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최근에는 극초음속 엔진 여객기의 콘셉트 디자인이 공개되어 눈길을 끌었는데, 현역에서 활동했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보다 무려 12배나 빠르다고 한다. 이 비행기로 런던에서 뉴욕까지를 불과 11분 만에, 그리고 뉴욕에서 도쿄까지는 22분 만에 주파 가능하다고 한다. 대체 어느 정도 빠른 엔진이기에 이런 꿈같은 현실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지 온전히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분명한 사실은 세상의 변화 속도는 일반인의 생각을 넘어선 지 오래라는 점이다.
느림과 여유가 미덕이며 또한 필요조건이라 여겨지던 고전 음악의 세계에서 이 ‘빠름’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물론 저 빠르다는 초음속 여객기를 타고 하루에도 지구를 몇 바퀴나 돌며 유럽-미주-아시아 주요 지역 공연이 가능하겠고 우리는 인터넷 덕택에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콩쿠르에서 참가자들이 1라운드를 어떻게 연주했는지, 또 내가 지금 공부하는 곡을 다른 연주자들이 어떻게 연주하는지, 어떤 방식이 더 선호되는지, 잠깐의 검색으로 금세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빠름과 편리함의 장점 이면에는 ‘은밀한 평준화’의 교묘한 덫이 놓여 있으며, 예전처럼 저마다 개성을 간직한 연주를 만나보기가 어려워졌다. 때문에 클래식 음악에서 과거의 명연주나 대가들을 찾는 것은, 전 시대의 영광에 대한 향수에서 기인하는 부분도 있겠으나 과거의 극명했던 개성, 그리고 지금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운 ‘스타일’에 대한 갈증에서 연유하는 바도 크다.
한 사람의 음악가가 완성되는 데에는 5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한 인간이 온전한 음악가가 되는 데에는 인고의 시간이 따른다는 말이다.
여기, 자신만의 개성을 오롯이 지키면서 세계 정상급의 연주자로 우뚝 선, 두 명의 거장이 나란히 10월에 내한 무대를 갖는다.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조피 무터와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가 그 주인공으로 1963년생인 무터가 올해 54세, 1958년생인 이설리스가 59세니까 음악가로서 완숙의 시간에 접어들었다 해도 틀린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오늘날에는 기능적으로 완벽하고 세련된, 탁월한 젊은 연주자들이 즐비하지만, 신동의 시간을 지나 오랜 세월을 견디어내고 무르익은 연주자들의 해석에는 젊은 연주자들에게서 발견하기 어려운 깊이와 즐거움이 있다.
압도적인 카리스마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조피 무터
필자의 유학 시절, 2006년 뮌헨에서 안네 조피 무터와 전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무터는 모차르트 프로젝트를 한창 진행 중이었고, 막 뮌헨에서 3일에 걸쳐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19개 중 15개를 연주하는 대장정을 마쳤다. 그것도 ‘모차르트’의 ‘소나타’를, ‘암보’로 말이다! 특히 그 ‘암보’의 대목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필자는 무터에게 그 부분에 대해 물어본 기억이 있는데, 무터의 대답은 이러했다.
‘자신의 연주 철학은 무대에서는 가능한 외워서 연주하는 것이며, 이 경우 곡의 디테일을 더 잘 파악할 수 있고 해석과 연주에 있어 더 나은 환경이 가능하다.’
어떤 곡을 연주하든 콘서트의 첫 일성(一聲)에서부터 그것이 무터임을 확연히 알 수 있는, 1710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로드 둔 라벤’을 타고 흐르는 카리스마 넘치는 음색과 비브라토의 이면에는 이렇듯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이 있다.
무터는 현대음악에 대한 관심 또한 지대한데, 한때는 ‘동시대 현대음악 전문 연주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에게 헌정된 곡들을 위시하여 철저히 근현대 레퍼토리에만 매진한 시간들도 있었다.
무터를 이야기할 때 빼놓지 말고 이야기해야 할 것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바로 안네 조피 무터 재단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영원한 단짝 듀오, 피아니스트 램버트 오르키스다.
1987년, 무터는 루돌프 에벌레 재단을 창설, 슈투트가르트와 바덴 뷔어텐베르크 지방 음악가들만을 후원하다가 1996년부터 뮌헨에 본거지를 둔 안네 조피 무터 재단을 설립, 범세계적으로 젊은 연주자들을 후원하고 있다. 이번 내한 무대에서 함께 연주하는 첼리스트 김두민 역시 안네 조피 무터 재단이 후원하는 무터 비르투오지 출신이다.
1988년 12월부터 무터와 함께 호흡을 맞춘 피아니스트 램버트 오르키스는 올해 28년째 무터와 함께 무대에서 서고 있는 무터의 분신이다.
환상적인 호흡과 넘치는 카리스마가 기대되는 무터의 이번 10월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 홀 무대는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Op.97 ‘대공’과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K526, 레스피기 바이올린 소나타 b단조, 그리고 생상스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까지 마련되어 있어 완숙한 한 바이올리니스트의 다양한 면모를 입체적으로 확인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더불어 올해는 1976년 무터가 13세의 나이로 루체른 페스티벌에 데뷔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하니 더욱 뜻깊은 무대가 기대된다.
현 위의 성인(聖人)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
흔히들 ‘음악가들의 음악가’라 불리는 연주자들이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중에는 오스카 슘스키나 요세프 수크가 그러했고, 첼리스트 중에는 이번에 소개할 스티븐 이설리스가 그러하다. 영국 런던 태생인 이설리스의 가계도를 따라가다 보면 펠릭스 멘델스존과 먼 사촌뻘이 된다는 것이 우선 흥미롭다. 이설리스는 그의 나이 11세가 되던 해 국제 첼로 센터에 입학해 제인 코언을 사사하는데, 이설리스가 음악 인생 평생을 두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체론적 접근법’을 코언 선생에게서 배우게 된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테크닉보다는 연주할 작품의 전체 맥락을 먼저 공부하는 방법으로 이때의 영향으로 이설리스는 새로운 작품을 배울 때 피아노를 먼저 쳐보고 이후 첼로를 연습하는 습관을 익혔다. 작품에 대해 매우 친밀하게 알게 된 경우에만 성공적으로 음악을 청중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그의 철학은 이때부터 쌓아온 것이었다.
무터와 이설리스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현대음악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악기 연주 이외의 다양한 활동을 꼽을 수 있겠는데, 이러한 새로운 음악, 혹은 과소평가된 음악에 대한 열정과 탐구정신으로 인해 일찍이 ‘스트링스’지는 이설리스를 일컬어 ‘잃어버린 것을 위해 싸우는 투사’라고까지 칭했다.
원전 연주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굵직한 원전 연주 단체들과도 협업했고, 런던 위그모어 홀에서 ‘타네예프와 친구들’이라는 연주 프로젝트를 필두로, 잘츠부르크, 베를린, 그리고 비엔나에서도 다채로운 실내악 프로그램들을 기획했다.
무터가 그녀의 재단을 통해 미래의 연주자들을 도왔다면, 이설리스는 두 권의 저서를 통해 후배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 작품이자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쓴 위대한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왜 베토벤은 스튜를 던졌을까?(Why Beethoven threw the Stew?, 2001)’는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이 선정하는 ‘이달의 아동서적’에 선정되기도 했고, 대중적 인기로 인해 두 번이나 재판을 발행, 최근에는 일본어판으로도 출간되었다고 한다.
전 세대의 위대한 첼리스트 에마누엘 포이어만이 사용하던 1730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드 뭉크를 타고 흐르는 이설리스의 연주는, 마치 산수화를 보는 듯한 부드러움과 자연스러움이 가득하다.
이렇듯 내면적 슬픔을 체화해낸 듯한 담담한 표현력은, 현대의 젊은 첼리스트들에게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대목으로, 10월 13일 금호 아트홀에서 여는 무려 12년 만의 내한 리사이틀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포레의 첼로 소나타 1번, 이설리스가 깊은 연을 맺고 있는 작곡가 토머스 아데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음악 ‘다시 찾은 곳’, 생상스의 첼로 소나타 2번 중 ‘로망스’, 그리고 프랑크의 첼로 소나타 A장조를 통해 우리는 지성과 열정, 그리고 끊임없는 탐구와 헌신의 연주자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