이스와 비올라, 클라리넷을 위한 음악을 최초로 작곡한 모차르트와 발맞추기라도 하듯 레펠트는 더블베이스를 주류로 격상시켰다. 타미노의 ‘초상화는 황홀하게 아름다워’에서는 비올라가 주인으로 등극했다. 모음곡의 마지막, 파파게노와 파파게나가 만나는 이중창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번갈아가며 주인공을 노래하면서 기막힌 대비를 이끌어냈다.
역시 더블베이스의 주제 연주가 돋보인 슈베르트의 ‘마왕’으로 시작한 후반부는 다채로운 만화경(萬華鏡)의 연속이었다.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는 강렬한 피치카토로 시동을 걸고 황홀한 하모니로 화답하며 음산한 느낌을 더했다. 뒤로 갈수록 격렬해지는 광폭함 또한 압권이었다. 하차투리안의 ‘가면무도회’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대화는 솟구치는 리듬감과 함께 조화를 이뤘다. 이 앙상블의 ‘앙상블’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는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연주였다. 대단히 작은 약음으로 시작해 점차 고조되는 고난도 테크닉을 별 무리 없이 소화했다. 마르케스의 ‘춤곡 2번’은 더블베이스가 타악기를 맡아 흥겨운 남아메리카 리듬을 발산했다. 가데의 ‘탱고 잘루지’는 앙코르로 선사한 피아졸라 ‘리베르 탱고’와 맞물려 관객들의 갈채를 받았다.
쾰른 카머 앙상블의 무대는 실내악이 좋은 편곡과 어우러지면 그 효과가 배가될 수 있음을 알게 한 ‘명품’ 공연이었다.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초청 공연만이 능사가 아니다. 적은 예산으로도 얼마든지 높은 수준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내년 축제는 아예 국내 연주단체와 해외 악단이 함께하는 무대를 기획해보는 건 어떨까.
사진 대전예술의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