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인터뷰’

촘촘하고 꼼꼼한 무대의 매력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1월 1일 12:00 오전

9월 24일~11월 27일 수현재씨어터

‘해리성 정체 장애’는 의식·기억·정체감·환경에 대한 지각에서 정신적인 방황이나 붕괴가 일어나는 현상을 일컫는다. ‘해리’란 사람의 이름이 아닌 화학용어로 풀 해(解)와 떠날 리(離)의 결합으로, 모였던 것이 떨어졌다는 의미로 사람의 인격에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다중 자아가 존재하는 상태를 말한다.

대중문화 속에서 가장 유명한 해리성 정체 장애(이하 해리성 장애) 소재의 콘텐츠는 아마도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일 것이다. ‘다중인격 장애’란 말로도 익숙한데, 섬뜩한 엔딩신의 독백은 한참이나 인구에 회자되던 이색적인 장면이다. 이 장애는 요즘 세대들에겐 최근 TV 드라마로 인기를 누린 ‘킬미, 힐미’나 ‘하이드 지킬, 나’로 더 익숙할 수도 있다. 덕분에 지성은 정말 연기 잘하는 배우로 대중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뮤지컬 ‘인터뷰’ 역시 해리성 장애를 다룬 창작 뮤지컬이다. 어린 시절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을 경험한 싱클레어의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그가 왜 어떤 이유로 범행을 저지르게 됐는가를 다루는 서스펜스 스릴러물이다. 등장인물은 싱클레어와 그를 인터뷰하는 소설가 유진 킴 그리고 싱클레어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소녀이자 누이인 조안까지 단 세 명뿐이지만, 다중인격 소재의 뮤지컬답게 어린아이에서 건달, 새침한 소녀, 냉철한 관찰자 등 싱클레어의 여러 인성이 연이어 등장해 마치 10여 명의 배우를 본 것 같은 느낌을 남긴다. 그 수많은 대사와 상반된 캐릭터를 현장 예술인 뮤지컬 무대에서 그것도 객석과 무대가 가까운 소극장 뮤지컬로 즐긴다는 매력이 색다른 묘미와 잔상이 오래 남는 감흥을 전해준다. 한 배우의 다양한 연기 변신을 경험할 수 있다는 면을 감안하면, ‘지킬 앤 하이드’ ‘맨 오브 라 만차’, 그리고 최근 인기를 누린 또 다른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흥행 공식을 영리하게 차용한 작품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이야기의 긴장감을 유지하거나 극대화하기 위해서인지 뮤지컬 ‘인터뷰’는 중간 휴식이 없는 단막으로 극을 진행한다. 덕분에 차분히 쌓인 궁금증과 관심을 극의 마지막까지 효과적인 호흡과 속도로 원활히 이어간다. 뮤지컬 ‘쓰릴 미’처럼 화려한 음악적 편성보다 피아노 한 대의 연주로 심리적 변화와 스토리 전개의 재미를 구현해내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웃 일본으로의 진출도 고무적이다. 서스펜스나 스릴러를 좋아하는 현지 관객들의 문화적 취향과 관심이 잘 반영된 바람직한 성과다. 초기 제작 단계에서부터 해외 판권을 확보한 별개의 회사가 국내 공연과 별개로 일본 진출을 추진하는 이색적인 마케팅 전략을 추구해 얻어진 흥미로운 실험 결과다. 국내에서의 성공적 흥행과 별개로 일본에서의 공연도 계속 이어질 예정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최근 자주 접하던 소재인 까닭에 다소 ‘뻔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무대를 ‘뻔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역시 배우의 다채로운 연기다. 워낙 대사가 쉬지 않고 등장해 체력 소모가 많은 탓인지 유진 킴과 조안 역으로는 배우 3명, 싱클레어 역으로는 자그마치 5명이 나온다. 그날의 배우에 따라 작품의 호흡과 깊이가 조금은 달라진다는 점은 공연장 나들이에 참고할 부분이다. 이야기의 밀도만큼은 최근 어떤 창작물보다 촘촘하고 꼼꼼하다. 무대가 주는 이색적인 재미를 만끽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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