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 게르기예프/마린스키 오케스트라 & 피아니스트 손열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0월 1일 12:00 오전


▲ 발레리 게르기예프 ⓒAlberto Venzago

1860년 10월 2일 알렉산드르 2세의 황비였던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의 이름을 딴 마린스키 극장이 역사적인 개관 공연을 열었다. 기존의 볼쇼이 극장과 함께 2개의 황실극장 체제가 시작된 것이다. 이를 위해 3관 편성 이상의 2개 오케스트라는 필수였다. 모차르트부터 벨리니, 도니체티의 벨칸토 오페라는 물론 구노·토마·마이어베어의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가 문전성시를 이뤘다. 베르디의 ‘운명의 힘’은 1862년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악단의 중요성은 더욱 견고해졌다. 이와 함께 순수한 심포닉 콘서트도 함께 열렸다.

서유럽 오페라뿐만이 아니었다. 글린카에서 시작된 러시아 오페라 연주는 황실 오케스트라의 전유물이었다. 특히 1863년 체코에서 온 지휘자 에두아르드 나프라브니크는 반세기 동안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그는 무소륵스키·차이콥스키·보로딘·림스키코르사코프가 작곡한 러시아 오페라를 모두 책임졌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도 나프라브니크가 세상에 처음 알렸다. 오케스트라만의 콘서트 회수도 점차 늘려갔다. 베를리오즈·바그너·말러·니키슈에 이르는 객원지휘자들은 오케스트라의 명성을 확고히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라흐마니노프는 1912년 차이콥스키의 ‘스페이드의 여왕’을 6회 지휘하기도 했다. 20세기 들어 니콜라이 말코·에밀 쿠퍼·블라디미르 드라니시니코프·세르게이 옐친·콘스탄틴 시모노프·유리 테미르카노프에 이르기까지 지휘자들은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고 한결같이 전통과 혁신을 융합했다. 러시아 지휘계의 전설 예프게니 므라빈스키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에서 지휘를 시작했다. 2001년 타계한 빅토르 페도토프는 러시아 오페라와 발레 지휘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실력을 보여준 거장이었다.

여기에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혜성처럼 나타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일리야 무신을 사사한 게르기예프는 1978년부터 마린스키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그리고 1996년부터 테미르카노프의 뒤를 이어 마린스키 극장 총감독으로 부임했다. 옛 소련 해체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던 마린스키 극장은 게르기예프를 만나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을 제치고 러시아 정상의 자리를 탈환하는 한편, 서유럽과 미국의 어떤 극장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세계 초일류 극장으로 뛰어올랐다.

게르기예프는 주춤하던 러시아 오페라의 전곡 연주와 녹음을 단행했고, 러시아 작곡가의 관현악 작품을 대부분 음반으로 남겼다. 이는 그의 수족 같은 마린스키 오케스트라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라 스칼라 필하모닉·베를린 슈타츠카펠레·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등은 현재 극장 소속으로 베를린 필·빈 필과 같은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게르기예프의 지휘 아래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또한 그 대열에 합류했다. 또한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과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쌍두마차로 군림하고 있다. 필자가 게르기예프 지휘의 마린스키 오케스트라를 처음 만난 것은 2000년 10월 7일 제218 시즌 개막 공연에서였다.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마제파’에서 진정한 러시아 음악의 압도적인 사운드를 맛보았다. 이후 매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해 게르기예프의 마법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런던 심포니에 이어 지난해부터 게르기예프는 뮌헨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을 겸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기에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만 한 악단이 없다.

게르기예프/마린스키 오케스트라가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1번과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협주곡 1번(협연 손열음)으로 음악의 성찬을 차린다. 게르기예프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레퍼토리, 오랜만에 러시아 음악의 진면목을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다.


▲ 손열음 ⓒ이은비(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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