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피셰르/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르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0월 1일 12:00 오전

동유럽의 서정미를 만끽하는 시간

이 세상에 자신을 전적으로 믿고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그러한 공동체가 있다면,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마음껏 해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이다.

지난해 봄,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4일간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 사이클로 한국 관객과 동고동락하던 이반 피셰르(Iván Fischer)가 다시 한국을 찾는다. 세상에 둘도 없는 그의 음악 동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이하 BFO)와 함께다.

창립자 겸 음악감독인 이반 피셰르를 중심으로 올해 33년째 전통을 이어온 BFO는 단원들의 실내악적 기량과 성향, 창조성을 중시하는 방향성에 따른 리허설과 운영 방식에 따라 오늘날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로 손꼽히게 됐다. 처음 오케스트라를 만들기 위해 단원을 모집할 때는 한 해에 두세 번 공연하는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였으나, 이후 단체가 점점 성장하고 연주 횟수가 많아지면 정규 오케스트라가 됐다. 단기간 내 성장과 변모에는 창단 초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종신단원제가 아닌 오디션을 통한 2년 단위 재계약 방식이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2003년부터 BFO는 헝가리 정부의 지원을 받는 국립기관으로 지정됐으나 최근 부다페스트 시가 오케스트라 예산을 80% 삭감해 앞으로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한편 이반 피셰르는 단원들과의 전적인 상호 신뢰 관계를 기초로, 모함과 실험을 거듭해왔다.

“저는 정말로 엉뚱한 음악적 발상을 자주 합니다. BFO는 저의 황당한 음악적 발상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죠. 그것이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고 종종 아주 흥미로운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점도 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제시하는 어떤 아이디어에 관해 아무 설명이 없어도 그들은 단지 그것을 시도하는 차원이 아닌, 어떤 방식으로 작동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완벽하게 예측하죠.”

‘젊은 헝가리 음악인들의 패기 넘치는 연주를 통해 오케스트라의 체질을 개선’해온 이들이 이번 내한 공연에서 선보이는 레퍼토리는 모차르트 ‘마술피리 서곡’,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협연 마리아 주앙 피르스)이다. 필립스 시절 피셰르/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대표하는 녹음으로도 손꼽히는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은 여러 해 전 채널 클래식스를 통해 재발매된 바 있다. 뜨거운 열정과 서늘한 서정미를 오롯이 담아낸 피셰르의 해석과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BFO 연주력을 세월이 흐른 지금, 한국에서 실연으로 마주할 수 있는 기회다.

협연자로 나서는 마리아 주앙 피르스 역시 우리가 놓칠 수 없는 피아니스트다. 지난 2013년 하이팅크/런던 심포니와 내한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17번, 2014년 로빈 티차티/스코티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선보인 그녀는 이번 무대에서 2년 전과 동일하게 쇼팽 협주곡 2번을 연주한다. 20대부터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로 이름을 알려온 피르스에게 쇼팽의 작품은 모차르트 못지않게 사랑하는 작곡가로 데뷔 시절 명연들이 광범위한 음반들을 통해 국내에도 소개됐다. 그녀의 1977년 협주곡집 레코딩을 두고 피아니스트 김주영은 “음악적 고집이 단단하고 명확하게 짚어가는 터치를 통해 한 음 한 음 꼼꼼하게 그려가며, 프레이징의 끝부분을 정성스레 오므리듯 표현하는 것이 피르스의 장기”라 평한 바 있다.

198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꽃피운 피셰르와 BFO의 개혁과 도전, 그 사이로 흐르는 동유럽 특유의 감각적인 선율, 소박하면서도 담백한 피르스의 해석까지. 켜켜이 쌓인 세월이 건네는 선물이 이제 우리 앞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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